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131)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131화(131/215)
위대한 기사 (1)
* * *
프랑스
파리
“지진까지 벌어졌다는 게 정말인가?”
“상인들이 전해온 소식으로는 그렇습니다. 늙은 헨리는 직접 캔터베리에 가서 채찍질까지 받았다더군요.”
“채찍질이라.”
어린 왕이 코웃음 쳤다.
필리프는 왕좌에 팔을 걸쳤다.
귀족과 성직자들 모두 당황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이미 저번에도 비슷한 연극을 벌인 적 있지 않았나? 돌에 채찍질한다고 그게 금이 되진 않을 것 같네만.”
“하지만 보두앵 공자가 한 예언은 모두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 헨리 2세가 진정 참회하지 않았다면 또 다른 재앙이….”
한 기사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지금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으라는 건가?!”
수석 슈발리에(기사), 발룽.
그가 다른 관료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주님의 축복을 받으신 참된 군주는 오직 필리프 폐하뿐이시오! 그런데 보두앵 공자가 무슨 성자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다니!”
“고맙네, 발룽. 하지만 지진을 예언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
왕이 말했다.
그가 수염이 나기 시작한 턱을 만지작거렸다.
“보두앵 그자가 온 이후로 유럽 전체가 흔들리고 있어. 이곳 파리 거리에서도 그의 이름이 울려 퍼지고 있지 않나.”
“….”
필리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설령 교묘한 마술이나 사기극이라 해도 로마 교황청이 인정하면 그건 기적이 되네. 그리고 지금 보두앵보다 로마의 편애를 받는 이도 없지.”
“치유의 능력을 지닌 건 기름부음을 받으신 폐하 역시 마찬가지이십니다.”
“하지만 보두앵 그자는 기름부음조차 안 받지 않았나?”
필리프가 답했다.
그가 한숨을 내쉬며 왕좌에 몸을 기댔다.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는군. 젊은 헨리와 리처드는 적어도 올해까진 계속 싸워줘야 했어. 그중 하나는 죽었어야 했단 말일세.”
그가 말했다.
“그리고 늙은 헨리까지 죽으면 잉글랜드와 아키텐 땅이 모두 내 손 안에 떨어졌겠지. 지금은 그게 모두 물거품이 되지 않았나.”
“폐하, 헨리 2세는 보두앵 공자 앞에서 십자군 원정을 맹세했다고 합니다.”
“십자군 원정?”
“예, 그리고 리처드 공작 또한 십자군 원정에 관심을 보인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흰 수염의 발루아 백작이 말했다.
그가 앞으로 한걸음 나오며 말을 이었다.
“헨리 2세와 젊은 헨리, 리처드까지 십자군 원정을 떠난다면 상황은 프랑스와 폐하께 유리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남는 건 제프리와 존뿐이겠군. 하지만 아직 확실한 정보는 없지 않나.”
필리프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헨리 2세가 십자군 원정을 떠난다면 내게도 원정을 떠나라는 압박이 쏟아지겠지. 보두앵도 내가 원정에 동참하길 바랄 테고.”
“하지만 헨리 2세가 따르는 군주는 폐하이십니다. 어찌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끌려갈 수 있겠습니까?”
발룽이 외쳤다.
그가 솥뚜껑처럼 커다란 손을 허공에 흔들었다.
“설령 보두앵 공자가 그런 말을 지껄인다 해도 무시하면 그만입니다.”
“어쩌면 원정을 떠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성도를 구하는 거라면 충분히 가치가 있을 것 같네만.”
“하오나 폐하! 십자군의 의무는 이미 선왕께서 수행하셨습니다. 아무리 압박이 들어온다 하여도….”
“모두 조용. 이 문제는 좀 더 생각을 좀 해봐야겠네. 발루아 백작 빼고 모두 나가게.”
발룽을 포함한 귀족과 성직자, 기사들이 우르르 알현실 밖으로 나갔다.
남은 건 흰 수염의 발루아 백작과 필리프뿐이었다.
어린 왕이 입을 열었다.
“누가 뭐라 하든 난 이곳 파리에 남아야 하네. 얻을 건 모래밖에 없는 그깟 레반트에 프랑스의 피를 흘릴 순 없지.”
“그럼 방금 전에 하신 말씀은….”
“이런 말을 공개적으로 할 순 없지 않겠나.”
필리프가 미소 지었다.
그가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똑똑 두드렸다.
“대놓고 십자군 원정을 거부했다간 큰 소란이 일어날 테지. 여기선 섬세한 수가 필요하네.”
왕이 말했다.
“우선 예루살렘 적당한 기부금을 내고 보두앵이 떠날 때까지 기다리자고. 십자군에 동참하겠고 약속한 후에 적당한 핑계를 둬서 원정을 미루는 걸세.”
“그랬다간 로마의 파문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땐 늙은 헨리와 그 아들들이 이미 레반트에 가 있지 않겠나?”
필리프가 어깨를 으쓱였다.
“리처드는 사자 같이 용맹하고 아둔할 정도로 명예욕이 넘치는 자지. 분명 아버지를 따라 십자군 원정에 동참할 걸세. 늙은 헨리와 리처드만 빠지면 두려워할 놈은 없어.”
그가 손을 흔들며 덧붙였다.
“제프리한테 서신을 보내게. 자금이 필요하다면 내 얼마든지 내어주겠다 전하고.”
“폐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보두앵 공자. 그자는 최대한 피하는 편이 낫겠어. 프리드리히 황제에 이어서 이번엔 헨리 2세까지.”
왕이 웃음을 터뜨렸다.
“유럽의 왕이란 왕은 모두 쓰러트리고 있지 않나.”
“예루살렘으로 흘러가는 돈 역시 무시할 수 없습니다.”
발루아 백작이 고개를 숙였다.
“앨릭서를 공급하는 건 오직 예루살렘뿐이지요. 지금까지 프랑스인들이 앨릭서를 사들이는데 쓴 돈을 계산하면….”
“몇 년 동안 벌어들일 세입 정도는 되겠지. 어디 그뿐이던가? 이번엔 성도권이란 만들었다 들었네만.”
필리프가 코웃음 쳤다.
“종이쪼가리를 돈으로 쓰겠다니. 백성들이 금화를 종이로 바꾸면 어떻게 되겠나? 이 왕국엔 금 한 조각도 남지 않을 걸세. 기사단만 떼돈을 벌겠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교황 성하께서 승인하셨으니….”
“로마는 가운데서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걸세. 언제나 그래왔듯이.”
“돈에 탐욕을 부리는 것이 어찌 주님의 뜻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미 그것만으로 보두앵 그자의 위선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위선이든 아니든 유럽인들은 그를 예언자로 여기고 있네. 중요한 건 그거야.”
필리프가 왕좌에서 일어섰다.
그는 알현실 중앙을 뚜벅뚜벅 가로질렀다.
“정말 무서운 게 뭔지 아나?”
그가 백작에게 물었다.
“정작 공자는 별 어려움 없이 이 모든 일을 해냈다는 걸세. 평범한 왕이라면 수십 년이 걸릴 일들을. 전 유럽의 돈과 기도가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지 않나.”
그가 중얼거리듯 덧붙였다.
“보두앵 공자가 정말 미카엘 대천사와 아서왕의 계시를 받았다면 어떻겠나?”
“그렇다면…하늘의 편애를 받는 자를 이길 순 없을 겁니다.”
“자네 말이 맞네. 그러지 않길 바라는 수밖에.”
어린 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적당히 시간을 벌자고. 비가 올 땐 옷을 뒤집어쓰고 고개를 숙여야 하지 않겠나.”
***
잉글랜드
런던
“나, 나보고 십자군 원정을 떠나지 말라니. 그게 무슨 마, 말입니까, 공자?”
젊은 헨리가 외쳤다.
“나, 나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아직은 폐하께서 예루살렘에 가실 때가 아닙니다.”
내가 젊은 헨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한눈에 봐도 지친 표정이었다.
며칠 동안 구호작업에만 매달렸으니.
안 지친 게 이상하려나.
짙은 다크서클에 수염이 들쭉날쭉한 턱.
나처럼 고생 좀 한 모양이군.
식량이랑 천막을 대량으로 준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젊은 헨리는 이번 지진을 통해 잉글랜드 백성들의 지지를 얻어냈다.
‘아서왕이 선택한 왕!’
‘앞장서서 백성들을 구한 성군!’
이보다 더 강력한 프로파간다가 어디 있을까.
젊은 헨리가 구호작업을 위해 직접 사비를 털어넣었다.
그 사실만으로 충분한 선전이 됐겠지.
“지금 잉글랜드엔 왕이 필요합니다. 헨리 2세께서 원정을 떠나신 동안 잉글랜드는 누가 통치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애초에 폐하께선 진정한 왕권을 얻기 위해 이곳 잉글랜드로 오신 것 아니십니까?”
“그건 내 어, 어머니와 관료들이 맡아도 충분합니다. 시, 십자군 원정은 내 사명입니다, 공자!”
젊은 헨리가 말했다.
“고, 공자께서도 그리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고집은 그만 부리시지요, 형님. 공자의 말이 옳다는 건 형님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리처드가 말했다.
젊은 헨리가 그를 노려봤다.
“이번에 못 간다 해서 기회가 없는 것도 아니고요.”
“넌 아무 부담 없이 원정을 떠날 수 있으니 사, 상관없겠지, 리처드.”
난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다들 예루살렘에 오려고 난리군.
일이 너무 잘 풀려도 곤란하다니까.
물론 십자군 원정은 많이 오면 올수록 좋았다.
하지만 잉글랜드 왕실이 통째로 넘어오는 건 다른 이야기.
그랬다가 잉글랜드에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한 명은 본국에 남아서 원정을 지원해주는 편이 낫지.’
그리고 세 명이 함께 오면 싸움만 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헨리 2세에 젊은 헨리, 리처드까지.
아버지랑 아들들끼리 전공을 놓고 얼마나 티격태격 싸울까.
그 휘하의 귀족들도 신경전을 벌일 테고.
“아직 잉글랜드는 지진에서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거기에 제프리랑 존, 프랑스도 있죠.”
프랑스의 필리프 2세.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정치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존엄왕이라는 별칭을 가진 명군 중의 명군.
동시에 음모와 술책의 달인.
‘헨리 2세와 아들들 사이의 싸움을 부추기고 나중엔 리처드를 통수쳤지.’
리처드 함께 십자군 원정을 떠난 뒤 자기만 먼저 귀환.
텅 빈 리처드의 땅을 빈집털이했으니.
지금 이 순간에도 음모를 꾸미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필리프와 가장 친하게 지낸 건 제프리랑 형님 아니십니까?”
리처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노골적으로 도발하는 어조.
“제가 형님께 아키텐 땅을 믿고 맡길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내가 그 땅을 원했다면 진작 손에 넣었을 거다, 리처드. 그리고 이제 난 필리프의 도움 따위 필요 없어. 난 잉글랜드의 왕이다.”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젊은 헨리가 필리프의 도움을 받은 건 어디까지나 아버지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아버지가 상왕 신세가 되고 젊은 헨리가 실세가 됐으니 이제 외부의 도움은 필요 없지.
내가 필리프의 계획을 망친 거나 마찬가지였다.
“제프리랑 필리프는 원정을 어떻게든 훼방 놓으려 할 거요. 아버지랑 내가 이곳에 남아 형님이랑 싸우게 만들고 싶겠지.”
리처드가 말했다.
그가 팔을 뻗어 기지개를 쭉 켰다.
“그래야 자기들한테도 땅을 빼앗을 기회가 올 터이니. 간단하지 않소?”
리처드가 피식 웃었다.
“필리프가 직접 다스리는 프랑스 직할령은 우리 형제들의 땅을 합친 것보다도 작지. 플랜태저넷 신하들이 군주보다 더 큰 땅을 가진 꼴이니.”
“어떻게든 그 땅을 빼앗으려 할 겁니다. 오히려 헨리 2세 폐하와 리처드 공이 떠나는 것만 기다리고 있겠죠.”
내가 말했다.
“빈집을 도둑질하는 것보다 더 쉬운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걸 막으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필리프 왕도 십자군 원정에 동참시켜야 합니다.”
“피, 필리프가 원정에 따라가지는 않을 겁니다.”
젊은 헨리가 말했다.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고, 공자의 말대로 아버지와 리처드가 떠, 떠난 틈을 노릴 테니 말입니다.”
“차라리 공자가 파리에 직접 가는 건 어떻겠소?”
리처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곳 잉글랜드에서 했던 것처럼 피에르 사제를 먼저 보내고, 적당히 여론을 만든 다음에 직접 가는 거요.”
그가 말했다.
“그럼 제아무리 필리프라고 해도 딴소리를 하진 못하겠지. 신의 뜻. 이거보다 더 강한 게 어디 있소?”
“시간이 좀만 더 넉넉했어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시간은 계속 가고 있으니.
보두앵 4세의 나병은 내가 어떻게 막을 수 없었다.
그가 죽기 전엔 무슨 일이 있어도 예루살렘에 돌아가야 했다.
“거기에 제가 프랑스에 가면 프리드리히 황제도 가만히 있지 않겠죠. 어떻게든 절 방해하려 들 겁니다. 그만큼 더 시간이 걸리겠죠.”
“그럼 따로 방법이 없는 것 같소만.”
“….”
침묵이 흘렀다.
내가 탁자를 두드리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창 바깥에선 기사들이 훈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창과 검을 휘두르고 말을 타는….
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필리프를 강제로 끌어들일 만한 방법.
“이렇게 하면 되겠군요.”
젊은 헨리와 리처드 모두 고개를 갸우뚱했다.
“제가 직접 가는 대신 필리프 왕이 이곳 잉글랜드로 오게 하는 겁니다. 성십자가 앞에서 원정을 맹세하게 하는 거죠.”
“필리프를 이곳 잉글랜드로 오게 한다니, 어떻게 말이오?”
“간단합니다. 신의 뜻이죠.”
내가 웃으며 말했다.
리처드의 말이 옳았다.
혜성과 지진.
이 두 개를 예언했으니 이제 내 말을 의심할 유럽인은 없겠지.
필요한 건 필리프 왕을 이곳 잉글랜드로 부를 적당한 이벤트였다.
“신께서 원하시는 마상시합, 토너먼트를 여는 겁니다.”
내가 덧붙였다.
“그리고 만약에 이 토너먼트에 불참한다면….”
“주님의 분노가 떨어진다. 공자의 말이 알려지면 필리프도 거절하지 못하겠구려.”
“바로 그겁니다. 지금 당장 서신을 써야겠군요.”
“나, 나도 공자랑 같이 가겠습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젊은 헨리도 허겁지겁 일어섰다.
“그럼 폐하께 토너먼트 공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최대한 시끌벅적하게 해야 합니다. 모든 유럽인들이 알 수 있게요.”
“그, 그건 내가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젊은 헨리가 미소 지었다.
“마상시합이라면 이미 수십 번도 너, 넘게 열어봤으니 말입니다.”
“이럴 때 보면….”
리처드가 날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공자는 사기꾼인지 진짜 성자聖者인지 모르겠구려.”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글쎄요, 어쩌면 그 둘 다일지도 모르겠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