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173)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173화(173/215)
< 173화 – 케락 공성전 (3) >
아스칼론 외곽
“도대체 왜 대기 명령을 내리신 겁니까?”
발리앙이 말에서 내리며 물었다.
레몽 백작은 그의 앞에서 망원경을 들고 있었다.
“저길 좀 보게. 놈들이 성벽 주변에 참호를 파놨어. 그리고 병사들은 장창을 들고 있네.”
레몽 백작이 망원경을 건네며 말했다.
“척후의 보고로는 해상 쪽에서 보급을 받고 있다더군. 아마 이집트 함선을 이용한 거겠지.”
“저흰 놈들과 대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스칼론을 구원하러 온 겁니다.”
발리앙이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놈들을 몰아내야 합니다.”
“타키 앗딘이 끌고 온 병력은 적지 않네.”
레몽이 답했다.
“그리고 참호에 돌격시키는 건 도살장으로 밀어 넣는 거나 마찬가지야. 기병이 모두 죽으면 누가 케락을 구원하러 가겠나?”
“그럼 어떻게 하자는 말씀이십니까?”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놈들을 압박하는 수밖에 없네. 우선 베네치아와 제노바에 연락해 함선들을 지원받아야겠지.”
레몽이 답했다.
“놈들의 보급망을 끊고 사기가 떨어지게 만들어야 하네.”
“그러려면 최소 몇 주는 걸릴 겁니다.”
발리앙은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케락은 살라딘의 맹공을 받고 있을 터였다.
“저희가 이곳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거야말로 사라센 놈들이 원하는 상황이겠죠.”
“우리가 저 참호들을 향해 돌격하는 거야말로 사라센들이 원하는 상황이네.”
“저희가 돌격에 나서면 분명 아스칼론에서도 호응할 겁니다. 그럼 놈들을 양쪽에서 압박할 수 있습니다.”
“만약 놈들이 우리 공격을 막아낸다면 어떻게 되겠나?”
레몽이 발리앙 앞에 서며 말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매서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해상으로 들어오는 보급이 끊기면 놈들은 결국 버티지 말고 도망칠 걸세. 그때가 공격할 기회야.”
“그때까지 케락이 버틴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발리앙이 답했다.
“만약 폐하께서 살라딘에게 붙잡히기라도 하신다면, 3차 십자군도 물거품이 될 겁니다.”
“지금은 보두앵 폐하를 믿는 수밖에 없네.”
레몽이 말했다.
“폐하께선 내게 주력을 맡기셨어. 난 예루살렘의 미래를 도박 수에 던질 수 없네.”
“만약 케락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발리앙이 고개를 돌리며 덧붙였다. 모래바람이 두 사람을 스치며 휘감았다.
“백작께서 책임을 지셔야 할 겁니다.”
* * *
케락
“폐하! 4번 항아리에서 소리가 들린답니다!”
“알았어! 미리 그쪽에 인부들을 대기시켜 놓으라고 해!”
쇠뇌를 내려놓고 성벽을 내려가자 병사들이 양옆으로 비켜섰다. 곳곳에서 화살과 돌덩어리가 비오듯 쏟아졌다.
성벽 아래에 도착하자 에이그가 숨을 헐떡이며 다가왔다.
“제르날과 다른 인부들이 이미 그쪽에 가 있습니다. 폐하만 오시면 됩니다!”
난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그때 뭔가 커다란 게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투석기에서 쏜 돌덩어리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왔다.
돌이 떨어질 탄착점에는 두 병사가 서 있었다.
그들을 향해 있는 힘껏 소리쳤다.
“이봐 자네 둘! 당장 거기서 피해!”
“예?!”
병사들이 날 보며 당황한 눈빛으로 외쳤다. 왜 피하라고 하면 피하질 않는 걸까.
“당장 거기서 피하라고!”
정신을 차리자 둘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난 양팔을 뻗어 두 사람을 덮치듯 밀었다.
쿠쿵―――
울퉁불퉁한 돌덩어리가 방금까지 있던 곳에 떨어졌다. 사방을 뒤덮은 흙먼지가 가라앉고, 에이그가 달려왔다.
“폐하! 폐하,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아.”
다행히 돌에 부딪친 곳은 없는 것 같았다. 부러진 뼈도 없군.
두 병사는 여전히 얼떨떨하다는 표정으로 땅에 쓰러져 있었다.
“자네들은 괜찮나?”
“예? 아, 예! 괜찮습니다!”
“그래, 감사 인사는 필요 없으니 다시 자네들 위치로 가게.”
내가 말했다.
두 사람을 밀칠 때 힘을 너무 줬는지 팔이 욱신거렸다. 내일 되면 엄청 쑤시겠군.
“그리고 앞으로 피하라고 하면 제때 좀 피하게.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아,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두 사람은 서둘러 성벽 위로 올라갔다. 에이그가 안도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신 겁니? 폐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왕국이···.”
“걱정 마, 아직 죽을 생각은 없으니까. 그럼 어서 항아리 쪽으로 가자고.”
난 달려가며 주변을 살폈다.
적들은 공성탑을 성벽에 들이밀며 공격했다.
하지만 공성탑보다 높게 쌓은 임시 성벽 덕분에 우리가 유리했다. 병사들이 나무판자들 위로 올라가 쇠뇌와 활을 쐈다.
피, 땀 냄새가 뒤섞인 악취가 코를 찔렀다. 거기에 귀를 흔드는 소음들까지.
“폐하! 이쪽입니다!”
제르날이 손을 흔들며 외쳤다. 그의 얼굴과 옷은 흙더미로 더러웠다.
이미 주변엔 인부들이 곡괭이로 땅을 파고 있었다.
“언제부터 소리가 들린 건가?”
“그리 오래되진 않았습니다. 첫 번째 공성탑이 성벽에 닿기 전입니다.”
“그럼 땅굴을 파면서 동시에 공성탑으로 공격한 거군. 전형적인 성동격서인가.”
난 성벽을 바라봤다. 우리가 땅굴을 눈치채더라도 방해하지 못하게 하려는 수작이겠지.
‘자칫하면 땅굴을 빼앗길 수도 있으니.’
하지만 난 성벽 밖으로 나가 힘겹게 땅굴을 빼앗을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항아리를 설치해둔 것도 그래서였고.
지청地聽.
항아리나 물그릇을 땅에 두면 진동을 통해 적의 땅굴 작업을 알 수 있었다.
아시아에선 흔히 쓰이던 방법이었지만, 이곳 레반트에선 최첨단 신기술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간단한 방법이 정말 효과가 있다니 놀랍군요.”
“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었어? 가서 미리 준비해둔 방패를 갖고 오라고 해, 에이그. 나머진 성묘단원들한테 맡겨야겠어.”
“알겠습니다.”
에이그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반대편으로 달려갔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맞땅굴이 제때 도달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폐하.”
제르날이 이마의 땀을 훔치며 말했다.
“적 땅굴이 어디서 오는지 대충 방향은 안다 쳐도 정확한 위치는 모르니까요. 땅굴을 여러 방향으로 파면서 닿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덧붙였다.
“설령 운이 좋다 해도 최소 몇 주는 걸릴 겁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네.”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제르날의 말이 옳기는 했다.
항아리를 통해 땅굴이 오는 방향을 알아낸다 해도,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었다.
적들의 목표는 성안까지 오는 게 아니라 성벽 아래까지만 땅굴을 파는 거였다.
그만큼 시간도 촉박하다는 뜻.
‘땅굴을 여러 개 파면서 언젠가 마주치길 바라는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내겐 육감이 있었다.
땅굴 위치를 알아내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
“내가 직접 들어가서 방향을 말해주겠네.”
내 말에 제르날이 팔을 흔들며 외쳤다.
“폐하께서 직접 땅굴 안에 들어가시겠다니요? 그건 절대 안 됩니다!”
놀란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에서 당혹감이 물밀듯 쏟아졌다.
“아무리 보강을 한다고 하지만 땅굴은 언제 무너질지 모릅니다! 작업은 부디 저와 인부들에게 맡겨주시지요.”
“난 자네들을 믿네. 하지만 적 땅굴의 위치를 알아내려면 내가 직접 들어가야 해.”
애초에 깊게 들어갈 필요도 없고. 내가 방향과 위치를 알아내면 그쪽을 향해 일직선으로 맞땅굴을 파면 됐다.
“하지만 너무 위험한 일입니다.”
제르날이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중얼거렸다.
“만약 폐하께서 안에 계실 때 땅굴이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그럼 안 무너지게 파면 되는 것 아닌가?”
내가 웃으며 답했다. 땅굴이 무너져서 죽으면 그건 그것대로 웃기긴 하겠군.
‘3차 십자군을 결성하고 예루살렘 공의회를 이끈 보두앵 국왕, 케락 공성전 중 땅굴에 생매장되어 죽다.’
그런 식으로 역사에 남긴 싫은데.
그사이 에이그와 방패와 단원들을 데리고 달려왔다.
땅굴 안에서 쓰도록 개조한 방패는 창을 집어넣는 구멍이 따로 뚫려 있었다.
땅굴을 열심히 파던 무슬림 병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둠 속에서 갑자기 방패와 창을 든 적들이 나타나면 나라도 놀라겠지.
“땅굴에 들어가는 건 저희 튜튼 기사단에 맡겨주시지요, 폐하.”
알브레히트 단장이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튜튼 기사단은 호출한 기억이 없는데.
“땅굴에서 싸우는 건 자네들이 원하는 ‘신성한 전투’와 좀 거리가 있지 않나?”
“성도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라면 뭐든지 다 신성하지 않겠습니까?”
알브레히트가 루아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잔뜩 화가 난 표정.
“그리고 저 덩치만 큰 성묘단 녀석들은 땅굴 안에 제대로 들어가지도 못할 겁니다.”
“그럼 그쪽은 뱃살부터 집어넣고 말하지 그러나? 저번에 보니까 나무판자 나르는 것도 제대로 못 하던데?”
루아크가 웃으며 답했다. 내 추궁하는 눈빛에 그는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또 둘이서 신경전이라도 벌였나 보군.
“뭐라고?! 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는 바이킹 놈들이···.”
“그럼 성묘단과 튜튼 기사단원들 양측이 함께 들어가게.”
뭐 이 정도면 아직 건강한 경쟁이라고 할 수 있겠지. 서로 머리끄덩이 잡고 싸우는 건 아니니.
“지금은 적에게 집중할 때네. 적들이 성벽을 넘어올 때까지 서로 싸우고 있을 건가?”
루아크와 알브레히트 두 사람 모두 입을 다물었다. 제일 나이 어린 내가 선생님 노릇을 하고 있군.
난 주변에 놓여 있던 곡괭이를 하나 집어 들었다.
“자네들도 그렇게 말다툼할 여유가 있으면 어서 와서 맞땅굴 파는 것부터 돕게.”
“만약 제때 적의 땅굴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제르날이 중얼거렸다.
난 그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제때 도달할 걸세. 그러니 자네들은 내가 말하는 방향으로 파기만 하게.”
* * *
“도대체 얼마나 더 걸린다는 거냐?”
“땅굴이 비좁아 이 이상으로 병사를 투입할 순 없습니다.”
알 아딜의 다그침에 장교가 움찔하며 답했다.
“거기에 공사를 서두르면 땅굴이 무너질 위험도 커집니다. 일단 최대한 안전히 작업하라고 일러뒀습니다.”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어.”
알 아딜이 혀를 차며 말했다. 살라딘은 그에게 땅굴 작업을 맡겼다.
성벽 아래까지 땅굴을 판 뒤, 나무기둥을 세우고 불을 붙인다.
성공만 한다면 손쉽게 성벽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지금까지 땅굴 작전이 항상 성공해왔다.
알 아딜은 고개를 돌려 뒤의 에미르(제후)들을 바라봤다.
노려보는 듯한 시선.
그들은 노골적으로 알 아딜을 견제했다.
“공성탑에 쓸 목재도 부족하다면서 온갖 핑계를 늘어놨으니. 정작 쓸모없는 건 공성탑이었군.”
적들은 공성탑에 대항해 성벽을 더 높이 쌓았다. 공성탑이 어찌어찌 성벽에 붙는다 해도, 병사들은 넘어가질 못했다.
거기에 적 투석기들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공성탑을 맞췄다.
“작업 인원을 멈추지 말고 계속 교체해라. 지친 자들은 안쪽 천막으로 옮기고. 작업이 한순간이라도 멈추면 안 된다.”
“장군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장교가 허겁지겁 땅굴 쪽으로 달려갔다. 땅굴에선 땀범벅이 된 병사들이 나오고, 다른 병사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밖에선 병사들이 흙을 수레에 실어 날랐다. 알 아딜은 기병대를 지휘하며 케락을 살폈다.
“놈들이 언제 성문을 열고 나올지 모른다! 땅굴을 빼앗기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하라!”
그 순간에도 망고넬 투석기들은 끊임없이 케락을 향해 돌을 쏟아냈다.
‘놈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개뿐이다.’
알 아딜이 속으로 생각했다.
가만히 앉아서 성벽이 땅굴에 무너지는 걸 구경하거나, 아니면 땅굴을 빼앗으려 하다가 격퇴당하던가.
제아무리 보두앵이라 해도 뾰족한 수는 없을 터.
“명심해라! 준비가 끝난 마지막 순간에 불을 붙이고 나와야 한다! 통나무를 하나라도 낭비해선 안 된다!”
그가 외쳤다.
“최종 승리는 우리 무슬림들이 거둘 것이다!”
“야 만수르!!!(만세)”
병사들이 함성으로 답했다.
알 아딜은 땅굴에서 울려 퍼지는 곡괭이 소리를 들으며 미소 지었다.
은 쇠고랑을 차고 질질 끌려 나오는 보두앵의 모습이 그의 눈에 선명히 보였다.
그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때가 되면 더 이상 잘난 척은 하지 못할 거다, 보두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