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150)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150화(150/215)
< 150화 – 혼란 속의 용기 (5) >
“당신이 그 포로들을 구하려는 건 나도 알아요, 보두앵.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테오도라가 말했다.
그녀가 팔짱을 낀 채로 방안을 걸어 다녔다.
“판돈이 너무 크다는 거예요. 설령 계획이 성공한다 해도 이집트에 있는 첩보망 전체가 흔들리겠죠.”
그녀가 덧붙였다.
“예루살렘 왕국뿐만 아니라 콘스탄티노플의 첩자들까지 총동원하겠다니. 이건 누구도 시도해본 적이 없는 일이에요. 어떤 결과가 벌어질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수백이 넘는 기사와 병사들의 목숨값이라 생각하면 비싸진 않죠.”
내가 말했다.
사실 테오도라의 말이 옳았다.
[이집트에 있는 양국 첩자들을 총동원해 포위망에 구멍을 내고, 그 사이 포로들을 구출해낸다!]내가 이런 계획을 들었어도 같은 반응을 보였겠지.
하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라스트 크루세이더즈에서도 자주 했고, 역사에서도 비슷한 일들은 많았지.’
그중 하나가 1627년 프랑스에서 있었던 라로셸 공성전.
당시 국왕군과 싸우던 라로셸의 위그노들은 첩자들의 후방 사보타주로 포위망을 풀었다.
지금도 충분히 가능했다.
어찌 됐든 포로들이 그냥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아무리 살라딘이라도 반란에 참여한 그들을 살려둘 리 없었다.
‘그럼 사실상 내가 죽이는 거나 마찬가지야.’
아사신들에게 이집트에서 반란을 일으키라고 요청한 건 바로 나.
이런 상황까지 예측한 건 아니었지만, 내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평민 기사단원과 병사들이라 해도 이곳 왕국에 가족이 있어요.”
내가 말했다.
“그들이 모두 처형당한다면 민심에도 영향이 있겠죠.”
“…”
“우리 쪽 첩자들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어요. 하지만 동방 로마의 지원을 받는다면 충분히 가능하겠죠.”
그렇게 말한 난 테오도라를 바라봤다.
그녀는 고민하고 있었다.
이곳 레반트와 마찬가지로 이집트도 한때 로마 제국의 땅.
이슬람이 대다수가 된 지금도 그리스도 신자들의 숫자는 적지 않았다.
‘아무리 콥트 기독교라고 해도 동방 로마의 영향력이 있으니.’
테오도라가 천천히 입을 뗐다.
“전 이미 콘스탄티노플을 나온 몸이에요. 아무리 남은 힘이 있다 해도 이런 명령까지 내릴 정도는 아니죠.”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콘스탄티노플을 떠날 때 바실리우스(황제)께서 제게 하신 말씀이 있어요.”
“…”
“당신이 콘스탄티노플에서 제국을 위해 싸웠던 것처럼, 왕국에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주라고 하셨죠.”
“그 말은…”
“한 번 계획을 세워보죠. 문제는 시간이에요.”
테오도라가 탁자 위의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살라딘은 케락의 포위를 풀고 카이로로 진격하고 있어요. 그 대군이 도착하면 모든 건 끝이에요.”
“발리앙 경이라면 살라딘의 발목을 잡을 수 있겠죠. 이미 기사들이 아스칼론으로 떠났어요.”
내가 말했다. 나도 나름 준비해 둔 수가 있었다.
“거기에서 병력을 추가로 모집해…”
“살라딘의 진격을 막으려는 거군요. 이미 발리앙 경을 보냈다니. 제가 당신 말에 동의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나요?”
테오도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난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지도를 가리키며 내가 말했다.
“이미 카이로는 아사신들 때문에 혼란에 빠져 있어요. 거기에 기름만 살짝 더 부어주면 충분하겠죠.”
“그럼 아사신들은 어떻게 할 건가요? 그들이 카이로의 금고를 뜯어갔다면서요.”
“아사신들은…”
난 지도를 바라봤다. 놈들은 카이로에 있던 금은보화를 빼돌리고 있어.
흑인과 프랑크 포로들까지 끌어들여 놓고선 내게 일언반구도 없었지.
“일단 그들에게도 감시망을 붙여놔야겠죠. 수로를 이용해 카이로를 빠져나오진 않았을 거예요. 그건 중간에 붙잡힐 위험이 크죠.”
내가 말했다. 여러 캐러밴 상단으로 위장해 보물을 나르고 있을 게 분명했다.
“신호탑을 이용하면 대략적인 위치를 알아낼 수 있어요. 놈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내가 말했다.
“그다음에 생각하도록 하죠.”
“그럼 당장 시작해야겠네요. 아무리 넉넉하게 잡아도 일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어요.”
테오도라가 문 쪽으로 향하며 말했다.
그녀가 뒤돌아서며 덧붙였다.
“제국이 아무 대가 없이 도움을 내어주진 않을 거예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죠.”
“제국에 줄 선물은 이미 차고 넘치는데, 테오도라 당신이 원하는 대가는 뭔지 잘 모르겠군요.”
“그게 어떤 건지는 당신 상상에 맡길게요, 보두앵.”
테오도라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
기 백작이 하틴에서 패배한 후 5일째 되는 날.
쾌속선 한 척이 어둠에 찬 파도를 가르며 아크레를 떠났다.
베네치아 깃발을 단 쾌속선은 다음 날 아침 이집트 다미에타 항에 도착했다.
뇌물을 건네받은 세관원은 제대로 된 검사 없이 정박 승인을 내렸다.
배에서 내린 선장과 수십의 사내들이 다미에타 시장으로 향했다.
그들은 한 주점에서 배가 튀어나온 술주정뱅이를 만났다.
선장이 그의 옆에 앉으며 속삭였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힘이자 방패이시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수고 많으십니다, 형제여.”
“자네가 직접 오다니,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 건가?”
“보시면 알 겁니다.”
선장이 고개를 숙이며 주정뱅이에게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건넸다.
글을 읽던 사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리스의 불까지 가지고 왔다고? 전쟁이라도 일으키려는 건가?”
“포위 중인 군대의 시선을 끌려면 그 정도는 해야겠죠. 그리고 그 정도에 놀라시기엔 이릅니다.”
선장이 손가락을 뻗어 파피루스의 끝쪽을 가리켰다.
사내의 얼굴이 딱딱히 굳었다.
“이건 말이 안 나오는군. 상부는 도대체 우릴 어떻게 생각하는 건가? 이런 건 그냥 명령만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야. 최소 몇 주 동안 계획을 세우고 인력을 구한 다음…”
“일을 잘하면 그만큼 고생하는 법이죠. 그동안 성공했으니 이번에도 성공하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주님께선 항상 우리를 시험하시는군.”
주정뱅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네, 일단 자네들이 카이로에 갈 수 있게 말들을 준비해주지. 그곳에서 다른 형제들과 합류할 수 있을 걸세.”
다음 날 아침, 수십 명으로 이루어진 상단이 다미에타를 떠나 카이로로 향했다.
그중에는 전날 술집에서 만났던 선장과 주정뱅이도 있었다.
***
“곧 있으면 식량이 바닥날 겁니다, 대장. 이제 슬슬 항복을 고려해보는 게…”
“그리고 다시 저놈들 잡부 노릇을 하자는 거냐?”
튀르팽이 물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성벽을 바라봤다.
반쯤 지어진 성벽 위엔 프랑크인들뿐이었다.
그들을 풀어준 흑인들은 대부분 죽거나 도망친 지 오래.
지금 성채를 지키는 건 사실상 그들뿐이었다.
“더 이상 싸워봤자 개죽음을 당할 뿐입니다. 살아만 있으면 언젠가 기회가 오지 않겠습니까?”
튀르팽의 부하가 말했다.
“분명 머지않아 포로 교환이 이루어질 겁니다.”
“교환 협상이 있었다면 우린 진작 풀려났을 거다. 그리고 설령 교환이 이루어진다 해도 우리가 왕국에 설 자리는 없겠지.”
튀르팽이 눈을 감으며 말했다.
4년.
이곳에 끌려온 지도 벌써 4년이 넘었다. 그는 형제들을 배신했다.
그들과 함께 전장에서 죽는 대신, 구차하게 살아남는 걸 택한 것이다.
‘우린 마지막 깃발이 쓰러지는 순간까지 싸운다!’
그것은 모든 기사단원의 암묵적인 규율이자 전통이었다.
하지만 튀르팽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와 다른 포로들은 지난 몇 년간 이곳 카이로 성채 건설에 투입됐다.
채찍과 노골적인 모욕.
오직 몸값을 낼 수 있는 자들만이 풀려났다.
튀르팽과 같은 평민 출신 기사단원이나 병사들을 위해 돈을 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중노동과 질병에 지친 동료들이 쓰러져갈 때도 그는 묵묵히 버텼다.
조금만 버티면 포로 교환이 이루어지고 그가 명예를 회복할 기회도 올 터였다.
‘…’
하지만 그 날은 오지 않았다.
그들을 풀어준 건 프랑크인들이 아닌 반란을 일으킨 누비아 흑인들이었다.
‘반란이 성공하면 그대들을 모두 풀어주겠네! 내 목숨을 걸고 약속함세!’
흑인 대장의 말을 떠올리며 튀르팽은 코웃음을 쳤다.
그들은 이미 모두 도망쳤다.
“운 좋게 왕국으로 돌아간다 한들 우릴 겁쟁이 취급하며 배신자로 여기겠지.”
그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수백의 기사와 병사들 모두 그를 바라봤다.
“차라리 여기서 사라센 놈들을 하나라도 더 죽이고 순교하는 게 낫지 않겠나?”
“대장의 뜻이 그렇다면…”
녹슨 창과 검들이 햇빛에 비쳐 반짝거렸다.
“저희도 따르겠습니다.”
“여태까지 저놈들한테 얼마나 채찍질을 당했습니까?! 이제 우리도 되돌려 줄 차롑니다!”
“저 겁쟁이 놈들한테 본때를 보여주자고!”
“어차피 다시 붙잡혀봤자 돌이나 나르면 되는 거 아닌가?”
성벽이 웃음과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튀르팽도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 갈 때는 화려하게 가자고.”
그때 성채 아래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흥분한 병사들의 고함.
“무슨 일이냐?!”
튀르팽은 성벽 위로 달려갔다.
성벽에선 카이로의 전경이 한눈에 보였다.
“카이로 시내에 뭔가 일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병력 일부가 빠져나가는군요.”
“이제 와서 포위 병력을 줄인다고?”
튀르팽이 중얼거렸다.
앞뒤가 맞지 않았다. 이집트 군대는 지난 며칠간 공격을 계속해왔다.
매번 엄청난 피해에도 그들은 기세를 줄이지 않았다.
“아사신들이 다시 암살을 시작한 건가?”
“대장! 성문 앞에 누군가 와 있습니다!”
“적이냐?!”
“아닙니다, 저희를 구하러 왔다는군요. 자기가…”
성벽 위에 선 병사가 머뭇거리는 어조로 말했다.
“자기가 예루살렘에서 왔다고 합니다.”
***
“이벨린의 발리앙이 이끄는 기병대라고 합니다. 보병은 없다는군요.”
타키 앗딘이 말했다. 그는 입을 가린 천 조각을 치우며 숙부를 바라봤다.
“아스칼론에 있던 기사들도 합류한 것 같습니다.”
“아스칼론이라면 기가 다스리는 땅이 아니더냐?”
살라딘이 말했다. 말 위에 올라탄 그는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의 사막.
카이로에 도착하려면 아직 며칠이 더 남아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프랑크 기병대가 후방에서 그들을 덮쳤다.
“그렇다면 역시 기 그 녀석이 내전에서 승리한 게…”
“그렇다면 발리앙이 직접 부대를 이끌고 내려오지 않았을 거다.”
살라딘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자는 보두앵의 편이지. 기가 그에게 부대를 맡겼을 리 없어.”
“그럼 보두앵이 이겼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아마 그랬겠지. 내가 예상했던 그대로야.”
살라딘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끝날 줄이야.”
“하지만 보두앵이 기를 상대로 이겼다면 도대체 왜…”
“지금 우리를 막으려 들까? 그래, 그걸 알아내야 한다.”
“당장 기세를 몰아 이집트를 정복하려는 생각일 수 있습니다.”
타키 앗딘이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저희 발목을 붙잡아 놓은 뒤 이집트 전체를 집어삼키려는 겁니다.”
“아니, 지금 반란이 일어난 건 카이로뿐이다. 지금 예루살렘의 군대로는 이집트 전체를 정복할 수 없어. 그 누구보다 보두앵 본인이 잘 알 거다.”
살라딘이 말했다.
“그리고 유럽에서 놈들의 지원군이 오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지. 설사 이집트를 침공한다 해도 이렇게 우릴 공격해오진 않을 거다.”
“그렇다는 건…”
침묵이 흘렀다. 타키 앗딘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숙부를 바라봤다.
“이집트를 정복하려는 게 아니라면 놈들이 원하는 건 하나뿐이다.”
살라딘이 입을 열었다.
“내가 카이로에 도착하는 걸 어떻게든 늦추려는 거야. 그러니 소수의 기병으로 시선을 끄는 거다.”
그가 조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놈들 기병대를 상대하는 건 너에게 맡기겠다, 타키 앗딘. 기병 일천을 떼어줄 테니 놈들이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하게 막거라.”
그가 덧붙였다.
“너무 진심으로 싸울 필요는 없다. 놈들은 아마 정면승부를 피하면서 시간을 끌려 할 게야.”
“그렇다면 숙부께선…”
“난 이대로 카이로로 가마.”
살라딘이 고개를 돌려 서쪽을 바라봤다.
“내가 도착하는 순간 반란은 끝이 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