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184)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184화(184/215)
< 184화 – 다마스쿠스 대탈출 (4) >
“하지만 폐하께선 이번 일이 터지기 전에 기사단원들을 다마스쿠스에 보내지 않으셨나? 자네한테도 미리 일러두셨다면서?”
레몽이 발리앙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번 일을 처음부터 계획하셨을 수도 있네.”
“만약 폐하께서 주도하신 거라면 어찌 제가 모를 수 있겠습니까?”
발리앙이 말고삐를 당기며 답했다. 두 사람은 앞의 보두앵을 바라봤다.
그는 선두에서 행렬을 이끌고 있었다.
“왕국의 모든 첩보망은 제 관리하에 있습니다.”
“하지만 폐하께선 항상 계획 속에 또 다른 계획을 숨겨놓으셨지. 콘스탄티노플 개척촌을 생각해보게.”
레몽이 속삭이듯 물었다.
“폐하께선 몇 년에 걸쳐 그리스 이주민들을 위해 개척촌들을 만드셨어. 그것도 필요 이상으로 큰 규모로.”
“백작님 말씀은···.”
발리앙도 목소리를 낮췄다.
“폐하께서 개척촌을 처음 만드실 때부터 이 상황을 계획해 두셨다는 겁니까?”
“진실은 폐하만 아실 걸세.”
레몽이 속삭였다. 그때 선두에 있던 보두앵이 고개를 돌려 둘을 바라봤다.
발리앙과 레몽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보두앵이 고개를 다시 돌리는 걸 본 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거기에 미리 해상도시들을 통해 식량까지 준비해두셨지. 피난민들 때문에 당장 식량값이 요동치진 않을 걸세.”
“3차 십자군 원정뿐만 아니라 다마스쿠스 피난민까지···.”
발리앙은 혀를 찼다.
이제야 조각들이 하나둘 맞아들어갔다.
보두앵은 유럽 원정을 떠나기 전 이미 양아버지를 물리칠 계획을 세워두지 않았던가.
이번 다마스쿠스 사건 역시 그가 주도했다면?
레몽과 발리앙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일단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총대주교님과 의논해보자고.”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 * *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거지?”
아까부터 뒤쪽에서 힐끗힐끗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발리앙이랑 레몽 같은데.
내가 뒤돌아볼 때마다 두 사람은 화들짝 놀라며 딴청을 부렸다.
미약한 공포에 경외심.
최근에 내가 뭐 혼낸 거라도 있었나?
둘의 한껏 과장된 말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선왕께서도 지금 폐하의 모습을 보시면 아주 뿌듯해하실 겁니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 왕국처럼···.”
나 들으라고 하는 것 같은데.
설마 반란 모의라도 하는 건 아니겠지?
뭐, 저 두 사람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도 상상은 잘 안 가지만.
나중에 직접 물어봐야겠군.
그때 가니에르가 내 곁으로 달려왔다.
“일단은 근처 우물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식량도 보급대가 오기 전까진 넉넉히 버틸 수 있습니다.”
“다행이군. 물은 병사랑 노인, 아이들에게 먼저 나눠주게.”
내가 뒤를 바라보며 말했다.
수천에 달하는 다마스쿠스의 그리스도인들.
그들 모두 우리에게 목숨을 맡긴 채 따라오고 있었다.
문제는 행군 속도.
기병들로만 전속력으로 달려왔을 때와 달리, 지금은 노인과 아이들이 있었다.
속도가 느려진다고 이들을 뒤에 버려두거나 집단을 나눌 순 없었다.
‘안 그래도 부족한 병력을 분산할 순 없지.’
사람들 모두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불평하는 이는 없었다. 난 시간이 날 때마다 뒤로 가서 이들을 격려했다.
“그리고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폐하.”
“문제라니?”
“잉글랜드와 자그위 왕국 기사들입니다.”
가니에르가 말했다.
그에게서 미약한 분노와 답답함이 느껴졌다.
“계속 통제를 무시하고 속도를 올리거나 대열에서 이탈하더군요. 덕분에 저희 기사단이 빈 구멍을 메꿔야 했습니다.”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시민들을 안쪽에서 호위하는 걸 별로 내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외곽으로 빠지려고···.”
“전투가 벌어지면 가장 먼저 싸우려는 거군.”
말고삐를 부드럽게 잡아당기자 불트가 내 뜻을 눈치채고 멈췄다.
유럽과 레반트 기사들이 같진 않겠지.
가니에르 같은 기사단원들은 성도 예루살렘을 위해 헌신했다.
이들에게 개개인의 공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애초에 공적을 뽐내는 것 자체가 기사단 규율로 금지되어 있으니.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온 기사들은 달라.’
잉글랜드와 자그위 왕국.
이들에겐 전장에서 공을 세우고 인정받는 게 가장 중요했다.
레반트에선 당연한 전략 전술도 이들에겐 낯설 게 분명했다. 어쩌면 우리가 공을 독차지하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군.
“다마스쿠스에서 아무 싸움도 없었으니 불만에 차 있는 걸세. 하지만 지휘를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도 문제인데.”
따로따로 움직이는 손과 팔을 가지고 싸울 순 없는 노릇.
생각에 빠져있던 그때, 이번엔 에이그가 달려왔다.
“폐하!”
녀석이 우리 둘 앞에 멈춰섰다.
가니에르가 물었다.
“무슨 일이냐, 에이그?”
“방금 정찰대에서 들어온 보고입니다. 이곳 근처로 바다위 전사들이 접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바다위 전사들이라고?”
나와 가니에르는 서로를 바라봤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건 또 무슨 X 같은 상황이지.
* * *
“바다위 부족들이라는 게 정확히 뭔가?”
“오래전부터 이곳 아라비아에 살던 부족들입니다. 도시에 정착하지 않고 낙타 떼를 끌고 다니는 자들이죠.”
헨리 2세의 물음에 가니에르가 나섰다. 천막은 왕과 귀족, 기사단원들로 북적거렸다.
“이들은 낙타와 말을 자신의 생명처럼 여깁니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그 위에 타서 싸우는 법을 배우죠.”
“간단히 말해 낙타 타고 돌아다니면서 쌈박질이나 하는 놈들이란 거군. 잘 꾸며봤자 도적 떼 아닌가?”
헨리 2세가 어깨를 으쓱이며 날 바라봤다.
“그런 어중이떠중이 놈들이 우릴 습격한다니. 뭔가 착각한 거 아닌가?”
“날이 갈수록 더 많은 낙타가 모여들고 있습니다.”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직접 외곽을 정찰하면서 놈들 숫자가 늘어난다는 건 파악했다.
“하지만 살라딘은 우리 뒤를 치지 않겠다고 약조하지 않았나? 근데 왜 이제 와서···.”
“바다위 부족들이 꼭 누군가의 명령을 따르는 건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에일라트에서 내가 복속시켰던 바다위 부족은 극히 일부일 뿐.
나머지 부족들은 십자군과 이슬람 술탄들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이익을 챙겼다.
헨리 2세가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그렇군. 하지만 도적 떼들한테 제대로 된 갑옷이나 무기는 없을 터.”
헨리 2세가 물었다.
“놈들이 오면 그냥 박살 내면 되지 않겠나?”
다른 잉글랜드 기사들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정면에서 싸움을 벌이지는 않을 겁니다.”
놈들이 노리는 건 뭘까?
우리와 싸우라고 다른 술탄들에게 의뢰를 받은 거라면···.
아니, 그건 위험 부담이 너무 크겠지. 바다위 부족들이 그런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적었다.
지금까지 파악한 숫자만 해도 족히 천 이상.
수십이 넘는 바다위 부족들이 동참한 게 분명했다. 그들 모두 이익을 얻을 무언가가···.
하나 있긴 하군.
“놈들은 피난민들을 노리는 겁니다.”
“피난민이라고?”
“사라센들의 율법에 따르면 같은 사라센은 노예로 삼을 수 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래서 무슬림 해적이나 도적들은 주로 기독교인이나 유대인들을 노려 납치했다.
지중해의 바르바리 해적부터 이곳 중동의 바다위 부족들까지.
“하지만 이교도라면 얼마든지 노예로 삼을 수 있죠.”
마셜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수천에 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사막으로 나왔으니 이보다 더 좋은 기회도 없겠군요.”
“그럼 우리 자그위 군대가 앞에 서서 놈들을 몰아내겠소.”
침묵을 지키던 랄리벨라 왕이 말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예루살렘 왕의 말이 옳다면 누군가 앞장서서 놈들을 막아야 하지 않겠소?”
“그대 혼자 공을 독차지하려는 건가? 우리 잉글랜드 기사들도 아직 제대로 싸우지 못했네.”
헨리 2세가 말했다.
“거기에 자그위 기사들은 사슬갑옷도 부족하지 않나. 이번 일은 우리에게 맡기게.”
“지금 나와 내 왕국을 모욕하는 거요?”
“두 분 다 거기까지만 하시죠.”
난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둘 다 바다위 전사들을 얕보고 있군.
‘뭐 무리도 아닌가.’
유럽에는 중동식 궁기병들이 없다. 유목민 특유의 스웜Swarm 전술도 아직 경험해보지도 못했을 터.
“놈들은 저희가 흩어지길 노릴 겁니다. 그사이 빈 구멍으로 파고들어서 피난민들을 공격하겠죠.”
화살이 쏟아지면 피난민들은 겁에 질려 사방팔방 흩어질 터. 그렇게 되면 통제는 불가능했다.
바다위 전사들은 아수라장을 돌아다니며 피난민들을 붙잡기만 하면 됐다.
늑대 몇 마리가 양치기 개를 유인한 사이, 나머지 늑대들이 양을 끌고 간다.
“두 분 모두 이곳 예루살렘에선 제 지휘권을 존중하겠다고 약조하셨습니다.”
난 헨리 2세와 랄리벨라 두 사람을 바라봤다. 랄리벨라도 아까보단 차분해진 표정.
그와 처음 만났을 때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예루살렘을 내 왕국으로 옮기고 싶소.’
그땐 무슨 뜻인지 이해도 못 했지. 예루살렘을 옮기고 싶다니.
나중에 알고 보니 그의 말뜻은 ‘예루살렘의 영적 가치와 문화, 기술을 전수받고 싶다.’에 가까웠다.
기사단 지부를 에티오피아에 설치해달라고 부탁까지.
물론 난 그의 제안에 승낙했다.
그 대신 요구한 건 오직 하나뿐.
다른 십자군들과 마찬가지로 내 지휘권을 존중해달라는 거였다.
“놈들이 원하는 장단에 맞춰줄 필요는 없습니다. 최대한 방어에 치중하도록 하죠. 그럼 놈들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싸울 기회가 한 번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다마스쿠스에서도 싸우지 못했고 말이야.”
헨리 2세가 한숨을 내쉬었다.
“기사들에겐 싸울 기회가 필요하네. 발정 난 황소를 계속 밧줄로 묶어둘 순 없어.”
“그럼 거세라도 하는 수밖에요. 어쨌든 제 결정은 확고합니다.”
내가 웃으며 답했다.
그 뒤에도 회의가 이어졌지만 이미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피난민들을 지키는 데 집중하고 섣불리 나서지 않는다.
천막 밖으로 나오자 에이그가 다가왔다.
“다들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더군요.”
“내가 자기들 공을 빼앗으려 한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그럼···.”
에이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자들이 폐하의 명령을 제대로 따르겠습니까?”
“···.”
에이그의 조심스러운 어조에 나도 모르게 빵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난 녀석의 어깨를 붙잡았다.
“아마 처음에만 따르는 시늉을 하다가, 나중엔 제멋대로 나설 거야.”
“그럼 어떻게든 말려야 하는 게···.”
“불이 뜨겁다고 몇백 번을 말해도 아이가 불장난하는 걸 막을 순 없어.”
내가 말했다.
“하지만 한 번 불에 데고 나면 뭐라 말하지 않아도 피하는 법이지.”
“폐하 말씀은···잉글랜드와 자그위 기사들이 바다위 놈들 꾐에 넘어가는 걸 원하신다는 겁니까?”
“만약 내 명령에 따라 대형을 유지해준다면 그걸로 끝이겠지.”
아무리 바다위 놈들이 활을 들고 설친다 해도 갑옷을 걸친 기사들 상대론 큰 효과가 없었다.
궁기병은 대체로 근접전에 약했다.
그와 반면에 프랑크식 기사들은 근접전의 대가.
“우리가 장벽처럼 가만히 서서 버티면 놈들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까.”
내가 불트 위에 올라타며 말했다.
“하지만 잉글랜드와 아비시니아인(에티오피아인)들이 놈들 꾐에 넘어갈 경우도 미리 대비해놓자고.”
어쨌든 난 해야 할 경고를 다 했다. 그걸 따르지 않는다면 내 잘못은 아니지.
아이들의 불장난을 막지 못한다면, 미리 소화기를 준비해두는 수밖에.
“피난민들에게 곧 전투가 벌어질 수 있다고 알려. 기사단원들을 중간중간 배치해서 혼란에 빠지는 걸 막고.”
“알겠습니다.”
난 앞쪽에 있는 모래 능선을 바라봤다. 이 순간에도 적들의 수는 늘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