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189)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189화(189/215)
< 189화 – 3차 십자군 (4) >
다마스쿠스
술탄 집무실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기사와 병사가 항구로 몰려들고 있다 합니다.”
알 아딜이 말했다.
“키프로스에 모였다는 함선들은 아무래도 룸인(로마인)들인 것 같습니다.”
“아마 놈들은 이집트를 노릴 거다. 이곳 레반트에서 내 시선을 끈 사이 이집트를 치려 하겠지.”
“지금이라도 절 다시 이집트로 보내주신다면···.”
“그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기로 하지 않았더냐?”
살라딘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금 네가 가봤자 지휘계통에 혼란만 생길 뿐이다. 타키 앗딘은 아스칼론을 흔드는 일도 훌륭히 해냈어. 녀석을 믿는 수밖에 없다.”
“···형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이미 공성전에 필요한 준비도 모두 마쳤습니다.”
알 아딜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이 아무리 많은 군대를 끌고 온다 해도 성벽을 넘지 못할 겁니다.”
“아직 안심하기엔 일러. 무슨 방법을 써서든 시간을 더 끌어야 한다.”
살라딘이 탁자 위 손을 두드렸다. 방 한쪽에선 서기, 카디 알 파딜이 두 사람의 대화를 기록 중이었다.
“2차 십자군 때도 프랑크인들은 제대로 된 전투 한 번 없이 무너져내렸지. 그때와 같은 상황을 만들어야 해.”
“공성전이 길어질수록 저들의 열의도 꺾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리고 제가 듣기론···.”
알 아딜이 말했다.
“유럽 서쪽에서 온 프랑크인들의 왕은 싸울 의지가 별로 없다고 합니다.”
“유럽 서쪽에서 온 왕이라.”
“프랑크인들의 말로는 프랑스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프랑크 왕국 아니더냐? 프랑크인들의 내부 사정도 복잡한 모양이군.”
살라딘이 피식 웃었다.
“네가 좀 더 자세히 알아보거라, 알 아딜. 프랑스 왕이 정말 이곳 레반트에서 싸울 의지가 없다면···.”
그가 덧붙였다.
“적절한 기회만 생기면 곧장 돌아가려 할 거야. 우리가 그 기회를 만들어 줄 수도 있지.”
“기회라니, 어떻게 말입니까?”
“다 방법이 있는 법이다.”
살라딘이 미소 지으며 답했다.
“마시아프의 아사신들에게 전령을 보내거라. 프랑크인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최대한 은밀하게.”
“하지만 아사신 놈들은 이미 프랑크인들과 손잡지 않았습니까, 형님.”
“아니, 아사신들은 오직 자신들만을 위해 싸운다. 동맹이나 전쟁도 어디까지나 일시적일 뿐이지.”
살라딘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약 프랑크인들이 이번 원정에서 승리한다면 다음 차례는 자기들이란 걸 놈들도 잘 알 거다.”
“···.”
“그리고 설령 거절한다 해도 상관없어. 아사신들이 한 것처럼 꾸미면 그만이니.”
살라딘이 어깨를 으쓱였다.
레반트에 있는 모든 세력은 서로 등을 찌르려 했다.
바그다드의 칼리프 역시 마찬가지. 그는 저번 지하드 이후 적극적으로 에미르(제후)와 장교들을 보내왔다.
표면적인 이유는 지원이었지만, 실제론 살라딘의 군대를 염탐하고 흔들기 위해서였다.
‘아마 전투가 벌어지면 곧장 후방으로 빠지겠지.’
하지만 걱정해야 할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요즘 이집트에서 타키 앗딘과 널 비교하는 시가 나돈다고 들었다. 타키 앗딘이 너보다 훨씬 더 훌륭한 지도자라고 한다지.”
살라딘이 말했다.
프랑크인 포로들이 탈출하는 걸 막지 못한 알 아딜과 달리, 타키 앗딘은 아스칼론을 포위하고 공격했다.
거기에 별다른 피해 없이 후퇴까지.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타키 앗딘을 향한 찬양은 너무 조직적이었다.
“보두앵 그놈이 또 종이를 풀어 여론을 흔드는 게야. 우리 씨족을 분열하려는 거겠지.”
“물론 저도 알고 있습니다, 형님. 제가 어찌 조카 녀석에게 감정을 품겠습니까?”
“···.”
살라딘은 동생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왕국의 지도자라고 해도 바꿀 수 없는 건 존재했다.
그의 자리를 넘보는 형제와 사촌들.
만약 그가 지금 죽는다면 왕국은 곧장 산산조각 날 게 분명했다.
왕위 계승이 확실한 프랑크인들과 달리 술탄이란 지위는 너무나 불안정했다.
‘보두앵 그 녀석도 아픈 곳만 찌르는군.’
보두앵은 언제나 그를 흔들며 취약한 곳을 공격했다. 집요한 독사와 싸우는 기분이 들 정도.
“가족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뭉쳐야 한다. 전리품을 더 갖겠다고 싸우는 건 승리한 후에 해도 늦지 않아.”
그가 덧붙였다.
“만약 전쟁에서 진다면 우리가 나눌 수 있는 건 죽음뿐일 거다.”
* * *
예루살렘
“십자군 만세!”
“예루살렘 만세!”
거리는 환호성으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거리 양옆에 서서 행렬을 구경했다.
잉글랜드, 프랑스, 자그위, 독일, 이탈리아.
기사들 방패와 서코트(외투)에 새겨진 문양들은 모두 알록달록하고 아름다웠다.
길게 이어진 행렬은 그 자체로 장관이나 마찬가지.
계속 뚱한 표정이던 필리프도 오늘은 기분 좋은지 손을 흔들며 행진했다.
“폐하께서 몇 년 동안 꿈꾸시던 게 드디어 이루어졌군요.”
에이그가 곁에서 중얼거렸다.
“사실상 전 유럽에서 십자군을 모으시지 않으셨습니까? 거기에 로마 제국과 아비시니아(에티오피아)도 있고요.”
“그건 그렇지.”
하지만 3차 십자군 원정이 영원히 이어질 순 없지. 십자군들은 대부분 자기가 준비해온 자금으로 활동했다.
‘몇 개월 정도 지나면 모두 동이 날 거야.’
그때부턴 예루살렘 왕국이 모든 자금을 담당해야 했다. 아무리 앨릭서와 기부금이 있다 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마찬가지.
그전에 어떻게든 승부를 내야겠지.
만약 원정이 실패라도 한다면 위험은 더 커졌다. 당장 유럽의 십자군 열풍부터 사그라들 터.
실제 역사에서도 2차 십자군 실패 후 그런 분위기였고.
생각에 빠져 있던 그때 발리앙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폐하, 다마스쿠스에 있던 첩자들이 새 정보를 보내왔습니다.”
그가 말했다.
“살라딘이 마시아프로 사절단을 보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아사신들과 연락을 시도하는 것 같습니다.”
“아사신이라.”
살라딘이 또 뭔가 꾸미는 건가?
슬슬 때가 되긴 했군.
“그렇다면 하마와 홈스 쪽을 지나가겠군. 조슬랭 백작에게 사절단을 감시하라고 전하게.”
“명령만 주신다면 놈들을 모두 붙잡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네. 그래 봤자 다른 사절단을 보내겠지.”
아사신.
아사신에게 사절단을 보낸다라.
그 이유는 하나밖에 없을 텐데.
“아무리 살라딘이라도 놈들과 동맹을 원하진 않을 겁니다. 아사신들이 이집트에서 금은보화를 빼돌린 걸 생각하면···.”
“살라딘이 이미 지난 일에 연연할 자는 아닐세.”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사신들은 레반트의 균형추 같은 존재였다.
그들이 나와 손잡은 건 어디까지나 수니파, 살라딘을 견제하기 위해서.
그때와 달리 지금 상황은 예루살렘에 유리했다.
내가 살라딘을 몰아내고 레반트를 통일하면···.
“아마 자신들이 다음 차례라고 여기겠지. 그렇다면 살라딘과도 충분히 손잡을 수 있네. 살라딘도 그걸 알고 사절단을 보냈겠지.”
동맹이라기보단 일시적 협력에 더 가깝겠지만. 아사신들은 프랑크와 수니파 사이의 제3세력으로 남길 원할 터.
“만약 아사신들이 자기들 주제를 안다면 상관없겠지만···.”
놈들이 어떻게 나올지 대충 예상이 간단 말이지. 라스트 크루세이더즈에서 아사신 같은 놈들도 따로 없었지.
한쪽이 유리해지면 곧장 암살이나 선동으로 판을 흔들었으니.
애초에 내가 무리해서 ‘육감’ 특성을 고른 것도 그런 아사신들을 피하기 위해서였고.
“그러지 않는 상황도 대비하는 게 좋겠군.”
* * *
마시아프 요새
“신성한 이맘(지도자)이시여, 정말 살라딘의 요청을 받아들이실 겁니까?”
“살라딘은 대놓고 사절단을 보냈다. 아마 지금쯤이면 프랑크인들에게도 포착됐겠지.”
시난이 말했다.
그가 손짓하자 주변에 있던 여인들이 몸을 일으켰다.
모두 반쯤 풀린 눈에 전라의 몸.
이 정원에 마련된 하렘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오직 선택받은 극소수의 전사들만이 올 수 있는 곳. 이곳엔 그 어떤 제약이냐 금기도 없었다.
전사들은 이곳에서 천국을 경험하고, 어떻게든 돌아오기 위해 목숨을 바친다.
“만약 거절한다 해도 프랑크인들은 우리를 의심할 터.”
시난이 말했다.
“만약 살라딘이 프랑크 왕에게 암살자를 보낸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아마 실패하겠지만··· 이맘께서 저지른 짓이라고 생각하겠군요.”
“그래, 살라딘은 그걸 노린 거다.”
시난이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물론 보두앵이라면 아사신들의 말을 믿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자는 이미 이집트에서도 그들을 배신했다.
‘힘겹게 얻은 금은보화를 모두 빼앗겼지.’
보두앵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자가 레반트를 통일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예루살렘 왕국은 살아남는 편이 좋지만, 3차 십자군은 실패해야 한다.”
시난이 말했다.
“그리고 3차 십자군의 구심점은 보두앵이지. 그놈만 없어지면 바다 건너에서 온 왕과 영주들 모두 흩어질 게야.”
“하지만 계획이 실패한다면 보두앵은 곧장 대군을 이끌고 이곳으로 진격해 올 것입니다.”
사내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그는 겁에 질린 눈으로 시난을 바라봤다.
‘이런 멍청한 놈은 죽이는 편이 낫겠군.’
시난이 코웃음 치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맘으로서의 권위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처벌은 꾸준히 이루어져야 했다.
나약한 자들은 죽고 오직 강인한 전사들만이 살아남는다.
“이번에 바다위 부족들도 보두앵을 쳤다가 족장들이 모두 포로 신세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놈들은 무식의 대가를 치른 거다. 프랑크 기병들에게 멋모르고 달려들었으니 죽는 것도 이상하지 않지.”
시난이 몸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여인들이 정원의 과일을 깨물자 즙이 입술과 턱, 몸을 따라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곳 마시아프는 달라.살라딘도 몇 년 전 대군을 끌고 왔다 고배만 마시지 않았더냐.”
시난이 말했다.
“설령 보두앵이 대군을 이끌고 와서 포위한다고 해도 몇 년은 거뜬히 버틸 수 있다. 일이 년이 지나면 십자군 놈들도 모두 흩어지겠지.”
“그, 그때까지만 버티면 되겠군요.”
“그래, 지금 가서 공성전에 대비하라고 전해라. 물자를 더 모으고 농부들은 성안으로 대피시켜라.”
“예, 옙!”
“그리고 전사 중 가장 특출한 자들을 골라 준비시키고. 제아무리 보두앵이 운이 좋다고 한들 영원히 그럴 순 없지.”
시난이 말했다.
“놈은 매일매일 운이 좋아야 하겠지만, 우린 하루만 운이 좋으면 된다.”
“역시 이맘께선 그 누구보다 탁월한 통찰력을 지니고 계십니다.”
사내가 팔을 흔들더니 몸을 뒤뚱거리며 정원을 나섰다. 시난은 여인의 몸을 만지작거리며 씨익 웃었다.
“아마 자기네들이 목줄을 쥐었다고 생각하겠지.”
살라딘과 보두앵.
두 사람 다 아사신을 그들의 발밑에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최후의 승자는 항상 아사신들이었다.
승전한 왕의 목에 검을 꽂고, 원하는 후계자를 자리에 앉힌다.
‘최소한의 살인을 통한 최대한의 효과.’
그게 바로 아사신들의 오랜 신조였다. 힘없는 자들에겐 경외심을, 권력자들에겐 공포를.
그 기준을 정하는 건 어디까지나 아사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