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121)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121화(121/215)
엑스칼리버 (1)
* * *
“신의 은총으로 영광스러운 잉글랜드의 왕이자 가장 탁월하고 고귀하신…!”
“천상의 군대를 이끄시는 대천사 미카엘이시여! 악의 군세를 물리치고 사탄의 손아귀에서 저희를 구해주소서!”
도버 항구는 인파로 가득 차 있었다.
불타는 것처럼 이글거리는 눈빛들.
이들은 기도문을 외치며 우리에게 달라붙었다.
인파를 통제하기 위해 기사들이 나서야 할 정도였다.
“물러서시오! 모두 물러나라 하지 않았소!”
이들의 관심은 대부분 내게 집중됐다.
예루살렘 왕족이 잉글랜드에 오는 건 처음 있는 일.
성십자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우린 사방에서 쏟아지는 환영을 받으며 런던으로 올라갔다.
무리를 이끌고 런던에 도착한 건 사흘째 되던 날.
“저, 저기가 런던입니다. 공자.”
젊은 헨리가 웃으며 말했다.
그가 손을 들어 성벽을 가리켰다.
“저, 정말 아름다운 도시이지 않습니까? 물론 예, 예루살렘에는 한참 못 미치겠지만 말입니다.”
“예루살렘과 비교해도 충분히 훌륭합니다.”
내가 말했다.
수비가 생각보다 견고해 보이는데.
높은 성벽에 성문은 총 일곱 개.
돌로 된 성벽 위엔 순찰 도는 병사들이 보였다.
도시와 서리 강변을 연결하는 다리들은 모두 돌로 만들었군.
예루살렘보다 규모는 작을지 몰라도 수비 태세는 엇비슷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요, 공자.”
리처드가 우리 둘 곁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그가 입꼬리를 씩 올렸다.
“런던은 겉으론 아름다운 미녀처럼 보이지만, 속마음은 시커먼 마녀거든. 저기 다리 건너편 서리 강변을 보시오.”
그가 손을 들어 다리 저편을 가리켰다.
“윈체스터 주교 궁과 켄터베리 대주교 궁 사이를 연결하는 땅이지. 창녀와 도적들이 저곳을 아예 자신들의 땅으로 만들었소.”
“리, 리처드. 성도에서 오신 분께 쓸데없는 말을 할 필요는 없다.”
“형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리처드가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우린 런던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성채로 다가갔다.
성벽 안 건물들은 대부분 목조였다.
빨강과 파랑, 검정으로 칠해진 건물들은 알록달록해 보였다.
내 생각만큼 칙칙하진 않군.
거리를 지나자 곳곳에서 음식 냄새가 풍겨왔다.
톡 쏘는 익숙한 향신료 냄새.
돼지와 양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악취를 풍겼다.
도시엔 생기가 넘쳤다.
다른 곳들에선 느끼기 어려운 에너지.
안쪽의 성채는 바깥 성벽보다 경비가 더 삼엄했다.
거대한 나무문을 몇 개나 통과한 후에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 셋은 계속 안으로 들어갔다.
알현실은 성직자와 귀족, 관료들로 가득했다.
그들 모두 우릴 보고 고개를 숙였다.
중앙의 왕좌에는 오십 대처럼 보이는 중년 사내가 앉아 있었다.
붉은색 머리칼에 큰 덩치.
저자가 헨리 2세로군.
잉글랜드의 늙은 사자.
우리가 들어가자 포고관이 큰소리로 외쳤다.
“영광스러운 잉글랜드의 국왕이시자 노르망디 공작, 앙주와 투렌의 백작이신 헨리 폐하이십니다!”
젊은 헨리는 익숙하다는 듯 앞으로 나아갔다.
그다음 차례는 리처드였다.
“축복받은 아키텐의 공작이신 리처드 공이십니다!”
리처드가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나갔다.
이제 내 차례군.
“성도 예루살렘의 왕족이자 교황 성하의 대리자인 보두앵 공자이십니다!”
난 두 사람을 따라 앞으로 걸어나갔다.
주변 귀족과 성직자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헨리, 리처드. 둘 다 어서 오거라.”
헨리 2세가 왕좌에서 일어섰다.
그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너희 둘이 싸움을 멈췄다는 소식을 듣고 이 아비가 얼마나 기뻤는지 모를 거다.”
그가 말했다.
“너희가 이렇게 손잡고 사이좋게 런던으로 오다니. 아비인 내가 뭘 더 바랄 수 있겠느냐.”
“아버지께선 저와 형님이 더 싸우길 원하실 줄 알았습니다만.”
리처드가 말했다.
냉소가 섞인 어조.
“리처드, 넌 볼 때마다 덩치가 더 커지는구나. 비단옷은 더 화려해지고 말이야.”
헨리 2세가 웃으며 말했다.
“옷에 신경 쓰는 건 네 어미를 똑 닮았단 말이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버지. 다행인 점이지요.”
리처드가 고개를 숙였다.
난 웃음이 나오는 걸 겨우 참았다.
리처드와 헨리 2세의 패션은 확실히 다르단 말이지.
리처드는 황금 박차에 형형색색의 비단옷 차림이었다.
21세기 기준으로도 세련된 왕족 느낌.
그와 반면에 헨리 2세는 붉은색 옷에 푸른 망토 하나.
왕이라기보다 잡상인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헨리 2세가 아들들에게 다가와 가볍게 키스했다.
“이보다 더 기쁜 날은 없을 거다. 아, 예루살렘의 보두앵.”
그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 그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네. 콘스탄티노플을 구하고 교황 성하를 구한 영웅. 그리고 이번엔 내 아들들까지 화해시켜줬지.”
난 그와 포옹을 나눴다.
이 양반도 겉이랑 속마음이 다르군.
얼굴을 가득 채운 미소와 달리 속은 의심과 경계로 가득했다.
“자네에게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군. 이곳 잉글랜드에 머무르는 동안 필요한 게 있다면 뭐든 말하게.”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폐하.”
난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헨리 2세가 내 팔을 두드렸다.
“일단 내 아들들과 편히 쉬면서 노고를 풀도록 하게. 오늘 밤엔 축하 연회를 열 터이니.”
“아, 아버지.”
젊은 헨리가 입을 열었다.
두근거리는 심장.
그가 잔뜩 긴장한 게 느껴졌다.
“이번에 제가 리처드와 싸운 건 부, 부분적으로 아버지의 잘못도 있습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아, 아버지께선 공동 국왕인 제, 제게 아무런 권한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부분을….”
“내 사랑하는 아들아. 하지만 난 네게 이미 모든 걸 줬다. 넌 이곳 잉글랜드의 왕이야. 나와 함께 이 땅을 다스리는 왕이지.”
“아버지에게 요, 용돈을 받으며 사는 왕이 어디에 있습니까?”
젊은 헨리가 붉어진 얼굴로 물었다.
“저에 대해 떠도는 소문은 아버지도 아실 겁니다. ‘다스리는 땅이 없는 애송이 왕’이라고 말입니다.”
“이젠 말 더듬는 게 많이 나아졌구나, 헨리.”
헨리 2세가 미소 지었다.
그가 아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넌 제프리나 리처드, 그리고 존보다 더 큰 유산을 받았다. 때가 오면 네가 이 왕국을 다스릴 거야.”
그가 덧붙였다.
“아직 그때가 오지 않았을 뿐이지. 열매가 익으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 때가 되면 열매가 알아서 떨어질 거다.”
“하,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적절치 않으니 다음에 계속 얘기하자꾸나.”
헨리 2세가 리처드를 바라봤다.
“이번에 적지 않은 아키텐 영주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들었다만. 이렇게 잉글랜드로 와도 괜찮은 게냐?”
“아키텐 사람들은 타고난 싸움꾼들입니다, 아버지. 머릿속에 돈밖에 없는 이곳 잉글랜드 사람들하곤 다르지요. 그들에게 싸우는 건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죠.”
리처드가 말했다.
“제가 적당히 눌러놨으니 당분간 소란을 일으킬 놈은 없을 겁니다.”
“리처드 네가 아키텐에 애착이 있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다.”
헨리 2세가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소란이 계속되는 걸 보니 어쩌면 네가 아키텐과 맞지 않을지도….”
“아키텐은 어머니께서 물려주신 땅입니다. 아버지가 아니라요.”
“그리고 내가 허락한 땅이지. 네 어미나 다른 누가 아닌 잉글랜드 왕이 네게 허락한 땅이야.”
“….”
가슴이 턱 막히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난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부자지간 대화가 이렇게 살벌해서야.
“이렇게 기쁜 날에 말다툼만 하고 있을 순 없지. 너희들도 가서 푹 쉬고 있거라.”
헨리 2세가 말했다.
그가 다른 이들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하며 덧붙였다.
“보두앵 공자. 괜찮다면 그대와 따로 대화를 나누고 싶네만.”
“물론입니다, 폐하.”
젊은 헨리가 내게 다가와 속삭였다.
“조,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공자. 아버지께선 도, 독사 같은 혀를 지니셨으니 말입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나도 그 정도는 예상했지.
방에서 모두 나가고 나와 헨리 2세만 남았다.
그가 날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럼 이제 서로 해야 할 말을 나눠보세나, 공자.”
* * *
“그대는 아주 혼란스러운 시기에 맞춰 왔네. 다른 때라면 그대의 방문을 환영하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여의치가 않아.”
헨리 2세가 말했다.
“왕국을 흔들려는 자들이 사방에 있단 말일세.”
“….”
“하지만 헨리와 리처드의 싸움을 멈춰준 건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네.”
난 헨리 2세를 바라봤다.
높은 정치력과 군사력의 소유자.
하지만 권력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했다.
‘그래서 죽기 직전까지 리처드랑 싸웠지.’
헨리 2세는 죽기 바로 며칠 전 꼴사납게 리처드에게 항복한다.
왕이자 아버지로서 비참한 최후.
“이런 저주가 하나 있지. 기욤 4세의 후손들은 자식에게서 그 어떤 기쁨도 얻지 못할 것이다.”
헨리 2세가 이마를 찌푸렸다.
“그 저주대로 아들놈들은 항상 내 속을 썩였네.”
“해는 때가 되면 지는 법이지요.”
내가 말했다.
아버지와 아들들 모두 야심이 넘치니.
안 부딪치는 게 더 신기하겠지.
“그래야 다음 날 해가 다시 뜨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해는 아직 중천에 떠 있네.”
헨리 2세가 말했다.
“그리고 잉글랜드를 어떻게 통치할지는 전적으로 내 손에 달려 있지. 로마나 예루살렘이 멋대로 간섭할 수 있는 게 아닐세. 교황 성하께서도 그 부분은 인정하셨네.”
“물론 그렇겠죠.”
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엘레오노르가 필요하겠군.
헨리 2세는 아들들을 손아귀에서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십자군 원정도 절대 허락 안 하겠지.
“지금 잉글랜드 전역에서 성도 예루살렘을 위한 기부금이 모여들고 있네. 그리고 성 토마스 기사단에도 지원자들이 쏟아지고 있지.”
그가 토마스를 말할 때 감정이 미묘히 바뀌었다.
토마스 베켓.
그가 실수로 죽인 캔터베리 대주교.
베켓은 원래 헨리 2세의 충직한 신하였다.
함께 사냥 다니고 비단옷을 모으는 사이였지.
하지만 캔터베리 대주교가 된 이후로 베켓은 180도 변한다.
교회법을 수호하기 위해 헨리 2세와 정면으로 맞서기까지.
두 사람의 사이는 최악으로 치닫았고….
‘이 건방진 놈을 치워줄 자가 내 왕국에 한 명도 없단 말인가?!’
이 말을 오해한 헨리 2세의 부하들은 교회에 있던 베켓을 처참히 살해했다.
이 사건으로 잉글랜드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가 뒤흔들렸다.
로마 교황청은 베켓을 성인으로 시성.
헨리 2세는 이 난장판을 수습하는 데는 몇 년이 넘게 걸렸다.
난 왕을 바라봤다.
진심으로 죄책감을 느낄 줄은 몰랐군.
“자네가 잉글랜드를 떠나기 전 기부금과 기사단원들을 내어주도록 하지. 하지만 뭔가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다면…. 약간의 ‘차질’이 생길지도 모르겠군.”
그가 헛기침했다.
“나와 잉글랜드 왕실은 그간 예루살렘의 가장 큰 후원자였네. 부디 그 점을 명심해주게.”
“물론입니다, 폐하.”
내가 말했다.
돈 받고 싶으면 가만히 있다가 꺼지라는 거군.
하지만 난 그럴 생각이 없단 말이지.
애초에 그깟 푼돈 좀 받자고 온 것도 아니고.
난 헨리 2세를 바라봤다.
그가 말한 대로 이곳은 그가 다스리는 왕국이었다.
‘무작정 신이나 로마 교황의 권위를 내세울 순 없어.’
좀 더 정교한 수가 필요했다.
헨리 2세가 권력을 내려놓게 만들 수.
아서 왕의 전설.
이것부터 시작해야겠군.
“폐하께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얼마든지 편히 말하게.”
“젊은 헨리 폐하와 함께 글래스턴베리로 가고 싶습니다만.”
“글래스턴베리? 그야 문제는 없네만…. 별로 큰 도시는 아닐 텐데.”
헨리 2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곳에서 뭔가 원하는 거라도 있나?”
“아무래도 이곳 왕궁에서 잠시 떨어져 있는 편이 나을 것 같더군요.”
난 씨익 미소 지었다.
물론 원하는 거야 있지.
“소란을 최대한 줄이는 편이 폐하께도 더 이롭지 않겠습니까?”
글래스턴베리.
아서 왕의 유해가 발견된 곳이거든.
* * *
“모두 떠날 준비를 해라! 검과 갑옷을 챙겨라!”
기사들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시종들이 분주히 뛰어다니며 말과 무구들을 점검했다.
에이그는 손에 든 십자가를 만지작거렸다.
‘잘 있으려나.’
소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에게 증표를 건넬 때 짓던 수줍은 미소.
생각에 빠져 있던 에이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이렇게 멍때리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그는 기사와 종자들을 지나쳐 성채의 복도를 걸었다.
보두앵 공자가 머무는 곳은 복도 끝.
문을 노크한 그는 방에 들어갔다.
공자는 책상 앞에 앉아 뭔가를 쓰고 있었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숫자들이 보였다.
“아랍 상인들이 쓰는 숫자로군요. 공자님께서도 쓰실 줄은 몰랐습니다.”
“우연히 배웠다고 해두자고. 행군 준비는 다 끝났어?”
“오늘 해가 지기 전에 끝날 겁니다.”
에이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런데 정말 글래스턴베리로 가면 아서 왕의 무덤을 찾을 수 있는 겁니까?”
“그럴 거야.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기억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에이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공자는 항상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하곤 했다.
콘스탄티노플, 에일라트, 이탈리아에서까지.
“공자님은 항상 예언자처럼 말씀하시는군요.”
“그럼 예언하는 김에 이것도 말해줄게.”
공자가 일어서며 말했다.
그가 에이그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내 날짜 계산대로라면 곧 혜성 두 개가 떨어질 거야. 잉글랜드 하늘에서도 선명히 보이겠지.”
“공자님께서 점술학까지 아실 줄은 몰랐는데요. 아니면 그것도 ‘기억’하시는 겁니까?”
“그래, 내가 기억하는 거지.”
그렇게 말한 공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혜성이 아니야. 그다음에 벌어질 일이지.”
공자가 진지해진 어조로 말했다.
에이그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혜성이 떨어지고 한 달 정도가 지나면 지진이 일어날 거야.”
그가 에이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잉글랜드 중부를 뒤흔들 지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