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18)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18화(18/215)
예루살렘을 향해 (3)
* * *
보두앵 공자가 떠나고 이틀 뒤,
에일라트 성벽.
병사와 기사들의 함성이 새벽의 고요를 깨고 울려 퍼졌다.
이제 막 보수가 끝난 성벽이 흔들릴 정도.
“놈들이 동쪽 성문으로 다가왔습니다!”
“성문에 추가 병력 배치하라고 한 건?”
“말씀하신 대로 징집병들을 배치해뒀습니다. 다행히 놈들에게 공성 장비는 없는 것 같더군요.”
“전부 다 기병들밖에 없군. 성을 함락할 수 없다는 건 본인들이 제일 잘 알 텐데.”
가니에르가 성벽 너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수백은 족히 넘는 말과 낙타들이 성을 둘러싸며 뱅뱅 돌았다.
익숙한 광경이었다.
“저번에 에일라트로 오면서 마주쳤던 놈들이야.”
바다위 부족의 전사들.
그들이 일으키는 뿌연 모래바람에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었다.
성벽 안쪽에선 소집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활과 석궁을 든 병사들이 우르르 성벽 위로 올라왔다.
모두 잔뜩 긴장한 표정.
“가니에르 형제께서 말씀하신 그대로군요. 공자님께서 떠나시자마자 놈들이 습격해왔으니 말입니다.”
한 구호기사가 말했다.
“형제께서 왜 이곳에 남으신 건지 이제야 이해했습니다.”
“내가 스스로 결정한 건 아무것도 없네. 그저 공자님의 말씀을 따랐을 뿐이지.”
가니에르가 투구를 뒤집어쓰며 답했다.
“애초에 내게 남으라고 명하신 것도 그분이었고.”
보두앵 공자가 며칠 전 그에게 말했던 그대로였다.
‘경은 잠시 이곳에 남아 있는 편이 낫겠습니다. 만약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면 그때 예루살렘에서 다시 합류하죠.’
그는 자신이 떠난 직후 에일라트가 공격을 받을 수 있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 말대로 벌어진 바다위 부족들의 습격.
운 좋게 예측이 맞았다고 하기엔 너무 절묘했다.
‘여기까지 내다보셨다는 건가.’
가니에르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때 다른 기사가 중얼거렸다.
“어차피 성벽도 못 넘는데 왜 저런 쓸데없는 짓을….”
“성벽을 못 넘는다고 해도 주변 마을과 과수원들을 약탈할 수는 있겠지.”
가니에르가 말했다.
“우리 수비 병력만으론 놈들을 막기 힘들어.”
“그럼 놈들이 에일라트 땅을 불태우는 걸 눈뜨고 구경만 해야 하는 겁니까? 이제 막 재건이 시작된 마당에….”
“걱정할 필요 없네. 이런 상황을 예측하신 공자님께서 아무 준비도 안 하셨겠나?”
가니에르가 씨익 미소 지었다.
그가 부하 기사의 어깨를 두드렸다.
“가서 봉화를 올리게.”
검을 빼 들며 그가 덧붙였다.
“곧 있으면 공자님께서 기사들을 이끌고 달려오실 거야.”
“하지만 공자님께선 며칠 전에 예루살렘으로 출발하신 게 아니었습니까?”
부하 기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가 지시를 내리며 물었다.
“이미 지금쯤이면 봉화가 안 보이는 위치까지….”
“글쎄, 과연 그럴지 어디 두고 보자고.”
함성과 소음 사이로 가니에르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에일라트 북부.
몽레알 요새.
“왜 우리가 여기 머무르는지 모르겠다고?”
“예, 공자님.”
에이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녀석이 답답하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지금쯤이면 예루살렘 본부에서 편하게 잘 수 있을 줄 알았는데요.”
“걱정하지 마, 예루살렘엔 곧 갈 수 있을 테니까.”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여기서 자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잖아? 음식도 괜찮은 편이고.”
난 접시 위에 올려져 있던 포도 한 알을 입에 집어넣었다.
나와 에이그가 지금 있는 곳은 에일라트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몽레알 요새.
에일라트 북부에 있는 구호기사단 요새 중 하나.
아늑하다고 하긴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불편하지도 않았다.
저기 땅바닥에서 자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낫지.
“예루살렘으로 출발하기 전에 잠깐 쉬는 거로 생각해.”
“제 잠자리만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쯤 예루살렘에서도 난리가 났겠죠.”
에이그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기사들이 훈련하는 소리가 창문 밖에서 들려왔다.
“공자님이 아무 연락도 없이 이곳으로 오셨으니까요. 왜 저희가 죄인마냥 이곳에 숨어야 하는 건가요?”
“숨어 있는 게 아니야. 때를 기다리고 있는 거지.”
난 창문 밖을 바라봤다.
언덕에 가려 보이진 않았지만, 에일라트가 바로 저 앞에 있었다.
과연 놈들이 내 예상대로 움직여 줄까?
답은 곧 알 수 있을 터였다.
“때라면….”
“글쎄, 르노가 움직이는 걸 기다린다고 해둘까.”
내 말을 들은 에이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때 바깥에서 누군가 소리치는 게 들렸다.
“저기 연기가 올라온다!”
“연기라고?”
훈련 중이던 기사들이 웅성거렸다.
에이그도 창문 쪽으로 달려갔다.
“봉화다! 에일라트 쪽이야!”
“에일라트에서 왜 봉화가….”
에이그가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내 쪽을 바라봤다.
“이래서 가니에르 경을 에일라트에 두고 오신 거군요!”
“에일라트를 맡긴 거야. 두고 온 게 아니라.”
내가 갑옷을 손짓하며 말했다.
역시 이렇게 되는 건가.
설마가 사람을 잡는군.
일이 벌어진 이상 이제 가장 중요한 건 시간이었다.
“빨리 갑옷 좀 입혀줘. 투구는 나중에 챙기고.”
“알겠습니다. 미리 준비해둬서 다행이군요.”
에이그가 능숙한 손길로 갑옷의 조임끈을 당겼다.
그때 아래쪽에서 철컹철컹하는 금속음이 들렸다.
위그와 발리앙, 그리고 다른 기사들이 방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왔다.
“주님께 맹세코! 정말 공자님 말씀대로 됐군요! 도대체 어떻게 아신 겁니까?”
위그가 소리치듯 물었다.
그의 초록색 망토가 양옆으로 흔들렸다.
“레반트에 사람의 미래를 읽는 사라센 마녀들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예측한 거지 미래를 읽은 게 아닙니다. 마녀에게 들은 건 더더욱 아니고요.”
내가 웃으며 답했다.
사실 에일라트를 떠나던 순간 느꼈던 불길함 덕분이긴 한데….
‘[육감]이 현실에선 이렇게 사기 능력일 줄 누가 알았을까?’
내가 세워둔 보험책은 간단했다.
예루살렘으로 곧장 가는 대신 에일라트 인근에서 잠시 머무는 것.
우리가 이곳에 머문다는 사실은 이곳 성채의 구호기사단을 빼면 아무도 몰랐다.
심지어 예루살렘 왕실마저도.
“지금 일일이 설명할 여유는 없는 것 같군요. 바로 에일라트 구원에 나서도록 하겠습니다. 기사와 말들을 준비해 주시죠.”
“공자님, 하지만 아직 정확한 상황을 파악 못 했습니다. 에일라트가 누구에게 습격을 받는지조차….”
발리앙이 고개를 흔들며 끼어들었다.
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따로 확인할 필요는 없습니다. 분명 바다위 부족들일 테니까요.”
“바다위 부족들이라니. 그들이 도대체 왜 에일라트를 습격하겠습니까? 차라리 살라딘이나 다른 사라센 에미르(제후)들의 군대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발리앙의 말이 맞겠지.
베두인 부족들은 지난번 전투로 큰 손실을 봤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누군가 뒤에서 그들을 사주한다면?
“르노 영주가 그들을 이용하는 거라면 어떨까요?”
“르노 영주가 말입니까?”
“이 근방에선 그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지금 이런 공격으로 이익을 얻을 사람도 르노뿐입니다.”
내가 말했다.
바다위 부족들은 이 공격으로 얻을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르노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내가 에일라트를 재건하고 순례자, 상단들을 호위하면서 그의 입지는 크게 타격받은 상태.
고작 열세 살짜리 애한테 기싸움을 졌으니 체면도 이만저만 아닐 테고.
‘주도권을 되찾아올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꾸밀 거야.’
바다위 부족들을 사주해 에일라트를 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생각에 빠져있던 그때 발리앙이 이마를 찌푸리며 물었다.
“바다위 부족들이 도시를 함락할 수 있게 르노가 도왔다고 하시는 겁니까? 르노가 그 정도까지 이교도들을 지원하진 않을 겁니다.”
“바다위 부족들에겐 성을 약탈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말했겠죠. 아니면 다른 조건을 내걸었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어찌 됐든 그런 약속을 지킬 생각은 없을 겁니다.”
에일라트가 아예 함락당하는 건 르노에게도 정치적 타격이 너무 컸다.
그보다는….
“성을 점령하지 못하면 바다위 도적들은 주변을 약탈하고 불태우겠죠.”
내가 계속해서 말했다.
“바로 그때, 케락의 영주인 르노가 재빨리 군대를 끌고 와 공격을 막아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에일라트를 사라센 손에서 구해낸 영웅이 되겠군요.”
발리앙이 중얼거렸다.
퍼즐이 이제야 하나둘 맞춰진다는 표정이었다.
“예루살렘 왕실과 베네치아, 그리고 공자님께서도 그만큼 르노에게 빚을 지는 셈이고요.”
“바로 그겁니다.”
내가 빙긋 미소 지었다.
그걸 노린다고 하면 베두인 부족들을 끌어들이는 것도 충분히 말이 됐다.
‘게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몇 번 있었고.’
라스트 크루세이더즈가 극악의 난이도로 악명 높은 이유도 그래서였다.
게임 속 모든 캐릭터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언제든 모든 방법을 활용했다.
‘말 그대로 모든 방법.’
자기 신념이나 사상도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바꿀 정도였으니까.
수천 시간 넘게 플레이했는데 이 정도는 예측할 수 있어야지.
“어찌 됐든 지금 당장 가서 놈들을 쳐부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예루살렘을 떠날 때만 해도 전투를 벌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위그가 껄껄 웃었다.
그의 은가면이 위아래로 들썩들썩 흔들렸다.
“하긴 주님의 뜻을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지금 내려가서 기사들을 소집하도록 하죠.”
“소집이 끝나면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에일라트까지는 고작 몇 시간 거리도 되지 않았다.
‘르노가 바다위 부족들이랑 함께 움직이지 않는 이상 우리가 먼저 도착하겠지.’
그런 우릴 보며 에이그가 못 말린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이곳에 머무르자고 하셨던 거군요.”
녀석이 내게 속삭이듯 물었다.
“하지만 만약 바다위 부족들이 에일라트를 습격하지 않았다면요?”
“그럼 그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 됐겠지. 어느 쪽이든 우리가 손해보는 건 없었어.”
내가 웃으며 말했다.
이곳 몽레알 요새에 머문 건 일종의 보험책.
르노가 가만히 있었다면 그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 됐다.
난 일어서며 머리에 투구를 뒤집어썼다.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속도입니다. 르노 영주가 군대를 끌고 에일라트로 가기 전에 먼저 도착해야 하니까요.”
내가 웃으며 물었다.
“그리고 르노 영주를 따뜻하게 반겨주는 겁니다.”
“바다위 도적들이 이미 도망친 걸 알면 그 녀석 표정이 볼만해지겠군요.”
위그가 껄껄 웃었다.
“이 늙고 병든 심장이 이렇게 다시 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그려, 허허.”
나팔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 앞장서서 계단을 내려갔다.
발리앙 형제, 그리고 에이그가 내 뒤를 따랐다.
성채 밖으로 나오자 수백의 기사들이 도열한 모습이 보였다.
난 오른손을 들고 흔들었다.
르노의 어설픈 계획을 산산조각 내줄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