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176)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176화(176/215)
< 176화 – 광명으로 인도하소서 (1) >
“잉글랜드인들이 키프로스를 지나 아스칼론으로 이동 중이라···.”
“아직 시간은 남아있습니다, 형님.”
알 아딜이 말했다. 빗방울이 떨어지며 모래를 검게 적셨다.
“한 번만 더 놈들을 밀어붙이는 겁니다.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에일라트 쪽도 심상치가 않다. 아비시니아(에티오피아)의 군대까지 온 거라면 더 이상 이곳에 있어선 안 되겠지.”
살라딘이 천막 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병사들도 지칠 대로 지쳤다.”
“하지만 형님!”
“오늘 아침 보두앵이 보내온 서신이다. 한 번 읽어 보거라.”
서신을 건네받은 알 아딜이 글을 읽어내려갔다.
“전쟁에서 이미 이긴 공이 높으니 이만 만족함을 알고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그의 손이 부르르 떨리며 종이를 구겼다.
“감히 형님께 이런 조롱하는 서신을 보내다니 보두앵 저놈을···.”
“단순한 조롱이 아니야. 이만 돌아가라는 협박이다.”
살라딘이 여느 때처럼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가 포위를 푸는 조건으로 아불 헤이자를 내어주겠다더구나.”
“고작 아불 헤이자에 만족해 이번 전투를 끝낼 순 없습니다! 형님께서도 무슨 일이 있어도 케락을 손에 넣어야 한다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케락을 점령하는 게 가능할 때의 이야기였지. 이미 에미르(제후)들은 후퇴 준비를 하고 있어.”
살라딘이 말했다.
“보두앵이 아불 헤이자를 풀어주겠다고 한 건 내게 건넨 조건이 아니야. 에미르들을 노린 거다. 그들은 이미···.”
“아불 헤이자를 구한 걸로 만족하자고 하겠군요.”
“바로 그거다. 적당한 핑계가 생긴 셈이지.”
침묵이 흘렀다. 두 형제는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저번 공세로 병사들이 몇 명이나 죽었더냐?”
“···천오백입니다. 부상자는 대략 이천 정도입니다만, 아직 정확한 파악 중입니다.”
“천오백.”
살라딘이 중얼거렸다. 그는 빗방울 사이로 흐릿해진 케락을 응시했다.
“천오백이나 되는 무슬림들이 저 돌덩어리를 빼앗으려다 죽었군. 다 내 잘못이다.”
“프랑크 놈들도 피해가 적지 않을 겁니다. 좀만 더! 좀만 더 밀어붙이면 이길 수 있습니다!”
“아니, 더 이상 무의미한 공세를 계속할 순 없지. 타키 앗딘에게도 후퇴하라는 서신을 보내라. 이집트의 병력은 무슨 일이 있어도 보존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알 아딜이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하지만 이렇게 다마스쿠스로 돌아간다면 에미르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어떻게든 형님과 저희 가문을···.”
“난 몽기사르에서도 패배를 겪었었지. 하지만 결국엔 다시 일어섰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야.”
살라딘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원칙만 확고히 지킨다면 기회는 언제든지 다시 온다. 우선 다마스쿠스로 돌아가야 해.”
그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덧붙였다.
“에미르들에게 프랑크 놈들의 추격에 대비하라고 전해라. 따로 타격대를 구성하고.”
* * *
삼일 뒤
“정말 놈들을 뒤쫓지 않으실 겁니까?”
“비가 내릴 때 추격전은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지.”
내가 에이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살라딘의 대군은 천막을 걷고 퇴각 중이었다.
수만의 군대가 질서정연하게 대열을 맞춰 이동했다.
‘역시 살라딘은 살라딘이군.’
저렇게 침착하게 퇴각한다니.
포위를 계속해봤자 손해라는 걸 깨달은 거겠지.
“그리고 살라딘이라면 분명 추격에 대비할 거야. 아마 병력 일부를 숨겨놓겠지.”
비가 올 때는 매복한 적을 찾기 힘들었다. 괜히 추격하다가 매복에 당하기라도 하면 성이 다시 위험해진다.
“어쨌든 이번 전쟁에서 승리한 건 폐하이십니다.”
에이그가 웃으며 말했다. 성벽 곳곳에서도 기쁨에 찬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기사단원들은 성십자가를 들고 성벽을 빙빙 돌았다.
시민들은 시내 곳곳에 천막을 펴고 병사들에게 따뜻한 고기 음식과 술을 나눠줬다.
잔해 사이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구원군 없이 살라딘의 대군을 막아내지 않으셨습니까? 살라딘도 이번에 단단히 체면을 구겼으니 왕좌를 유지하기 힘들 겁니다.”
“그러면 좋겠지만···.”
난 말을 멈췄다. 살라딘은 레반트의 무슬림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그의 권력 기반은 제후가 아닌 백성들에게 있는 셈.
“살라딘을 얕보면 안 되겠지.”
르노 때 했던 것처럼 프로파간다를 이용해볼까? 살라딘을 향한 지지를 무너뜨릴 만한 방법이···.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노골적으로 그랬다간 역효과만 나겠지.’
속이 빤히 보이는 프로파간다는 오히려 안 하느니 못했다. 살라딘에게 오히려 좋은 일 해주는 게 될 수도 있고.
그때 한 병사가 소리쳤다.
“저기 누군가 성문으로 오고 있습니다!”
망원경을 들자 검은색 서코트를 걸친 기사가 보였다. 구호기사단의 복장.
가니에르였다.
“성문을 열어라!”
비를 맞으며 밖으로 나가자 가니에르가 멈춰 섰다.
“놈들이 포위망을 푸는 걸 확인하고 바로 달려왔습니다!”
그가 안장에서 내리며 소리쳤다.
“무사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폐하.”
“경도 무사한 것 같아 다행이군.”
내가 웃으며 답했다.
그의 갑옷은 전에 봤을 때보다 해져 있었다. 거기에 망토도 군데군데 구멍이 보였다.
‘그동안 계속 보급망을 치느라 고생했나 보군.’
가니에르가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순간 멈칫했다. 그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제 코가 이상해졌나 보군요.”
“몇 주 동안 오줌을 뒤집어쓰며 싸웠으니 무리도 아니지.”
“오줌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런 게 있습니다.”
에이그가 한숨을 내쉬며 끼어들었다. 난 웃음을 애써 참으며 가니에르에게 다가갔다.
그동안 공성전을 치르면서 바깥소식을 확인할 기회가 없었지.
우선은 정보를 파악해야 했다.
레몽과 발리앙. 그 두 사람은 왜 케락을 구원하러 오지 않은 걸까?
“아스칼론에서 온 소식은 없나?”
“이틀 전에 막 전투가 끝났다고 합니다. 아니, 사실 전투라 할 것도 없겠군요. 타키 앗딘이 그대로 도망쳤으니 말입니다.”
“타키 앗딘이 도망쳤다고? 자세히 설명해 보게.”
“이집트군은 아스칼론을 포위한 뒤에 참호를 파고 병사들을 장창으로 무장시켰답니다.”
“참호에 장창이라고?”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프리드리히 황제를 상대로 썼던 전술을 따라 한 건가?
거기에 참호라.
이건 무함마드가 메카 군대랑 싸울 때 썼던 전술과 같군.
그렇다면 타키 앗딘은 처음부터 예루살렘 주력과 맞붙을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아스칼론을 점령하려 한 게 아니었군.”
“예, 주력 기병들을 끌어내려 했던 겁니다. 발리앙 백작은 바로 전투를 벌이려 했지만 레몽 백작이 말렸다더군요.”
“레몽 백작이 옳았네. 만약 그대로 전투를 벌였다면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겠지.”
하지만 발리앙도 이해가 갔다.
최대한 빨리 놈들을 물리치고 케락으로 돌아오려 한 거겠지.
“그럼 타키 앗딘은 전투 없이 물러났다는 건가?”
“잉글랜드 군대가 접근하자 곧장 배를 타고 후퇴했답니다. 베네치아인들이 몇 척 침몰시키긴 했지만···.”
“주력은 지킨 모양이군.”
잉글랜드군이 상륙했다는 소식을 듣고 살라딘이 후퇴 명령을 내린 게 분명했다.
에이그가 끼어들었다.
“놈들을 그렇게 놓친 게 아깝긴 하군요. 모조리 바다에 수장시키기만 했어도···.”
“아쉬운 일은 맞지만, 그렇게 나쁜 결과는 아니야.”
난 생각에 빠졌다.
살라딘의 케락 공성전을 실패했고, 타키 앗딘은 아스칼론을 성공적으로 압박하고 후퇴했다.
어쩌면 이것도 이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아, 그리고 폐하께 소개해드려야 할 분이 있습니다.”
가니에르가 말했다.
“랄리벨라 국왕께서 곧 케락에 도착하실 겁니다.”
“랄리벨라?”
난 한 박자 늦게 가니에르의 말뜻을 깨달았다. 퍼즐 조각이 하나둘 맞아들어갔다.
“살라딘이 왜 그렇게 허겁지겁 도망쳤는지 이제야 알 것 같군.”
에일라트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적들. 이것보다 무서운 게 어디 있을까.
몇 년에 걸친 러브콜이 마침내 빛을 본 셈이다.
“가서 불트를 끌고 와 줘, 에이그. 귀빈을 맞으러 가야겠어.”
* * *
프랑스
파리 외곽의 왕실 사냥터
“명중입니다!”
“이번에도 훌륭한 솜씨이십니다, 폐하.”
“다리를 비틀거리는 사슴을 맞추는 게 훌륭한 솜씨는 아니지. 자네도 아부가 많이 늘었군, 발루아.”
필리프가 웃으며 말했다.
말에서 내린 그는 사냥꾼들에게 사슴을 가져오라는 손짓을 했다.
“제가 어찌 폐하 앞에서 거짓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발루아 백작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필리프는 대답 대신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성지에서 들어온 소식은 아직 없나?”
“케락이 사라센들에게 포위됐다는 소식이 마지막입니다. 이미 기사단 지부들이 곳곳에 종이를 뿌려대고 있습니다.”
“보두앵 왕이 케락에 갇혀 있다고 했지.”
필리프가 활을 시종에게 건네며 말했다. 목에 화살이 꽂힌 사슴이 피를 질질 흘리며 끌려왔다.
“만약 예루살렘의 왕이 사라센들 손에 붙잡힌다면 전설도 거기서 끝나지 않겠나?”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발루아 백작이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답했다.
“당장 성지로 가서 보두앵을 구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될 수도 있겠지요.”
“보두앵, 보두앵, 보두앵. 사람들은 그 이름이 질리지도 않는 모양이군.”
필리프가 말했다.
“요즘 저잣거리에서 아이들이 어떤 노래를 부르는지 아나? 리처드와 날 비교하며 대놓고 조롱한다더군.”
“전···.”
“아니, 그대가 모를 리가 없겠지. 어디 한번 말해보게.”
“오, 레반트로 떠나는 위대한 리처드 공작께 어서 전해주시게나. 내 눈에 공작은 사자요, 필리프 왕은··· 어린 양으로 보인다오.”
발루아 백작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저잣거리에 떠도는 노래들을 폐하께서 신경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리처드는 하루라도 빨리 출정하자고 날 다그치고 있지. 신하가 군주에게 출정을 다그치다니. 선왕들께서 본다면 혀를 차시겠군.”
필리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최근 들어 몇몇 영주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폐하.”
발루아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폐하께서 올해 안에 원정을 떠나지 않으신다면 자신들이 먼저 성지로 가겠다고 하는 이들도···.”
“마음대로 하라고 하게.”
필리프가 말했다.
“그럼 다른 영주들이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겠나? 어떻게든 땅을 빼앗으려 들 터. 내가 떠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가지 않을 걸세.”
“···.”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상황을 지켜보세나.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우리가 아니지.”
필리프가 웃으며 말했다.
“설령 성도가 사라센 놈들의 손에 떨어진다고 해도, 그걸 되찾기 위해 십자군 원정을 가면 되는 것 아닌가?”
그가 덧붙였다.
“성도는 아직 멀쩡한데 왜 십자군 원정을 가야 한다는 건가?”
“성직자들이 폐하의 말씀을 들으면 그리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로마에선···.”
“교황 성하께는 곧 원정 준비가 끝난다고 전해드리게.”
필리프가 다시 말에 올라타며 말했다. 호위기사와 사냥꾼들이 그를 따라 몰려들었다.
“어떻게든 리처드 그 녀석이 먼저 레반트로 떠나게 해야 하네. 그래야 이 ‘어린 양’에게도 기회가 오지 않겠나?”
그가 덧붙였다.
“예루살렘 왕이 케락에서 붙잡혔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도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