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195)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195화(195/215)
< 195화 – 마시아프와 알라무트 (5) >
“살라딘이 말하길, 폐하께서 이전에 하셨던 말씀대로 될 거라더군요.”
발리앙이 말했다.
중앙 홀에는 수십이 넘는 귀족과 영주, 성직자들이 모여 있었다.
귀족과 영주들은 갑옷 차림에 검을 차고 있었고, 성직자들은 축복의 말을 읊었다.
3차 십자군이 시작됐다는 건 이제 모두가 알고 있었다.
“내가 이전에 했던 말이라.”
살라딘과 처음 서신을 주고 받은 건 에일라트.
다음엔 예루살렘에서 보자고 했었지.
“경을 순순히 보내준 게 더 놀랍군.”
난 발리앙을 바라봤다.
이마에 새로 생긴 듯한 상처가 몇 개 보였다.
“다마스쿠스 시민들이 던진 돌에 맞은 겁니다. 살라딘이 호위들을 붙여주긴 했지만 역부족이더군요.”
발리앙이 씨익 미소 지었다.
“거리 한복판에서 제 목을 베려고 난리였습니다.”
“수고 많았네. 자네가 아니었다면 아마 실패했을 거야.”
발리앙은 아사신들을 정리하는 동안 살라딘의 시선을 끄는 역할을 자처했다.
겸사겸사 다마스쿠스의 준비태세도 점검하고.
“살라딘은 케락을 공격했을 때보다 더 많은 병력을 모았습니다.”
발리앙이 말했다.
“바그다드에 있는 칼리프도 적극적으로 도움에 나선 것 같더군요.”
“그만큼 살라딘도 절박한 걸세. 칼리프의 손까지 잡아야 할 정도로 상황이 안 좋다는 거겠지.”
이번 원정엔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살라딘 왕조의 운명도 걸려 있었다.
난 발리앙의 손을 붙잡았다.
“예루살렘은 경에게 맡기겠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주게.”
필리프, 헨리 2세, 신성로마군은 다마스쿠스.
리처드, 알렉시오스 황제, 랄리벨라 왕과 난 이집트를 맡는다.
다마스쿠스 공격은 사실 살라딘을 붙잡아놓기 위한 양동작전에 가깝지만.
예루살렘에 남아 수비를 맡는 건 발리앙.
그보다 더 잘 어울리는 적임자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원 역사에서도 예루살렘 수비를 맡았는데, 또 이렇게 맡게 되는군.’
발리앙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성도는 제 목숨을 걸고 사수하겠습니다.”
“계획대로만 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야. 여차하면 헨리 2세와 프랑스 군대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걸세.”
내가 말했다.
“어머님과 테오도라도 부탁하겠네.”
“물론입니다, 폐하.”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던가.
두 사람이 내 쪽을 향해 다가왔다.
“이제 시작이군요.”
테오도라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녀의 배는 어느새 만삭에 가까워져 있었다.
“이제 시작이죠.”
아무리 원정이 빨리 끝난다 해도 그녀가 출산하기 전까진 돌아오지 못하겠지.
“곁에 있어 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테오도라.”
의사들에게 미리 이것저것 가르쳐놓긴 했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당신은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해요, 보두앵. 난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테니.”
“···.”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나도 테오도라 곁에 있을 테니.”
시빌라가 말했다.
그녀는 아스칼론 전투 이후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고 해야 할까?
두 사람에게서 확고한 의지와 결심이 느껴졌다.
어쩌면 제일 흥분한 건 나일지도 모르겠군. 난 둘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테오도라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머니.”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난 영주들과 함께 홀을 떠났다.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첫 번째 목표지는 키프로스였다.
* * *
다미에타
“어서 서둘러라! 프랑크 놈들이 오기 전에 작업을 마쳐야 한다!”
장교들이 인부 사이를 뛰어다니며 소리쳤다. 그들은 성벽을 보강하고 쇠사슬을 다듬었다.
프랑크인들이 다미에타를 치러 온다는 건 갓난아기도 아는 사실.
시민들 모두 불안한 표정으로 뛰어다니며 도시 밖으로 나가거나 식량을 준비했다.
“최후의 심판이 다가온다! 모두 속죄하라! 프랑크인들이 오면 이곳엔 오직 피만 남을 것이다! 예루살렘의 대학살을 기억하라!”
몇몇 미치광이들이 거리를 뛰어다니며 외쳤다.
“프랑크인들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무슬림을 죽였다! 도망치는 것만이 살 길이다!”
시민들이 그들에게 돌을 던졌지만, 분위기가 암울해지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시민이 작업에 차출됐다.
“어서 빨리 준비를 서둘러라!”
“프랑크 놈들이 결코 들어올 수 없게 막아야 한다!”
타키 앗딘은 한숨을 내쉬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부관이 흥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프랑크 놈들은 결코 다미에타의 성벽을 넘지 못할 것입니다.”
그가 말했다.
“놈들이 부두를 차지한다 해도 나일강이 없으면 도시를 포위하지 못합니다.”
“그 말도 옳다. 하지만 준비를 과하게 한다 해서 손해 볼 일은 없지.”
타키 앗딘이 말했다.
항구 도시, 다미에타는 카이로로 향하는 요충지이자 견고한 요새였다.
나일강과 육지 양쪽에서 동시에 공격하지 않는 이상, 도시를 점령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전에도 프랑크인들은 성벽을 못 넘지 않았던가.
그리고 나일강 쪽은 이미 보강을 마친 상태였다.
“십자군은 배에서 내려 나일강의 탑을 점령하려고 달려들 거다. 바로 그때 우리가 나선다.”
타키 앗딘이 말했다.
그는 주먹을 쥐며 도시를 바라봤다.
이번 공격만 막아낸다면 이집트는 그의 것이 될 수 있었다.
그의 숙부, 살라딘도 그렇게 이집트를 차지하지 않았던가?
비록 아직 술탄은 아니지만, 살라딘 사후엔 그가 술탄직을 계승할 수 있었다.
유일한 방해물은 또 다른 숙부인 알 아딜뿐.
다마스쿠스에 온 지원군은 대부분 알 아딜을 따르는 자들이었다.
그들이 순수히 지원만 하기 위해 온 것일까?
“지원군은 모두 카이로에서 대기하도록 명해라.”
“그렇게 하면 자신들을 전장에서 제외시켰다며 불만을 터뜨릴 겁니다. 이번 다미에타 방어전에도···.”
“이집트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다미에타가 아니라 카이로다. 가장 중요한 곳을 맡기는데 어찌 불만이 있다는 것이냐?”
타키 앗딘이 인상을 찌푸리며 답했다.
“이런 정치싸움에 낭비할 시간은 없다. 우린 이곳에서 프랑크 놈들을 막는다.”
그가 덧붙였다.
“도망치고 싶은 자들은 얼마든지 도망치라고 전해라.”
* * *
키프로스
“배가 엄청나게 많군요.”
에이그가 갑판 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키프로스는 섬이라기보다 하나의 거대한 조선소처럼 보였다.
수백에 달하는 배들이 부두에 정박한 채 둥둥 떠 있었다.
“이집트를 정복하려면 이 정도 배는 있어야겠지.”
해상도시―동로마―트리폴리.
사실 모든 기독교 세력이 모인 연합 함대군.
베네치아와 트리폴리.
이 두 곳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콘스탄티노플과 티격태격 싸우던 사이였는데.
내가 그 셋을 잘 어르고 달래서 화해시켰다니.
‘기독교 세계의 중재자.’
이런 호칭 정도는 하나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생각에 빠진 사이 배가 부두에 정박했다. 부두에 내린 우릴 가장 먼저 반긴 건 마르코.
“폐하! 도착하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말 프랑스 왕이 생각을 바꾼 겁니까?”
“필리프가 자네들을 귀찮게 하진 않을 걸세. 단단히 목줄을 매어 놨으니 걱정하지 말게.”
내가 웃으며 답했다.
아무리 미리 입을 맞춰놨어도 필리프의 요청을 거절하긴 싫었던 건가.
난 주변을 둘러봤다. 확실히 해상도시 중에선 베네치아 배들이 제일 많군.
“베네치아에 이렇게 배가 많을 줄은 몰랐군.”
“베네치아 본국에서도 이번 십자군 원정을 위해 모든 자원을 총동원했습니다. 물론 제가 앞에 나서서 설득하긴 했지만···.”
마르코가 어깨를 쭉 펴며 덧붙였다.
“성도 예루살렘을 위한 일에 어찌 힘을 아낄 수 있겠습니까?”
“이집트의 부富가 탐난 건 아닌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내가 물었다. 이집트에 엄청난 부와 재물이 쌓여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
아사신들이 금은보화를 빼돌리다 잡힌 이후로 여러 세력이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베네치아랑 다른 해상도시들도 예외는 아니겠지.’
전리품은 각 세력의 기여도에 따라 정해진다.
더 많은 투자를 할수록 나중에 얻을 잠재적 이익도 더 커지는 셈.
물론 어디까지나 원정이 성공했을 때의 이야기지만.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흰 어디까지나 성도 예루살렘의 영광을 위해···.”
“알겠네, 알겠어. 누가 보면 내가 자네를 나무라는 줄 알겠군.”
뭐, 내 입장에선 전리품보다 지원을 받는 게 더 중요하니.
마르코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기다란 행렬이 부두에 모습을 드러냈다.
수없이 늘어진 깃발과 나팔들.
황금으로 치장된 값비싼 갑옷들까지.
이전에 콘스탄티노플에서 본 적 있는 광경이었다. 난 불트 위에 올라타 천천히 그쪽으로 향했다.
행렬의 선두에는 동로마의 황제.
알렉시오스 2세가 서 있었다.
“드디어 다시 뵙게 됐군요, 바실리우스(황제) 폐하.”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보두앵.”
우리 둘은 웃으며 서로의 팔을 붙잡았다. 마지막으로 헤어졌을 때보다 훨씬 더 듬직해진 것 같은데.
겁에 질려 벌벌 떨던 어린 황제. 그게 내가 처음 알렉시오스를 만나고 받은 인상이었지.
함께 반란을 막았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난 암살자랑 직접 싸웠었고.’
웅장했던 콘스탄티노플의 모습이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위그와 함께 성벽에서 돌격하며 느꼈던 쾌감.
알렉시오스가 뒤를 가리키며 빙긋 미소 지었다.
“테오도라 황녀, 아니 왕비께서 회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겸사겸사 축하 선물도 챙겨왔고요.”
“그냥 선물이라 하기엔···.”
끝없이 이어지는 비단과 궤짝들.
아무래도 금화로 꽉 찬 것 같은데.
“좀 과분한 것 같습니다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공짜로 준다는 걸 마다할 필요는 없지.
역시 세계의 모든 부가 모인다는 콘스탄티노플답네.
원 역사의 안드로니코스는 도대체 어떻게 이런 대제국을 말아먹은 걸까?
“단순히 예루살렘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건 아닙니다. 나도 이젠 제국을 이끄는 입장이니···.”
알렉시오스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아야죠. 비록 아버지는 이집트 원정에 실패하셨지만, 난 승리를 거둘 겁니다.”
난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마누일 대제도 예루살렘과 손잡고 이집트 원정을 시도했었지.
이집트에 도착도 못 하고 실패했지만.
‘이번 원정이 실패하면 알렉시오스의 황권에도 타격이 갈 터.’
거기에 예루살렘―동로마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번 원정은 성공해야만 했다.
“이쪽으로 오시죠. 잉글랜드에서 온 리처드 공작과 자그위 왕국의 랄리벨라 국왕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내가 그의 곁에 서며 말했다.
그때 행렬 뒤쪽에서 뭔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검은색 나무통들.
인부들이 수십 수백 개가 넘는 통들을 나르고 있었다.
“저건···.”
“아, 이번에 콘스탄티노플에서 새로 가져온 그리스의 불입니다.”
알렉시오스가 미소 지었다.
그가 내 쪽으로 고개를 숙이며 속삭였다.
“제국의 비밀을 하나 알려드리죠. 사실 그리스의 불 재료는 대부분 아나톨리아 동부에서 나옵니다.”
“아나톨리아 동부라면··· 룸 술탄국이군요.”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얼마 전에 레몽 백작이랑 동로마군이 손잡고 룸 술탄국을 쳤었지.
그래서 저렇게 많이 만들 수 있었던 거군.
알렉시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이번 원정에선 재고 걱정 없이 펑펑 쓸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재고 중 일부를 아스칼론으로 보내고 싶습니다만.”
“아스칼론이라면···.”
“그쪽에도 그리스의 불이 필요해서요.”
내가 웃으며 답했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그냥 놓칠 수는 없지.
“정확히 말하자면 낙타들에게 필요하죠.”
“아, 그리고…”
알렉시오스가 부두 한쪽을 가리켰다.
수십 척의 배 사이로 뭔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마치 배 위에 공성탑을 쌓아둔 듯한 모습.
내가 알렉시오스에게 직접 제작을 부탁해둔 함선이었다.
“보두앵 그대가 말한 배를 준비해놓긴 했습니다만···.”
그가 물었다.
“도대체 어디에 쓰려고 저런 탑을 부탁한 겁니까?”
“아, 저건···.”
난 웃으며 알렉시오스를 바라봤다. 다 준비해둔 이유가 있지.
“곧 아시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