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132)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132화(132/215)
위대한 기사 (2)
* * *
“아르슬란 술탄께선 룸(로마)의 바실리우스와 평화 협정을 맺으셨습니다.”
“백기를 들었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인 것 같소만.”
살라딘이 말했다.
그가 맞은편의 사절을 바라봤다.
“우리에게 지원 요청을 한 건 그대의 주군 아니었소? 근데 어찌 이리 빨리 항복한 것이오?”
“항복이 아닙니다. 평화 협정이지요.”
“강도에게 돈을 바치고 목숨을 구걸한 걸 협정이라 하긴 힘들 것 같소만.”
살라딘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르슬란 술탄께선 콘스탄티노플의 우위를 인정하셨지. 그건 바실리우스(황제)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이나 마찬가지요.”
“술탄께서도 어쩔 수 없이 내리신 선택이십니다.”
사절이 말했다.
그가 수염을 쓰다듬었다.
“트리폴리의 프랑크인들이 룸인 들의 군대에 합류하면서 3만이 넘는 군세가 앙카라를 포위했습니다.”
그가 덧붙였다.
“만약 제때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도시 전체가 콘스탄티노플의 손에 넘어갔을 겁니다.”
“그리고 그 덕에 이제 레반트가 불탈 상황이 됐소.”
살라딘이 말했다.
“룸인(로마인)들은 이미 아나톨리아 남부 도시들을 장악했지. 그들은 그곳을 통해 안티오키아, 트리폴리로 넘어올 거요.”
살라딘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레반트까지 진격해 오겠지. 그대들의 주군은 이교도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준 것이나 마찬가지요. 당장 내가 이번 원정에 쓴 돈만 해도….”
“이번 원정에 쓰인 비용은 아르슬란 술탄께서 전액 지불하실 겁니다.”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오.”
살라딘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사절을 바라보며 팔짱을 꼈다.
“유럽에 있는 내 첩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이미 프랑크인들 땅 곳곳에서 십자군을 위한 기사와 병사들이 몰려들고 있소.”
그가 덧붙였다.
“보두앵이 이제껏 본 적 없는 군세를 꾸린 거요. 이젠 룸인들까지 거기에 가세하겠군.”
“아르슬란 술탄께서 싸움도 없이 바실리우스(황제)와 협정을 맺으신 건 아니십니다.”
사절이 말했다.
“룸인들은 아나톨리아 곳곳에 해괴한 탑들을 세웠습니다. 그걸 이용해 일종의 서신을 주고받는 것 같더군요. 그 탑들만 없었더라도….”
“신호탑을 말하는 거로군. 내가 이미 몇 달 전에 신호탑을 경고하는 서신을 술탄께 보냈소만.”
살라딘이 한숨을 내쉬었다.
“중요하지 않은 정보라고 여겨 보고가 안 된 모양이로군.”
“….”
“레반트의 프랑크인들도 곳곳에 그런 탑들을 세워놨소. 전서구보다 더 빨리 서신을 주고받더군.”
그가 중얼거리듯 덧붙였다.
“그것도 보두앵 녀석이 만든 물건이지. 앞으론 전투에 앞서 신호탑들부터 파괴해야 할 거요.”
그가 사절을 바라봤다.
“그래서 아르슬란 술탄께선 손 놓고 산불을 구경하시겠다, 이거요?”
“아르슬란 술탄께선 레반트의 무슬림들을 위해 가능한 모든 지원을 하실 겁니다. 하지만 당장 콘스탄티노플을 자극할 순 없습니다.”
사절이 말했다.
“그 탑들 때문에 룸인들의 도시를 습격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졌습니다.”
사절이 말했다.
그가 냉수를 단번에 들이켰다.
“그동안 사용해왔던 기습 전략 역시 번번이 실패했지요. 수천이 넘는 용맹한 전사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교도들과의 전투에서 순교한 신자들은 천국행이 보장되어 있소. 하지만 그렇다고 죽음을 쉽게 받아들여선 안 되는 법.”
살라딘이 말했다.
“아르슬란 술탄께서 처하신 상황은 나도 잘 이해하오. 하지만 레반트가 프랑크인들의 손에 넘어가면 그다음은 아나톨리아가 될 거요.”
그가 덧붙였다.
“우린 함께 살아남거나, 아니면 함께 죽을 운명이오.”
“물론입니다. 그래서 아르슬란 술탄께서도 필요한 자금을 얼마든지….”
“자금은 필요 없소. 이미 다마스쿠스에서 모이는 세입만으로도 충분하니.”
살라딘이 손을 들었다.
“내게 지금 필요한 건 전사요. 함께 검을 맞대고 프랑크 우상숭배자들과 싸울 수 있는 전사.”
“하지만 아르슬란 술탄께선 협정에 따라 군대를 움직이실 수 없습니다.”
“그건 나도 짐작했소. 내가 제안하는 건 어디까지나 ‘자원병’이오.”
“자원병이라면….”
“술탄께서 직접 지휘하시는 군대가 아니라 자원병들이라면 협정을 어기는 게 아니지 않소?”
살라딘이 말했다.
“어디까지나 전사 개개인이 자원한 것이니 말이오. 술탄께선 그 병사들을 위한 자금만 지원해주시면 될 거요.”
“무슨 말씀이신지 알 것 같군요.”
사절이 고개를 끄덕였다.
“술탄의 제안을 주군께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리겠소. 자, 딱딱한 얘기는 그만하고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갑시다.”
살라딘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의 아들, 알리가 두 사람을 따라 천막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저녁 공기가 세 사람을 휘감았다.
모래가 섞인 사막의 공기.
병사들이 고기를 굽고 물을 마시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해는 천천히 지고 있었다.
기도 시간을 알리는 무에진의 아잔이 울려 퍼졌다.
“알라후 아크바르! 하느님은 위대하시다! 알라후 아크바르!”
아잔을 들은 병사들이 하나둘 몸을 씻으며 기도를 준비했다.
낙타들은 익숙하다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대추야자를 질겅질겅 씹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기도 시간이구려.”
“우선 제 천막으로 돌아가 있겠습니다.”
“알겠소, 식사 준비가 끝나면 사람을 보내리다.”
살라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반대편으로 걸어가는 사절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살라딘의 아들, 알리가 곁으로 다가왔다.
“아르슬란 술탄은 왜 그리 빨리 항복한 걸까요? 아버지께서 도착하실 때까지 좀만 더 기다렸다면 함께 룸인들을 격퇴할 수 있었을 텐데요.”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던 거겠지. 아르슬란은 콘스탄티노플의 칼날을 우리 쪽으로 돌린 거다.”
살라딘이 말했다.
“우리가 대신 룸인들과 싸워주길 바란 거겠지. 바실리우스가 레반트에서 죽으면 더 좋고 말이야.”
“그렇다면 어째서….”
“사절한테 따지지 않았느냐고?”
살라딘이 미소 지었다.
“지금 중요한 건 아르슬란의 생각이 아니라 무슬림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느냐다.”
그가 말했다.
“난 그를 돕기 위해 이곳까지 군대를 끌고 왔지. 이제 날 겁쟁이라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그만큼 더 많은 자원병도 모일 거고요.”
“그래, 오히려 아르슬란이 직접 오는 것보다 낫겠지. 그는 내 명령을 따르지 않을 테니. 우리도 손해만 본 건 아니다.”
그가 생각에 빠진 표정으로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그나저나 바실리우스까지 룸 곳곳에 신호탑을 세웠을 줄이야. 호되게 당했겠군.”
“아버지의 경고를 듣지 않은 저들의 잘못입니다.”
“당장 나도 알 아딜이 붙잡히지 않았다면 그 탑들이 위험하단 생각은 안 했을 거다.”
살라딘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이란 불에 손을 데기 전까진 불이 무서운 줄 모르는 법이지.”
“….”
살라딘과 알리는 함께 서서 진영을 바라봤다.
아잔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증언컨대 하느님 외에 다른 신은 없도다! 증언컨대 무함마드는 그분의 예언자로다!”
살라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에게도 아직 화살은 남아있지.”
“화살이라면….”
“보두앵은 곧 돌아올 거다. 삼촌인 예루살렘 왕이 죽기 전엔 어떻게든 돌아오려 하겠지.”
“그래야 자기가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겠죠.”
알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보두앵이 오는 걸 막긴 힘들 것 같은데요.”
“우리가 직접 막기는 힘들겠지. 하지만 우리 대신 막아줄 사람은 있다.”
살라딘이 씨익 미소 지었다.
그가 검지를 치켜세우며 물었다.
“보두앵이 커질수록 누가 두려움을 느낄 것 같으냐?”
“아마….”
알리가 머리를 긁적였다.
“보두앵의 양아버지인 기 백작이겠지요. 원래라면 보두앵이 아니라 그자가 다음 왕이 되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래, 하지만 성전기사단이 문제를 일으킨 이후로 혼자 아스칼론에 박혀 있지.”
“그럼 사실상 왕위를 포기한 것 아니겠습니까?”
“넌 굶주린 사자가 눈앞의 고기를 포기하는 걸 본 적 있더냐?”
살라딘이 웃음을 터뜨렸다.
“권력욕에 사로잡힌 자들은 굶주린 사자나 마찬가지야. 말 한 마리를 통째로 집어삼켜도 계속 배고파하는 법이니.”
그가 덧붙였다.
“기는 기회를 노리고 있을 거다. 보두앵이 레반트에 돌아오는 때를 노리겠지.”
“그때가 기회로군요.”
“그래, 발정 난 낙타인 르노도 한번 찔러줘야겠지. 땔감에 불을 붙이려면 불씨가 필요한 법.”
살라딘이 말했다.
“하지만 예루살렘의 왕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겠지. 어쩌면 보두앵 그 녀석도….”
어느덧 아잔은 막바지에 다다랐다.
지평선에 매달리던 태양이 이내 마지막 빛을 뿜어내며 사라졌다.
“하느님은 위대하시다! 하느님 이외에 다른 신은 없도다!”
정적 속에서 몸을 숙이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 * *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마상시합이라니. 그게 정말인가?”
“내가 듣기론 대천사 미카엘께서 주님의 말씀을 전했다고 하시더군.”
“멍청한 소리! 성 베켓께서 특별히 보두앵 공자 앞에 나타나셔서….”
“자네들 다 틀렸네! 내가 듣기론 아서왕이었다더군. 그분의 무덤을 찾았으니….”
잉글랜드에서 마상시합이 열린다는 소식에 유럽 전체가 뜨겁게 타올랐다.
거리 곳곳마다 소문이 퍼져 나갔다.
“지금껏 잉글랜드에서 마상시합이 열린 적 있었나?”
“내 기억으론 없는 것 같네만. 젊은 헨리 폐하께서 여시는 것 아니겠나?”
평화를 위한 마상시합!
시민들은 보두앵 공자가 발표한 마상시합을 신이 잉글랜드를 용서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유럽의 음유시인들이 성과 거리들을 돌아다니며 잉글랜드에서 벌어진 일을 전했다.
“유럽의 모든 왕과 영주들은 이번 토너먼트에 참가해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가장 먼저 참가 소식을 알린 건 브르타뉴의 제프리였다.
그 뒤를 이어 히스파니아의 아라곤, 카스티야, 레온, 포르투갈, 크로아티아, 덴마크 왕국이 참가를 발표했다.
이들은 빠듯한 개최 일자에 맞추기 위해 웃돈을 주고 배편을 마련했다.
그 뒤를 이어 프랑스 왕국도 한발 늦게 참가를 발표했다.
유명 기사들을 포섭하기 위한 작업도 곳곳에서 시작됐다.
“출발한 날을 기준으로 매일 30수(Sou)를 주도록 하지.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을 걸세.”
“제프리 공작께서 이번에 많은 돈을 쓰시는군요. 40수를 주신다면 좀 더 빨리 출발하도록 하죠.”
젊은 헨리와 리처드, 제프리에 이어 필리프까지.
그들은 유럽 곳곳으로 사람을 보내 자신을 위해 싸워줄 기사를 모았다.
바빠진 건 귀족과 영주들뿐만이 아니었다.
“자, 어서 빨리 물건 싣고 가자고! 하루라도 빨리 가야 뱃삯을 줄일 수 있어!”
“아니, 고작 해협 한번 넘어가는데 다섯 수를 달라니? 이런 바가지가 어디 있나!”
“내기 싫으면 그냥 가슈! 그쪽 말고도 돈 내고 탈 사람은 많으니.”
“이런 사기꾼 같은 놈들을 보았나. 알았네, 알았어!”
수백 척의 배들이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로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말 상인과 환전상, 대장장이들이 해협을 건너기 위해 유럽 곳곳에서 몰려들었다.
마상시합에서 한몫 잡는 건 모든 장인과 상인들의 꿈이었다.
갑판 곳곳에서 말들이 똥을 싸고 대장장이들은 갑옷을 두드렸다.
순수히 보두앵 공자를 보기 위해 몰려든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선택을 받은 예언자!
그에게 가면 치유와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에 병자와 빈자들도 항구로 향했다.
“증언컨대 보두앵 공자께선 새로운 예언자이시다!”
유럽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마상시합.
그 시작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