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145)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145화(145/215)
< 145화 – 바보들의 행진 (5) >
다마스쿠스
낙타들이 성문을 오고 가며 무기와 보급을 날랐다.
거리에선 학자와 시인들이 전사들을 격려하는 시를 읊었다.
“용감한 전사들의 사령관이시여, 부디 이 미천한 제가···.”
“지금 이럴 시간 없네, 카밀. 이집트 상황은 어떻게 됐나?”
살라딘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는 시종들의 도움을 받아 사슬갑옷을 걸쳤다.
“아직도 들어온 정보가 없는 건가?”
“요새를 중심으로 한 전투가 아직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알 카밀이 고개를 숙였다.
“프랑크족 포로들이 이번 폭동에 가담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폭도들이 그들을 풀어줬단 얘기로군. 성채를 짓고 있던 게 포로들 아니던가.”
“숙부님, 한시라도 빨리 카이로로 떠나야 합니다!”
살라딘의 조카, 타키 앗딘이 말했다.
갑옷을 걸친 그가 살라딘 곁에 섰다.
“자칫했다간 이집트 전체가 시아파 놈들의 손에 넘어갈 겁니다.”
“아니다.”
살라딘이 턱을 만지작거렸다.
“프랑크족 포로들까지 끌어다 썼다는 건 놈들도 그만큼 절박하다는 거야. 카이로 시민들이 반란에 호응했다면 프랑크 놈들과 손잡진 않았겠지.”
“···.”
타키 앗딘이 카밀을 바라봤다.
“그 외에 이집트에서 온 소식은 없습니까?”
“아직 알 아딜 총독께선 지원 요청을 보내시지 않으셨습니다. 이집트 군대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하신 것이겠지요.”
“알 아딜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게다. 내게 도움을 청하는 건 어떻게든 미루겠지.”
살라딘이 말했다.
그는 창밖을 바라봤다.
다마스쿠스 성벽 앞 신호탑이 끼익끼익 소리 내며 움직였다.
이미 수십에 달하는 신호탑들이 다마스쿠스와 다른 도시들을 연결했다.
정보를 주고받는 속도는 빨라졌지만, 막대한 건설비와 운용 비용은 무시하기 힘들었다.
프랑크인들이 지닌 ‘천사의 눈’ 없이는 더 많은 탑을 짓는 수밖에 없었다.
막대한 재정은 군비에도 영향을 끼쳤다.
“보두앵이 레반트에 돌아오는 시기에 맞춰 시빌라가 레몽 백작에게 도망쳤지.”
살라딘이 자신의 조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카이로에서는 반란이 일어났고. 이게 다 우연이라고 생각하느냐?”
“카이로는 숙부님의 시선을 돌리려는 수작입니다.”
타키 앗딘이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불씨라도 가만히 두면 들불처럼 퍼져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 그리고 이집트는 잃을 수 없는 땅이지.”
살라딘이 말했다.
“하지만 알 아딜이 우리 지원 없이도 반란을 진압할 수 있다면 어떻겠느냐?”
“숙부님 말씀은···.”
침묵이 흘렀다.
알 카밀과 타키 앗딘 두 사람 모두 술탄을 바라봤다.
“충분히 걸어볼 만한 도박이라는 거다. 이건 기와 레몽의 싸움이 아니야. 기는 어린 보두앵과 왕위를 두고 싸우는 거다.”
살라딘이 말했다.
“예루살렘의 왕이 지금 당장은 중립을 지킬지 몰라도, 상황이 틀어지면 조카를 도우려 할 게야.”
“그렇다면 이집트로 행군하면서 예루살렘을 찔러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타키 앗딘이 말했다.
“그럼 보두앵 4세도 자기 조카를 돕지 못할 겁니다.”
“아니다, 알 쿠드스(예루살렘)에서 좀 더 먼 곳으로 끌어내야 해. 알 쿠드스를 포위해봤자 병든 왕의 위신만 세워줄 거다.”
살라딘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약 친다면 이집트와 이곳 다마스쿠스 사이에 있는 곳을 쳐야겠지.”
그가 탁자 위 지도를 가리켰다.
“바로 여기. 케락이다.”
* * *
하틴
난 바위산 위에 서서 주변을 바라봤다.
하틴의 뿔.
서쪽으로 넓은 평야가 보였다.
햇볕에 바짝 탄 수풀들이 드문드문 펼쳐져 있었다.
동쪽으론 갈릴리 호수.
수십 마리의 말과 낙타들이 움직이며 물과 식량을 실어 날랐다.
‘결전을 펼치기 최적의 장소군.’
이번엔 또 얼마나 많은 전사가 이곳에서 목숨을 잃을까?
누군가는 기 백작을 위해,
누군가는 예루살렘을 위해,
누군가는 날 위해.
전장을 살피던 그때, 누군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익숙한 감정.
테오도라였다.
“이곳 주민들은 바로 이 산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평화에 대해 설교하셨던 곳이라더군요.”
그녀가 말했다.
시녀들이 그녀를 따라 허겁지겁 올라왔다.
모두 지친 표정.
“그런데 이젠 두 기독교 군대가 이곳에서 맞붙는다니···.”
“운명의 장난 같군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원 역사에선 살라딘이 십자군을 물리친 장소로 유명했지.
이 세계의 역사서엔 어떻게 기록될지 궁금했다.
난 테오도라를 바라봤다.
그녀와 시빌라.
두 사람은 티베리아스 성채에 숨는 대신 이곳 하틴으로 따라오길 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티베리아스에 있으면 레몽 백작이 날 납치한 것처럼 보일 거다. 내가 직접 병사들 앞에 나서야 해.’
‘그리고 제가 어머니를 버리고 혼자 티베리아스에 숨어있을 순 없어요.’
아무리 말리려 해도 두 사람의 의지를 꺾을 순 없었다.
테오도라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보급대를 꾸렸다.
그리스계 출신들로 이루어진 그들은 낙타와 말들을 끌고 다니며 보급을 날랐다.
“테오도라, 어느 쪽이 이기든 이곳은 안전하지 않을 거예요. 지금이라도 티베리아스로···.”
“당신이 도망치지 않는데 제가 왜 도망쳐야 하겠어요?”
테오도라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
“제 아버지께선 언제나 전장에서 돌아오시면 절 무릎에 앉혀놓고 이야기를 해주셨죠.”
그녀가 평원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렇게 전장 앞에 직접 서는 건 처음이에요.”
“그리 재밌는 광경은 아니죠.”
내가 말했다.
처음 이 세계에 떨어졌을 때 나도 마찬가지였지.
갑옷을 걸친 기사들이 돌격하는 광경은 영화를 눈앞에서 보는 것 같았다.
발굽에 진동하는 대지, 투구를 스치는 바람 소리.
하지만 전장의 모습은 영화들과 달랐다.
피범벅이 된 채 쓰러진 말과 병사들.
반쯤 잘려 덜렁거리는 팔다리와 머리.
‘육감이 없길 바랄 때도 많았지.’
수천, 수만이 넘는 감정들이 물밀듯 쏟아질 때는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난 그들의 고통과 흥분, 좌절과 희망을 동시에 느껴야 했다.
“이번 전투는 어떻게든 빨리 끝낼 겁니다. 그래야 무익한 희생을 줄일 수 있겠죠.”
내가 말했다.
이건 이슬람과의 싸움이 아니었다.
같은 기독교 진영 간의 내전.
흘리는 피는 최대한 줄여야 했다.
“그리고 살라딘도 있죠.”
테오도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가 과연 미끼를 물어줄까요?”
“이집트가 미끼라는 건 이미 눈치챘을 겁니다.”
내가 말했다.
살라딘은 만만치 않은 적수였다.
지금이면 내 계획을 알아차렸겠지.
이집트에서 일어난 반란과 예루살렘 왕국의 내전.
그가 둘 중 어느 것을 택할까?
“하지만 이집트를 포기할 수도 없겠죠.”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면 국왕 폐하께서 직접 나서실 거예요. 병세가 심해지긴 하셨지만···.”
테오도라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왕은 자신의 왕국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하는 법이죠. 그게 기 백작과 당신이 다른 점이고요.”
“···.”
난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기가 예루살렘을 지키려 했다면 이런 짓을 벌이진 않았겠지.
애초에 성전기사단을 끌어들여 아사신 수송대를 습격하지도 않았을 터.
테오도라가 손을 들어 평원을 가리켰다.
“그럼 저곳에서 놈들과 정면으로 맞붙을 생각이신가요?”
그녀가 물었다.
“차라리 티베리아스에서 공성하는 편이 더 안전할 것 같은데요. 성에는 보급도 넉넉하고요.”
“만약 살라딘과 싸우는 거라면 그렇게 했겠죠. 하지만 지금 그럴 여유는 없어요.”
내가 말했다.
살라딘이 개입하기 전에 최대한 빨리 기의 군대를 박살 내야 했다.
티베리아스 성채에 틀어박혀 수비전을 펼쳤다간 내전이 언제 끝날지 몰랐다.
‘최소 몇 개월은 걸리겠지.’
트로이 전쟁을 이곳 레반트에서 재현할 생각은 없었다.
내가 원하는 건 하틴 뿔 전투.
그러려면 기가 정신없이 이곳으로 오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결투재판을 공표하신 건가요?”
테오도라가 물었다.
“레몽 백작과 기 백작 중 누가 옳은지 전투로 알아내자니 정말이지···.”
“어린애 싸움 같은 상황이죠.”
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투 재판.
레몽 백작이 시빌라를 납치한 것인지, 아니면 시빌라를 정당히 보호하는 것인지.
전투를 벌여 이기는 쪽이 정의다!
이보다 더 간단한 논리가 어디 있을까.
기는 지금쯤 기뻐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자기가 더 많은 기사를 모았으니 당연히 이길 거라 믿겠지.
보급 같은 건 안중에도 없을 터.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우리 군대는 패배할 수 없다!’
이런 믿음에 빠지면 패배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천황폐하의 황군은 언제나 승리한다!’
‘알라께선 무슬림의 최후 승리를 약속하셨다!’
이런 레퍼토리는 어느 시대의 강경파나 마찬가지군.
그때 에이그가 숨을 헐떡이며 산 위로 올라왔다.
“공자님, 놈들이 아크레 근처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럼 계획대로 진행하라고 레몽 백작한테 전해. 우물을 막고 들판에 불을 붙일 차례야.”
“그럼 전 이만 돌아가서 보급을 확인할게요. 식수는 지금까지 모은 정도면 충분할 거예요.”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죠.”
난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쇼타임이군.
* * *
‘전쟁! 전쟁이 다가온다! 최후의 심판이 오고 있다! 모두 자신의 죄를 회개하라!’
보두앵 공자의 귀환과 동시에 예루살렘 왕국은 혼란에 빠졌다.
실종됐던 시빌라가 레몽 백작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게 알려지며 혼란은 더 커졌다.
‘기 백작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영지민들을 핍박하고, 과도한 세금을 물었으며, 고귀한 왕족이신 시빌라 님을 도구처럼 이용했소!’
‘다른 영주의 아내를 그렇게 납치하다니! 레몽 백작은 죗값을 치를 거요!’
예루살렘 왕실이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왕국은 두 진영으로 나뉘었다.
[레몽과 보두앵을 따르는 영주들.]그리고,
[기와 성전기사단 강경파를 따르는 영주들.]양측이 군대를 소집하고 긴장이 이어지는 가운데, 레몽의 발표가 이어졌다.
‘누구의 말이 옳은지는 신께서 증명하실 것이오! 난 기 백작에게 결투 재판을 신청하겠소!’
레몽 백작이 티베리아스 앞에서 결투 재판을 요청했단 이야기는 예루살렘 왕국 전체로 퍼졌다.
개개인이 아닌 영주 간의 결투 재판.
이는 전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기는 선뜻 레몽 백작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멍청한 놈들! 어찌 갈릴리 호수 앞에서 싸우자 제안할 수 있단 말인가? 기본적인 병법도 모르는군.’
‘놈들을 호수로 밀어 넣읍시다! 그리고 시빌라 님을 되찾아 오는 거요!’
수천에 달하는 대병력이 아스칼론을 떠나 나사렛, 사푸리야 샘에 이어 아크레에 도착했다.
레몽 백작이 다스리는 땅.
이들은 식량 징발을 위해 주변 마을로 향했다.
‘식량을 내놓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가져가겠다!’
‘왜 검을 앞세우시는 겁니까?! 레몽 백작께선 얼마든지 물자를 판매해도 좋다 하셨습니다.’
이들은 레몽 백작의 영지에서 아무 저항 없이 보급을 받았다.
오히려 몇몇 상인들은 적극적으로 물건을 팔았다.
이런 레몽 백작의 태도에 기의 부하들은 혼란에 빠졌다.
‘왜 레몽 백작 부하들이 우리한테 순순히 보급품을 파는 거지?’
‘이건 전쟁이 아니라 결투 재판이잖아, 이 머저리 녀석아. 나중에 딴소리하지 말라고 그러는 거겠지.’
‘이렇게 보급품을 내어주는 걸로 봐서 놈들은 시간을 끌려는 게 분명합니다!’
‘지금 당장 티베리아스로 진격해야 합니다! 고작 하루 거리도 안 되는 곳에 놈들이 있지 않습니까?! 시간을 끌면 끌수록 레몽 백작의 군세는 더 커질 것입니다!’
이들의 계속되는 주장에 기 백작은 행군을 결정했다.
아크레에서 티베리아스로 이어지는 기나긴 길.
기사와 병사들은 기세를 높여 행군했다.
‘시빌라 님을 구하자!’
‘레몽 백작에게 신의 분노를!’
하지만 이런 들뜬 분위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하늘 중앙에 뜬 태양이 그들을 내리쬐며 피부와 갑옷을 달궜다.
길목 중간중간 있는 우물들은 모두 메말랐거나 돌로 막혀 있었다.
‘이곳 우물들도 다 말라 있습니다!’
‘계속 진격해라! 좀만 더 가면 티베리아스가 나온다! 거기서 물을 구하면 돼!’
‘어차피 레몽 백작은 우리에게 물을 줄 거다!’
햇빛은 흐르는 용암처럼 석회암을 타고 모든 걸 불태웠다.
아무리 외투를 걸친다 한들 쇠사슬이 달아오르는 건 막지 못했다.
중간중간 더위를 참지 못한 자들이 쓰러지거나 동료들에게 실려 갔다.
개개인이 챙겨온 물은 모래 속에서 금방 자취를 감췄다.
설상가상으로 길 곳곳에서 불이 피어오르며 검은 연기와 열기가 덮쳤다.
결국 그들이 티베리아스에 도착한 건 하루가 지난 다음 날 아침이었다.
‘갈릴리 호수다! 저기 앞에 호수가 보인다!’
물 앞에 환호하는 그들을 검은 장벽이 막아섰다.
흔들거리는 아지랑이 사이로 장벽의 모습이 비쳤다.
그건 장벽이 아니었다.
말을 탄 기사들.
레몽과 보두앵의 기사들이 그들을 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