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130)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130화(130/21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5)
* * *
잉글랜드
런던
“프리드리히 황제는 아마 그렇게 말하고 있을 겁니다.”
난 맞은편에 앉은 사내를 바라봤다.
짙은 회색 수염에 호탕해 보이는 얼굴.
라스트 크루세이더즈에서 자주 본 일러스트 그대로였다.
사자공 하인리히.
프리드리히 황제의 사촌이자 작센과 바이에른의 공작.
프리드리히가 다스리는 직할령보다 더 넓은 땅을 다스린 제후.
‘지금은 황제한테 밀려서 외가인 런던으로 쫓겨온 신세지만.’
프리드리히 황제는 이탈리아 원정을 돕지 않았다는 걸 내세워 하인리히를 공격했다.
여기에 그의 땅을 노리는 다른 제후들이 가세.
땅을 전부 빼앗겼지.
하지만 독일엔 여전히 그를 따르는 영주들이 많았다.
눈빛에도 힘이 넘치는군.
도망자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
하녀와 시종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연회장에 음식을 날랐다.
하인리히가 고기를 뜯으며 말했다.
“프리드리히 그 녀석은 원한을 쉽게 잊는 녀석이 아니지. 아마 공자의 말이 맞을 거요.”
그가 물었다.
“공자께선 직접 군대를 지휘해 프리드리히를 물리쳤다고 들었소이다. 공자 앞에 무릎 꿇게 했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오?”
“바르바로사(붉은 수염) 황제는 성십자가 앞에 무릎 꿇은 겁니다. 제가 아니라요.”
내 대답을 들은 하인리히가 웃음을 터뜨렸다.
사방에 고기조각이 튀었다.
“물론 그렇겠지. 공자가 아니라 성십자가에 무릎 꿇은 거라. 프리드리히 그 녀석도 자기 명예를 지키려면 그렇게 말해야겠군.”
그가 식탁을 두드렸다.
즐거움과 흥분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염소랑 오입질을 하고선 그게 염소가 아니라 아리따운 처녀였다고 말하는 꼴이군. 다른 사람들은 애써 모른 척해주고. 안 그렇소?”
“틀린 비유는 아닌 것 같군요.”
나도 웃으며 답했다.
“내 직접 그 모습을 보지 못한 게 한이오. 상상만으로도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아쉽군 아쉬워.”
“공작께서 독일로 돌아가시면 황제의 표정을 볼 수 있으실 겁니다.”
“난 더 이상 공작이 아니오. 땅을 다 빼앗겨 처가에 숨어있는 신세니. 다스릴 땅이 없는 공작이 어디 있겠소?”
“….”
난 그를 바라봤다.
하인리히 공작은 높은 스탯의 소유자였다.
정치, 행정, 군사, 예술 등등.
오히려 몇몇 부분은 프리드리히 황제보다 높았지.
그는 동방식민운동을 통해 독일 영토를 넓히고 수많은 도시를 세운 건설자였다.
바이에른에 뮌헨을 세운 것도 이 양반이었지.
“그리고 이젠 장인어른께서 갑자기 십자군 원정을 떠난다고 하시니. 이곳 런던에서 날 도와줄 사람이 누가 있겠소?”
그가 고개를 숙였다.
“그나저나 헨리 2세께서 정말 십자군 원정을 떠날 거라고 생각하시오? 그분은 항상 속과 겉이 다르신 분이었지.”
“공개적으로 선언한 걸 되돌리진 못할 겁니다. 지금 로마에서 파문을 받으면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죠.”
내가 말했다.
거기에 헨리 2세는 진심이었고.
‘하지만 하인리히한텐 별로 좋은 상황이 아니지.’
영토를 빼앗겨 처가로 도망온 마당에 장인어른은 십자군 원정을 간다 하고 있으니.
가장 강력한 우군이 사라질 처지에 놓인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내가 등장하는 것도 바로 여기.
“공작께서 이곳 잉글랜드에서 자금과 군대를 모으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난 하인리히를 바라봤다.
그 역시 내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제가 약소하게나마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잉글랜드에서 모은 기부금 중 일부를 드리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 정도면 군대를 모을 자금으로 충분할 겁니다. 그 후에도 지원금을 계속 제공해드리죠.”
“미래가 무엇을 줄지 묻지 말고 오늘이 주는 것은 모두 선물로 받아라.”
하인리히가 씨익 미소 지었다.
“로마의 호라티우스가 한 말이오. 하지만 공짜는 언제나 그 대가가 비싼 법이지.”
그가 물었다.
“공자도 내게 원하는 게 있을 것 같소만?”
난 고개를 끄덕였다.
정치력 만렙이라 그런지 말이 잘 통하는군.
“공통의 적이 있는 두 사람은 친구라 할 수 있겠죠. 지금 공작님과 제 상황이 그렇지 않습니까?”
“독수리가 한눈팔지 못하게 해달라는 얘기로군.”
“그렇습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한 값이 되겠죠.”
난 고개를 끄덕였다.
하인리히는 프리드리히 황제의 가장 큰 라이벌이었다.
신성로마제국을 견제할 최고의 카드인 셈.
물론 내가 먼저 힘을 실어줘야겠지.
“난 누구처럼 주님의 뜻을 거역하지 않소. 그저 따를 뿐이지.”
하인리히가 웃으며 손을 건넸다.
난 그의 손을 맞잡았다.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라. 얼마든지 말해보시오.”
“공작께서도 ‘성도권’에 대해 알고 계실 겁니다.”
“돈 대신 쓴다는 종이를 말하는 거로군. 나도 들은 적 있소. 꽤 흥미로운 물건이었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 포장했더구려. 그 종이를 쓰면 성도를 지원하는 것과 같다니. 그럼 로마 교황청도 돈을 밝힌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겠지.”
그가 물었다.
“그게 그대가 말한 조건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거요?”
“공작님께 드릴 자금 중 일부를 성도권으로 드리겠습니다. 공작님께선 그걸 독일에서 돈처럼 써주시면 됩니다.”
내가 말했다.
지금 성도권에 필요한 건 믿음이었다.
‘널리 쓰인다는 믿음.’
확신이 생길수록 유럽 전체에 퍼져나가겠지.
그럼 예루살렘은 가만히 앉아서 어마어마한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독일 전체로 퍼져나가면 어떨까?
“나중에 공작님께서 영토를 되찾으셨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최대한 성도권을….”
“써달라. 그 얘기로군. 최대한 많은 사람이 그 종이돈을 쓸 수 있도록. 그렇지 않소?”
“예, 그렇습니다.”
“이거 나 원.”
하인리히가 답했다.
그가 날 바라보며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여우를 피하려다가 사자 앞에 떨어진 기분이로군. 종이로 군대를 지원하겠다니.”
“성도권은 언제든 기사단 지부에서 금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사실상 금화나 마찬가지죠.”
“하지만 그만큼 기사단의 힘도 커지겠지. 그 뒤엔 로마 교황청과 예루살렘이 있고 말이오. 안 그렇소?”
하인리히가 미소 지었다.
“좋소, 공자의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지. 내가 어디 뜨거운 물 찬물을 가릴 처지겠소?”
그가 물었다.
“하지만 이런 ‘성도권’이 신뢰를 얻으려면 어마어마한 자금이 필요할 것 같소만. 기사단과 예루살렘에 그만한 돈이 있다는 거요?”
날카로운 질문이군.
다른 동전으로 환전할 수 없으면 종이돈의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진다.
종이돈과 금의 가치를 동일하게 맞추는 것.
그게 금본위제의 핵심이니.
“그 부분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미 잉글랜드에서만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으니까요.”
난 어깨를 으쓱였다.
잉글랜드 곳곳에서 모이는 기부금만 해도 상당한 금액.
혜성과 지진 예언이 이렇게 짭짤한 수익을 낸다는 걸 누가 알았을까.
“기사단 지부들에서도 지금까지 순례자와 귀족들의 돈을 맡아왔고요. 환전을 위한 자금은 항상 유지될 겁니다.”
거기에 돈은 앞으로도 많이 벌 예정이고.
“걱정하지 말고 쓰란 얘기로군. 그만큼 자신 있는 거요?”
“자신이 없었다면 공작님께 제안하지도 않았겠지요.”
난 공작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이 세상에 물을 파는 것보다 더 남는 장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 * *
같은 시간
런던
“이게 한 달 동안 오크통에 넣어놨던 앨릭서라는 겁니까?”
마르코가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눈앞에 초원이 펼쳐지는 것 같군요. 달달한 벌꿀을 마시는 것 같기도 하고요.”
“나무마다 맛이 미묘하게 다르네. 그리고 어떤 포도주를 넣었던 통이냐에 따라 또 다르지.”
나이 든 사제가 말했다.
두 사람은 오크통이 가득 찬 창고를 지나갔다.
이미 창고 안은 수십이 넘는 인부들로 가득했다.
그들 모두 오크통을 나르거나 나무를 자르고 불에 그을렸다.
런던의 성전기사단 지부.
사제들이 통로를 거닐며 작업을 감독했다.
“고작 몇 주 넣어둔 것만으로도 이 정도 차이라니. 몇 년이 지나면 또 어떤 맛이 날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앨릭서를 더 만들려면 나무가 필요하네. 시간이 걸리는 걸 생각하면 최대한 많이 작업해 둘 필요가 있어.”
사제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지금 당장은 힘들 겁니다. 기사단 지부들이 다 달려드는 바람에 나무 재고가 싹 다 말랐습니다.”
마르코가 말했다.
그의 얼굴은 취기와 흥분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저랑 베네치아가 나서서 벌목 허가증을 더 받아내 보죠.”
마르코가 오크통들을 가리켰다.
“그나저나 숙성이라. 오래된 건 그만큼 더 비싸게 팔 수 있겠군요.”
“아마 병 무게만큼 금을 받아도 귀족과 영주들은 계속 사갈 걸세. 오히려 더 많이 살지도 모르겠군.”
늙은 사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든 걸 공자께서 알고 계셨다니. 난 그게 놀라울 따름이네. 와인을 넣어놨던 통에 앨릭서를 저장하면 이런 맛이 난다니.”
“미카엘 대천사께서 직접 알려주신 신성한 물이죠. 앞으로 뭐가 나올지 누가 알겠습니까?”
마르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희 베네치아를 수백 년은 먹여 살릴 물건입니다.”
“그리고 성도 예루살렘까지.”
사제가 말했다.
“하지만 불만이 있는 자들도 적지 않네.”
“앨릭서에 불만이라니, 도대체 누가 말입니까?”
“내 듣기론 파리 궁전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더군. 앨릭서 때문에 프랑스의 돈이 전부 빠져나간다고 말이야.”
“아마 필리프가 한 말일 겁니다. 왕이 이런 금덩어리를 그냥 보고만 있을 리는 없겠죠.”
“그가 제조법을 빼돌리거나 앨릭서의 수입을 금지하면….”
“파문을 당할 겁니다. 주님께서 내려주신 선물에 손을 대다니요.”
마르코가 말했다.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덧붙였다.
“교황 성하뿐만 아니라 당장 전 유럽의 신도들이 들고일어나겠죠. 그것보다 무서운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일이 그렇게 간단했으면 좋겠군.”
사제가 말했다.
“하지만 공자님께서 알아서 잘 해결하시지 않겠나.”
* * *
잉글랜드
캔터베리 성당
“잉글랜드의 국왕인 헨리여. 그대는 그대가 고백한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는가?”
“악을 저지르고 선을 멀리한 모든 잘못을 뉘우칩니다.”
헨리 2세가 말했다.
그는 예복이 아닌 거친 마미단 셔츠 차림이었다.
수백이 넘는 인파가 왕을 바라봤다.
그중엔 엘레오노르 왕비도 있었다.
그녀는 다른 귀족들과 함께 성당 맞은편 서서 남편을 바라봤다.
“세상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선 부디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채찍을 든 수도사들이 왕을 향해 걸어왔다.
“인자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선 성자의 죽음과 부활로 세상을 당신과 화해시키고….”
왕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무릎 꿇었다.
정적 속에서 사제의 목소리만 울려 퍼졌다.
“죄를 용서하시려 성령과 성도, 예루살렘의 보두앵 공자를 보내주셨으니, 교회의 직무를 통해 이 죄인에게 용서와 평화를 주소서.”
왕이 머뭇거리는 수도사들을 향해 말했다.
“뭘 망설이는가? 어서 시작하시게.”
“알겠습니다, 폐하.”
수도사들이 왕의 등을 향해 채찍을 내리쳤다.
날카로운 가죽 소리가 성당에 울려 퍼졌다.
왕은 채찍이 내리칠 때마다 몸을 움찔거렸다.
새빨간 핏방울이 상처를 따라 흘러내렸다.
“아아, 폐하.”
그 모습을 본 몇몇 이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엘레오노르는 차분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침묵 속에서 채찍 소리만 울려 퍼졌다.
영겁 같은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채찍질이 멈췄다.
“폐하! 이쪽으로 오시지요.”
귀족들이 달려와 비틀거리는 왕을 부축했다.
헨리 2세는 그런 그들이 안 보이는 듯 십자가를 향해 말했다.
“베켓. 자네도 이제 만족하겠지.”
그는 비틀거렸지만 정신을 잃지 않았다.
“부대 모집은 어떻게 됐나?”
“워릭에서 기사 오십이 도착했습니다. 또한 궁수 이백으로 이루어진….”
“노리치에선 기병과 기사를 합쳐 총 삼백이 출발했다고 합니다.”
“우드스톡에선 폐하의 명에 따라 궁수 삼백이 원정 준비를 마쳤습니다.”
신하들의 보고가 이어졌다.
헨리 2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직 갈 길이 남았군. 갈 길이 남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