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197)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197화(197/215)
< 197화 – 이집트 원정 (2) >
다마스쿠스
“저 망할 놈의 도시는 정말 더럽게 크군.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이까?”
헨리 2세가 냉수를 들이켜며 말했다.
“제아무리 크다 한들 투석기를 두드려 맞으면 무너지는 법이오.”
필리프가 말했다.
진영 곳곳에선 한창 장인들이 투석기를 조립 중이었다.
‘고약한 이웃(Méchant Voisin)’과 ‘신의 투석기’. 병사들은 이 투석기들이 완성되기만을 기다렸다.
“투석기가 완성되면 대대적인 공세를 펼치는 게 어떻겠소?”
헨리 2세가 말했다.
“다른 사라센 군대들이 다마스쿠스에 도착하기 전에 승부를 보는 거요.”
“보두앵이 말하길, 살라딘은 경계심이 많고 준비성이 철저하다고 했소. 기존 계획대로 해야 하오.”
필리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마스쿠스를 포위한 이후, 헨리 2세는 계속해서 주도권을 잡으려 했다.
프랑스군과 잉글랜드군.
양측의 신경전은 매일 이어졌다.
하지만 상위군주는 어디까지나 프랑스, 즉 필리프였다.
거기에 헨리 2세와 리처드, 젊은 헨리 모두 그에게 충성맹세를 하지 않았던가.
더 높은 권위는 필리프에게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권위를 내세울 순 없는 법.
우선은 다마스쿠스에서 맡은 임무를 해내야 했다.
‘보두앵이 이집트를 점령할 때까지 시간을 끌어야 해.’
필리프가 말했다.
“우리가 할 일은 살라딘의 발목을 잡아두는 거요. 뭐하러 위험을 자처한단 말이오?”
“상황이 좋다면 몇 발자국 더 나아가는 것도 괜찮지 않겠소이까.”
헨리 2세가 미소 지으며 답했다.
필리프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이곳 다마스쿠스까지 온 이상 다른 마음을 먹을 순 없었다.
유럽에 돌아가 목소리를 키우려면 그 역시 공을 세워야만 했다.
“정찰병들의 보고에 따르면 살라딘은 아직 다마스쿠스에 있소.”
필리프가 말했다.
“하지만 동생인 알 아딜의 행방은 묘연하다더군. 정보를 파악한 후에 행동에 나서도 늦지 않을 거요.”
“만약 그렇다면···.”
헨리가 입을 열던 그때 기사 몇 명이 달려왔다.
선두의 윌리엄 마셜이 말했다.
“폐하, 사라센 대군이 다마스쿠스를 향해 접근하고 있습니다.”
“알 아딜이 구원군을 끌고 온 거로군. 수는?”
“낙타 수를 봤을 때 대략 7만 정도로···.”
“7만?”
필리프와 헨리 2세는 인상을 찌푸리며 서로를 바라봤다.
둘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숫자.
“지금 바로 조슬랭 백작에게 부대를 끌고 내려오라 하게.”
필리프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적이 그 정도 병력이라면 북부에서 기만술을 펼칠 여유도 없겠지.”
“주님께서 내게 정녕 구원을 허락해주실지는···.”
헨리 2세가 앞의 성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곧 알 수 있겠구려.”
* * *
이집트
다미에타
“민간인들을 약탈하는 건 엄격히 금지한다! 모든 전리품은 광장에 모아 직접 배분할 것이다!”
“몸값을 낸 시민들은 모두 도시에서 떠나도 좋다!”
포고관과 장교들이 거리를 걸어 다니며 외쳤다.
다미에타 시민들은 도시 밖으로 떠나거나, 집 안에 숨어 거리를 바라봤다.
“첫 공성전이 이렇게 싱겁게 끝날 줄은 몰랐군.”
리처드가 하품을 내쉬며 말했다.
난 그와 함께 거리를 천천히 행진했다.
알렉시오스와 랄리벨라는 선두 쪽에 떨어져 있었다.
“본대가 처참히 패배하는 걸 코앞에서 봤으니 별수 없었을 겁니다. 수비군의 사기도 바닥으로 떨어졌겠죠.”
내가 고삐를 당기며 답했다.
성벽 앞에서 벌어진 전투는 우리의 압승으로 끝났다.
내기의 승자는 놀랍게도 자그위 왕국 기사들.
에티오피아인들은 프랑크인들을 제치고 가장 많은 포로를 사로잡았다.
“그나저나 아비시니아(에티오피아) 놈들도 그런 비겁한 무기를 쓰다니. 내기는 무효요.”
“무슨 무기를 쓰면 안 된다고 정한 적은 없지 않습니까?”
내가 웃으며 답했다.
사실 전투만 따지고 보면 예루살렘과 잉글랜드 기사들의 승리였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인들은 돌멩이 두 개를 줄에 묶은 무기로 포로들을 사로잡았다.
애초에 승부는 누가 더 많은 포로를 잡느냐였으니.
‘타키 앗딘을 잡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녀석을 붙잡는 건 실패했다. 그렇게 빨리 도망쳐버릴 줄이야.
녀석은 쫓아갈 틈도 없이 곧장 자취를 감췄다.
“그나저나 저자들은 그냥 왜 풀어주는 거요?”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리처드가 거리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줄줄이 도시 밖으로 나가고 있는 피난민 행렬.
“저들을 저렇게 풀어주면 다 카이로로 갈 거요. 그만큼 타키 앗딘의 수비군도 늘어나겠지.”
“그리고 카이로의 식량 사정도 그만큼 안 좋아지겠죠.”
내가 말했다.
사실 다미에타가 곧바로 항복한 건 현명한 판단이었다.
항복하면 시민들에게 해를 가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긴 했지만.
‘공성전이 이어졌으면 이렇게 순순히 보내주진 못했겠지.’
긴 공성전 이후 도시를 점령하면 3일간 약탈을 허용하는 게 이 시대의 관례였다.
리처드가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수만이 넘는 피난민들을 카이로에서 내쫓을 수도 없겠군.”
난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내 도덕심을 채우기 위해 시민들을 풀어준 건 아니었다.
더 많은 피난민이 몰려갈수록 카이로의 비축 식량이 더 빨리 소모된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요?”
리처드가 멈춰 서며 물었다.
“다미에타를 손에 넣었으니 첫 단계는 무사히 끝낸 셈이지. 카이로를 치러 갈 거요?”
그가 말했다.
“이곳의 정보원들에게 들으니 이쯤이면 나일강이 범람한다더군. 불어 오르는 강을 옆에 끼고 행군하긴 힘들 거요.”
“공작의 말씀이 옳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5차 십자군도 그렇게 실패했지.
다미에타를 점령한 후에 무작정 카이로로 행군하다가 나일강에 끼어 포위됐으니.
그들은 다미에타를 포기하고 떠나겠다는 서약을 한 후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애초에 카이로는 점령하기 쉬운 도시가 아니었다. 성벽은 그리 높지 않지만, 안의 수비 병력이 너무 많았다.
“그렇다고 여기 다미에타만 계속 있을 순 없는 노릇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보급과 자금은 떨어질 거요.”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리처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본대를 이끌고 카이로로 진격할 것도 아니고, 다미에타에 가만히 있을 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뭐요?”
“선택지들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땐···.”
내가 말했다.
“전제 자체를 바꾸면 됩니다. 카이로의 군대를 이곳으로 끌어낸다면 어떻겠습니까?”
“···.”
리처드가 진지한 표정으로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물론 그럴 수만 있다면 그게 가장 좋겠지. 하지만 타키 앗딘은 조심스러운 자라고 하지 않았소? 그자가 순순히 나와주진 않을 거요.”
“미리 준비해둔 게 있습니다.”
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3차 십자군을 시작하기 전부터 물밑에서 준비해왔던 전략.
‘정확히 말하자면 타키 앗딘이 아스칼론에서 성공적으로 후퇴한 후부터겠군.’
타키 앗딘과 알 아딜 사이의 권력 다툼.
전쟁에서 이기는 가장 쉬운 방법은 혐성질, 즉 적을 분열시키는 거였다.
“첩보에 따르면 알 아딜 휘하의 군대가 얼마 전 이집트로 왔다고 합니다.”
내가 말했다.
“이집트 수비를 돕기 위해서 온 지원군이겠죠.”
“알 아딜이라면 살라딘의 동생을 말하는 거군. 그들을 어떻게 이용하겠다는 거요?”
“간단합니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우린 계속 지기만 하면 되죠.”
“지면 된다고?”
리처드가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전투에서 져야 이길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은 보두앵 그대밖에 없을 거요.”
* * *
카이로
한때 시아파 칼리프가 다스렸던 왕궁은 이제 총독 집무실로 쓰였다.
황금과 온갖 재물이 넘치는 곳.
카이로는 곳곳에서 몰려든 피난민들로 북적거렸다.
“놈들은 곧장 이곳 카이로로 올 게 분명합니다!”
“올 테면 얼마든지 오라고 하게! 비록 다미에타를 잃긴 했지만 이곳 카이로는 난공불락의 요새야!”
총독 집무실.
장군들 모두 고함을 내지르며 팔을 흔들었다.
“카이로만 있다면 다미에타쯤이야 언제든 되찾을 수 있네! 시간은 어차피 우리 편 아니던가!”
“술탄께선 왜 다마스쿠스에서 군대를 끌고 오시지 않는 거요?!”
“다마스쿠스도 이미 프랑스와 인키타(잉글랜드) 놈들의 공격을 받고 있네.”
“하지만 인키타 공작은 지금 다미에타에 있지 않소이까?! 샤이탄(악마)은 다미에타에 있단 말이오!”
샤이탄이란 말에 침묵이 흘렀다.
노란 사자가 새겨진 문양.
알레포에서 마수드 아타벡을 단신으로 사로잡았다는 프랑크인 공작은 이집트에도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런 악마가 다미에타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모두 진정하게. 흥분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하나도 없으니.”
상석에 앉아있던 타키 앗딘이 입을 열었다.
그는 물 적신 수건을 뺨의 상처에 갖다 댔다.
그가 다미에타에서 도망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천운이었다.
전세가 기울자 그는 곧장 경마용 낙타에 올라타서 카이로로 후퇴했다.
“우선은 카이로의 수비에 집중해야 하네. 프랑크 놈들이 곧장 이곳으로 오든 오지 않든···.”
그가 좌중을 바라봤다.
“카이로만 있다면 이집트는 우리의 손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일세.”
다미에타의 소식이 전해지자 수비병들의 사기는 바닥을 쳤다. 몰려드는 피난민들까지.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했다.
“거기에 지금은 한창 나일강이 범람할 때야. 프랑크인들도 섣불리 행군해오지 않을 걸세.”
“프랑크인들의 기세를 무시해선 안 됩니다, 총독님.”
한 늙은 장군이 말했다.
“그들은 항상 예상치 못한 곳에서 공격을 해오지 않았습니까? 이번 다미에타에도···.”
주변 장군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공성탑이 달린 배.
프랑크인들이 그런 무기를 끌고 왔을 거라고 상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나일강을 돌아 이곳 카이로까지 진격해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이대로 있다간 피난민들이 학살을 당할 겁니다!”
타키 앗딘이 일어서자 그들 모두 입을 다물었다.
“우선 카이로에 있는 그리스도인들부터 내쫓게. 도시 외곽에 방어물을 지어야 한다고 전해.”
그가 말했다.
“작업을 핑계로 성문 밖으로 끌어낸 다음, 들어오지 못하게 하면 되겠지. 다마스쿠스 때처럼 소란이 벌어져선 안 되네.”
“물론입니다, 각하.”
“보두앵이 어쩌면 그들을 이용해 뭔가 계획을 꾸며놨을지도 몰라. 낌새가 보이면 바로 거리를 통제하게.”
타키 앗딘이 고개를 돌려 좌중을 바라봤다.
“난 아스칼론에서 프랑크인들을 무찌른 적 있네. 놈들은 결코 무적이 아니야. 비록 다미에타는 놈들의 손에 넘어갔지만···.”
그가 덧붙였다.
“아직 이곳 카이로는 건재하지 않나? 다마스쿠스에서 온 지원군도 있으니 우리가 불리하기만 한 것은 아닐세.”
“···.”
다마스쿠스에서 온 장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 아딜을 따르는 자들.
타키 앗딘이 그들을 견제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자네들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맡기도록 하지.”
총독이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카이로의 수비 태세가 완성될 때까지 프랑크인들의 진격을 늦추게. 할 수 있겠나?”
침묵이 흘렀다.
프랑크 기사들과의 정면승부.
그게 자살행위라는 건 모르는 이는 없었다. 타키 앗딘은 그런 임무를 태연하게 맡긴 것이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거부한다면 항명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물론입니다, 총독 각하.”
다마스쿠스에서 온 한 장교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무슬림들을 구하고 카이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