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178)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178화(178/215)
< 178화 – 광명으로 인도하소서 (3) >
프랑스
파리
“그렇다면 툴리프 백작도 십자가의 서약을 했다는 건가?”
“예, 폐하. 다른 백작들이 모인 앞에서 서약했다고 합니다. 로마 교황청에서도 직접 신의 평화를 발표해···.”
“십자군 원정을 떠난 사이 영토를 지켜주겠다고 발표한 거로군.”
“예, 거기에 보두앵이 감사증들을 뿌리고 있습니다. 십자군 원정을 오는 영주들을 위해 특별히 자금까지 빌려준다더군요.”
“놈이 선의로 그런 짓을 할 리 없지. 처음부터 날 노린 게 분명해.”
“문제는 효과가 있다는 겁니다. 거기에 훈장이라는 것까지 만들어 기사와 영주들에게 나눠준다더군요.”
“훈장이라니? 그게 뭔가?”
“성도 수호에 공헌한 정도에 따라 예루살렘에서 주는 일종의 보상입니다. 사실은 작은 십자가에 불과하지만···.”
“다들 그걸 받으려고 안달이 났겠군. 그래서 십자가 서약을 하는 자들도 늘어난 거고.”
“제 생각도 폐하와 같습니다.”
발루아 백작이 필리프를 바라보며 답했다.
“이탈리아 코무네(도시) 연합에서도 신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할 수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보두앵이 요청하면 이탈리아 코무네들도 행동에 나설 거란 얘기군.”
“저번 베로나 사건으로 이탈리아인에선 보두앵 왕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필리프가 한숨을 내쉬었다.
왕실과 적대적인 귀족들은 이미 모두 십자가 서약을 마쳤다.
남은 건 그를 따르는 귀족들뿐. 심지어 그들도 압박을 못 버텨 하나둘 십자가 서약을 하고 있었다.
‘프랑스 왕이 십자군을 떠나지 않는다면 리처드와 함께 독수리가 될 자는 누구인가?’
보두앵이 남기고 간 계시는 올가미처럼 필리프의 목을 옭아맸다.
“가장 큰 문제는 성무금지령입니다. 만약 교황 성하께서 행동에 나서신다면 그때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발루아 백작이 말했다.
“설령 되돌릴 수 있다 해도 적지 않은 대가가 필요하겠지요.”
그때 한 기사가 집무실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폐하! 궁 앞에 파리 시민들이 모였습니다!”
“폭도들이 몰려왔다는 거냐?”
“아닙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서신을 전달하러 왔다고···.”
“서신을 전달하는데 왜 인파가 몰렸단 말이냐?”
발루아 백작과 필리프는 입을 다문 채 서로를 바라봤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예루살렘
정궁
“필리프도 결국엔 백기를 들었군요.”
에이그가 말했다.
“원정을 위한 세금까지 걷었으니 이제 십자군을 안 올 수는 없겠죠.”
“아무리 십자군을 오기 싫다고 해도 왕좌가 흔들리는 걸 참지는 못했겠지.”
난 한숨을 내쉬었다.
필리프도 살라딘 못지않게 만만치 않군.
성도권, 기사단 지부, 프랑스 영주들, 로마 교황청까지 총동원해서 겨우 끌어들였으니.
이탈리아에 도착한 서신은 파리까지 이동하며 엄청난 인파를 모았다.
필리프에게 보낸 감사증.
그건 사실상의 최후통첩이었다.
그리고 필리프는 결국 항복 선언을 했고.
“그런 자가 레반트에 와서 폐하의 말을 듣겠습니까?”
“그건 상관없어. 제아무리 필리프가 프랑스의 왕이라고 해도···.”
난 어깨를 으쓱였다.
“예루살렘의 왕은 나잖아.”
3차 십자군이 실패한 이유 중 하나는 명확한 지휘권의 부재였지. 독일 귀족, 프랑스 왕, 잉글랜드 왕이 뒤섞여 있었으니.
필리프가 병 핑계를 대고 도망치기 전까지, 지휘권을 둘러싼 알력 다툼이 존재했다.
‘하지만 내가 있으면 이야기가 다르지.’
알렉시오스의 동로마군이 참전한다 해도, 나와 예루살렘 왕국의 지원 없이는 싸울 수 없었다.
애초에 알렉시오스랑 내가 서로 으르렁거릴 사이도 아니고.
십자군의 총지휘를 맡는 건 나인 셈.
“고작 작은 십자가를 상으로 준다고 이렇게 반응이 뜨거울 줄은 몰랐습니다.”
에이그가 머리를 긁적였다.
“훈장이라는 게 대단하긴 하군요.”
“훈장은 단순히 철 쪼가리일 뿐이야. 중요한 건 그 안에 담긴 의미지.”
난 케락 공성전이 끝난 후 훈장 제도를 손질했다. 전쟁 중 공을 세운 자들을 위한 왕국 훈장.
그리고 프랑스, 잉글랜드, 이탈리아처럼 유럽의 외국인들에게 주기 위한 성도 훈장.
이 훈장은 예루살렘에 기부한 금액, 십자군 원정 여부에 따라 수여됐다.
“경쟁 영주들이 훈장을 받는데 자기만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내가 웃으며 물었다.
지금 시대는 종교가 모든 걸 결정했다.
‘기독교.’
이 세계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려면 남들보다 종교적, 도덕적 자격이 있다는 걸 증명해야 했다.
난 훈장을 그 수단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9개의 등급으로 나뉜 철십자가.
영주들은 급이 높은 훈장을 받기 위해 경쟁하듯 기부하며 십자군 원정을 발표했다.
“성도 예루살렘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겠군요.”
“파리에서 훈장을 준다고 해도 그게 이탈리아 귀족들한테는 별 의미가 없지.”
에이그의 말대로 성도 예루살렘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때 집무실 문이 활짝 열렸다.
“폐하, 이제야 인사를 드리는군요. 케락에서 승전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슬갑옷 차림의 기사가 성큼성큼 걸어들어왔다.
윌리엄 마셜.
헨리 2세와 달리 그는 여전히 쌩쌩한 얼굴이었다.
“마셜 경. 이거 오랜만이군요.”
난 자리에서 일어서 그를 반겼다. 마셜의 허리춤에 익숙한 검이 보였다.
“아, 젊은 헨리 폐하께서 제게 직접 맡기신 겁니다. 자신을 대신해 예루살렘에서 싸워달라고 하시더군요.”
성검 칼리부르누스(엑스칼리버).
내가 직접 젊은 헨리에게 줬던 선물이었다.
브리튼의 성검을 예루살렘에서 보게 될 줄이야.
“젊은 헨리 폐하께선 직접 성도에 오고 싶어 하셨습니다만···.”
“누군가는 남아서 잉글랜드를 지켜야 하겠죠.”
내가 웃으며 답했다.
잉글랜드에서 오는 지원군은 리처드, 윌리엄 마셜, 헨리 2세로 충분했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차고 넘칠 정도. 젊은 헨리는 유럽에 남아서 필리프가 떠나도록 압박해야지.
“여유가 있으시다면 오랜만에 검술 훈련은 어떠십니까? 마침 제가 유럽에서 새로 만든 창을 몇 개 들고 왔는데···.”
집무실 문이 다시 활짝 열렸다.
손에 종이를 잔뜩 든 가니에르가 들어왔다.
“폐하, 말씀하신 기사단 내부 자료들을 다시 가지고···.”
가니에르가 마셜을 보더니 멈춰섰다. 두 사람 다 서로를 빤히 바라봤다. 이거 뭔가 어색한데.
“가니에르 경. 이쪽은 잉글랜드에서 오신 윌리엄 마셜 경이네.”
내가 헛기침하며 말했다.
“마셜 경. 이쪽은 구호기사단의 가니에르 경입니다.”
“보두앵 폐하께 검술을 가르치신 분이 경이라고 들었습니다. 이것 참 영광이군요.”
마셜이 웃으며 손을 뻗었다.
가니에르 역시 웃으며 그 손을 맞잡았다.
“윌리엄 마셜 경. 마상시합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기사. 레반트에서도 경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게 대단한 실력은 아닙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죠.”
둘 다 웃으며 말하고 있었지만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헬스장에서 덩치가 비슷한 두 근육쟁이들이 마주친 느낌?
서로를 탐색하는 듯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폐하, 그럼 이만 훈련장으로 가시죠. 제가 새 창이랑 검술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마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가니에르가 끼어들었다.
“마셜 경, 폐하의 검술 훈련을 맡은 건 접니다. 만약 폐하께 알려드리고 싶은 검술이 있다면 먼저 제게 보여주시죠.”
가니에르가 말했다.
“제가 검토 후에 훈련에 적용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보두앵 폐하께서 유럽에 계시는 동안엔 제가 검술 연습을 도와드렸습니다. 가니에르 경께서 가르치신 검술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마셜이 빙긋 미소 지었다.
“몇 군데 수정할 부분이 있더군요. 예를 들어 독수리 자세 같은 경우는··· 아, 아닙니다. 제가 괜한 말을 했군요. 부디 무례를 용서해주시지요.”
“아닙니다, 계속 말씀하시죠.”
가니에르가 말했다. 눈꺼풀이 살짝 떨린 것처럼 보였다.
“검술에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고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문제를 지적한다고 발끈할 정도로 제가 속 좁진 않습니다.”
“역시 성도 예루살렘의 기사단원이시군요. 제 생각엔 왼발을 먼저 내디디면 무게 중심이 안 맞아서···.”
“왼발을 먼저 내디뎌야 무게 중심이 맞습니다. 설마 오른발을 먼저 내디뎌야 한다는 말씀은 아니시겠지요?”
대화가 몇 번 오고 가더니 이내 날 선 싸움으로 변했다.
두 사람 모두 날 바라봤다.
“폐하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
난 에이그를 바라봤다. 녀석은 끼어들기 싫다는 듯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상황인가.
“두 사람이 한 말 다 장단점이 있는 것 같네만.”
“그렇다면 누가 옳은지 알아낼 방법은 하나뿐이겠군요.”
“저도 동감입니다, 마셜 경. 그럼 훈련장에서 확인해보도록 하죠.”
가니에르가 날 바라봤다.
“폐하께서 직접 심판을 맡아주신다면 영광이겠습니다.”
“하지만 난 아직 검토해야 할 자료들도 있고···.”
“성도 예루살렘의 미래가 걸린 일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인 검술을 알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 생각도 가니에르 경과 같습니다.”
“알겠네, 알겠어. 그럼 훈련장으로 가보자고.”
난 한숨을 내쉬며 일어섰다.
그래도 기분전환은 좀 되겠지.
유럽 최고의 기사와
레반트 최고의 기사.
그 두 사람이 이렇게 애처럼 싸울 줄 누가 알았을까?
* * *
예루살렘
베네치아 폰다코(지부) 본부
“여기 적힌 숫자들이 전부 사실인가?”
마르코는 장부를 바라보며 이마를 찌푸렸다.
“놈들이 이렇게 많은 물량을 받고 있다고?”
“예, 거기에 지금 항구로 들어오는 양도 산더미처럼 많습니다.”
마르코 옆에 앉은 상인이 땀을 뻘뻘 흘리며 답했다.
“기회가 있을 때는 잡아야 한다고 마르코 님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맞네만···.”
마르코가 중얼거렸다.
장부에 적힌 상품 목록은 끝없이 이어졌다.
양초부터 시작해 목재, 강철, 곡물과 무기까지. 베네치아가 손해를 보는 동안 다른 해상도시들은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지금 다마스쿠스에 밀을 가져가면 거의 네 배가 넘는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절대 용납하지 않으실 걸세. 적들에게 식량과 무기가 넘어가는 걸 그냥 보고만 계시겠나?”
“하지만 지금까지도 사라센 도시들에서 잘 장사해오지 않았습니까? 알렉산드리아, 다마스쿠스, 알레포부터···.”
“하지만 이 정도 물량을 넘긴 적은 없었지. 보두앵 폐하께서 허락하실 리 없네.”
“하지만 물량을 최대한 확보하라고 하신 건 보두앵 폐하 아니셨습니까? 이대로 앉아서 손해만 볼 순 없습니다. 피사, 제노바, 아말피 놈들은 이미 행동에 나섰습니다.”
“우리만 가만히 있으면 손해가 더 커지겠군.”
“바로 그겁니다. 당장 행동에 나서야 다른 해상도시들을 겨우 따라잡겠죠.”
“···.”
마르코는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보두앵은 베네치아를 포함한 해상도시들에게 3차 십자군을 위한 보급 준비를 맡겼다.
식량과 보급품, 무기까지.
해상도시들은 경쟁하듯 물량을 확보했지만, 십자군 원정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그때 살라딘의 원정이 시작되며 사라센 도시들에선 식량값이 하늘을 뚫고 올라갔다.
해상도시 상인들은 이런 상황을 기회로 여겼다.
‘벌 수 있을 때 벌자!’
이 원칙에 따라 이들은 몰래 식량을 사라센 도시들에 공급했다. 남은 건 마르코가 이끄는 베네치아 지부뿐.
공급이 늘수록 값은 계속 떨어질 게 분명했다. 가만히 있을수록 얻을 이익이 줄어드는 셈이다.
고민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마르코가 한숨을 내쉬며 장부를 두드렸다.
“일단 폐하께 한 번 여쭤보도록 하지. 누가 알겠나?”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보두앵은 언제나 답을 내놓는 사내였다.
“그분께서 허락하시지 않더라도 다른 해상도시들을 멈출 순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