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169)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169화(169/215)
< 169화 – 막간극 (4) >
아스칼론
“시빌라 님, 모두 안에서 마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알겠네.”
시빌라가 다가가자 병사가 문을 활짝 열었다. 회의실 안에는 갑옷을 걸친 기사들이 서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시빌라 님.”
그들이 고개를 숙이며 그녀에게 경의를 표했다.
“상황은 어떤가?”
“타키 앗딘이 이끄는 이집트군 선봉대가 성벽 외곽에서 포착됐습니다. 아직 수가 많진 않지만 우선 상인과 시민들을 성채로 대피시켰습니다.”
“전령을 보냈으니 곧 예루살렘에서 지원군이 올 것입니다.”
다른 기사들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빌라가 말했다.
“지원군이 제때 안 올 가능성도 있네. 지금 보두앵은 살라딘과 싸우는 중이지.”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우리 홀로 이집트군을 상대해야 할 걸세.”
“저희는 오랜 기간 이런 사태에 대비해왔습니다. 설령 지원군이 오지 않는다 해도···.”
“자네들은 그동안 내 남편을 따라 싸워왔지. 기가 사제왕 요한을 찾아 떠난 것에 불만이 있다는 것도 아네.”
시빌라가 말했다. 그녀는 기사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봤다.
“···.”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아스칼론을 사라센에게 빼앗겨서는 안 되네.”
“물론입니다, 시빌라 님.”
“다행이군. 그럼 일단 견습 기사단원들을 중앙회랑으로 소집시키게. 내가 보두앵을 대신해 서임하도록 하지.”
시빌라가 말했다. 기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문득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난 이미 왕의 누이예요. 그리고 곧 있으면 왕의 어미가 되겠죠. 그걸로 충분해요. 저주받을 자리는 그걸로 충분하다고요.’
아직 저주는 계속되고 있었다.
* * *
“어서 안으로 파고들어라!”
“돌격하라!”
말발굽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난 전장을 바라보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이렇게 육감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건 즉위식 이후 처음이었다. 진이 빠지는 건 그대로였지만 고통이 심하진 않았다.
눈을 감자 적 보병대를 돌파하는 우리 기병들이 느껴졌다.
“적 병사들은 대충 3, 4천 정도 되겠군. 거기에 기병이 대략 천 명 정도.”
우린 쪽은 기사가 이백, 궁기병이 오백이라는 걸 생각하면 숫자 차이는 컸다.
하지만 중무장한 기사단원들은 그 자체로 전차나 마찬가지였다.
근접전이 시작된 순간 우리의 승리는 정해져 있었다.
루아크가 하얀 날개를 흔들며 다가왔다.
“폐하의 능력은 매번 봐도 익숙해지질 않는군요.”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폐하께서 말씀하시는 부분만 공격하면 항상 이기니 말입니다.”
“너무 의존하지 않는 편이 좋을 걸세. 항상 맞는 건 아니거든.”
내가 웃으며 말했다. 사기가 흔들리는 쪽을 공격하는 편이 제일 편하긴 하지.
진형이 돌파되면 앞뒤에 있던 병사들은 패닉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 후에 이어지는 건 전투라기보다 소탕전에 가까웠다.
그때 소음 사이로 뭔가 느껴졌다. 서둘러 진형 밖으로 도망치는 기병들.
“루아크 단장. 아무래도 저들의 에미르(제후)가 도망치려 하는 것 같군.”
난 손가락을 들어 육감이 느껴지는 방향을 가리켰다.
“붙잡는 건 성묘수호단에게 맡기겠네. 가능하면 죽이지 말고 생포하게.”
내가 말했다. 우리가 싸우는 부대는 알레포 쪽에서 온 마수드 진영.
포로로 잡으면 어딘가 쓸 구석이 있겠지.
“놈을 말 뒤에 묶어서 폐하 앞으로 끌고 오겠습니다.”
루아크가 껄껄 웃으며 외쳤다.
그가 손을 흔들자 성묘단원들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전투는 어느덧 마무리 단계였다. 화살을 쏘며 저항하던 적 궁기병들도 말머리를 돌려 도망쳤다.
평원은 병사들이 버리고 간 방패와 검으로 가득했다.
“놈들의 지원군이 오기 전에 떠난다! 가져갈 수 없는 보급품과 식량은 모두 불태워라!”
해가 지기 시작했을 때, 우린 포로와 전리품을 챙겨 다시 아만을 향해 이동했다.
* * *
“살라딘이 나머지 부대를 전부 집결시켰습니다, 폐하.”
발리앙이 방 안에 들어오며 말했다. 난 자꾸 내려오려는 눈꺼풀을 비볐다.
하룻밤 내내 아만까지 행군해와서 그런지 온몸이 말을 듣질 않았다.
아침 햇살이 눈을 따갑게 찔렀다.
“끝까지 원정을 계속할 생각인가 보군.”
쭈욱 기지개를 켜니 졸음이 좀 사라졌다.
계속되는 습격에 몇천이 넘는 병력이 대패를 당했는데도 원정을 강행한다니.
“에미르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검을 뽑았으니 어떻게든 휘두르려는 게 분명합니다. 지금 원정을 취소한다면 에미르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요.”
발리앙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폐하께 휘둘릴 대로 휘둘렸으니 어떻게든 성과를 내려는 겁니다.”
“그럼 각 성에 방어 병력을 다시 분산 배치해야겠군. 놈들이 어느 성을 공격하든 간에···.”
그때 방문이 활짝 열렸다.
레몽 백작.
그가 성큼성큼 걸어오며 소리쳤다.
“폐하!”
“무슨 일인가, 백작?”
충격과 당혹감이 느껴졌다.
뭔가 심상치 않군. 레몽은 성난 눈빛으로 발리앙을 노려봤다.
“이집트에서 타키 앗딘이 이끄는 사라센 군대가 출정했다고 합니다. 아스칼론에서 구원 요청을 보내왔습니다.”
“···.”
난 순간 멈춰섰다.
타키 앗딘이 이집트 군대를 끌고 나왔다고?
레몽이 발리앙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집트 쪽 첩보는 발리앙 자네 담당 아니었나? 왜 놈들이 출정한 걸 여태 눈치채지 못한 건가?”
“이집트의 정보망은 저번 포로 구출 이후 약해져 있습니다. 미리 알아내지 못한 건 제 잘못이지만···.”
발리앙이 중얼거렸다. 그도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아직 반란을 수습 중일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이렇게 군대를 끌고 나올 줄은···.”
“지금 서로 잘잘못을 따지고 있을 여유는 없네.”
내가 둘 사이에 끼어들며 말했다. 녹슬었던 머리가 다시 팽팽히 돌아갔다.
살라딘의 조카, 타키 앗딘이 생각보다 빨리 이집트 권력을 장악한 게 분명했다.
‘아스칼론을 쳤다는 건···.’
아스칼론은 이집트와 레반트를 연결하는 도시였다. 그곳을 빼앗기면 이집트, 에일라트를 향한 육로가 차단된다.
그리고 아스칼론은 기 백작이 다스리던 곳이었다.
‘시빌라도 포위되어 있겠군.’
발리앙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스칼론이나 에일라트를 잃으면 아비시니아(에티오피아)와의 연결이 끊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메카를 압박하는 것도 불가능해지겠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중요한 카드를 잃을 순 없었다.
이제야 왜 타키 앗딘이 나선 건지 이해가 갔다.
“살라딘은 내게 선택을 강요한 걸세. 주력을 아스칼론으로 보내느냐, 아니면 자신과 맞붙느냐.”
난 창문 밖으로 병사와 기사들을 바라봤다. 그들 모두 한창 행군을 준비 중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스칼론은 지켜야 합니다, 폐하.”
발리앙이 말했다.
“아스칼론에는 시빌라 님께서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아스칼론을 잃으면 이집트 원정도 불가능해질 겁니다.”
“하지만 살라딘의 본대를 그냥 놓고 갈 수는 없네.”
레몽이 끼어들었다. 그가 날 바라보며 덧붙였다.
“폐하, 아스칼론은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우선 살라딘의 군대를 상대해야 합니다. 눈앞에 있는 적을 두고 굳이 후방의 적부터 공격할 필요는 없습니다.”
두 사람은 신경전을 벌이며 서로의 말에 끼어들었다.
“두 사람 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진 알겠네.”
내가 말했다.
결국엔 선택해야 했다. 한정된 병력으로 두 곳을 다 갈 순 없지.
병력을 동부 도시들에 분산해 살라딘을 막느냐, 아니면 아스칼론을 구원하느냐.
‘둘 다 살라딘의 의도에 놀아나는 꼴이야.’
주도권을 넘겨줄 순 없었다.
생각을 마친 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들은 주력을 이끌고 아스칼론으로 가게. 살라딘은 내가 상대하도록 하지.”
내가 말했다.
“하지만 폐하!”
레몽이 인상을 찌푸리며 외쳤다.
“주력을 아스칼론으로 보내면 살라딘의 대군을 어떻게 상대하시겠다는 겁니까?”
“레몽 백작의 말이 옳습니다. 살라딘이 어디를 공격해올지 모르니···.”
“살라딘이 공격해올 수밖에 없게 만들면 어떻겠나? 그럼 병력을 분산시키지 않고도 방어가 가능해지겠지.”
살라딘을 유인할 미끼.
그건 나뿐이었다.
“지금 케락에는 영주가 없지. 지키는 개가 없는 양 떼나 마찬가지일세.”
내가 말했다. 동시에 케락은 십자군 도시 중 사해 동쪽에 있는 유일한 도시였다.
다마스쿠스와 메카를 압박할 수 있는 요충지.
거기에 지형상으로도 수비가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케락이라면 소수의 병력만으로도 충분히 버틸 수 있겠지.
“왕인 내가 케락에 간다면, 살라딘은 그곳을 공격해올 수밖에 없네. 설령 살라딘이 원치 않는다 해도, 휘하의 에미르들이 그리 주장하겠지.”
“아무리 케락이 천혜의 요새라 해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만약 성이 함락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전에 자네들이 아스칼론을 구원하고 돌아오면 되겠지.”
내가 웃으며 말했다. 공성전이라면 보병들만 있어도 충분했다.
지휘를 위한 기사들도 필요하겠지만, 야전에서 싸울 때보다 훨씬 적은 수로 버틸 수 있었다.
“만에 하나 아스칼론을 구원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
발리앙이 중얼거렸다.
“제때 케락에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폐하.”
“그럼 다른 지원군을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지원군이라면···.”
“지금 바다를 건너오고 있는 자들이 있지 않나?”
3차 십자군의 선봉대라 할 수 있는 헨리 2세와 윌리엄 마셜. 그들이 내 최후의 한패, 즉 와일드카드였다.
‘때에 맞춰서 도착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들은 소식은 그들이 키프로스로 오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몇 주. 아무리 길어도 한두 달만 버티면 됐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위험한 계획입니다. 차라리 폐하께서 주력을 끌고 아스칼론으로 가시지요.”
발리앙이 말했다.
“케락은 제가 맡겠습니다.”
“아닐세, 케락에 남아야 하는 건 나야.”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케락에는 육감이 있는 내가 남아야 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수월히 방어전을 치를 수 있겠지.
그리고 살라딘을 유인할 수 있는 것도 나뿐이었다.
역시 발리앙이 여러모로 용감하긴 하군. 자기가 사지에 남겠다고 망설임 없이 자원하다니.
“그럼 어서 빨리 부대들에 출정을 알리게.”
내가 다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불트가 아래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아스칼론과 케락. 둘 다 지키려면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하네. 그리고···.”
내가 말했다.
“에일라트에도 전령을 보내게. 어쩌면 아비시니아가 먼저 올 수도 있겠군.”
* * *
“나머지 부대들은?”
“술레이만이 이끄는 부대가 방금 도착했습니다. 아불 헤이자를 제외한 모든 부대가···.”
“그럼 아불 헤이자가 습격받았다는 소식이 맞는 거로군.”
살라딘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주변에 선 에미르들을 바라봤다. 그들 모두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 무슨 일이 있어도 행군을 계속하라고 한 건 술탄이셨습니다.”
“저희는 그저···.”
“그대들을 책망하려는 생각은 없소. 애초에 그런 명령을 내린 건 내가 맞으니.”
살라딘이 말했다.
“비록 보두앵이 수작을 부리긴 했지만, 우리의 피해는 그리 크지 않소. 주력 부대들은 아직 건재하고 병사들의 사기도 조금씩 회복되고 있지.”
그가 덧붙였다.
“지하드는 이제 시작이오.”
“대군이 모였으니 이대로 북상해 보두앵을 포위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한 에미르가 말했다.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아불 헤이자의 군대와 맞서 싸웠으니 놈들도 큰 피해를 입었을 겁니다.”
“왕을 사로잡으면 프랑크 놈들도 항복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첩보에 따르면 프랑크인들의 주력은 아스칼론으로 떠났다 합니다. 케락에 남아있는 건 보두앵뿐입니다.”
“···.”
살라딘은 입을 다문 채 에미르들의 대화를 들었다.
보두앵이 주력을 떠나보내고 그곳에 홀로 남은 이유는 뭘까?
‘자기한테 와서 싸우라는 거군.’
이미 에미르들은 보두앵을 붙잡을 생각에 흥분해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케락을 치지 않는다면 그가 겁에 질렸다고 생각할 게 분명했다.
보두앵이 노린 것도 아마 이런 상황.
“하지만 무너지지 않는 성은 없지.”
보두앵은 자신을 잡아보라며 스스로 함정에 들어갔다. 하지만 아무리 보두앵이라도 모든 상황을 예측할 수는 없는 법.
지금 지하드의 규모는 그 어느 때보다 크고 강력했다. 모든 상황이 그가 유리하다는 걸 가리켰다.
“그렇다면 술탄의 뜻은···.”
살라딘이 탁자 위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도를 바라본 에미르들 모두 숨을 들이마셨다.
“케락.”
살라딘이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우린 케락을 칠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