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134)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134화(134/215)
위대한 기사 (4)
* * *
“난 너희들에게 실망했다.”
루아크가 말했다.
그의 앞에 선 성묘단원들이 고개를 숙였다.
“마상시합을 앞두고 프랑스 놈들이랑 패싸움을 벌여? 너희들은 정녕 생각이라는 게 없는 거냐?!”
그가 성큼성큼 걸어가자 단원들이 흠칫했다.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단장님, 그게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니. 그럼 뭐라는 거냐?”
“그 프랑스 놈들이 먼저 저희 수호단을 모욕했습니다. 싸우자고 달려드는 놈한테 그냥 맞을 순 없지 않습니까?!”
다른 단원들이 고개를 흔들었다.
루아크가 그에게 물었다.
“뭐라고 했나?”
“예?”
“프랑스 놈들이 먼저 우리를 모욕했다면서. 정확히 뭐라고 했다는 거냐?”
“저, 그게….”
“어서 말해봐. 설마 거짓말이었던 건 아니겠지?”
루아크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날개를 뜯어 뽑힌 루시퍼 놈들’이라고 했습니다.”
곳곳에서 단원들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몇몇은 도끼를 허공에 휘둘렀다.
“저 거만한 프랑스 놈들한테 본때를 보여줘야 합니다!”
“이런 모욕을 당하고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놈들은 수호단뿐만 아니라 보두앵 공자님의 이름까지 더럽힌 겁니다!”
루아크가 손을 치켜세우자 소음이 잦아들었다.
“싸움에선 누가 이겼나?”
“…놈들은 열 명 중 셋이 실려 갔습니다. 저희 쪽에선 한 명이 쓰러졌고요.”
“그럼 됐다. 그 정도면 프랑스 놈들도 다시 덤비진 않겠지.”
“하지만 단장님…!”
계급이 높은 단원이 앞으로 나섰다.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프랑스 왕에게 정식으로 사과를 요청해야….”
“곧 있으면 마상시합이 열릴 거다. 근데 지금 프랑스 왕과 싸우잔 얘기냐? 고작 헛소리 하나 들었다고?”
루아크가 물었다.
그의 이글거리는 눈빛에 단원이 입을 다물었다.
“너희는 놈들의 수작에 넘어간 거다. 우리가 사고를 치면 수습은 보두앵 공자께서 하실 수밖에 없어.”
그가 덧붙였다.
“그럼 공자께선 프랑스 왕에게 빚을 지시게 될 거다. 그런 상황을 원하는 거냐?”
“….”
단원들 모두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씨익씨익거리는 숨소리가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우리가 날개를 잃은 게 틀린 말은 아니지.”
“하지만 저흰 보두앵 공자님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수행했습니다!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실 때도 항상 곁에 있지 않았습니까?!”
“피에르 사제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공자님을 바로 옆에서 모시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은 없다!”
“그래, 그것보다 더 큰 영광은 없겠지.”
루아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탈리아에 온 이후로 제대로 풀리는 게 없었다.
프리드리히 황제와의 전투.
싸움에 정신 팔린 단원들이 집합 신호를 무시하면서, 수많은 이들이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리고 얼마 전엔 성십자가와 아서왕의 십자가를 놓칠 뻔하기까지.
‘캉이 없었다면 다른 순례자들도 학살을 당했겠지.’
보두앵 공자는 공개적으로 문책을 하지 않았지만, 그게 오히려 성묘수호단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이미 많은 특혜를 받아왔다. 예루살렘의 다른 기사단들과 달리 여자를 품에 안거나 돈을 모으는 것도 허용 됐지.”
루아크가 말했다.
그는 앞에 선 단원들을 한 명 한명 바라봤다.
“전투 때마다 매번 특별 수당을 주지 않았더냐?! 이미 너희들 모두 적지 않은 돈을 모았을 거다!”
“….”
“내 말을 듣기 싫은 자들은 얼마든지 나가도 좋다! 내가 직접 뱃삯도 마련해 줄 테니. 원하는 자가 있나?!”
루아크는 단원들 사이를 가로질렀다.
수백의 눈동자들이 그를 따라 움직였다.
“성묘수호단과 공자님 곁에 남고 싶다면 너희의 실력을 증명해야 할 거다! 너희가 원하는 건 돈이냐? 아니면 명예냐?!”
“….”
침묵이 흘렀다.
루아크가 다시 입을 열려던 그때, 누군가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이번엔 그 어떤 수당도 받지 않겠습니다!”
“저도 돈은 필요 없습니다!”
단원들의 외침이 이어졌다.
“그럼 좋다. 공자께선 우리에게 자격이 생기면 다시 날개를 돌려주신다 약속하셨지.”
루아크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전사가 자격을 증명하는 법은 검과 방패, 도끼, 주먹이면 충분하지.”
환호성이 더 커졌다.
루아크가 손을 흔들며 외쳤다.
“이번 전투에선 일체의 개인행동도 용납하지 않겠다! 그 어떤 전리품도 필요 없다!”
“우리가 원하는 건 피와 승리뿐!”
“그래, 성도를 위한 피와 승리지. 자, 어서 가서 무구를 점검하고 배를 채워라!”
단원들이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우르르 몰려나갔다.
대장장이들이 망치를 두드리고 말이 푸르릉 우는 소리가 뒤따랐다.
루아크는 한숨을 내쉬며 그 광경을 바라봤다.
“위그 경. 그대가 여기 있었다면 내기라도 했을 텐데.”
그가 중얼거리듯 덧붙였다.
“언젠가 경과 다시 내기할 날이 오겠지.”
* * *
“공작께선 안에 계십니다.”
경비병이 창을 치우며 말했다.
난 천막을 걸치고 안에 들어갔다.
안에 있는 건 한 명뿐이었다.
제프리.
젊은 헨리와 리처드의 동생이자 날 가로막았던 장본인.
그의 얼굴이 흐릿한 양초 불에 비쳤다.
‘리처드한테 누명을 씌워서 내전을 계속하려고 했었지.’
거기에 음유시인 베르트랑을 이용해 윌리엄 마셜은 흔들기까지.
“보두앵 공자님, 오셨군요.”
그가 일어서며 고개를 숙였다.
전과는 180도 다른 공손한 태도.
“공자님이라. 저번엔 예루살렘에서 온 사기꾼이라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웃으며 답했다.
그래, 일단은 네놈 장단에 맞춰주마.
난 그를 바라봤다.
짧은 키에 족제비 같은 눈매.
그는 마상시합이 발표되자 가장 먼저 잉글랜드로 건너왔다.
‘형들이 권력을 잡았으니 그보다 최악의 상황은 없겠지.’
젊은 헨리는 헨리 2세에게서 왕권을 물려받았고, 리처드 그런 젊은 헨리를 도왔다.
아무런 이익을 얻지 못한 건 제프리 혼자.
“솔직히 말씀드려야겠군요. 그땐 제 잘못들을 인정하기가 두려웠습니다.”
제프리가 후회한다는 어조로 말했다.
육감이 없었다면 깜빡 속아 넘어갔을 연기.
“이미 형님들께는 공개적으로 사과했죠.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없지만, 공자님께도 뒤늦게나마 사죄드리고 싶습니다.”
난 코웃음이 나오는 걸 참았다.
공개적인 사과라.
제프리는 잉글랜드에 도착하자마자 리처드와 젊은 헨리에게 무릎 꿇고 사과했다.
두 사람은 제프리를 용서.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용서에 불과했지만.’
젊은 헨리와 리처드도 이제 제프리가 사기꾼이라는 걸 알았다.
난 제프리를 바라봤다.
제프리가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는다고 고발하는 건 어떨까?
‘이젠 내 말을 믿는 사람들도 많으니.’
하지만 그런 식으로 내쫓는 건 제프리에게 정치적인 힘을 실어줄 수 있었다.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으러 온 사람을 내쫓는다!]이런 식으로 몰고 가겠지.
제프리는 내 손으로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언제까지 웃나 두고 보자고.’
난 그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제가 공작님을 용서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이미 리처드 공과 젊은 헨리께서도 용서하셨는데 말입니다.”
이제 살짝 떠볼 때였다.
“공작께서 이번 마상시합을 위해 수백이 넘는 기사들을 고용하셨다 들었습니다. 모두 유럽에서 내로라하는 이들이더군요.”
“평화와 화합을 위한 토너먼트이니 저도 돈을 써야겠죠.”
제프리가 답했다.
“주님을 위한 대회에 어찌 돈을 아낄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군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태연히도 거짓말하는군.
우린 서로를 바라보며 사이좋은 친구처럼 미소 지었다.
내가 자기 말을 안 믿는다는 건 제프리도 알겠지.
“그럼 형제들끼리 같은 편을 하자고 제안한 것도 평화와 화합을 위해서겠군요?”
“물론입니다. 그리고 필리프 왕께선 공자님을 아주 높게 평가하시더군요. 같은 편에서 싸우고 싶어하셨습니다.”
“….”
난 고개를 끄덕였다.
필리프와 제프리가 제안한 팀 구성은 간단했다.
플랜태저넷 형제인 젊은 헨리, 리처드, 제프리가 한 편.
그리고 상대편으로는 나와 필리프.
젊은 헨리와 리처드가 나와 적극적으로 싸우려 들 리 없었다.
‘두 사람 다 내게 빚이 있으니.’
젊은 헨리는 왕좌를,
리처드는 엘레오노르 왕비의 석방을.
그렇다면 내가 싸울 상대는 제프리뿐이었다.
아마 필리프도 은근히 그런 상황을 유도하겠지.
‘내가 토너먼트에서 지면….’
그동안 쌓아온 명성과 위신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제프리와 필리프 왕은 각자 원하는 걸 얻겠지.
난 여전히 미소 짓고 있는 제프리를 바라봤다.
‘날 구석에 몰아넣었다고 생각하는군.’
완전히 자신만만한 건 아니었다.
미묘한 긴장과 두려움도 동시에 느껴졌다.
“이렇게 공작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더 말씀드릴 건 없군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확인해야 할 건 다 확인했다.
제프리는 전쟁을 원했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건 하나뿐.
죽음.
아니, 자기가 직접 선택했으니 자살이라 하는 게 낫겠군.
‘가만히 있었으면 이런 상황까지 오진 않았을 텐데.’
제프리가 일어서서 내 손을 맞잡았다.
“그럼 이제 토너먼트에서 뵙게 되겠군요. 주님의 축복이 함께하길 기도하겠습니다, 공자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손을 맞잡으며 내가 말했다.
* * *
같은 시간
젊은 헨리의 천막
“제프리 그 녀석이 꾸미는 거야 뻔하지 않습니까, 형님?”
리처드가 말했다.
그는 의자에 팔을 기대며 형을 바라봤다.
“형님과 제가 이렇게 빨리 잉글랜드를 장악할 수 있었던 건 보두앵 공자 덕분이었죠.”
그가 말을 계속했다.
“맨 처음 아서왕의 무덤을 발견하고 혜성과 지진을 예언했으며, 런던 성문을 활짝 연 게 다 보두앵 공자가 한 일 아닙니까?”
“리처드 네 마, 말이 맞다.”
젊은 헨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 공자가 없었다면 우린 아, 아직 아키텐을 놓고 싸우고 있었겠지.”
“제프리 그 녀석은 토너먼트를 이용해 공자를 꺾으려 하는 겁니다. 공자를 꺾으면 저와 형님도 같이 꺾인다는 걸 아는 거죠.”
“그, 그리고 필리프는 그 틈을 타 십자군 원정을 취소한다, 이런 계획이겠지.”
“필리프도 바로 취소하진 않을 겁니다.”
리처드가 닭고기를 집어 입에 넣었다.
“아마 적당히 눈치 보다 나중에 취소하겠죠. 사정이 생겨서 못 간다는 걸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교, 교황 성하께서 가만히 두고 보시지만은 않을 거다. 아마 프랑스 따, 땅 전체에 성무금지령을 내리시겠지.”
“그깟 성무금지령이야 돈 몇 푼 쥐여주면 풀리는 것 아닙니까. 언제부터 로마가 기부금을 안 받았습니까?”
리처드가 코웃음 쳤다.
“아니면 성당 몇 개 더 지어줘도 되고요.”
“그,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냐? 우리가 가, 가만히 있다간 공자께서….”
“마침 공자가 제게 부탁을 했습니다.”
리처드가 고개를 앞으로 숙였다.
“일단 토너먼트 때는 도움이 필요 없을 거라 하더군요. 필리프 왕만 적당히 상대해달라고 했습니다. 그 후에 필요한 일이 하나 있는데….”
그가 말했다.
“형님의 허락이 필요한 일입니다. 이제 잉글랜드의 왕은 다른 누구도 아닌 형님 아니십니까.”
“와, 왕의 허락이 필요한 일이라. 뭘 말하고 싶은 거냐?”
“정원에 있는 잡초는 다른 나무들의 물을 뺏어 마시죠.”
리처드가 빙긋 미소 지었다.
“그런 잡초는 최대한 빨리 뽑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다른 나무들도 더 크게 자랄 수 있을 테고요.”
“네 말은….”
젊은 헨리의 눈이 순간 동그래졌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어쩌면 네 말이 맞을 수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