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151)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151화(151/215)
< 151화 – 예루살렘의 왕 (1) >
이집트, 카이로
“불길이 도대체 어디까지 퍼졌다는 거냐?!”
알 아딜이 고삐를 잡아당기며 외쳤다.
그는 카이로를 바라봤다.
마무디야와 주웨일라 구역, 그리고 파라즈와 카푸르 정원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어젯밤 시작된 불길은 해가 뜬 이후에도 이어졌다.
부관이 얼굴의 검은 때를 닦으며 말했다.
“규모를 봤을 때 우연히 벌어진 화재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건 장님이라도 알 수 있을 거다.”
알 아딜이 말했다.
“분명 아사신 놈들이 벌인 짓이야. 놈들이 창고를 습격한 후에 불을 붙인 게지. 거기에 성채의 포위망까지 뚫렸으니.”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습격당한 창고가 총 몇 곳이더냐?”
“아직 불이 잡히지 않아 정확한 파악은 어렵습니다만, 최소 다섯 군데가 넘습니다. 관리자들 모두 암살당했거나 매수 당해서···.”
“이런 젠장!”
알 아딜이 이마를 찌푸리며 손을 휘둘렀다. 깜짝 놀란 그의 말이 앞발을 들었다.
“제대로 굴러가는 게 하나 없군. 하나도 없어.”
그가 중얼거렸다.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되나 했더니 다시 이 난리라니.”
갑자기 카이로를 뒤덮은 화재에 그는 요새를 포위 중이던 병력을 일부 돌려야 했다.
요새에 있던 프랑크 포로와 흑인들은 야음을 타 도주.
그들을 찾기 위한 수색 작업도 화재 진압과 함께 진행 중이었다.
“수색은 어떻게 됐나? 설마 수백이 넘는 프랑크인들을 못 찾았다는 건 아니겠지?”
“지금도 추적대가 카이로를 샅샅이 뒤지고 있습니다만, 화재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장군 중 한 명이 피곤에 찌든 표정으로 말했다.
“어차피 놈들은 사막을 지나지 못할 겁니다. 성채에서 알아서 나와줬으니 오히려 더 잘된 일이지요. 놈들이 이집트에서 도망칠 곳은 없습니다.”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했나?!”
알 아딜이 중얼거렸다. 그가 손가락으로 카이로를 가리켰다.
“자네들 눈엔 저게 잘된 일처럼 보이나?! 술탄께 뭐라 보고드려야 할지 모르겠군.”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반란을 일으킨 놈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데다 카이로에 있던 금은보화들까지 사라졌으니. 술탄께선 분명 이 일을 가볍게 넘기시지 않을 걸세. 나뿐만 아니라 자네들도 문책을 받을 게야.”
“···.”
침묵이 흘렀다. 장교들 모두 고개를 푹 숙인 채 서로를 바라봤다.
그때 알 아딜이 소리쳤다.
“다미에타!”
“예?”
“놈들은 나일강을 따라 올라간 거다! 요새에서 빠져나와 곧장 나일강의 배에 올라탄 거야!”
“하지만 이런 난장판 속에서 어떻게 배편을···.”
“그야 화재를 일으킨 놈들이 미리 준비해줬겠지!”
알 아딜이 붉어진 얼굴로 팔을 흔들었다.
“지금 당장 다미에타로 신호탑 서신을 보내라! 놈들이 절대 도망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다, 당장 항구를 봉쇄하라고 전하겠습니다!”
부관이 고삐를 흔들며 말했다.
알 아딜이 그를 불러세웠다.
“술탄께서도 지금쯤이면 엘 아리시를 지나셨을 거다! 그쪽에도 서신을 보내라!”
그가 외쳤다.
“술탄께서 다미에타로 진격하신다면 하루 이틀 안엔 충분히 도착하실 거다!”
* * *
다미에타 해역
동방 로마―트리폴리 연합함대
“저번에 이곳에 왔을 때는 위그 경과 함께였지. 그때도···.”
루아크가 가니에르의 곁에 서며 말했다. 그가 갑판 한쪽에 떨어져 있던 도끼를 들었다.
“이렇게 동방 로마와 트리폴리 전함들로 이루어진 연합 함대였소.”
“하지만 그때는 단순한 무력시위였죠. 지금은 항구 안쪽까지 진입해야 합니다.”
가니에르가 투구를 쓰며 말했다.
바닷바람이 뱃전을 스치고 올라와 두 사람을 휘감았다.
시원하면서도 끈적끈적한 바다 특유의 향기.
오십 척이 넘는 배들이 진형을 유지한 채 물살을 갈랐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이집트 북부의 항구 도시, 다미에타.
함대와 마주친 이집트 함선과 상선들이 허겁지겁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건 너무 위험이 큰 작전입니다. 전투를 치를 병력도 턱없이 부족하고요.”
가니에르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전함은 오십 척이 넘었지만 인원은 그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편제를 절반도 채우지 못한 배들이 대부분. 거기에 장기간 작전을 위해 필요한 보급도 없었다.
있는 거라곤 급하게 항구에서 징병한 병사들뿐.
모든 게 급조된 함대를 이끌고 전투에서 승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급하게 출항하느라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적들도 그만큼 우릴 보고 놀랄 거요. 보통 이 정도 함대가 출항 준비에 들어가면 어떻게든 정보가 새어나가기 마련인 법.”
루아크가 말했다.
“하지만 우린 적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대함대를 끌고 왔소.”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만약 내가 사라센이었어도 바지에 똥을 지릴 만큼 놀랐겠지. 그래서 다 저렇게 도망치는 거 아니겠소?”
그의 깃털 달린 날개가 바닷바람에 흔들렸다.
“놈들이 눈치채기 전에 승객들만 태우고 도망치면 끝이오. 이집트에 있는 병사들은 대부분 카이로의 반란 진압에 투입됐을 터.”
루아크가 계속해서 말했다.
“이곳 다미에타에는 수비군도 별로 없겠지.”
“···.”
“만약 보두앵 공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요청이었다면 몇 개월은 걸렸을 텐데.”
루아크의 시선이 로마의 함선들을 향했다.
특유의 황금빛 투구를 쓴 함장들이 갑판을 뛰어다니며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콘스탄티노플에선 서류 한 장이 통과하는 데도 어마어마한 시간이 넘게 걸리지. 키프로스 제독이 공자의 출항 요청을 곧장 받아들인 건 우연이 아니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마 사전에 콘스탄티노플에서 자율권을 받았을 거요. 바실리우스(황제) 폐하께서 제독에게 그 정도 권한을 주는 건 흔치 않은 일이지.”
루아크가 덧붙였다.
“특히 함대 제독이 반란을 일으킨 게 고작 몇 년 전이라는 걸 생각하면 말이오.”
“하지만 그리 반기는 눈치는 아니었죠. 그나마 테오도라 님께서···.”
가니에르가 말했다.
콘스탄티노플이 보두앵의 편의를 봐준다는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바실리우스(황제)도 공자를 아끼시지. 하지만 콘스탄티노플은 민심이 모든 걸 주도하는 도시요.”
루아크가 말했다.
“그만큼 콘스탄티노플에서 공자의 인기가 높다는 걸 뜻하지 않겠소.”
“이번 일이 실패한다면 그 분위기가 바뀔 수 있겠죠.”
가니에르가 생각에 빠진 표정으로 말했다.
“승자를 바라보며 찬양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위대한 승자라도 한 번 패배하는 순간···.”
“사람들은 등을 돌리지. 전차 경주에서도 흔한 일이오.”
“만약 포로들이 제때 도착하지 못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모든 건 다 주님의 뜻인 법. 그때는 뱃머리를 돌리는 수밖에 없을 거요. 귀중한 함대를 여기서 날릴 순 없지.”
루아크가 말했다.
“하지만 일단 눈앞에 적에 집중합시다. 걱정하는 건 나중에 해도 늦지 않소.”
그 사이 함대는 항구 가까이 접근했다.
항에 남아있던 이집트 배들이 서둘러 출항하며 그들을 피해 달아났다.
배들의 진입을 막기 위한 쇠사슬이 서서히 올라왔다.
루아크가 도끼를 들며 외쳤다.
“도망치는 놈들을 쫓지 마라! 가까이 오지만 못하게 막아! 우리 목표는 부두다! 부두를 확보해라!”
성묘수호단원들이 우르르 갑판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웃으며 서로 도끼와 갑옷, 무장을 점검했다.
“명심해라! 다미에타를 점령하는 게 아니다! 아군 포로들이 올 때까지만 부두를 확보하면 된다!”
루아크가 가니에르를 바라봤다.
“급하게 떠나느라 정말 아무 준비도 못 했다 생각하시오?”
그가 손을 들자 성묘단원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상륙을 위한 작은 나뭇배가 갑판 아래로 내려졌다.
“와아아아!”
함대 곳곳에서 화답하듯 함성이 울렸다. 루아크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우리 북구인들은 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소.”
* * *
예루살렘 정궁
“그래서 정말 지진이 일어났다는 거냐?”
“링컨에서 건설 중이던 성당이 폭삭 무너져내렸습니다. 그 정도면 주님의 의지라 할 수 있겠죠.”
내가 웃으며 말했다. 보두앵 4세는 침대에 몸을 누운 채 웃음을 터뜨렸다.
하틴에서 돌아온 후, 난 그의 방에 자주 들렀다.
이집트는 이곳에서 한참 떨어진 곳. 일단 일이 시작된 이상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난 그에게 이집트 문제를 묻고 해결책을 의논했다.
‘그래도 잡담을 나누니 마음은 편하네.’
보두앵 4세는 왕이기 전에 평범한 사내였다.
아직 삼십도 채 되지 않은 청년.
그와 대화를 하면 할수록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안타까움과 존경심.
단어들로는 쉽게 표현이 안 되는 감정이었다.
“헨리 2세 표정도 참 볼만 했겠구나. 백성과 유럽인들이 전부 보는 앞에서 그런 대망신을 당했으니.”
그가 말했다.
“그걸 만회하기 위한 십자군 원정이라. 아마 그게 헨리 2세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겠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답했다.
“하지만 저희로서는 잘된 일이죠. 헨리 2세가 직접 군대를 끌고 오면 프랑스 왕도 의식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내가 그 두 사람을 직접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직접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난 그게 거짓말이란 걸 알았다.
아무리 3차 십자군이 빨리 온다 해도 보두앵 4세가 그때까지 버티진 못할 터.
그는 3차 십자군 원정을 볼 수 없었다.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보두앵 4세가 기침을 내뱉었다.
“난 지금까지 사라센들과 싸우며 검을 준비해왔다. 하지만 이 검을 휘두르는 건 네가 될 거야. 보두앵.”
“···.”
난 그를 바라봤다. 보두앵 4세가 아니었다면 왕국은 진작 무너졌겠지.
내가 3차 십자군을 조직하고, 희망이 아직 남아있는 것도 그 덕분이었다.
“감사합니다, 폐하.”
“아니, 감사해야 할 건 나다. 보두앵 네 덕분에 나도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있게 됐어.”
그가 내 손을 붙잡았다.
“난 최선을 다했다. 주님께서도 그건 아시겠지. 너도 네 최선을 다하면 된다.”
“물론입니다.”
그때 누군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잔뜩 흥분한 감정.
에이그였다.
난 고개를 돌려 녀석을 바라봤다. 이렇게 방에 불쑥 들어온 건 그만큼 중요한 소식이란 뜻이었다.
“무슨 일이야?”
“발리앙 경께서 보내신 신호 서신입니다.
에이그가 말했다.
“살라딘이 멈추지 않고 이집트로 계속 진격 중이라 합니다. 아무래도 별동대를 꾸려 발리앙 경을 상대한 것 같습니다.”
에이그가 중얼거렸다.
“포로들이 다미에타로 이동 중이라는 걸 살라딘이 알면···.”
“아마 자기도 곧장 다미에타로 향하겠지.”
내가 말했다. 그럼 상황이 난장판으로 변한다.
‘타이밍이 잘 맞는다면 문제없겠지만···.’
지금쯤이면 동로마―트리폴리 연합함대가 다미에타에 도착했을 터.
포로들이 탈출에 성공했다면 내일이나 내일모레 다미에타에 도착할 게 분명했다.
이집트의 병력이 카이로에 쏠려있는 지금, 다미에타 항구를 잠시 점령하는 건 문제 없었다.
‘하지만 살라딘이 간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살라딘이 대군을 이끌고 다미에타에 도착하면 모든 게 어긋났다.
그래서 발리앙을 보냈던 거였는데.
“살라딘은 쉽게 넘어올 상대가 아니다.”
보두앵 4세가 말했다. 그가 콜록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다른 미끼를 던지는 수밖에 없겠지.”
“다른 미끼라면···.”
“이미 정해져 있지 않느냐? 작은 미끼가 통하지 않으면 더 큰 미끼를 던져야 한다.”
보두앵 4세가 말했다.
“이젠 전투가 아니라 협상을 해야 해. 살라딘도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어떤 제안이든 받아들일 거다.”
“···.”
협상. 보두앵 4세의 말대로 하려면 나도 살라딘에게 뭔가 줘야 했다.
더 큰 미끼.
지금 상황에 그건 하나밖에 없지.
“아사신들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래, 아사신들이 카이로의 금은보화를 빼돌렸다고 했지. 너라면 놈들이 움직이는 경로도 알아냈을 것 같다만.”
“지금쯤 에일라트를 통과해 동부로 가고 있을 겁니다.”
내가 말했다. 캐러밴들의 위치는 실시간으로 파악 중이었다.
“놈들을 살라딘에게 던져주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래, 하지만 그전에 묻고 싶구나.”
보두앵 4세가 기침을 내뱉었다.
난 그가 말을 편히 할 수 있도록 몸을 들어줬다.
“포로들. 아니면 카이로의 금은보화. 너한테 있어 둘 중에 더 중요한 건 뭐냐? 선택은 네 몫이다, 보두앵.”
“···.”
머리가 팽팽히 돌아갔다.
내가 내리고 싶은 선택. 그리고 예루살렘 왕국에 있어 최선의 선택.
“살라딘의 돈을 뺏는 건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보다 지금 중요한 건···.
“전 백성들에게 예루살렘 왕국, 그리고 제 의지를 보여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