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17)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17화(17/215)
예루살렘을 향해 (2)
* * *
거리는 수많은 에일라트 시민들로 가득 찼다.
예루살렘으로 떠나는 날.
“고귀한 예루살렘 왕실의 일원이시자, 국왕 폐하의 대리인이신 보두앵 공자께서 지나가신다!”
포고관의 목소리가 거리와 성벽에 쩌렁쩌렁 울렸다.
하지만 내게 들리는 건 따로 있었다.
“그 검술은 이미 십수 년 전에 파훼당한 지 오래입니다. 차라리 검날을 손으로 잡고….”
“이런 멍청한 녀석 같으니라고! 그건 갑옷을 안 입은 놈들한테만 먹힐 거다. 그러느니….”
가니에르와 위그가 서로에게 삿대질하며 말싸움을 벌였다.
지난 며칠 동안 수십 번은 넘게 본 것 같은데.
두 사람은 내 스승 자리를 놓고 계속 경쟁을 벌였다.
‘고래 싸움에 내 등만 터지는 건가.’
훈련이 빡세지면서 나만 죽을 지경.
난 두 사람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두 분 다 그만 싸우시죠. 다른 사람들이 보면 오해하겠습니다.”
“흠흠, 싸우다니요. 저와 스승님은 어디까지나 공자님께 적절한 검술을 찾기 위해서 토론하는 겁니다.”
“네가 바보 같은 주장만 안 해도 될 거다. 나병에 걸린 나도 제대로 못 이기는 놈이….”
“제가 아프신 스승님을 봐 드리는 걸….”
내가 헛기침하자 두 사람 모두 말을 멈췄다.
내 곁의 에이그는 계속 웃기만 했다.
“아무래도 두 분은 못 말릴 것 같군요. 전 시민들이랑 작별인사나 나눠야겠습니다.”
난 고개를 흔들며 말에서 내렸다.
경호병들의 삼엄한 감시 아래 사람들이 내게 다가왔다.
난 그들과 일일이 악수와 인사를 나눴다.
그중에는 날 따라 에일라트로 온 유대인 족장, 에마누엘도 있었다.
그가 내 손을 꽉 붙잡았다.
“시나고그(유대교 사원) 재건을 지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공자님께서 예루살렘에 무사히 도착하실 수 있게 저희들 모두 매일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한 말씀이시군요. 시나고그 재건에 필요한 자재는 베네치아인들에게 준비해두라고 했습니다. 제가 직접 의뢰했으니 돈을 부풀려 받진 않을 겁니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단순히 사원 재건을 허락했다고 이렇게 감사를 표하다니.
그만큼 흔하지 않은 일이라는 건가.
유대교와 콥트, 동방 정교회는 레반트에서 항상 박해받는 종교들이었다.
현실에서도, 그리고 라스트 크루세이더즈 게임에서도.
‘21세기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21세기라고 완벽하진 않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ISIL의 콥트 정교회 집단 참수.
코소보 분쟁 등등.
천 년이 흐른 후에도 크게 바뀌진 않으니까.
오히려 지금 예루살렘 왕국이랑 이슬람 국가들이 21세기 근본주의자들보다 더 개방적인 것 같은데.
에마누엘과 포옹을 나누던 그때, 터번을 쓴 사내가 다가왔다.
상인 같은 옷차림.
그가 아랍어로 말하며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다음 순간, 그의 품에서 검집이 꺼내져 나왔다.
검집?
“암살자다! 저 자식이 어디서 감히…!”
“아사신이다!”
그걸 본 가니에르와 에이그, 다른 경호병들이 검을 빼 들었다.
불트도 분위기를 읽었는지 앞발을 치켜세웠다.
“정지! 모두 멈추세요!”
내가 소리쳤다.
상인에게선 아무런 적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
당혹감이랑 공포.
진짜 아사신이었다면 이런 감정들은 안 느껴졌겠지.
상인이 바들바들 떨며 절했다.
그가 다급한 어조로 말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한테 주려는 것 같은데.
난 가니에르를 바라봤다.
“뭐라고 하는 겁니까?”
“공자님의 호위 덕분에 이곳 에일라트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다는군요. 자기들 상단을 대표해서 선물을 가져왔답니다.”
가니에르가 상인을 향해 뭐라 소리쳤다.
곧이어 그가 상인에게서 단검을 받아 가져왔다.
한눈에 봐도 비싸 보이는 검집과 손잡이.
난 검을 꺼내 바라봤다.
검날엔 신기하게 생긴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가니에르가 계속해서 상인의 말을 통역했다.
“다마스쿠스에서 만든 단검이라고 하는군요. 공자님께 꼭 선물로 드리고 싶었답니다.”
이게 그 유명한 다마스쿠스 강이라는 건가.
‘바위도 쳐서 자를 수 있다!’는 명성으로 잘 알려진 다마스쿠스 검.
허풍이 어느 정도 섞이긴 했지만, 현재 존재하는 검 중에선 최고 품질일 텐데.
난 상인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런 귀한 선물을 받게 될 줄은 몰랐군요. 잘 쓰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덧붙였다.
“하지만 다음엔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검을 들고 왕족한테 다가가는 건 사실상 자살시도나 마찬가지니까요.”
가니에르의 통역을 들은 상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물러선 후에도 사람들은 계속 몰려들었다.
행렬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건 거의 한 시간은 지난 후였다.
발리앙이 내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이곳 시민들 사이에서 공자님을 칭송하는 목소리가 크더군요. 공자님께서 매일 거의 일만 하셨다고 하던데….”
그가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좋아하시던 사냥은 자주 안 나가신 겁니까?”
“나갈 여유가 없었다고 해두죠.”
난 고개를 흔들었다.
잠잘 시간도 부족했던 마당에 사냥이라니 말도 안 되지.
각종 행정 작업에 시민들 불평 들어주기, 재판 주재 등등.
왕족이자 왕실대리인으로서 해야 할 일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래도 보람이 없지는 않네.’
고개를 뒤로 돌리자 에일라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거리에 가득 찬 사람들.
항구에서 들려오는 뱃소리.
보수가 끝난 성벽들까지.
처음 왔을 때의 황폐한 모습과 정반대였다.
내가 아니었으면 도시가 이렇게 바뀌진 않았겠지.
원래 역사에서 에일라트가 재건되는 건 한참 후의 이야기.
‘처음엔 그냥 자금을 확보하고 르노를 막으러 왔던 거였는데.’
고향에 돌아온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생각에 빠져 도시를 바라보던 그때, 뭔가 오묘한 느낌이 들었다.
불길한 예감.
[설명할 수 없는 육감]인가?아니면 그냥 내 착각?
내가 멍하니 서 있자 가니에르가 다가와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공자님?”
“그러고 보니 지난 며칠 동안 케락 쪽 소식을 못 들은 것 같군요. 르노 영주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답니까?”
“계속 케락 성채에만 박혀 있다고 하더군요. 공자님께서 나서신 이후로 계속 기죽어 있는 게….”
“그렇군요.”
난 생각에 빠졌다.
르노가 이렇게 순순히 포기할까?
아니면 무리수를 둬서라도 주도권을 되찾으려고 할까?
녀석의 다음 움직임을 정확히 파악할 순 없었다.
‘그러면 보험을 한 번 둬볼까.’
돌다리도 짚어보고 건너는 게 낫겠지.
생각을 마친 난 발리앙과 위그에게 손짓했다.
“출발하기 전에 세 분께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가니에르 경은 잠시 에일라트에 남아 계시고….”
“하지만 공자님을 따로 보내고 혼자 이곳에 남아 있을 순 없습니다. 국왕 폐하께서도 제게 직접….”
가니에르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난 그런 그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경만 이곳에 두고 예루살렘에 갈 생각은 없으니까요.”
호기심 어린 표정의 세 사람을 앞에 둔 채, 난 계속해서 말했다.
“예루살렘에 가기 전에 잠시….”
* * *
케락 인근의 베두인 영역.
어두운 천막을 배경으로 수십의 인영들이 일렁거렸다.
수많은 창날과 검들이 달빛에 비쳐 별처럼 반짝였다.
“우리 부족에 찾아온 걸 환영하오, 케락의 타리크여. 낙타의 피와 말의 영혼이 그대와 함께하길 빌겠소.”
“이렇게 환대해줘서 감사합니다, 쿠르부가 족장.”
흑인 집사장, 타리크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그가 주변을 힐끗 보며 침을 삼켰다.
바다위 전사들 모두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언제든지 달려들어 사지를 조각낼 기세.
족장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 바다위 부족들은 모든 손님을 환영하오. 설령 그게 이교도 밑에서 굽신거리는 배신자일지라도 말이오.”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환대하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건 용서해주시오. 얼마 전 프랑크인들과 싸우다 죽은 장정들만 수십이 넘소.”
“예루살렘에서 에일라트로 가던 보두앵 공자를 말하는 거군요, 안 그렇습니까?”
타리크의 물음에 부족장은 차가운 눈빛으로 응시할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족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르노의 집사장인 그대가 왜 우릴 찾아온 것이오? 분명 바치기로 했던 연공은 아직 몇 달이나….”
“케락의 영주께선 올해 연공을 안 받을 의향이 있으십니다. 중단했던 식량 거래도 재개할 수 있고요.”
“르노 영주가 우리에게 연공을 면제해주겠다니. 차라리 그가 이슬람으로 개종했다는 게 더 설득력 있겠군.”
“물론 그에 앞서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타리크가 검지를 치켜세웠다.
“당신들을 비롯한 다른 바다위 부족들이 에일라트를 치는 것. 그게 연공을 면제받을 조건입니다.”
“에일라트를 치라니.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오?”
쿠르부가 족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거긴 프랑크인들의 도시가 아니오? 그대들이 보두앵이라 부르는 왕족 소년이 그곳을 재건했다고 들었는데?”
“그 소년은 며칠 전 도시를 떠났습니다. 도시에 남은 건 유대인과 어중이떠중이들뿐이죠.”
타리크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의 두 눈이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났다.
“내일모레 늦은 밤이 되면 에일라트 동쪽의 아카바 성채가 성문을 열어줄 겁니다. 당신들은 그쪽을 통해 도시를 치면 됩니다.”
“….”
짧은 침묵이 흘렀다.
이내 족장이 입을 열었다.
“르노 영주가 뭘 원하는지 대충 알 것 같군. 프랑크인이 프랑크인 도시를 공격해달라니. 아마 서로 권력을 놓고 싸우는 거겠지.”
쿠르부가가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보고 그 어린 소년의 콧대를 대신 짓눌러달라는 거 아니오? 자기는 직접 못 나설 테니.”
“자세한 사정은 그쪽이 알 바 아닙니다.”
“그야 그렇겠지. 하지만 우리가 그런 제안을 선뜻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한 거요?”
바다위 족장이 일어서며 말을 이었다.
“그대들 프랑크인들이 우리 무슬림과 약조한 걸 어긴 건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오.”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식량이 필요하실 텐데요? 올해는 기근이지 않았습니까?”
타리크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천막 밖으로 얼굴을 내민 여인과 아이들.
그들 모두 굶주림으로 지쳐 있는 표정이었다.
“무리하면서까지 프랑크인들을 습격한 것도 그래서고요.”
“그대들이 이 땅을 점령하기 전까지 우린 평화롭게 도시들과 교역하면서 지냈소. 가뭄이 들 때도 굶는 일은 없었지.”
쿠르부가의 목소리가 끓는 물처럼 부글부글거렸다.
그가 흑인을 향해 삿대질했다.
“다른 도시들이 우리와 교역하지 못하도록 금지령을 내린 건 그대의 주인이오, 그 가증스러운 케락의 악마가…….”
“앞서 말했듯이….”
타리크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프랑크인 병사들이 낑낑거리며 상자들을 들고 왔다.
과일과 야채.
그리고 콩과 밀, 기름까지.
상자를 본 주변의 전사들이 꿀꺽 침을 삼켰다.
“케락의 영주는 이전에도 자신이 한 약속을 어겼소. 고작 이런 과일 몇 개 가지고 우리 부족을 매수하려는 거라면….”
“결정을 내리기 전에 신중히 생각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흑인 집사장이 말했다.
“이 관대한 제안을 거절한다면 영주님께선 직접 군대를 이끌고 오실 거라 하셨습니다.”
“매년 듣던 협박이로군.”
둘 사이로 침묵이 흘렀다.
언제라도 피가 오갈 것 같은 분위기.
사막이 어둠이 에워싼 가운데, 두 사람은 마침내 악수를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