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159)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159화(159/215)
< 159화 – 성부와 성자와 성령 (4) >
예루살렘
구호기사단 훈련장
“뭔가 착각하는 것 같군! 네놈들이 유럽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안 궁금하다!”
한 중년 사내가 나무 봉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기사단에 입단하는 순간부터 너희들은 모두 같은 기사단원이다! 죽는 순간까지 함께 싸울 형제란 말이다!”
사내가 훈련생들의 얼굴을 한 명 한 명 노려봤다.
“옆에 평민 출신이 있든, 귀족 출신이 있든 검에 맞으면 죽는 건 똑같다!”
가니에르와 에이그.
두 사람은 훈련장 바깥쪽에서 그 광경을 바라봤다.
“맨 왼쪽이랑 두 번째 녀석은 내일 안으로 관두겠군요.”
“네 번째 놈은 그래도 좀 버틸 것 같구나. 의외로 귀족 출신 중에서도 잘 적응하는 놈들이 있지.”
“가니에르 경도 그중 한 명이고요.”
에이그가 웃으며 말했다. 몸을 일으킨 그는 허리춤의 검을 만지작거렸다.
“그래도 저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 선택해서 왔죠. 전 구호기사단에서 나고 자랐으니···.”
“아니, 너에게도 선택권은 있었다.”
가니에르가 말했다.
“그리고 사라센들과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게 누구나 내릴 수 있는 선택은 아니지.”
“···.”
“너도 알 거다. 보두앵 폐하께서 즉위하신 이후로 널 따르는 단원들이 많이 늘었어.”
“정식 서임도 받지 않은 저를 왜···.”
“넌 항상 폐하의 곁에서 싸웠지. 에일라트, 콘스탄티노플, 이탈리아, 프랑스에 잉글랜드까지.”
가니에르가 씨익 미소 지었다. 그가 한창 훈련 중인 훈련생들을 가리켰다.
“거기에 기사단들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기성세력들이 큰 힘을 잃었어. 새롭고 젊은 단원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지.”
그가 생각에 빠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기사단들에게 있어 이번 통합은 마지막 기회나 마찬가지다. 정치싸움과 돈벌이에서 벗어난 순수한 기사단을 만들 기회. 개혁이 성공해야만 기사단이 살아남을 수 있어.”
“폐하께서 추진하시는 일도 바로 그거죠.”
“그래서 네가 그만큼 큰 기대를 받고 있단 거다.”
가니에르가 말했다.
“폐하께선 널 신뢰하시니 말이야. 왕의 신뢰를 받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
“···.”
“내가 단장님께 건의하마. 곧 너도 정식 기사 서임을 받을 수 있을 거야.”
“그렇군요.”
에이그가 고개를 숙였다. 사슬갑옷이 움찔거리며 쩔그럭―소리를 냈다.
“별로 기뻐하지 않는구나.”
“정식 단원이 되는 걸 왜 안 좋아하겠습니까? 다만···.”
에이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머뭇거리던 그가 가니에르의 눈치를 살피다 다시 입을 열려던 그때···.
“가니에르 경! 여기 계셨군요!”
한 기사단원이 숨을 헐떡이며 다가왔다. 그가 손에 든 종이를 가니에르에게 건넸다.
“이건······ 르노 영주 아닌가?”
“르노가 맞는 것 같군요.”
에이그가 종이를 바라보며 답했다. 검은 잉크로 찍힌 그림은 쉽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선명했다.
배 갑판 위에 서 있는 르노 영주의 모습.
그 아래에 커다란 라틴어 문구가 쓰여 있었다.
‘메카의 정복자.’
가니에르와 에이그 두 사람 다 종이를 멍하니 바라봤다. 기사단원이 거리를 가리키며 외쳤다.
“이거랑 같은 종이 수백 장이 예루살렘 곳곳에 쌓여 있습니다! 소문으로는 다른 도시들에도 뿌린다더군요.”
“르노는 아직 메카 원정을 떠나지도 않았는데 이게 무슨···.”
“애초에 폐하께선 르노를 싫어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에이그가 물었다.
“이렇게 르노의 그림까지 찍어서 뿌릴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요.”
“······르노 영주는 자진해서 그 임무를 맡지 않았어. 케락을 왕실에 맡기고 메카를 정벌하란 명령을 받았으니. 아마 어떻게든 핑계를 대서 도망치려 했겠지.”
“그렇다면···.”
에이그가 손뼉을 쳤다.
“르노가 발을 빼지 못하게 이렇게 그림을 뿌리신 거군요.”
“그래, 폐하께서도 참 철두철미하시지. 이렇게 여론 작업까지 해두시다니.”
가니에르가 종이를 흔들며 웃었다.
“그리고 살라딘도 머지않아 이 ‘그림’에 대해 듣게 될 거다. 르노가 메카를 공격할 거라는 게 알려지면 아무리 살라딘이라 해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웃음을 멈춘 그가 말했다.
“메카는 다미에타랑 달라. 살라딘이 대응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간 엄청난 역풍에 시달릴 거다.”
“그렇다면···.”
에이그가 중얼거렸다.
“르노가 발을 빼지 못하게 하면서 동시에 살라딘에게 알린 게 되는군요.”
“하지만 르노도 폐하께 뭐라 하진 못하겠지. 자신을 예루살렘 왕국의 영웅으로 만들어 줬으니. 참 오묘한 수로군.”
가니에르가 말했다. 그의 시선이 목검을 휘두르는 훈련생들을 향했다.
“이 인쇄기라는 것 말이다.”
그가 고개를 돌려 에이그를 바라봤다.
“어쩌면 검과 창보다 더 강한 무기일지도 모르겠구나.”
* * *
구호기사단 본부
“이렇게 노새처럼 일만 하는 것도 처음이군.”
캉은 밖에서 들려오는 훈련 소리를 들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탁자 위에 올려진 목판을 바라봤다.
목판에는 예루살렘 왕실 깃발이 새겨져 있었다.
“너무 그렇게 불평만 하지 말게.”
제르날이 웃으며 다가왔다. 그가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캉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가 한창 신호탑을 만들 때보다는 덜 바쁘니 말이야. 준비는 다 끝났나?”
“이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그리 복잡한 문양도 아니고요.”
캉이 목판을 들며 답했다. 중앙의 커다란 십자가를 둘러싼 네 개의 작은 십자가.
예루살렘 왕실 깃발은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애초에 왕실 깃발은 이런 싸구려 종이가 아니라 비단 같은 걸로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폐하께선 한 장이라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하셨네. 그러니 값비싼 비단만 쓸 순 없지.”
“그렇게 많이 만들어서 어디에···.”
“내가 듣기론 원하는 백성들에게 나눠준다고 하시더군.”
“백성들에게 나눠준다고요? 왕실 문장이 새겨진 종이를 말입니까?”
캉이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왕실 문장은 그 자체로 왕실을 나타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애초에 문장만 따로 관리하는 문장관들이 있는 것도 그래서였다.
“나도 폐하께서 하시려는 게 정확히 뭔지는 잘 모르겠네.”
제르날이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그가 캉의 팔을 툭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우리 같은 노새는 노새답게 일만 잘하면 되네. 노새가 고민해봤자 무슨 답이 나오겠나?”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군요.”
캉이 땀을 닦으며 말했다. 바로 옆 방에서 인쇄기들을 조이고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왕실 깃발을 원하는 사람에게 나눠주겠다라···.”
* * *
예루살렘 정궁
“폐하께서도 진심이셨나 보군.”
레몽이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가 고개를 들어 발리앙을 바라봤다.
“르노의 원정에 맞춘 그림부터 이번엔 왕실 깃발까지. 폐하께서 노리시는 게 뭐라고 생각하나?”
“폐하께선 왕실 깃발이 통합의 상징이 될 거라고 하셨습니다.”
발리앙이 탁자에 다가오며 말했다. 그가 손을 뻗어 다섯 개의 십자가가 그려진 종이를 들었다.
“르노의 메카 원정을 발표하면서, 왜 왕실 깃발을 찍어내셨겠습니까?”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사람들은 이 왕실 깃발을 집의 문이나 상점에 붙일 겁니다. 자신이 기독교 교회와 공의회, 메카 원정을 지지한다는 걸 보이겠죠.”
“메카 원정에 관심이 쏠리면 그만큼 공의회를 둘러싼 갈등도 줄어들겠군. 거기에 십자가는 로마 가톨릭과 정교회 신자들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상징.”
레몽이 말했다.
“하지만 왕실 깃발이라니. 이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나?”
“···.”
“이 왕실 깃발이 널리 퍼질수록 영주들의 힘은 약해질 걸세. 백성들은 우리 영주가 아닌 왕국 그 자체에 충성을 바치겠지.”
레몽이 덧붙였다.
“장기적으론 왕국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어. 이미 왕실에서 신호탑을 관리하고 있지 않나. 날이 갈수록 더 큰 힘이 왕좌로 넘어갈 걸세.”
“국왕 폐하를 견제해야 한다는 이야기처럼 들리는군요.”
“견제라니, 그럴 리가!”
레몽 백작이 외쳤다. 그가 손을 허공에 흔들었다.
“난 장래에 뭔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진 않을까 걱정한 것뿐일세.”
“보두앵 폐하께선 이미 너무나 많은 공을 세우셨습니다. 이번 공의회 역시 그분의 작품이지요.”
발리앙이 말했다.
“백성들이 그분을 따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레몽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바라봤다.
햇빛이 예루살렘의 건조한 바람을 따라 방안을 가득 채웠다.
“백성들이 믿고 따르는 왕만큼 강력한 존재는 없겠지. 우리가 향하는 곳이 절벽이 아니길 비는 수밖에.”
궁전은 온갖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레몽과 발리앙으로부터 가까운 한 방에선 두 여인이 대화를 나눴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어떤 명령을 들었든 상관없어.”
테오도라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녀는 맞은편에 선 여인을 노려봤다.
평범해 보이는 비단옷이었지만 예리한 눈빛은 비단으로도 숨기기 힘들었다.
아일레.
그녀는 콘스탄티노플의 명령을 따르는 레반트 첩보망의 수장이었다.
“레반트의 로마인들을 선동하는 걸 멈춰. 지금 당장.”
“하지만 테오도라 황녀··· 아니 왕비님. 저희는 그 어떤 선동도···.”
“미리 경고하는데 내 앞에서 거짓말을 늘어놓을 생각은 하지 마. 나도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니깐.”
“알겠습니다.”
아일레가 말했다. 그녀는 테오도라의 눈치를 살폈다.
“콘스탄티노플의 뜻은 확고합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로마 가톨릭이 공의회에서 우위를 점하게 내버려 둘 순 없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아무리 양 교회가 통합한다고 해도 가톨릭 위주라면 콘스탄티노플 시민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사전작업은 필요합니다.”
“그 ‘사전작업’이 사람들을 선동해 싸움을 벌이는 거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테오도라가 일어서며 말했다.
“바실리우스(황제) 폐하께서 걱정하시는 게 뭔지는 나도 잘 알아. 하지만 내 남편은 무작정 로마 가톨릭의 편을 들지 않을 거야.”
그녀가 덧붙였다.
“그건 내가 장담할 수 있어.”
“하지만 로마 교회에선 이미 보두앵 폐하께 ‘신앙의 수호자’라는 호칭까지 내리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는 건···.”
“그럼 콘스탄티노플 교회에서도 비슷한 호칭을 주면 되겠지. 그건 큰 문제가 아니야.”
테오도라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콘스탄티노플에서 선동을 계속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저희를 협박하시는 겁니까?”
“현실을 말해주는 거야.”
테오도라가 웃으며 말했다.
“보두앵은 합리적인 사람이야. 콘스탄티노플이 선을 넘지 않는다면 중립을 지킬 사람이라고.”
그녀가 계속해서 말했다.
“하지만 로마에서 온 이주민들이 계속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이도 나설 수밖에 없어. 그 결과는 콘스탄티노플에도 좋지 않겠지.”
“···.”
아일레는 아무 말 없이 테오도라를 바라봤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콘스탄티노플 교회가 멈추면 서방 교회도 멈춰야 합니다. 싸움을 멈추려면 양측이 함께 검을 내려야겠죠.”
“그 정도 조건은 들어줄 수 있지. 콘스탄티노플에도 이렇게 전해. 보두앵이나 내가 서방 교회를 편애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테오도라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우리 둘 다 이번 공의회에 로마 제국과 예루살렘 왕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걸 알아.”
“왕비님을 믿는 수밖에 없겠군요. 곧 있으면···.”
아일레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콘스탄티노플 세계 총대주교께서 이곳에 도착하실 겁니다.”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께서 직접 오신다고?”
테오도라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만큼 제국에선 이번 공의회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아일레가 말했다.
“이번 공의회는 역사에 영원히 남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