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183)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183화(183/215)
< 183화 – 다마스쿠스 대탈출 (3) >
“이젠 더 이상 못 버팁니다!”
“조금만 더 버텨! 성벽 밖에 지원군이 와 있다!”
튀르팽이 숨을 헐떡이며 외쳤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몽둥이를 휘둘렀다.
“놈들이 다시 도망친다!”
이번에도 장벽을 넘지 못한 사라센들이 부상자를 부축하며 후퇴했다.
해가 뜬 후로 벌써 두 번째.
튀르팽과 기사단원들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전투를 이어왔다.
장벽 위에 앉아 숨을 몰아쉬는 그에게 마르코가 다가왔다.
“창고에 불을 붙일 준비는 끝났소?”
“필요한 준비는 모두 다 해놨습니다.”
마르코가 장벽 너머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창고를 불태우면 유일한 협상 수단이 사라질 겁니다. 우선 하나만 태우고 시간을 끄는 건 어떻겠습니까?”
“일단 불을 보면 사라센들이 모두 몰려올 거요. 살라딘도 병사들을 모두 쏟아붓겠지.”
튀르팽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놈들에게 창고가 하나라도 넘어가게 할 순 없소.”
“그리고 수천 명이 넘는 그리스도인들이 죽겠군요. 폐하께서 성벽을 넘어오신다면 모를까···.”
“우리의 운명은 주님께서 결정하실 거요.”
튀르팽이 일어서며 말했다.
주변 사내들 모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가족들을 지키겠다는 의지는 여전히 뜨겁게 불타올랐다.
“무기가 좀만 더 있었다면···.”
사내들을 모두 무장시키기엔 무기가 부족했다. 대부분은 나무를 깎아 만든 장봉을 들고 있었다.
“놈들이 다시 온다!”
“모두 제자리로! 전투 준비!”
튀르팽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가 마르코를 향해 외쳤다.
“창고에서 기다리시오! 내가 명령하면 곧장 불을 붙여야 하오!”
그 다음엔···.
불을 붙인 후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 한 단원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놈들이 양옆으로 물러서고 있습니다!”
“뭐라고?!”
튀르팽은 앞을 바라봤다.
단원의 말대로 사라센 병사들이 양옆으로 물러서고 있었다.
마치 길을 터주는 듯한 행동.
그 모습을 본 튀르팽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도대체 무슨···.”
* * *
“살라딘이 약속을 지켰군요.”
에이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들로 이어진 기다란 줄이 성문 밖으로 빠져나왔다.
무슬림 병사들은 그 양옆에 벽처럼 도열해 있었다.
묘하게 장관처럼 느껴지는 광경.
“분명 창고를 확보하면 말을 바꿀 줄 알았습니다.”
“살라딘도 그리스도인 시민들이 학살당하는 건 원치 않았을 거야.”
내가 말했다.
하지만 대중들의 분노는 태풍이나 마찬가지였다. 권력자라고 해도 이를 막는 건 불가능.
이번 사건에서 살라딘과 난 같은 편이었던 셈이다. 행렬의 선두에서 한 사내가 터벅터벅 걷는 게 보였다.
익숙한 얼굴.
난 그에게 다가가며 손을 뻗었다.
“수고했네, 튀르팽 경. 다친 곳은 없나?”
“몇 군데 나뭇조각에 긁힌 걸 빼면 문제없습니다.”
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폐하시라면 분명 저희를 구하러 와주실 줄 알았습니다.”
“따로 천막을 준비해놨으니 가서 푹 쉬게.”
내가 말했다.
다른 기사단원들도 동료의 부축을 받으며 걸음을 옮겼다.
피난민들도 병사들의 안내를 받으며 한쪽으로 이동했다. 도시를 빠져나와 안도하는 표정들.
하지만 울먹이거나 슬픔에 찬 이들도 적지 않았다.
‘살던 터전을 하루아침에 잃었으니.’
지금까지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다마스쿠스에서 살아왔을 터였다. 군대에 동원될 필요도 없고, 종교세만 내면 개종을 강요받지도 않았겠지.
물론 무슬림들의 차별은 있었겠지만, 이번 일은 차원이 달랐다.
그들은 나와 병사들에게 감사를 표하면서도, 다마스쿠스를 연신 뒤돌아봤다.
“남겨놓고 간 재산과 땅들은 모두 사라센들 차지가 되겠군.”
“결국엔 남의 물건을 뺏고 싶어 벌인 일 아닙니까?”
에이그가 화난 어조로 말했다.
“전쟁에서 진 건 그냥 핑계일 뿐이고요. 사라센들이 원한 건 정의가 아니라 돈입니다.”
“···.”
난 입을 다문 채 인파를 바라봤다. 사람들 사이로 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마르코, 끝까지 다마스쿠스에 남아줬군.”
솔직히 말하면 중간에 도망칠 줄 알았는데. 최후의 순간까지 남아있었을 줄이야.
난 마르코 앞에 섰다.
“베네치아도 이번 일로 큰 피해를 입었겠군. 창고에 쌓아둔 곡물을 다 뺏기지 않았나?”
“사실 저희 쪽 피해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폐하.”
마르코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창고에 있던 물량은 일이 터지기 전에 모두 팔았습니다. 살라딘이 빼앗아간다 해도 그걸 산 사라센 상인들에게 돌려줘야 할 겁니다.”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덧붙였다.
“제노바랑 피사, 아말피 놈들도 아마 비슷하게 물량을 다 팔았을 거고요.”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창고에 있던 걸 이미 다 팔았다고? 돈은 돈대로 다 받고 그걸로 협박까지 했다니.
“역시 해상도시 상인들은 못 따라가겠군.”
하긴 베네치아가 가만히 앉아서 손해만 볼 나라는 아니지. 살라딘이 창고를 확보해도 사라센 상인들이 소유권을 주장하겠군.
그때 마르코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살라딘이 이대로 저희를 보내줄 거라 생각하십니까?”
“다마스쿠스의 기병들만으론 우릴 상대할 수 없네. 살라딘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지.”
난 양옆으로 도열한 무슬림 병사들을 바라봤다. 단순히 숫자만 따지면 그들이 훨씬 더 많았지만, 기병은 이야기가 달랐다.
예루살렘 기병들은 평생 훈련만 해온 전투 기계나 마찬가지.
갈증이나 허기로 지쳤다면 모를까, 쌩쌩한 상태의 이들과 야전에서 맞붙는 건 자살이나 마찬가지였다.
우릴 바라보는 무슬림 병사들의 시선에서 공포와 위압감이 느껴졌다.
“다른 도시들에서 구원군이 오기 전에만 철수하면 되네.”
문제는 바로 그 부분이겠지.
기병들만 이끌고 진격할 때와 수천의 시민들을 옆에 끼고 이동하는 건 완전히 달랐다.
“에이그, 아만에서 출발한 보급대는 아직 도착 안 했어?”
“아마 오늘 안으로 도착할 겁니다. 만약 늦는다고 해도 내일 안으로는 올 거고요.”
“아무래도 보급대가 더 많이 필요하겠어. 발리앙이랑 레몽 백작 둘 다 내 천막으로 불러줘.”
“알겠습니다.”
걸어가는 에이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유비가 수만의 형주 백성들을 이끌고 조조군에게서 도망칠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묘하게 아쉬운 기분도 드네.”
내가 중얼거렸다.
예루살렘, 잉글랜드, 자그위.
이곳에 모인 기사들 모두 엄청난 전의戰意를 뿜어냈다. 한번 합을 맞출 기회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돌아가면서 합동 훈련이라도 해볼까.’
* * *
“그리고 우상숭배자들에게서 압수한 재물은 각 부족에게 공정히 배분될 것이오.”
“와아아!”
살라딘은 환호하는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가 보두앵과 직접 대면해 도망치게 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거리에 퍼져 있었다.
알 아딜이 그의 곁에 다가왔다.
“피를 흘리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되어 다행입니다, 형님.”
그가 말했다.
“이제 다마스쿠스의 시민들은 형님을 의심하지 않고 따를 겁니다. 저번 지하드의 실패는 더 이상 아무도 기억하지 않겠죠.”
“내 생각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가 잃은 것도 적지 않아.”
살라딘이 말했다.
“우선 세입이 타격을 받겠지. 가장 많은 세금을 내던 그리스도인들이 빠져나갔으니. 지금 당장이야 이익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론 손해다.”
“하지만···.”
“그리고 보두앵은 직접 이곳까지 와서 그리스도인들을 구해냈어. 자기가 종교의 수호자라는 걸 증명한 거다.”
“형님께서도 무슬림들의 수호자라는 걸 증명하셨습니다. 보두앵이 부린 술수를 무사히 넘기시지 않으셨습니까?”
“보두앵이 이번 일을 계획하진 않았을 거다. 녀석도 나처럼 대응했을 뿐.”
하지만 예루살렘과 다마스쿠스 사이의 거리는 절대 짧지 않았다. 몇 수 앞을 내다봤기에 이렇게 빠르게 나설 수 있었을까?
“만약 보두앵과 끝까지 싸웠다 해도 형님께서 이기셨을 겁니다.”
“그리고 다마스쿠스 시민 중 절반은 굶어 죽었겠지.”
살라딘이 알 아딜의 팔을 붙잡았다. 그가 동생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만약 그렇게 됐다면 다른 에미르(제후)들이 가만히 있었을 거라 생각하는 거냐?”
“저는···.”
“절름발이가 된 군대로 승리해봤자 다른 에미르들의 먹잇감만 될 뿐이다. 시민들까지 굶어 죽었다면 날 몰아낼 대의까지 생겼겠지. 지원하러 온 군대가 한순간에 적이 됐을 거다.”
그가 팔을 놓아주며 덧붙였다.
“각 도시에 전령을 보내 지원은 필요 없다 전해라.”
살라딘이 고개를 돌려 동생을 바라봤다.
“더 이상 쓸데없는 짓은 벌이지 말거라, 알 아딜.”
그의 매서운 눈빛에 알 아딜은 뒤로 움찔 물러섰다.
살라딘이 덧붙였다.
“네가 이번 일이 벌어지기 직전에 부족장들과 대화를 나눴다 들었다.”
“저번 지하드에 관해 대화를 나눴을 뿐입니다. 족장들도 거리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며 말하긴 했습니다만···.”
“그래. 물론 난 네 말을 믿는다, 알 아딜.”
살라딘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가 손을 뻗어 동생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지만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진다면 나도 언젠가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을 거다.”
알 아딜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 * *
트란스요르단 지역
“다마스쿠스에서 서신이 왔네. 예루살렘 왕이 이끄는 군대가 다마스쿠스를 떠났다는군.”
허리에 검을 찬 사내들이 낙타 떼 중앙에 동그랗게 앉아 대화를 나눴다.
“살라딘이 그자들을 그냥 보내줬다는 건가? 겁쟁이도 그런 겁쟁이가 없겠군.”
한 중년 사내가 코웃음 치며 물었다.
“다신교(기독교) 신자들을 모두 그냥 보내줬다니···.”
“최소한 수천은 될 걸세.”
“다마스쿠스의 누가 서신을 보내줬다는 건가?”
“그건 중요하지 않네. 중요한 건 수천이 넘는 이교도 놈들이 예루살렘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거야.”
알하라위가 손을 비비며 말했다.
그는 바다위(베두인)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부족의 지도자였다.
“그놈들을 모두 붙잡아 노예로 판다고 생각해보게. 부족마다 돈을 나눈다고 해도 최소 몇 년은 놀고먹을 수 있을 걸세.”
“수천이라. 어마어마한 돈이긴 하겠군.”
사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모두가 알하라위에게 동의하는 건 아니었다.
“에일라트를 습격했던 부족들이 어떻게 됐는지 잊었나? 예루살렘 왕은 어마어마한 수의 기병들을 이끌고 있을 걸세.”
“그래, 예루살렘 기사들을 습격하자니. 제정신으로 그런 제안을 하는 건가?”
침묵이 흘렀다.
사내들 모두 알하라위를 바라봤다.
“자네들 말도 맞네. 그 망할 신호탑이라는 게 곳곳에 생기면서 습격도 어려워졌지. 예루살렘 놈들은 그 누구보다 잘 싸우기로 유명하고 말이야.”
알하라위가 말했다. 바다위 부족들은 낙타와 말을 이끌고 계절마다 목축지들을 순회했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으면 상단이나 마을을 습격하는 것도 나름의 일상이었다.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창시하기 훨씬 이전부터, 아랍의 부족들은 전사로서 살아왔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보게. 옆에 노인과 아녀자들을 잔뜩 끼고 가는데 우리와 제대로 싸울 수 있겠나?”
알하라위가 일어서며 물었다.
“우리 전사들이 사방에서 휘몰아치면 놈들도 병력을 나눌 수밖에 없네. 그럼 민간인들도 자연스레 흩어지겠지. 안 그런가?”
“겁에 질린 도시 놈들보다 손쉬운 먹잇감도 없긴 하지.”
몇몇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늙은 부족장이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하지만 그 후에 보두앵이 보복에 나서면 어떻게 할 건가?”
“그래서 내가 그대들 모두에게 도움을 청한 거요, 노인장.”
알하라위가 말했다.
“우리가 모두 나선다면 보두앵도 쉽게 보복할 수 없을 터. 설령 쫓아온다 해도 사막 깊숙이 숨으면 그만일 거요.”
그가 덧붙였다.
“보두앵이 살라딘과 싸우면서 우릴 추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오?”
“···.”
부족장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분위기는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그 말도 틀리진 않군. 무리해서 우릴 치면 그만큼 살라딘이 유리해질 거야. 예루살렘 왕도 그 정도는 알겠지.”
“이번 일은 모든 부족의 동의가 필요하네. 만장일치가 아니라면 소용이 없으니. 습격에 동참할 생각이 있다면 손을 들어주게.”
곳곳에서 손이 올라가는 소리가 스르륵 울려 퍼졌다. 그 모습을 본 알하라위가 미소 지었다.
“좋아, 그럼 낙타들을 배불리 먹이게. 빠르게 친 후에 노예들만 잡아 빠진다. 그것만 기억하면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