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188)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188화(188/215)
< 188화 – 3차 십자군 (3) >
“좋습니다, 다들 모이셨으니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죠.”
방안에 모인 사람들은 열 명이 족히 넘었다.
잉글랜드의 헨리 2세와 리처드.
프랑스의 필리프 2세.
에티오피아의 랄리벨라.
신성로마제국의 하르트만 백작.
이탈리아에서 온 귀도와 다른 전직 포데스타(집정관)들.
1차부터 9차에 이르는 원 역사의 십자군 원정들을 모두 능가하는 규모이자,
처음 보두앵이 됐을 때부터 꿈꿔왔던 광경.
이렇게 현실로 이루어질 줄이야. 눈물이 다 나오겠군.
그때 헨리 2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우린 그 어느 십자군 원정보다 더 많은 병력을 끌고 성도 예루살렘에 모였소! 이거야말로 주님의 뜻 아니겠소이까?”
형식적인 그의 말에 사람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사랑하는 내 아들, 리처드와 함께 성묘에 왔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소.”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아버지?”
리처드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
“잉글랜드에 있는 헨리 형님께서 그 말씀을 들으시면 얼마나 슬퍼하시겠습니까?”
그 말에 사람들 모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헨리 2세가 죽으면 그의 장남인 젊은 헨리는 잉글랜드의 유일한 왕이 된다.’
이걸 모르는 자는 없었다.
헨리 2세가 아들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헨리 그 녀석도 아주 슬퍼하겠지.”
그나저나 요즘 랄리벨라 왕이랑 친하게 지낸다던데. 어쩌면 런던도 자그위 왕국으로 옮기겠다 할지 모르겠군.
헨리 2세가 날 바라보며 물었다.
“콘스탄티노플의 바실리우스(황제)도 이번 십자군 원정에 동참한다 하지 않았나? 이 자리엔 없는 것 같네만.”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신성로마제국의 하르트만 백작이 끼어들었다.
“그야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스 황제들은 언제나 그럴듯한 말만 늘어놓는 법이지요. 군대를 끌고 이곳 예루살렘까지 온 적이 몇 번이나 있습니까?”
그의 말에 웃음이 피식 나왔다.
역시 견제가 만만치 않군.
하르트만 백작은 프리드리히 황제를 대신해 이번 십자군 원정에 참가했다.
아마 황제 본인은 사자공 하인리히를 막느라 바쁠 터.
“설령 이곳 성도까지 온다고 해도 무슨 음모를 꾸밀지 모를 겁니다.”
하르트만 백작이 동의를 구하려는 듯 다른 사람들을 바라봤다.
하지만 아무도 그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동로마가 위험한 존재라고 어떻게든 어필하려는 거군.’
사실 하르트만 백작의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다. 이슬람 전만 해도 이곳 레반트는 로마 제국의 땅.
동로마는 십자군 국가들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두려 했다.
40년 전쯤엔 황제가 직접 군대를 끌고 와서 안티오키아를 포기했었고.
‘하지만 지금 동로마는 달라.’
알렉시오스가 예루살렘 왕국을 빼앗으려 들 확률은 극히 낮았다. 애초에 명분도 없을뿐더러 실익도 없지.
만약 그런 짓을 했다가 실패하면 예루살렘은 영원히 콘스탄티노플과 적대할 터.
교회통합을 위한 보편공의회도 물 건너갈 게 분명했다.
“로마 황제께선 키프로스에서 함대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지금쯤이면 출정 준비를 마쳤겠군요.”
여기선 태연한 어조로 강조하는 게 낫겠지.
난 조심스레 주변을 살폈다.
필리프는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랄리벨라 왕도 마찬가지.
“지금 중요한 건 원정을 통해 어딜 공격할지 정하는 겁니다.”
그렇게 말한 난 지도를 가리켰다. 레반트와 시리아, 이집트.
먼저 입을 연 건 헨리 2세였다.
“다마스쿠스를 치면 되는 거 아닌가? 저번엔 제대로 된 준비를 하지 못했지만···.”
그가 말했다.
“공성탑과 투석기를 설치해 공격하면 살라딘도 별수 없을 걸세. 성문 밖으로 나오거나 지원군을 부르겠지.”
“그때 야전에서 맞붙자는 말씀이시군요.”
“그렇네. 놈들이 모두 모였을 때 박살 내면 되지 않겠나? 아무리 벌레가 많다 한들 한 번 밟으면 끝이지.”
“나도 헨리 왕의 말씀에 동의하오.”
필리프가 입을 열었다.
“다마스쿠스를 점령한다면 사라센들도 분열할 수밖에 없을 터. 살라딘도 자연스레 권력을 잃게 될 거요.”
“아마 그렇게 되겠죠.”
난 필리프를 바라봤다.
헨리 2세와 같은 주장이었지만, 그 이유는 달랐다.
‘최대한 빨리 십자군 원정을 끝내고 돌아가려는 거겠지.’
싫은 티를 팍팍 내는군.
하지만 다마스쿠스만 공격하는 건 너무 일차원적인 생각이었다.
입을 열려던 그때, 리처드가 끼어들었다.
“우선 이번 원정의 목표를 확실히 정해놓을 필요가 있소.”
그가 좌중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가 수만이 넘는 군대를 이끌고 이곳 레반트까지 온 건 어디까지나 성도를 지키기 위해서요.”
“그래서 다마스쿠스를 치자는 것 아닌가?”
필리프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의 조롱에도 리처드의 표정은 담담하기만 했다.
“다마스쿠스를 친다고 해도 살라딘이 권력을 잃는다는 보장은 없지요. 우리가 다시 유럽으로 떠난 후에 다마스쿠스를 되찾으려 지하드를 벌일 수도 있고요.”
그의 시선이 날 향했다.
“이집트. 이집트가 있는 한 살라딘은 필요한 자금과 인력을 계속 얻을 수 있소.”
그가 물었다.
“알렉시오스 황제가 키프로스에서 함대를 준비하는 이유도 결국엔 이집트를 치기 위해서 아니오?”
“공작의 말씀이 옳습니다.”
역시 사자심왕은 다르군.
이렇게 핵심을 곧장 찌를 줄이야.
이집트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예루살렘은 계속 압박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살라딘도 이집트를 자신의 생명줄처럼 여기는 거고.
“아무리 살라딘이라도 이집트를 잃으면 몰락을 피하지 못할 겁니다.”
“그럼 병력을 나눠서 한쪽은 다마스쿠스, 한쪽은 이집트를 치면 되겠군.”
헨리 2세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서로 공적을 나누기도 쉬워질 터.”
“···.”
공적을 생각해도 병력을 나누는 게 나았다. 잉글랜드, 프랑스, 독일, 에티오피아에 독일까지.
고작 다마스쿠스 하나를 모두 나눠 먹을 순 없었다.
분명 한쪽에서 불평불만이 터져 나올 터. 만약 내분이라도 일어났다간 살라딘만 유리해진다.
“자, 그럼 누가 어디를 공격할지 정하세나. 어차피 병사는 많으니 한쪽을 골라도···.”
그 후로 회의가 이어졌지만, 명확히 정해진 건 없었다.
어차피 오늘은 1차 회의.
서로 의중을 떠보는 전초전에 가까웠다. 분위기가 점점 늘어지자 난 회의를 끝냈다.
“오늘 회의는 이 정도까지 하시죠. 연회장에 음식을 준비해뒀습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연회장으로 향했다. 그때 누군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리처드.
그가 씨익 미소 지으며 말했다.
“다마스쿠스와 이집트. 이 두 곳만 칠 계획은 아닌 것 같소만. 내 말이 틀렸소?”
“···.”
난 멈춰서서 리처드를 바라봤다.
이거 재밌네.
아무리 리처드라고 해도 여기까지 볼 줄은 몰랐는데.
“글쎄요. 그럼 제가 또 어딜 칠 거로 생각하십니까?”
“메카.”
리처드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대가 진짜 노리는 건 메카 아니오?”
* * *
“메카라니.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곳을 쳐야 살라딘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오.”
리처드가 너무나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빙긋 웃었다.
“사라센들의 교황, 칼리프가 있는 바그다드를 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곳은 대군을 끌고 진격하기엔···.”
“너무 멀죠. 중간중간에 사라센 도시들도 많고요.”
우리 둘은 잠시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하지만 그건 메카도 마찬가지일 텐데요?”
“르노도 해낸 마당에 그대가 못 할 것 같진 않소만. 거기에 아비시니아(에티오피아)도 있고.”
“그렇다면 왜 아까 회의실에서 묻지 않으신 겁니까?”
“그대가 굳이 말하지 않은 건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싫어서 아니오?”
리처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진짜 계획은 최소한의 사람들만 아는 게 좋겠지. 필리프 같은 놈이라면 일부러 정보를 유출할 수도 있으니.”
“공작께선 그 최소한의 사람들에 포함되신다는 거군요.”
메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제1의 성지가 예루살렘이라면, 무슬림들에겐 메카였다.
르노가 메카를 공격했을 때 괜히 무슬림들이 발작했던 게 아니지.
‘그곳을 얻으면 훨씬 더 유리한 입지를 얻을 수 있어.’
살라딘은 어느 술탄이 그렇듯 ‘이슬람의 수호자’를 자처했다. 메카가 이교도 손에 넘어가는 건 어떻게든 막으려 할 터.
성공한다면 이집트 이상의 타격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르노의 습격 이후 메카도 수비를 강화했을 겁니다. 상륙이 가능한 지점에 요새와 주둔지들을 설치해놨겠죠.”
살라딘은 바보가 아니었다.
똑같은 방법에 두 번 당하진 않을 터.
거기에 홍해에서 배로 상륙 가능한 지점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대라면 새로운 계책을 세웠을 것 같소만?”
리처드가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또래 친구와 장난감 얘기하는 듯한 반응.
“아직 확실한 건 아닙니다. 중간에 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요.”
최종계획은 내 머릿속에만 있었다. 아무리 리처드라고 해도 지금 알려주긴 힘든데.
내 표정을 본 리처드가 항복이라는 듯 양손을 들었다.
“지금 당장 말해줄 필요는 없소. 어떤 선물을 받을까 상상하는 것도 나름 즐거운 일이지. 그대가 메카를 노린다는 것도 입을 다물지. 그 대가로···.”
그가 검지를 치켜세웠다.
“한 가지 조건이 있소만.”
“편히 말씀하시죠.”
“나도 같이 가게 해주시오. 아마 메카 쪽은 그대가 직접 맡을 터. 나도 동행하고 싶소.”
리처드의 말은 진심이었다.
감정에 조금의 흔들림도 없군.
“다마스쿠스나 이집트가 성공 가능성이 더 클 겁니다. 위험도 훨씬 더 적고요.”
“그래서 메카로 가겠다는 거요.”
리처드가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하녀와 기사들이 옆을 지날 때마다 리처드는 목소리를 줄였다.
“그편이 더 재미있을 것 같거든. 쉬운 사냥감을 잡는 게 무슨 재미가 있겠소?”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피식 나왔다. 사자심왕다운 말이라고 해야 하나.
아직 살라딘도 리처드의 힘을 모를 터.
어떤 표정을 보여줄지 궁금하군.
여포의 무력에 조조의 지략이라니.
아마 사기캐라는 게 현실에 존재한다면, 리처드를 말하는 게 분명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곧 제 계획을 알려드리도록 하죠.”
내가 말했다.
나 혼자 끙끙 앓느니 리처드의 도움을 받는 게 낫겠지.
리처드가 기밀을 떠벌리고 다닐 바보도 아니고.
“아, 그대에게 하나 더 묻고 싶은 게 있소만. 왜 종이들을 사라센 도시들에 대량으로 뿌리는 거요?”
“종이라면···.”
아, 내가 준 군수품 목록을 본 모양이군. 그중에 종이도 있었지.
“그 종이들을 이용해서 뭔가 준비라도 하는 거요?”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
난 씨익 미소 지었다.
리처드는 내 프로파간다 전술을 아직 모르겠지.
내분의 가능성이 있는 건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살라딘의 조카, 타키 앗딘은 아스칼론에서 패배를 겪지 않고 퇴각했다.
그와 반면 동생인 알 아딜은 케락 공성전에서 별다른 전공을 세우지 못했지.
약간의 선동만 있으면 이 관계를 이용하는 건 식은 죽 먹기. 제아무리 살라딘이라고 쉽게 통제할 수 없었다.
가족 중 누군가를 죽일 순 없을 터. 그렇다고 싸우지 말라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사실은 이집트 총독을 찬양하는 시문을 찍어 배포한 게 전부입니다.”
내 말을 들은 리처드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난 웃으며 그와 함께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닭고기, 앨릭서와 포도주 냄새.
그 뒤에서 왕과 영주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중세에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니까.
리처드한테도 술 좀 먹여야겠군.
‘맨정신일 때는 너무 날카롭단 말이지.’
하지만 몇 시간 후, 탁자 위에 머리를 박은 건 나였다.
리처드가 껄껄 웃으며 내 등을 두드렸다.
“전에 유럽에선 내 형님과 함께 잤었지. 이번엔 필리프 폐하와 내 아버지, 나 이렇게 넷이서 함께 자는 게 어떻겠소?”
“아, 유럽에선 같은 침대에서 자는 게 우정의 표시인가 보군. 그렇다면 나도 동침하고 싶소만.”
랄리벨라 왕까지 끼어들었다.
아, 남자들이랑 자는 건 이제 제발 그만···.
내 절규 아닌 절규 속에서 3차 십자군은 막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