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162)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162화(162/215)
< 162화 – 신성한 도시 (2) >
메카 외곽
“또 시작이군.”
루아크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성묘단원과 르노의 기사들 이 패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지난 이틀 동안 벌써 세 번째 일이었다.
“모두 멈춰라!”
그가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메카를 바로 앞에 두고 이게 무슨 추태냐?!”
“단장님! 이놈들이 메카 외곽으로 빠지는 순례단을 치려 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루아크가 르노의 기사들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순례단은 공격 대상이 아니라는 명령을 들었을 텐데?”
“우리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건 르노 영주님뿐이오.”
“그리고 그 르노 영주와 난 합의를 했지.”
루아크는 기사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대놓고 그를 무시하고 있었다.
“그거 말고 더 할 말이 있나?”
루아크는 메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슬람의 성지.
성벽 주변은 예루살렘보다도 황량했다. 나뭇가지와 마른 야자나무 잎사귀, 우물 몇 개가 전부.
그나마 있던 순례자와 상인들도 모두 메카 안으로 대피했다.
“이보게, 루아크 단장. 왜 그렇게 사라센들을 두려워하는 건가?”
르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슬갑옷을 걸친 그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어차피 저놈들은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여기까지 도망쳤어. 우리가 검을 몇 번만 흔들면 성문도 활짝 열어줄 거란 말일세.”
“이곳에서 하룻밤만 더 보내면 가져온 보급이 다 바닥날 거요. 그다음엔 말에게 먹일 건초도 없겠지.”
루아크가 말했다.
“기사와 병사들도 이미 더위에 지쳐 있소. 놈들의 지원군이 오기 전에 어서 철수해야 하오.”
“보급이 부족하니 순례단을 습격하자는 것 아닌가.”
르노가 메카를 가리키며 외쳤다.
“순례자들은 무사히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뒤에, 놈들이 나오면 모조리 붙잡아서 목을 베어버리는 걸세.”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 가만히 앉아서 보급에 전리품까지 챙길 수 있겠지. 내 말이 틀렸나?”
“당신 이름을 듣고도 순순히 나올 사라센은 없을 거요.”
루아크가 성벽을 바라보며 말했다. 해안가에 상륙한 그들은 별다른 저항 없이 이곳 메카까지 진격해왔다.
중간중간 만났던 사라센 군대도 그들과 마주치자마자 모두 줄행랑쳤다.
“신호탑이 생긴 이후로 소식을 전달하는 속도가 빨라졌소. 이미 지금쯤이면 살라딘이 군대를 끌고 오고 있을 거요.”
루아크가 말했다.
“놈들에게 포위되기 전에 철수해야 한단 말이오.”
“자네 같은 북구인들이 그렇게 겁쟁이일 줄은 몰랐군. 겁먹은 쥐새끼처럼 싸우기도 전에 도망부터 치자니.”
르노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그의 뒤에 서 있던 기사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사라센 순례단은 왜 공격하면 안 된다는 건가? 놈들한테 습격 안 하겠다는 대가로 돈이라도 받아 챙겼나?”
“도시를 포위하는 것과 무장 안 한 순례자들을 습격하는 건 엄연히 다른 행위요. 돈을 빼앗는 건 상관없지만 당신은 순례자들을 모조리 죽이지 않소?”
루아크가 으르렁거렸다.
“그런 일을 벌였다간 사라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정녕 모르는 거요?”
“메카를 포위한 시점에 이미 그 일은 벌어진 거나 마찬가지일세. 이 아둔한 친구야.”
르노가 메카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이왕 이곳까지 왔으니 놈들의 예언자 무덤이 있는 메디나까지 올라가자고! 놈의 무덤을 파헤쳐서 시원하게 오줌이나 갈겨주면 그보다 기분 좋은 일도 없겠지.”
그가 덧붙였다.
“그리고 살라딘이 온다고 했나? 사냥감이 알아서 굴 밖으로 나와 덤벼주겠다는데 오히려 좋은 일이지.”
“···.”
루아크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르노는 만족했다는 듯 씨익 웃었다.
그가 메카를 향해 소리쳤다.
“야, 이 더러운 사라센 자식들아! 너희들의 그 잘난 알라는 어디 있는 거냐?!”
그의 목소리가 성벽을 타고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너희의 그 무함마드라는 작자한테 얼른 가서 도와달라고 전해라! 내가 곧 있으면 네놈들 목을 전부 베어버릴 테니!”
그렇게 외친 그가 고개를 돌리며 껄껄 웃었다.
“예리코의 성벽 모르나? 소리만 지르면 무너지는 게 사라센 놈들일세. 소리만 지르면 도망친단 말이야.”
“당신은 제정신이 아니군.”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내가?!”
르노가 루아크에게 달려들며 외쳤다. 성묘단원과 르노의 기사들 모두 검을 빼 들었다.
“왜 국왕 ‘폐하’께서 날 이곳으로 보내신 건지, 그리고 왜 자네가 따라온 건지 내가 정녕 모를 거라 생각하나?”
르노가 말했다.
“일부러 날 사지死地에 몰아넣고 죽길 바란 거겠지. 하지만 내가 이렇게 메카까지 왔으니. 이게 다 주님께서 증명해 보이신 걸세. 내가 정의라고 말이야.”
“···.”
르노를 노려보던 루아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해가 지기 전에 해안가로 출발하겠소. 얀부와 라비그를 돌아가려면 시간이 걸릴 거요. 그쪽은 이곳에 남고 싶다면 그렇게 하시오.”
고개를 돌린 그가 성묘단원들 쪽으로 걸어갔다. 한 고위 단원이 루아크에게 다가왔다.
“단장님, 정말 저들을 두고 가실 겁니까?”
“어떻게 될지 한번 두고 보자고. 나도 폐하께 명 받은 게 있으니.”
그가 중얼거렸다.
“르노는 여기서 죽는 게 왕국엔 더 이익일 거다.”
그때 말에 탄 정찰병들이 흙먼지를 뿌리며 달려왔다.
“사라센 기병들이 접근 중입니다! 최소 천이 넘습니다!”
“이런 우라질. 시간 한 번 제대로 맞췄군.”
루아크는 욕설을 내뱉으며 집합 신호를 보냈다. 흩어져 있던 성묘단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르노의 기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르노가 다가오며 외쳤다.
“이젠 도망치지도 못하겠군! 어때, 싸울 준비는 됐나?!”
“우린 언제나 싸울 준비가 되어 있소. 그쪽이나 도망칠 생각하지 마시오!”
“내가 도망치려는 것처럼 보이나?”
르노가 부하 기사들을 향해 쩌렁쩌렁 소리쳤다. 기사들이 검을 휘두르며 그에게 환호를 보냈다.
말들은 콧김을 내뿜으며 앞발을 들었다.
“진정한 전사가 뭔지 내 직접 보여주지.”
* * *
세 시간 후
“놈들은 전부 도망쳤나?”
알 아딜은 눈앞의 메카를 바라봤다. 성문이 열리고 순례자와 상인들이 썰물처럼 몰려나왔다.
그들 모두 알 아딜에게 다가와 무릎 꿇고 감사를 표했다.
부하 장교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유인 전술에 곧장 넘어오더군요. 창기병들을 투입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제아무리 질 좋은 갑옷을 걸쳤다 해도 머리가 나쁘면 아무 소용없지.”
알 아딜이 웃으며 말했다. 그가 상쾌하다는 쭉 기지개를 켰다.
“몇 년 만에 제대로 된 승리로군. 형님께서도 기뻐하시겠어. 도망친 놈들은 얼마나 되나?”
“등에 날개를 단 적들은 끝까지 맹렬히 저항했습니다. 유인 전술에도 안 넘어오고 곧장 포위를 돌파해서···.”
부하 장교가 말했다.
“해안가까지 후퇴한 것 같습니다. 추적대가 뒤에 붙었으니 머지않아 따라잡을 수 있을 겁니다.”
“등에 날개라. 성묘수호단 놈들이다. 프랑크인들 중에서도 덩치가 큰 놈들이지.”
알 아딜이 이마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쪽 지휘관이 그나마 머리가 좀 굴러가는 놈이었나 보군. 나머지는 다 붙잡았다는 거냐?”
“알 사바흐가 이끄는 분견대가 르노를 붙잡았습니다. 부하들을 버리고 사막 외곽으로 도망쳤다더군요.”
“르노를 잡았으면 됐다.”
알 아딜이 씨익 미소 지었다. 그는 다가온 순례자, 메카 시민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형님이 원하셨던 것도 바로 그 녀석이지. 나머지 잔챙이들은 크게 상관없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부하 장교들이 나섰다.
“제가 당장 그놈의 목을 베겠습니다, 장군님! 부디 제게 그 영광을 주시지요!”
“제 외사촌이 그놈 손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허락만 해주신다면 제가 직접···.”
“자네들 마음은 나도 잘 아네.”
알 아딜이 손을 들며 말했다. 그는 흥분한 부하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봤다.
“하지만 그자는 메카를 공격했어. 우리 무슬림들의 신성한 성지를 더럽히려 했지.”
그가 성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녀석의 처분은 형님이신 술탄께서 직접 결정하실 걸세.”
* * *
예루살렘
“그럼 그 외에 다른 정보는 없는 거군.”
난 탁자 위의 지도를 바라봤다.
에일라트, 홍해를 통해 연결된 헤자즈 지역.
그 중심에 메카와 메디나가 있었다. 이슬람 종교가 탄생한 곳이자 성지.
이곳은 명목상으론 살라딘의 통치를 받았지만, 사실상 자치를 누리고 있었다.
‘다른 곳들도 마찬가지이긴 하지.’
살라딘이 실제로 다스리는 땅은 다마스쿠스와 이집트뿐이었다. 나머지 지역은 대부분 에미르, 즉 제후들이 통치했다.
“일단 그렇습니다. 애초에 정보가 홍해를 거쳐오느라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죠.”
가니에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설령 메카를 포위했다 해도 성벽을 넘긴 힘들 겁니다. 제대로 된 공성 무기가 있다 해도 몇 달은 걸릴 테니 말입니다.”
“순례자들을 죽이기라도 했다면 문제가 될 텐데···.”
난 탁자를 두드렸다. 르노에게 메카 원정을 맡긴 건 백성들을 통합하기 위한 이벤트에 불과했다.
시선을 돌리기 위한 버림패.
근데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군.
‘메카의 수비가 그만큼 형편없었다는 건가.’
원정을 떠나기 전에 사방팔방 광고했는데도 이럴 줄이야. 살라딘도 적잖이 화가 났겠군.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루아크 단장이 막을 겁니다.”
가니에르가 말했다.
“르노 그자가 메카에서 아예 죽어준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멀쩡히 돌아온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겠지. 그래서 미리 루아크 단장에게 말해둔 게 있네.”
난 루아크에게 적당한 기회가 있을 때 르노를 처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둘 필요는 있었다.
“일단 확실한 정보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군.”
“저도 폐하와 같은 생각입니다.”
가니에르가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은 공의회와 기사단 통합만으로도 충분히 벅찹니다. 독일에서 온 친구들도 어서 빨리 기사단 창설을 승인해달라고 난리더군요.”
“튜튼 기사단이라. 새 기사단 창설과 공의회 발표를 한꺼번에 해치우면 되지 않겠나?”
난 쭈욱 기지개를 켰다.
그러고 보니 아직 에이그도 정식 기사단원이 아니었지.
위그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마지막 순간까지 에이그를 잘 챙겨달라고 했지.
남작가 딸이랑 사랑에 빠졌다고 했었나.
‘기사단원은 죽을 때까지 순결을 유지해야 할 텐데.’
기사단을 나오지 않는 이상 그건 바꿀 수 없는 규칙이었다. 이것도 에이그랑 한번 대화를 나눠봐야겠군.
난 몸을 뒤로 젖혔다.
예루살렘에 돌아온 이후로 그동안 너무 급하게 달려오느라 숨 쉴 틈이 없었다.
“공의회. 그것보다 축하해야 할 일도 없겠지.”
내가 웃으며 말했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을 때 놀아야 하는 법.
“기념으로 축제를 선포하는 게 어떻겠나?”
“축제라. 확실히 분위기를 한 번 바꿀 필요가 있긴 합니다만···.”
가니에르가 턱을 만지작거리며 날 바라봤다. 처음 만났을 때의 맹수같은 눈빛.
“폐하께서 그냥 쉬고 싶은 게 아니십니까?”
“그럴 리가 있겠나. 내가 쉬고 싶다고 축제를 선포하는 그런 왕은···.”
“에이그에게 들었습니다. 요즘 왕비님과 시간을 보내느라 제대로 훈련을 안 하신다고 말입니다.”
“···.”
난 대답 대신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좀 불안한데.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법. 아무리 왕이라 되셨다 해도 사냥과 운동을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그가 가슴을 두드리며 덧붙였다.
“말이 나온 김에 지금 바로 훈련장으로 가는 건 어떠시겠습니까?”
“자, 잠깐···! 어디 감히 왕에게···!”
정신을 차렸을 때 난 이미 반쯤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트레이닝’이 끝난 건 그로부터 몇 시간 후.
겨우 침실로 돌아가자 이번엔 테오도라가 반겼다. 그것도 얼굴 가득 환한 미소로.
그게 의미하는 건 하나뿐이었다.
“우리 오늘은 손만 잡고··· 자, 잠깐!”
슬프게도 왕의 의무는 끝이 없었다.
난 밤늦게까지 테오도라와 정사政事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럼 르노나 루아크 단장이 붙잡혔을 가능성도 있다는 거군요.”
“메카까지 진격했다면 그만큼 포위당했을 가능성이 크죠. 애초에 병력이 많지도 않았고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확실한 건 알 수 없어요.”
“아무리 르노 영주가 왕실의 적이라 해도, 살라딘에게 붙잡힌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테오도라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이불이 그녀의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자칫했다간 백성들의 비난이 왕실로 향할 수도 있고요.”
“그건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달려있겠죠.”
내가 웃으며 답했다. 어차피 계획은 세워져 있었다.
르노가 살아서 돌아온다면 메카 원정은 자연히 내 공적이 된다. 하지만 만약 놈이 붙잡힌다면···.
‘죽은 악당도 나름대로 쓸데가 있지.’
호랑이가 죽으면 가죽을 벗겨내듯, 르노에게도 얼마든지 벗겨낼 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