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127)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127화(127/21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2)
* * *
잉글랜드
버킹엄셔, 러저셸 성
“어서 썩 꺼지지 못할까?!”
“어디 감히 공작님 앞에서 함부로 혀를 놀리느냐!”
캉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텁텁한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성채 안쪽 광장.
두 무리가 서로를 노려봤다.
한쪽엔 성묘단원과 리처드의 기사들.
그 반대편엔 러저셸 성의 기사들.
당장이라도 싸움이 벌어질 듯한 분위기였다.
존이 캉의 옆으로 다가오며 속삭였다.
“금방이라도 싸울 것 같은데요?”
“아직은 아니야. 어쩌면 순순히 풀어줄지도 모르겠지.”
캉이 답했다.
그는 러저셸 성의 기사들을 바라봤다.
모두 사슬 갑옷을 걸친 전사들.
며칠 전 상대했던 용병 나부랭이들과는 정반대였다.
‘목에도 사슬을 둘러놨군.’
노릴만한 곳은 눈.
아니면 무식하게 화살을 퍼붓는 수밖에 없었다.
“싸움이 시작되면 저쪽 궁수들부터 제압해야겠다.”
캉이 속삭였다.
“애들한테 가서 날개 대형이라고 전해. 왼쪽에서부터 하나씩.”
“알겠습니다, ‘로빈 후드’님.”
“그렇게 부르지 마.”
“벌써 소문이 쫙 퍼졌던데요. 보두앵 공자를 수행하는 수수께끼의….”
“빨리 가기나 해.”
곧 부하들이 양옆으로 걸어나갔다.
상대를 넓게 포위하는 대형.
기사들은 말싸움에 정신이 팔려 눈치를 못 챈 듯했다.
“아들이 어머니를 뵈러 왔다는데 그것도 안 된다는 건가?”
리처드가 앞으로 나섰다.
위압적인 그의 태도에 러저셸의 기사들이 주춤했다.
기사대장처럼 보이는 중년 사내가 리처드를 가로막았다.
“지금 왕비 마마께선 몸이 좋지 않으십니다. 시녀와 의사를 제외한 그 누구의 출입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몸이 좋지 않으시다니. 무슨 병에 걸리셨다는 건가?”
“왕비 마마께선 방 밖으로 나오실 수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입니다.”
“이거 나 원 무슨 거위랑 말하는 것 같군. 자네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밖에 없나?”
리처드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앞으로 걸어가 기사대장 바로 앞에 섰다.
“그럼 날 베어 넘기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헨리 2세의 아들이자 아키텐의 공작인 나를?”
“국왕 폐하의 지엄한 명이십니다. 그 어떤 예외도 없습니다.”
기사대장이 말했다.
“왕자님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명령을 잘 따르는군. 하지만 날 베어 넘기면 그대의 주군은 어떻게 되겠나?”
“….”
캉은 숨죽인 채 둘의 모습을 바라봤다.
리처드는 흥분한 기색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링컨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자네도 들었을 텐데? 보두앵 공자가 예언했던 대로 지진이 일어나고 성당이 무너졌지.”
리처드가 말했다.
“신께선 이미 형님과 나, 어머니 편을 드셨네. 근데 자네가 지금 날 베어 넘기면 어떻게 되겠나? 자네가 모시는 주군은?”
그렇게 말한 리처드가 빙긋 미소 지었다.
“반대로 자네들이 순순히 물러나 준다면 그에 대한 보답을 받을 걸세.”
“….”
기사대장은 입을 다문 채 리처드를 바라봤다.
“그럼 이렇게 하지. 그대들은 나와 내 기사들의 공격을 받아 어쩔 수 없이 ‘후퇴’한 걸세.”
리처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자네들은 맡은 의무를 끝까지 수행한 거지. 이러면 자네들 명예도 지킬 수 있지 않겠나?”
“…영주님의 허락을 받아야겠습니다.”
“그럼 어서 가보게.”
리처드가 말했다.
“미리 말해두지만 난 기다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네.”
기사대장이 성채 안쪽으로 사라졌다.
존이 캉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거 잘 끝난 것 같은데요?”
“아무리 그래도 왕자를 쓰러뜨리진 못하겠지.”
캉이 답했다.
분위기는 한층 누그러졌다.
기사들은 잡담을 나누고 궁수들은 서로 활을 자랑했다.
말발굽 소리가 울려 퍼진 건 그때였다.
마차 한 대가 마구간에서 뛰쳐나와 성문으로 돌진했다.
갑자기 나타난 마차에 모두 소리 지르며 양옆으로 피했다.
가장 먼저 반응한 건 리처드였다.
그가 창을 집어 들며 외쳤다.
“저 마차를 막아! 어머니가 안에 계신다!”
“놈들이 왕비 마마를 납치했다!”
마차가 우왕좌왕하는 기사들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궁수들이 활을 들었지만 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기사들이 소리쳤다.
“다들 뭐하고 있는 거냐?! 어서 빨리 쏴!”
“너나 쏴! 잘못해서 왕비님을 맞췄다가 신세 망칠 일 있어?!”
캉은 활을 한 손에 들고 성문을 향해 달려나갔다.
‘성문을 나가면 잡을 방법이 없어.’
그전에 승부를 내야 했다.
성벽 위로 뛰어 올라간 그는 숨을 들이마시고 시위를 당겼다.
마차는 이제 성문 바로 앞에 있었다.
채찍을 내려치는 마부의 얼굴이 보였다.
숨을 끝까지 들이마신 캉은 손가락을 놓았다.
화살이 허공을 가르며 일직선으로 질주했다.
“악!!!”
어깨에 화살을 맞은 마부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마차는 성문 앞에 천천히 멈춰 섰다.
기사와 궁수들이 그 주변을 에워쌌다.
캉이 활시위를 당기며 외쳤다.
“안에 있는 놈도 나와! 검은 밖으로 던지고!”
안에 있던 기사가 검을 내던지고 나왔다.
리처드가 마차에 다가갔다.
“리처드?”
“어머니, 다친 곳은 없으신지요?”
“머리를 살짝 부딪친 것 빼고는 괜찮은 것 같구나.”
캉은 힐끔 안을 바라봤다.
비단옷 차림의 여인.
나이를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외모였다.
“감히 눈앞에서 어머니를 빼돌리려 하다니. 당장 이놈들의 살갗을 전부….”
“지금 이런 일로 얼굴 붉힐 필요는 없다. 더 급한 일이 있으니.”
여인이 마차 밖으로 나오자 기사와 병사들 모두 무릎 꿇었다.
캉도 무릎을 꿇으며 여인을 바라봤다.
엘레오노르 왕비.
그녀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자네들 중에 마부를 맞춘 사람이 누군가?”
“….”
모두의 시선이 캉을 향했다.
캉은 고개를 숙인 채로 몸을 일으켰다.
“접니다, 고귀하신 왕비 마마.”
“훌륭한 활솜씨더군. 자네에게 큰 빚을 졌네. 이름이….”
“동료들은 절 캉이라고 부릅니다.”
“캉Caen이라. 재밌는 이름이군. 이번 일에 대한 보답은 내 잊지 않겠네.”
그녀가 고개를 돌려 아들을 바라봤다.
“리처드, 이제 슬슬 런던으로 돌아올 때가 된 것 같구나.”
“어머니가 타실 말을 가지고 왔습니다.”
리처드가 미소 지으며 답했다.
그가 손짓하자 한 기사가 백마를 끌고 나왔다.
“아버지께서도 어머니를 보고 기뻐하시겠군요.”
* * *
런던 궁
“폐하! 왕비 마마께서 풀려나셨습니다! 지금 리처드 공작과 함께 런던으로 오고 계신다는 보고가….”
시종장이 말을 멈췄다.
헨리 2세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의 곁엔 아델이 누워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
“누가 엘레오노르를 풀어줬다는 건가?”
“리처드 공작이 기사들을 위협했다고 합니다. 보두앵 공자의 성묘단원들도 동행했다더군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풀어줬다는 건가?”
헨리 2세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델이 이불로 몸을 가리며 말했다.
“폐하, 설마 이대로 가만히 계시려는 건 아니겠죠? 지금이라도 군대를 풀어서….”
“일단 성벽에 수비대를 붙이게. 쥐새끼 하나 못 들어오게 막아.”
헨리 2세가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서왕의 무덤에 혜성. 이번엔 지진까지. 정녕 신께서 날 버리신 모양이군.”
“폐하.”
시종장이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자칫했다간 내전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차라리 폐하께서 직접 리처드 공과 왕비 마마를 맞이하시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
“전 이제 와서 프랑스로 돌아갈 생각 없어요.”
아델이 말했다.
그녀가 숨을 몰아쉬었다.
“차라리 리처드와 결혼시켜 주세요. 잉글랜드에 남아있을 수 있게요.”
“폐하, 그리고 존 왕자께서도 서신을 보내셨습니다.”
시종장이 말했다.
그는 왕의 눈치를 살폈다.
“어서 빨리 말해보게.”
“젊은 헨리, 리처드 공과 마찬가지로 왕비 마마의 석방을 요구하는….”
“존. 그 아이마저 내게 등을 돌렸단 말인가.”
헨리 2세가 비틀거렸다.
“내 그 녀석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거늘. 다 똑같은 놈들이군. 다 똑같은 놈들이야.”
그가 팔을 치켜들며 외쳤다.
“주여! 내가 지금껏 당신을 위해 얼마나 많은 양초, 금화, 땅과 영광을 바쳤습니까?! 이게 그 대가란 말입니까?!”
그가 소리쳤다.
“내가 지금껏 이루어온 영광들을 예루살렘에서 온 꼬맹이 한 놈에게 빼앗겨야 한다니! 이런 신을 내가 도대체 왜 섬겨왔단 말인가!”
아델이 손을 입에 갖다 댔다.
시종장 역시 마찬가지.
“평생을 잉글랜드와 백성들을 위해 바쳤거늘! 대가가 이렇다니!”
두 사람 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왕을 바라봤다.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방 안을 엿듣고 있던 자들이었다.
“폐, 폐하! 부디 진정하시지요.”
시종장이 말했다.
“폐하의 말씀이 알려지면 큰 파문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래, 파문이 있겠지.”
늙은 왕이 웃으며 말했다.
“가서 얼마든지 떠들어 대라고 하게.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으니. 지옥 아래에 더 뜨거운 지옥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헨리 2세는 털썩 주저앉았다.
시종장과 아델이 그를 바라봤다.
정적이 흘렀다.
복도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
왕이 창문 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베켓, 이 친구야. 죽어서까지 내가 그렇게 미웠나? 도대체 얼마나 더 해야 날 용서해줄 건가?”
그가 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 비참한 왕이라니. 수치, 수치로다.”
* * *
“어서 문을 열게! 리처드 공작과 엘레오노르 왕비 마마이시다!”
“그 누구에게도 성문을 열지 말라는 국왕 폐하의 명이시네!”
부대법관 로저 말챗은 인상을 찌푸렸다.
성문 앞엔 수백이 넘는 기사와 병사들이 서 있었다.
선두엔 백마를 탄 엘레오노르 왕비.
홀로 말에 탄 그녀는 마치 기사를 보는 것 같았다.
“부대법관님. 지금이라도 문을 여는 게 어떠시겠습니까?”
한 기사가 다가와 속삭였다.
“병사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만약 전투가 벌어지면 통제할 수 없을 겁니다.”
“난 반역을 저지를 생각이 없네.”
로저가 말했다.
그는 기사를 노려봤다.
“병사들을 지휘하는 건 자네 몫일세, 스티븐 경. 채찍을 휘두르든 살살 구슬리든 알아서 하란 말일세.”
“…알겠습니다.”
기사가 고개를 숙인 후 다시 돌아갔다.
성문 앞에선 포고관의 목소리가 다시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잉글랜드의 국왕이신 젊은 헨리 폐하께선 지금 즉시 런던의 성문을 열고 엘레오노르 왕비 마마를 환영하라고 명하셨소이다!”
“내겐 헨리 폐하의 명을 따를 의무가 있소이다!”
양측 모두 헨리의 이름을 내세우며 말싸움을 이어갔다.
젊은 헨리와 늙은 헨리.
계속 이어지는 대치에 엘레오노르가 하품을 내쉬었다.
그녀가 리처드를 불렀다.
“아무래도 오늘 런던에 들어가는 건 힘들 것 같구나.”
“곧 성문을 넘을 수 있을 겁니다, 어머니. 제가 장담하죠.”
리처드가 웃으며 답했다.
그가 손짓하자 병사들이 성벽으로 전진했다.
“더 가까이 오면 화살을 쏘겠소!”
“그럼 나에게도 화살을 쏘겠다는 건가? 로저 말챗 부대법관?”
엘레오노르가 손을 흔들며 홀로 성문 앞으로 다가갔다.
“난 여기 있으니 어디 쏘고 싶으면 마음껏 쏴보게.”
“와, 왕비 마마. 전 어디까지나 국왕 폐하의 명을 따르는 것뿐입니다.”
로저가 식은땀을 닦으며 소리쳤다.
그때 성벽 안쪽 도시에서 구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엔 희미하던 소리가 북소리처럼 커졌다.
땅이 흔들릴 정도.
성벽 위에 서 있던 한 병사가 소리쳤다.
“사, 사람들이 몰려온다!”
“저건 또 뭐야….”
로저가 뒤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그건 인파라기보다 살색으로 된 파도에 가까웠다.
수천이 넘는 시민들이 성문을 향해 다가왔다.
그들 모두 환호성을 지르고 손을 흔들었다.
그 앞에 선 건 거대한 성십자가.
순백의 망토를 두른 사내였다.
“예루살렘 기사들이다! 보두앵이야!”
“보두앵 공자라면 분명 갇혀 있을….”
로저가 중얼거렸다.
시민들이 외치는 소리가 성벽 밖까지 울려 퍼졌다.
“신께서 원하신다!”
“데우스 불트!”
* * *
추가 설명 : 죽는 순간까지 아들들과 싸운 것과는 별개로, 헨리 2세는 자식들을 사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헨리 2세는 아들이 함정을 꾸몄다 의심하여 직접 가는 대신 반지를 용서의 상징으로 보냈다. 6월 11일 젊은 헨리는 아버지가 보내준 반지를 손에 꼭 쥔 채 죽음을 맞이했다. 어째서 그 반지는 내어놓지 않느냐는 수도사의 질문에 젊은 헨리는 ‘날 심판하실 이께서 아버지가 날 용서하셨다는 것을 아셔야 하기 때문이오.’라고 답했다.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헨리 2세는 이렇게 울부짖었다고 한다. “그는 나를 많이 괴롭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살아있기만 하다면 더 괴롭혀도 좋다.
헨리 2세는 슬픔으로 정신을 잃을 정도였고, 블루아의 피에르가 와서 헨리의 ‘과도한
슬픔’을 책망하기도 했다.]
– 영문, 한국 위키피디아(젊은 헨리 왕) –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앨리슨 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