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165)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165화(165/215)
< 165화 – 신성한 도시 (5) >
메카
“오르한 파무크라. 특이한 이름이군. 이 시인에 대해 알려진 건 없다고?”
“예, 형님.”
알 아딜이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도시의 에미르(제후)들에게 경계를 강화하라고 지시해뒀습니다. 앞으론 이런 헛소문이 돌지 않을 겁니다.”
“르노가 메카를 침공하겠다고 알린 종이도 모두 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었지.”
살라딘이 손에 든 종이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적힌 내용은 간단했다.
[살라딘이 르노를 풀어주려 한다!]똑같은 내용의 글이 수십 장에 걸쳐 쓰여 있었다. 심지어 필체는 기이할 정도로 똑같았다.
아무리 뚫어져라 쳐다봐도 차이를 못 느낄 정도였다.
“이번 일도 알 쿠드스(예루살렘)가 배후에 있는 게 분명해.”
“프랑크 놈들이 무슨 요술이라도 부린 게 아니라면 어찌 이 그림들을 똑같이···.”
“그런 불경한 말은 입에 담지 말거라. 고대 주술사 중에서도 이런 요술을 부린 자들은 없었어.”
살라딘이 말했다. 그는 종이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만약 이런 종이 수백 장을 들고 도시에 들어가려 했다면 경비병들이 눈치챘을 거다. 놈들은 분명 도시 안에서 이 선전문들을 만든 거야.”
“도시에 있는 필경사들을 싹 다 조사해보겠습니다. 한 달 안에 잡아낼 수 있을 겁니다.”
살라딘은 아무 대답 없이 턱을 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했다.
도시 내 필경사들을 고용한다 해도 이렇게 단시간에 선전문을 만들어 뿌릴 순 없었다.
그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르노를 끌고 와라.”
“그 말씀은···.”
“아무리 보두앵이 잔꾀를 부린다 한들 르노의 목을 베면 더 이상 할 말이 없겠지. 여론도 다시 우리 편으로 돌아설 거다.”
살라딘이 말했다.
“놈을 잡은 날 곧장 목을 베었어야 했는데.”
“지금 당장 처형식을 준비하겠습니다.”
알 아딜이 고개를 숙였다. 살라딘이 허리춤의 검집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신호탑부터 이집트에 이번엔 메카까지. 보두앵 그 녀석은 매번 선수를 치고 있어.”
살라딘이 말했다. 그가 행동에 나서려 할 때마다 보두앵은 기상천외한 방식들로 그를 방해했다.
보두앵의 방해가 이어질수록 지하드(성전)의 시작은 점점 늦춰졌다.
“어떻게 해서든 우리가 주도권을 되찾아야 한다. 처형식에 시인과 학자, 화가들을 최대한 많이 초청하거라. 우사마도 부르는 게 낫겠지.”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무슬림 신자들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걸 레반트에 알리는 거다. 그리고···.”
살라딘이 자신의 동생을 응시하며 덧붙였다.
“지하드를 선포한다. 놈들이 먼저 메카를 쳤으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겠지.”
* * *
르노의 처형식이 집행된 곳은 메카의 미나 계곡이었다. 그는 계곡 앞에 세워진 세 돌기둥으로 끌려 나왔다.
돌기둥들은 각각 아브라함과 하갈, 이스마엘을 유혹한 사탄들을 상징했다.
“사탄아 물러가라!”
“메카를 더럽힌 악마를 죽여라!”
메카 시민과 순례자들이 몰려든 가운데, 살라딘이 검을 들고 르노에게 다가갔다.
“살라흐 앗 딘! 살라흐 앗 딘!”
신자들이 환호성을 내뱉는 가운데, 르노가 발악하며 소리 질렀다.
“이 더러운 사라센 개자식들아! 내 피가 네놈들의 성벽을 무너뜨릴 거다! 내 말이 들리냐!”
사람들은 그를 향해 썩은 대추야자와 돌멩이를 집어 던졌다. 마침내 살라딘이 르노의 목을 검으로 내려치자 관중들이 손뼉 치며 소리 질렀다.
이슬람 진영의 신호탑들이 움직이며 레반트 곳곳으로 신호를 보냈다.
예루살렘 왕국의 신호탑들 역시 마찬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십자군 도시들까지 르노의 처형 소식이 퍼졌다.
“르노 영주야말로 십자군의 진정한 영웅 중 한 명이오!”
“옳소!”
성묘단장인 루아크가 돌아와 르노의 무용담을 전하면서 이런 분위기는 더 커졌다.
보두앵 왕은 예루살렘에서 직접 추모식을 열겠다고 발표할 정도였다.
기사단들은 밤낮 할 것 없이 르노의 모습이 묘사된 그림을 찍어냈다.
이 그림들은 유럽으로 향하는 상선에 차곡차곡 쌓였다. 채 몇 주가 지나지 않아 유럽의 수도사와 사제들이 르노의 그림을 들고 돌아다녔다.
그림 속의 그는 사라센들에게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된 채로 쓰러져 있었다. 하얀 날개가 달린 천사들이 그의 위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 그림을 보시오! 예루살렘의 르노 영주는 왕국을 지키기 위해 결사단을 이끌고···.”
귀족뿐만 아니라 농민과 상인들도 그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
몇몇 기사들은 곧장 무장 순례에 나서겠다는 십자가의 서약을 했고, 여인들도 모여 십시일반 기부금을 냈다.
“기부할 돈이 없는 자들은 성도권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성도 예루살렘의 수호에 공헌할 수 있소! 앨릭서 역시 예루살렘에서 생산되는 신성한···.”
“예루살렘 공의회에 따라 로마 교황 성하께서는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에 대한 파문을 철회하셨으며···.”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3차 십자군 원정을 위한 군대와 자금이 유럽 곳곳으로 몰렸다.
십자군 열풍은 기름에 붙은 불처럼 뜨겁게 타올랐다.
“데우스 불트!”
하지만 모두가 이런 분위기에 동조하는 건 아니었다. 프랑스의 필리프 왕은 성도 열풍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했다.
“우리 왕국의 부富가 모두 성도로 흘러가고 있소. 곧 있으면 유럽 전체가 성도에 돈을 바치다 빈털터리가 될 거요.”
몇몇 이들은 그의 말에 동의했지만,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필리프 왕이 십자군 원정에 나서길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 * *
예루살렘 왕국
정궁
“왜 내게 거짓말을 하시는 거요?”
난 웃으며 맞은편의 사절단을 바라봤다. 검은색 피부에 화려한 비단옷.
자그위 왕국에서 온 에티오피아인들은 놀란 표정이었다.
“랄리벨라 국왕께서 어떤 상황인지는 나도 잘 아오. 같은 기독교 국가로서 도울 의향도 있지.”
내가 말했다. 자그위에서 온 사절단은 계속 거짓 정보를 내밀며 날 시험하려 했다.
‘내가 자기네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떠보려는 거겠지.’
난 이미 알고 있는 정보에 사절단의 반응을 바탕으로 자그위 왕국의 상황을 유추했다.
그러자 놀란 건 내가 아니라 사절단이었다.
“정말 폐하께선 하늘의 계시를 받으신 거로군요.”
사절단 대표가 고개를 숙였다.
그에게서 당혹감과 놀라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폐하께 무례를 범했다면 사죄하겠습니다. 저희 랄리벨라 국왕께서는···.”
“그대들에게 날 시험해보라고 하셨겠지. 나도 이해하오.”
내가 웃으며 답했다. 하긴 도움이 절실한 시기에 지원을 받았으니.
이렇게 확인해 보려는 것도 당연할 터.
“랄리벨라 국왕께서 성도 예루살렘 수호를 위해 지원군을 보내주신다면···.”
내가 말했다.
“나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내놓아야겠지. 베네치아와 제노바에 연락해 솜씨 좋은 선박공들을 보내라 하겠소.”
비록 에티오피아는 마이너한 진영이긴 했지만, 이번 공의회를 통해 기독교 세계질서에 다시 합류했다.
이들의 도움이 있으면 홍해를 완전히 장악할 수 있었다.
‘그럼 계속 메카를 위협할 수 있겠지.’
어차피 홍해에 이슬람 해군력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혹시나 에일라트를 상실하더라도 에티오피아가 우리 편이라면 홍해는 계속 장악할 수 있었다.
“이번 공의회를 기념해 랄리벨라 국왕의 석상을 만들라 지시했소.”
내가 말했다. 랄리벨라 국왕은 정통성이 취약했지. 그 부분을 내가 채워준다면 어떨까?
기독교 국왕이라면 예루살렘 성전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누구나 정통성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 왕국이 보내는 우호의 표시이니 돌아갈 때 가져가도록 하시오.”
“저희 국왕 폐하께서도 성도 예루살렘의 선물을 기쁘게 받으실 겁니다.”
“추가로 기사들의 무장을 위한 사슬 갑옷과 무기들을 준비해놨으니···.”
사절단과의 대화가 끝나고, 에이그가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녀석은 품에 서류 더미를 한가득 안고 있었다.
“유럽 기사단 지부들에서 보낸 보고서를 가져왔습니다.”
“그나마 정리한 게 그 정도라고?”
난 한숨을 내쉬며 서류들을 한 장 한 장 훑어봤다. 기부금과 자원병 숫자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였다.
르노의 죽음이 그렇게 큰 반향을 일으킨 건가.
“인쇄기가 없었다면 이런 분위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에이그가 말했다.
“아무리 음유시인들이 시를 읊는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겠죠. 하지만 종이는 어디에든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림은 누구나 알아볼 수 있고.”
개신교를 만든 루터도 로마에 대항하기 위해 인쇄기를 사용했지. 그런데 정작 난 로마 가톨릭을 강화하는 데 쓴 건가.
‘어쩌면 이 세계에선 구교와 신교가 안 나뉠지도 모르겠어.’
거기에 이번엔 동서방 교회의 통합까지. 어쩌면 기독교가 어마어마한 위세를 유지할지도 몰랐다.
뭐, 몇백 년 후의 일까지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만.
“아무르 그래도 르노 그자가 영웅으로 추앙받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썩 좋진 않군요.”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지.”
내가 웃으며 말했다. 생전의 르노는 예루살렘 왕국의 가장 큰 골칫덩어리였다.
젊어서는 키프로스를 습격해 동로마 제국에 싸움을 걸지 않나, 보두앵 4세 때는 심심하면 평화협정을 어겼으니.
하지만 그는 죽음을 통해 기독교의 영웅이 됐다. 이 정도만 해도 원래 역사보단 훨씬 나은 대접이지.
‘적어도 하틴의 뿔에서 꼴사납게 대패하고 죽은 건 아니니까.’
난 서류들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몇 년 동안 계속 가지는 않을 거야. 길어봐야 몇 개월 정도겠지.”
아무리 종교와 관련 있다 해도 감성팔이는 한계가 있었다. 슬프거나 감동적인 이야기라도 여러 번 반복되면 지긋지긋해지는 법.
‘오히려 역효과만 나겠지.’
이번에 얻은 기회를 잘 사용해야 했다.
“필리프 왕도 성도로 오는 기부금이 너무 많다면서 불만을 표하고 있답니다.”
에이그가 머리를 긁적였다.
“예루살렘에 대한 반발심을 키워서 십자군 원정을 취소하려는 거겠죠.”
“그렇게 냅둘 순 없지.”
내가 서류들을 넘기며 말했다. 이제 유럽 각 기사단 지부를 관리하는 건 왕실.
기부금을 어떻게 쓸지는 내 선택에 달려 있었다.
“벌어들인 기부금을 전부 예루살렘에 가져올 필요는 없어. 유럽의 돈을 전부 빨아들이면 오히려 예루살렘을 향한 반발이 생길 테니까.”
“그럼 어떻게···.”
“벌어들인 기부금 중 일부는 다시 그 지역에 투자하는 거야. 빈민 구제 시설을 운영하고, 영주들에게 자금을 제공해줘도 되겠지.”
이미 유럽의 기사단 지부들은 은행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 기능을 좀 더 확대하면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겠지.
예루살렘에 대한 유럽인들의 여론은 더 좋아지고, 영주들은 우리에게 적대하지 못하게 된다.
공짜로 얻은 기부금으로 선행을 해서 인기를 얻는다라.
이게 진정한 창조경제지.
“그쪽 지부들에서 해야 할 일도 배로 늘어나겠군요.”
에이그가 웃으며 말했다.
“아, 그리고 헨리 2세가 키프로스를 향해 오고 있다 합니다. 몇 주 안에 도착할 거라 하더군요.”
“예상보다 빠르네.”
난 지도를 바라봤다. 퍼즐 조각들이 하나하나 모이고 있었다.
헨리 2세, 알렉시오스 2세, 리처드, 필리프, 랄리벨라까지. 윌리엄 마셜도 있군.
얼마나 많은 대군이 모일지 상상이 잘 안 갔다.
“살라딘도 3차 십자군이 시작됐다는 걸 알 거야. 유럽에 정보망이 있겠지.”
그들이 다 도착할 때까지 살라딘이 가만히 기다려줄까?
“십자군 원정이 시작하기 전에 어떻게든 우리를 흔들려고 할 게 분명해. 조금이라도 유리한 입지를 확보해야 할 테니.”
거기에 얼마 전엔 신성한 메카까지 침공을 받았다. 그걸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군대를 일으킬 터.
“그럼 모든 도시에 방어 태세를 철저히 하라고 지시해둬야겠군요.”
에이그가 머리를 긁적였다.
“살라딘이 어느 쪽을 칠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래, 아직은 아무도 모르지.”
난 지도를 바라봤다. 살라딘의 전쟁 계획을 아는 건 소수의 참모진뿐이었다.
살라딘의 공격목표를 모르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뿐이었다.
놈과 야전에서 맞서 싸우거나, 아니면 수비에 전념하거나.
두 선택지 모두 그리 매력적이진 않았다.
우선 야전에서 맞서 싸우는 건 원 역사의 ‘하틴의 뿔’이나 마찬가지.
얼마든지 병력 보충이 가능한 이슬람과 달리 십자군은 한 번 패배하면 손실을 보충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수동적으로 수비만 하면 상대방에게 주도권을 넘기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지금 예루살렘 왕국이 이슬람 세력과 위태위태하게 균형을 유지하는 건 주도권을 유지한 덕분이었다.
살라딘이 오기만을 가만히 기다릴 순 없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선택지가 필요했다.
무지성 돌격도, 수동적 수비도 아닌 제3의 선택지.
“최근 며칠 동안 상황실에 들어온 정보를 모두 내 집무실로 갖다 줘. 각 기사단과 부대의 인원 현황과 무기, 보급품 재고 목록도 가져다주고.”
내가 일어서며 말했다. 에이그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게 많은 자료로 뭘 하시려는 겁니까, 폐하?”
“확인해 볼 게 하나 있어.”
내가 말했다.
신호탑과 지하드, 이슬람, 술탄 살라딘.
이 사이엔 분명 허점이 존재했다. 십자군이 찔러 들어갈 수 있는 구멍.
그걸 확인할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샅샅이 확인해봐야겠지.”
귀스타브 도레의 십자군 中, 퍼블릭 도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