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114)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114화(114/215)
사자와 사냥꾼 (4)
* * *
“흔적이 이곳에서 끊겼군요. 조금 더 가까이 가면 알 것 같기도 합니다만.”
난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내려놨다.
숲은 나무들로 가득했다.
참나무, 너도밤나무와 물푸레나무까지.
나뭇가지와 잎 때문에 앞이 제대로 안 보일 정도였다.
“정찰대를 더 보내겠습니다.”
마셜이 말에서 내리며 말했다.
“운이 좋으면 바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운이 안 좋다면….”
“놈들이 마을을 습격한 후에야 알 수 있겠죠.”
내가 말했다.
젊은 헨리의 진영을 떠나고 이틀째.
우린 제프리가 보낸 용병대를 추격 중이었다.
“정말 용병대가 마을을 습격할 거라고 확신하시는 겁니까?”
마셜이 물었다.
“아무리 제프리 공이도 평화협정을 막기 위해 헨리 폐하의 마을을 불태운다니. 이건 말도 안 되는 짓입니다.”
“그들은 이미 경을 몰아내려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간통 혐의를 씌워서요.”
내가 말했다.
난 젊은 헨리에게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말해줬다.
우선 윌리엄 마셜가 왕비와 간통을 저질렀다고 누명 씌우기.
이건 원 역사에서도 했던 일이지.
그다음 할 법한 일은 ‘가짜 깃발 심기’.
자기 휘하의 부하들을 이용해 리처드가 젊은 헨리의 마을을 공격한 것처럼 꾸미는 거였다.
‘그렇게 되면 전쟁을 계속할 수밖에 없지.’
용병대를 해산했다는 것도 다른 곳에 보내기 위한 거짓말일 터.
용병 무리는 진지를 떠난 뒤에도 계속 남쪽으로 진군했다.
“폐하께선 그런 헛소문을 안 믿으셨을 겁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든 안 하시든 말이죠.”
“글쎄요.”
내가 웃으며 답했다.
원 역사에서 젊은 헨리는 결국 마셜을 쫓아낸다.
윌리엄 마셜이 떠돌이 기사 생활을 하다 돌아오는 건 몇 년 후.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마셜은 쫓겨나는 척하며 나와 함께 용병대 추격을 맡았다.
내가 한 말들이 그대로 현실에 벌어졌으니 안 믿을 수가 없었겠지.
마셜이 말했다.
“돌아가서 이 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용병대를 찾지 못하면 결국 아무 것도 못할 겁니다.”
“그러려면 확실한 증거가 필요할 겁니다. 마을을 습격하는 제프리의 용병대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겠죠.”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쟁을 멈추려면 제프리가 한 짓을 모두에게 알려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성전기사단을 잡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필요했다.
“그럼 빨리 찾아야겠군요. 곧 있으면 공자께서 진지에 없다는 사실을 눈치챌 겁니다.”
“에이그를 믿는 수밖에요.”
난 소수의 기사만 이끌고 진지를 떠났다.
지금쯤이면 에이그가 내 투구랑 갑옷을 쓰고 있겠지.
오래가진 못할 텐데.
계속 투구만 쓰고 있으면 언젠가 의심할 터.
“용병대가 마을을 습격할 때 맞춰서 놈들을 치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마셜이 말했다.
“기사들의 수도 턱없이 부족하고요. 뭔가 좋은 수가 떠오르질 않는군요.”
“놈들을 유혹할 미끼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난 주변을 둘러봤다.
“지금은 우선 찾는 거에 집중해보죠. 어떻게 싸울지는 나중에 생각해도 충분합니다.”
용병대가 지나간 흔적은 희미했다.
육감을 최대한 끌어올려도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
내가 말했다.
“제때 놈들을 찾지 못하면 잿더미만 남아있을 겁니다. 녀석들은 마을을 불태우고 곧바로 떠나려 하겠죠.”
“솔직히 여기까지 흔적을 쫓아온 것도 믿기가 어렵습니다.”
마셜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흔적을 굉장히 잘 찾으시는군요.”
“사냥꾼의 직감이라고 해두죠.”
육감이란 게 뭐 그렇지.
보이지 않는 걸 추격할 때 꽤 유용하단 말이야.
육감을 끌어올리던 그때, 뭔가 느껴졌다.
긴장, 흥분.
수백의 인영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난 생각할 틈도 없이 주먹을 허공에 흔들었다.
“모두 적에 대비하라!”
“무기를 들어라!”
예루살렘 기사들이 익숙하다는 듯 검과 방패를 들었다.
말들이 푸르릉거리며 앞발을 치켜세웠다.
마셜의 부하들도 잠시 당황하다 무기를 들었다.
“왜 그러십니까, 공자님?”
“누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최소 이백은 넘는 것 같군요.”
내가 투구를 쓰며 말했다.
우리가 쫓던 용병들인가?
놈들이 추격을 눈치채고 먼저 공격해 오는 걸 수 있었다.
풀이 바스락거리고 철이 나무에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사들 모두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서늘한 공기가 피부를 스쳤다.
이젠 육감이 없어도 적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 근처 숲들에는 산적들이 많습니다. 특히 전쟁이 벌어지고 나서 더 늘었죠.”
윌리엄이 말에 올라타며 말했다.
“보통 수십이 몰려다니는 데 이백이라니. 산적이라기엔 수가 너무 많군요.”
“이미 숲을 빠져나가긴 늦었습니다.”
난 뒤를 돌아봤다.
나와 마셜의 기사들은 다 합쳐 칠십 정도.
평야에선 압도적인 전력이지만 이런 좁은 숲에선 말이 제대로 기동할 수 없었다.
아무리 갑옷을 입었다 해도 하마下馬해 싸우는 건 쉽지 않은 일.
‘수십 분이 지나면 지쳐 쓰러지겠지.’
판금이 아닌 사슬갑옷도 장시간 입고 싸우기엔 너무 무거웠다.
정적이 흘렀다.
수풀을 해치는 소리만 계속 들려왔다.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놀란 새들이 하나둘 날아올랐다.
그리고 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몽둥이와 손도끼.
활과 쇠갈고리까지.
건장한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나무 몇 개를 사이에 두고 우리 앞에 멈춰 섰다.
용병인가?
용병이라 하기엔 무장이 빈약한 것 같은데.
하지만 용병은 애초에 통일된 무장이 없었다.
낫이나 녹슨 검 하나만 들어도 용병은 될 수 있지.
“무슨 놈들이냐?! 정체를 밝혀라!”
마셜이 창을 들고 앞으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그의 기세에 놀랐는지 적들이 주춤 물러섰다.
기사들은 모두 앞을 응시하며 명령을 기다렸다.
한마디.
단 한마디면 적을 향해 달려들 터였다.
“지금 당장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면 적으로 간주하겠다!”
“이 미천한 자가 고귀하신 윌리엄 마셜 경을 뵙습니다.”
한 사내가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40대 초중반처럼 보이는 외모.
건장한 체격에 긴 콧수염까지.
다른 이들에 비해 카리스마가 있어 보였다.
저자가 두목인가 보군.
사내는 손에 긴 활을 들고 있었다.
마셜이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나를 아는가?”
“한때 젊은 헨리 폐하의 밑에서 궁수로 복무한 적 있습니다. 몇 년 전 일이지요. 전쟁과 역병이 돌기 전이었습니다.”
난 앞으로 걸어나갔다.
이들의 정체를 대충 알 것 같았다.
“너희들은 산적단이로군. 안 그런가?”
이들은 이곳 산에 익숙한 자들이었다.
용병대였다면 이렇게 빨리 수풀을 해치고 접근하지 못했겠지.
“저희는 마을을 약탈하고 다니는 산적단 따위가 아닙니다.”
사내가 말했다.
그의 눈이 이글이글 불탔다.
분노가 온몸을 타고 흐르는 게 느껴졌다.
산적이 아니라고?
산에서 무장하고 사는 수백의 남자들이라.
아무리 봐도 수상한데.
“저흰 어디까지나 생존자들입니다. 지난 몇 년간 역병과 전쟁이 계속되면서 수많은 마을이 불탔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내가 잠시 말을 멈췄다.
“아이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거기에 전쟁을 위한 세금까지 내야 했죠. 그래서 참다못해 이곳 숲으로 도망친 겁니다.”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확실히 평범한 산적단은 아니었다.
과일과 약초를 채집해 팔고 사냥에 과수원까지.
“그리고 지나가는 상인들에겐 소액의 통행세를 걷었지요. 함부로 남의 목숨을 빼앗은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숲은 어디까지나 잉글랜드 왕실과 국왕 폐하의 소유이다.”
마셜이 말했다.
그는 여전히 손에 창을 움켜쥐고 있었다.
“아무리 그대들의 처지가 딱하다 한들 신성한 숲을 멋대로 점유하고 상인들을 약탈한 것은 범죄. 변명의 여지가 없겠지.”
조금씩 풀리던 분위기가 다시 팽팽해졌다.
기사와 사내들 모두 무기를 들고 서로를 노려봤다.
“마셜 경. 지금 여기서 싸우고 있을 여유는 없습니다.”
내가 앞으로 나서며 사내에게 말했다.
“자네 이름은 뭔가?”
“캉이라 합니다, 존귀하신 분이시여.”
“캉이라. 흔치 않은 이름이군.”
“제 고향인 캉Caen을 따서 붙인 이름입니다. 예전 이름 대신 쓰고 있지요.”
그가 말했다.
설명하기 힘든 씁쓸함이 느껴졌다.
뭔가 사연이 있는 모양이군.
사내가 한 말은 모두 진실이었다.
역병과 전쟁.
살아남기 위해 가족을 데리고 숲으로 도망친 사람들.
이들이 아직 토벌되지 않은 건 전쟁 덕분이겠지.
이곳 숲까지 토벌군을 보낼 여유는 없었을 터.
전쟁이 끝나면 이들은 언젠가 토벌될 운명이었다.
“난 예루살렘 왕실의 보두앵이라고 하네. 이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막기 위해 왔지.”
내 말을 들은 캉이 고개를 숙였다.
“영광스러운 성도 예루살렘에서 오신 고귀하신 분을 뵙습니다.”
뒤에 있던 사내들도 엉거주춤 고개를 숙였다.
“공자님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루살렘 군대가 용병들에게 습격받은 마을들을 구해줬다더군요.”
“자네가 들은 이야기들은 모두 사실일세.”
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이곳 숲에 사는 이들이라면 용병대를 봤을 터.
“어젯밤이나 오늘 아침 한 용병대가 이곳 숲을 지나갔네. 자네들이라면 봤을 것 같네만.”
“오늘 아침 한 무리가 이곳 숲을 통과하긴 했습니다.”
캉이 손가락을 들어 숲 한쪽을 가리켰다.
“서쪽으로 돌아와 저쪽으로 빠져나갔지요.”
“그렇군. 내 하나 더 궁금한 게 있네만.”
난 그를 바라봤다.
이렇게 태연한 얼굴로 거짓말할 줄은 몰랐군.
“왜 나한테 거짓말을 하는 건가?”
“….”
캉이 놀란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그가 내 앞에 무릎 꿇었다.
“결코 고귀하신 분께 무례를 범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공자님에 대한 이야기 중에 진실과 거짓을….”
“그래서 날 시험하고 싶었다는 거군. 지금은 상황이 급하니 그냥 넘어가도록 하지.”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놈들이 향한 진짜 방향이 어느 쪽인가?”
“저쪽입니다.”
숲 동쪽 방향.
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아침이면 곧 따라잡을 수 있겠군.
난 사내들을 바라봤다.
생각보다 괜찮은 무장.
거기에 전의戰意도 나쁘지 않았다.
“혹시 죄를 용서받고 싶을 생각은 없나?”
“예? 죄를 용서받다니 그게 무슨….”
“자네들에게 나쁜 제안은 아닐 걸세.”
내가 웃으며 물었다.
그때 뭔가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용병대를 유인할 최고의 미끼.
“아, 그리고 자네들 혹시 가진 돈 좀 있나?”
* * *
젊은 헨리 진영
“용병대가 떠난 걸 의심하는 자들은 없나?”
“아직 없습니다. 설령 의심한다 해도 입 밖으로 내진 못하겠지요.”
베르트랑이 말했다.
그가 닭 다리를 물어뜯으며 제프리를 바라봤다.
“그 잘난 마셜도 쫓겨난 판국에 누가 멋대로 입을 놀리겠습니까?”
“너무 일이 잘 풀리고 있단 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신경이 쓰이네.”
제프리가 말했다.
“마셜은 형님을 꼬맹이 시절부터 지켜왔네. 심지어 기사 서임까지 해줬지. 잉글랜드 왕도 프랑스 왕도 아닌 일개 기사가 말이야.”
그가 덧붙였다.
“근데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마셜을 쳐냈다니.”
“공작님께서도 결혼하신 몸이니 아실 텐데요.”
베르트랑이 웃음을 터뜨렸다.
육즙이 그의 옷 위에 뚝뚝 떨어졌다.
“자기 아내를 딴 사내놈이 품었다는 것만큼 두려운 일은 없지요. 그건 마치 검게 썩은 달걀처럼 기억에서 잊을 수 없는 겁니다. 지금까지 유행한 시들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가 말했다.
“여인들은 사제와 몰래 몸을 섞고 남편이 십자군 원정을 떠난 사이 새 애인을 만들지요.”
“하긴 자기 핏줄을 남기지 못한다는 것만큼 두려운 일이 어딨겠나?”
제프리도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든 이 저주스러운 피를 남기려 발버둥치는 거지.”
“저주스러운 피라니요. 공작님의 몸에 흐르는 피보다 더 고귀한 피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부는 집어치우게, 베르트랑. 우리 가문의 피는 저주받았어.”
그가 으르렁거렸다.
“우리 핏줄은 서로를 사랑할 수 없네. 형제는 형제를, 아들은 아비를, 아내는 남편과 죽어라 싸우도록 태어난 게 바로 우리 가문이야.”
“아내와 남편은 같은 핏줄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결국엔 같은 핏줄이네.”
제프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내 사랑하는 어머니께선 근친혼을 핑계 삼아 프랑스 왕과 이혼하셨지. 하지만 정작 내 아버지는 어머니와 피가 더 가깝지 않나?”
“교황 성하께서 허락하신 거라면 그건 근친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 성하께서 근친혼을 인정하시기 전까진 근친혼이 아니겠지.”
침묵이 흘렀다.
제프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습격 소식이 전해지면 바로 움직일 수 있게 해두게. 형님이 정신을 차릴 틈을 주면 안 된단 말일세.”
“물론입니다, 공작님.”
베르트랑이 말했다.
“이미 적지 않은 귀족들이 공작님 편으로 돌아섰습니다. 마셜도 없으니 이제 공작님을 방해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래, 그렇겠지. 그리고 이걸 명심해두게, 베르트랑.”
제프리가 말했다.
그가 뚜벅뚜벅 걸어가 베르트랑 앞에 섰다.
“자네와 난 같은 배를 탔다는 걸 말이야. 만약 허튼 생각을 품는다면….”
그가 덧붙였다.
“자네는 잘린 혀로 시를 써야 할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