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158)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158화(158/215)
< 158화 – 성부와 성자와 성령 (3) >
보두앵 4세의 죽음과 그의 조카인 보두앵 5세의 즉위.
왕좌를 둘러싼 갑작스러운 혼란에도 예루살렘 왕국의 사람들은 일상을 이어나갔다.
“자네 그 소식 들었나? 곧 있으면 예루살렘에서 공의회가 열린다더군.”
“내가 듣기론 콘스탄티노플에서도 사절단이 온다고 하던데. 곧 있으면 사람들로 바글바글하겠군.”
로마, 콘스탄티노플, 독일뿐만 아니라 저 멀리 아비시니아에서도 사절단들이 온다!
이 소식은 금세 왕국 전체로 퍼져나갔다.
수십 척의 배들이 항구를 오가고, 상인들은 사절단에 필요한 물자들을 준비했다.
유럽에서 온 순례자들은 수백 년간 그랬듯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을 지나며 기도를 올렸다.
“아크레랑 티레, 트리폴리에서도 이거랑 같은 그림을 봤네!”
“그럼 한 사람이 이 그림들을 다 그렸다는 건가?”
사람들은 교회 문 앞에 붙은 보두앵 4세의 그림을 바라봤다. 똑같이 그려진 수십 수백 장의 그림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그들은 나병왕을 바라보며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그를 추모했다.
하지만 평화로운 분위기만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공의회를 앞두고 곳곳에서 잡음이 터져 나왔다.
술집에선 주먹질이 오가고, 동로마 이주민들이 세운 개척촌에선 한 사내가 불을 내려다 붙잡히기도 했다.
로마 제국 시절 때부터 레반트에 살던 정교회 신자들과 유럽에서 건너온 로마 가톨릭 신자들.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싸움에 다시 불이 붙었다.
“원래부터 예루살렘에 살던 건 우리 로마인들이야! 라틴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정복하면서 정교회 신자들을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 아나?”
“애초에 로마 교회는 필리오케 조목을 추가한 게 문제였네! 성령은 오직 성부에게서만 발현하는 법인 것을···.”
“너 이 자식 보고밀파 신도지?! 이 마니교를 따르는 이단들 같으니라고!”
“나, 나는 그리스도 신자요!”
“그리스도 신자 같은 소리하고 있네!”
교리와 역사를 둘러싼 소란은 공의회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점차 커져만 갔다.
무엇이 신의 뜻인가?
모두가 그 질문에 다른 답을 가지고 있었다.
* * *
예루살렘 정궁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는 문제이긴 했어요, 보두앵.”
테오도라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번에 콘스탄티노플에서 이주해온 이주민들도 적지 않죠. 그들에게 로마 가톨릭이 주류인 사회는 낯설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고 손 놓고 구경만 할 순 없죠.”
내가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나와 테오도라는 함께 정원을 산책 중이었다.
정원 중앙의 연못이 눈에 들어왔다.
황금빛, 은백색, 황갈색 등등.
연못 속 잉어들은 다양한 색을 지니고 있었다.
‘잉어들도 저렇게 잘 지내는데 같은 기독교끼리 죽어라 싸우고 있으니.’
로마 교회와 콘스탄티노플 교회는 1054년 공식적인 대분열 이후 싸움을 계속해 왔다.
공의회는 그 오래된 싸움에 불을 붙였다.
“분명 뒤에서 갈등을 조장하는 자들이 있을 거예요.”
테오도라가 멈춰 서며 말했다.
“로마 교회와 콘스탄티노플 모두 거리에 사람을 풀어놨겠죠.”
“사람을 풀었다니 그게··· 아, 그 말이군요.”
난 테오도라의 말뜻을 깨달았다. 이번 공의회는 누가 주도권을 가져가느냐를 둔 싸움이었다.
로마와 콘스탄티노플 모두 양보하려 하진 않겠지. 양측 다 사람을 풀어 여론을 선동하는 게 분명했다.
“오히려 아비시니아(에티오피아) 쪽과는 교류가 적어서 다행이군요. 그쪽까지 가세했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정말 난장판이 벌어졌겠군.
난 머리를 긁적였다.
각 교회에서 온 사절단을 상대하는 건 문제 없었다. 하지만 종교 문제로 싸우는 백성들을 진정시키는 건 쉽지 않았다.
특히 (이탈리아)로마와 (동)로마가 뒤에서 손쓰고 있을 때는 더더욱.
‘내가 이집트에서 그랬던 것처럼 살라딘이 이 상황을 이용하려 할 수 있겠지.’
수니파와 시아파.
라틴 교회와 콘스탄티노플 교회.
만약 신자들 사이에서 학살극이라도 벌어진다면···.
그 후로는 어떻게 수습할 수 없었다.
그때 테오도라가 말했다.
“제가 다른 귀족들과 함께 개척촌들을 돌아다닐게요. 아무리 그래도 제가 있는 앞에서 싸움을 벌일 순 없겠죠.”
“그럼 왕실이 그리스, 아니 동로마 이주민들만 편애한다고 받아들일 수 있어요.”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테오도라도 동로마 황실 출신.
만약 갈등이 심해진다면 그녀에게도 불똥이 튈 수 있었다.
“그러면 당신이 직접 왕령을 발표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싸움을 벌이는 자들은 어느 교회에 속했든 상관없이 처벌하겠다는···.”
테오도라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멈췄다.
“그래도 싸움이 멈출 리 없겠죠. 말 한마디로 해결할 수 있었다면 애초에 교회가 분리되지도 않았을 거예요.”
“···.”
우린 연못 앞에 멈춰 섰다.
빵조각을 집어던지자 잉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난 그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테오도라나 내가 직접 왕국을 돌아다닐 순 없겠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뿐더러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나마 가능한 방법은 테오도라 말대로 왕령을 발표해서 갈등을 막는 건데.’
두 교회 간의 갈등은 그런 반창고로 막기엔 너무 컸다. 난 생각을 계속했다.
이런 일을 겪은 통치자는 나만 있는 게 아니야.
아직 이 시대엔 국가와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뚜렷하게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각자가 사는 지역, 혈통, 믿는 종교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았다.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려면 필요한 게 뭘까?
‘중세 시대 괴벨스라도 되어야 하는 건가.’
그때 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실소가 나올 정도로 너무나 당연한 아이디어.
“외부의 적을 앞에 두고도 계속 싸우지는 않겠죠.”
“외부의 적이라면 살라딘을 말하는 건가요?”
테오도라가 물었다.
“하지만 그자는 영리해요. 공의회가 열리는 기간에 우릴 공격하면 오히려 자기 손해라는 걸 알겠죠.”
“당신 말이 맞아요. 하지만 살라딘이 공격해줄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죠.”
난 턱을 만지작거렸다. 전면적인 전쟁은 아니더라도 결정적인 한 방이 필요했다.
모두의 시선을 돌릴 만큼 결정적이고 강력한 한 방.
최소한의 병력으로 최대한의 이익을 얻을 곳이 어디지?
“메카.”
테오도라를 바라보며 내가 말했다.
메카.
무슬림들에게 있어 예루살렘보다 중요한 성지이자 카바 신전이 있는 곳.
“메카를 쳐야겠어요.”
내 말을 들은 테오도라가 이마를 찌푸렸다.
“하지만 메카는 무슬림들의 성지 아닌가요? 그곳은 그들에게 있어 예루살렘이나 마찬가지예요. 만약 무슬림들이 들고 일어선다면···.”
“그건 메카를 점령했을 때 얘기겠죠. 그럴 생각은 없어요. 적어도 아직은.”
내가 웃으며 말했다.
[적의 성지를 향한 공격!]이보다 더 적절한 프로파간다 소재는 없겠지.
“그럼 사실상 자살 공격이나 마찬가지군요. 누구한테 맡기실 건가요?”
테오도라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설마 당신이 직접 가려는 건 아니겠죠.”
“나도 그러고 싶지만, 여기서 할 일이 너무 많아요. 공의회를 버리고 갈 순 없죠.”
연못을 지나친 우린 다시 궁 안으로 들어갔다.
딱 적절한 인물이 한 명 있었다.
이런 자살 특공에 쓸만한 인물.
난 고개를 돌려 테오도라를 바라봤다.
“미친 계획을 해치우려면 미친 사람이 필요하겠죠.”
케락의 영주, 르노.
십자군의 고삐 풀린 망아지.
잘하면 화살 하나로 토끼 두 마리를 잡을 수 있겠군.
* * *
다음 날 아침
예루살렘 정궁
“이런 우라질!”
르노가 숨을 씨익씨익 내뱉으며 잔을 내려놨다.
“이걸 지금 나 마시라고 가져온 거냐?! 앨릭서를 가져오라 했을 텐데?”
“죄, 죄송합니다. 영주님.”
르노는 허겁지겁 달려가는 시종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그는 방 주변을 이리저리 살폈다.
보두앵은 아직 나타날 기미가 없었다. 예루살렘의 새로운 왕.
르노는 코웃음을 내뱉으려다 멈췄다.
보두앵에겐 신비한 힘이 있었다.
모든 걸 다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
거기에 에일라트, 유럽에 이어 하틴 전투까지. 보두앵의 활약을 모르는 이는 예루살렘에 없었다.
르노는 숨을 죽인 채 욕설을 중얼거렸다. 기와 그 동료들이 몰락하면서 르노의 영향력도 그 어느 때보다 낮아졌다.
‘거기에 보두앵은 내 도움 없이 왕좌에 올랐지.’
예루살렘의 새 왕은 그에게 그 어떤 빚도 없었다. 그가 시종이 가져온 앨릭서를 들이켜려던 그때, 문이 활짝 열렸다.
르노는 방에 들어오는 사내를 바라봤다. 새하얀 망토에 반짝거리는 보석이 박힌 왕관.
보두앵이었다.
“르노 영주,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군.”
“서신을 보내셨을 때 이미 예루살렘에 오고 있었습니다.”
르노는 배가 뒤틀리는 걸 애써 참았다. 그는 일어서서 최대한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살라딘의 위협만 없었어도 폐하의 대관식에 참가할 수 있었을 겁니다.”
“영주가 자신의 땅을 지키는 걸 뭐라 할 수 없겠지. 안 그런가? 나도 이해하네.”
보두앵이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상석에 앉았다. 모든 걸 다 안다는 표정.
르노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의장에 앉았다. 그와 왕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붙으며 침묵이 이어졌다.
“전 선왕이신 보두앵 4세 폐하와 언제나 함께 싸웠습니다. 몽기사르에선 살라딘의 대군을 물리치기도 했지요.”
르노가 말했다.
“폐하께서 허락만 해주신다면 이젠 보두앵 5세 폐하를 위해 싸우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그걸 허락하지 않을 이유는 없겠지. 하지만 그전에 몇 가지 확인해야 할 것들이 있네.”
그의 말에 르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틴의 뿔에서 벌어진 전투.”
보두앵이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때 그대의 기사들은 기 백작의 편에서 함께 싸웠지. 그건 어떻게 설명할 건가?”
“그놈들은 저와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제 허락도 없이 케락을 떠난 놈들이죠. 전 결코 기를 돕지 않았습니다.”
르노가 식은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렇군.”
다시 침묵이 흘렀다. 보두앵이 일어서며 말했다.
“그럼 내게 충성 맹세를 하는 것도 문제없겠군. 날 왕으로 인정하기 싫은 게 아니라면 말이야.”
“물론입니다, 폐하.”
의자에서 일어선 르노는 보두앵 앞으로 다가갔다. 잠시 망설인 그는 무릎을 꿇었다.
두 손을 모은 그는 보두앵이 손을 맞잡아 줄 때까지 기다렸다.
“폐하, 저는 국왕 폐하의 충성스러운 봉신이 되겠습니다.”
그 후에 르노는 일어선 뒤 보두앵과 포옹을 나눴다. 그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미소 뒤에 숨겼다.
지금은 폭풍이 지나갈 때까지 몸을 숙이고 기다려야 했다.
케락으로 돌아간다면 예루살렘에 어떤 왕이 있든 그에게 간섭할 수 없었다.
“난 그대가 훌륭한 봉신이 되어주리라 믿네. 선왕께 그리했듯이 말이야.”
보두앵이 그를 바라보며 알쏭달쏭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 계속 고민하고 있었네만. 더 이상 그럴 필요는 없겠군.”
그가 말했다.
“케락의 영주, 르노. 충성스러운 그대에게 맡길 임무가 있네. 그 어느 십자군 영주가 수행했던 것보다 고귀하고 신성한 임무지.”
“임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르노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난 공의회에 앞서 메카를 칠 생각이네. 자네보다 그 임무에 적합한 인물은 없겠지.”
보두앵이 그의 팔을 두드리며 말했다.
“왕국과 레반트 전체가 자네의 이름을 듣게 될 걸세. 아마 사라센들도 자네의 이야기를 듣고 벌벌 떨겠지.”
“저, 저는···.”
르노는 보두앵을 바라보며 할 말을 떠올리려 애썼다. 손이 부르르 떨렸다.
“저에겐 케락이 있습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영주가 어찌···.”
“케락은 걱정할 필요 없네,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왕실이 직접 관리할 테니. 그러니 이 자리에서 맹세하게.”
보두앵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메카를 점령하겠다고 말이야. 사라센을 공격하는 것.”
그가 덧붙였다.
“그게 자네가 가장 원하던 것 아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