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198)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198화(198/215)
< 198화 – 이집트 원정 (3) >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계속 후퇴만 하려니 진이 더 빠지는군요. 이렇게 타키 앗딘이 소극적일 줄은 몰랐습니다.”
에이그가 투구를 벗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녀석은 내가 건넨 물통을 입에 갖다 댔다.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는 겁니까?”
“놈들이 넘어올 때까지.”
난 앞의 모래 능선들을 바라봤다. 공격과 후퇴만 반복하길 일주일째.
예상했던 대로 우릴 막아선 건 타키 앗딘의 본대가 아닌 다마스쿠스 지원군이었다.
우릴 막기 위해 던져진 패.
하지만 우린 일부러 그들에게 하는 척하며 꾸준히 후퇴했다.
위장 퇴각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마주치자마자 후퇴하는 건 소용도 없었다.
싸우다 아슬아슬하게 지는 척하며 도망. 몽골군이 썼던 전형적인 유인 전술이었다.
‘피해가 별로 크지 않아서 다행이긴 한데.’
난 현지에서 고용한 용병들을 전면에 세웠다.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기사단원과 기병들은 별다른 손실이 없는 상태.
“문제는 네 말대로 타키 앗딘이 생각보다 안 나온다는 거야. 살라딘을 닮아서 조심성이 많긴 하네.”
녀석은 아직 카이로에 박혀 있었다. 내 계획을 눈치챈 걸까?
‘다미에타를 빼앗겼으니 그만큼 수비적으로 나오는 걸 수도 있겠군.’
타키 앗딘의 본대가 넘어오지 않는다면 함정은 실패였다.
“다미에타로 돌아가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폐하.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제대로 된 공세를 준비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에이그가 말했다.
“제아무리 카이로라 해도 지원군 없이 오래 버티진 못할 겁니다. 식량도 슬슬 떨어지고 있을 테고요.”
“그럼 계획이 뒤로 늦춰질 테지만···.”
카이로 본대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 수밖에 없겠군.
그때 가니에르가 말을 타고 달려왔다. 혼란스러운 감정.
“폐하! 지금 바로 다미에타로 돌아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인가?”
“로마인들과 왕국군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다미에타 거리 한복판에서 난투극이···.”
“뭐라고?”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 * *
알렉시오스는 계속 한숨만 내쉬었다.
“모두 다 내 불찰입니다. 그냥 다미에타를 지키기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이런···.”
그가 부끄럽다는 듯 목소리를 줄였다.
“바실리우스(황제)인 내가 귀족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겁니다. 그리고 귀족들은 병사들을 제대로 통제하질 못했죠.”
그가 자세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상황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난 리처드, 랄리벨라 왕과 함께 카이로로 진격하는 척을 했다.
그 사이 다미에타의 수비를 맡은 건 알렉시오스.
십자군과 함께 싸워본 적 없는 로마군이 남는 건 당연한 선택이었다.
‘유인 전술을 능숙하게 하려면 경험이 꼭 필요하니.’
우리가 떠난 후 며칠 동안은 별다른 일이 없었다.
문제가 터진 건 다미에타 근처의 무슬림 캐러밴(상단)을 잡은 후.
“결국엔 그 전리품 때문에 싸웠다는 거군요.”
“···잉글랜드 병사 중 일부가 전리품을 빼돌리다가 잡혔습니다. 그걸 잡는 와중에 소란이 터졌고요.”
알렉시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이 내 곁에 선 리처드를 향했다.
리처드가 날 바라보며 답했다.
“내가 놈들을 인계받아서 직접 취조했소. 순순히 죄를 자백하더군.”
그가 말했다.
“군법에 따라 손을 자를 생각이오.”
“그렇군요.”
난 생각에 빠졌다.
이 시대의 전리품 배분은 나름 빡빡하단 말이지.
전리품은 우선 한곳에 모은 뒤 계급과 기여도에 따라 배부하는 게 원칙이었다.
리처드가 말했다.
“어쩌면 사라센인들이 벌인 일일 수도 있소. 캐러밴 상단이 왜 점령 중인 다미에타 근처를 어슬렁거리겠소?”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겠군요. 갑자기 큰 전리품을 얻게 되면 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타키 앗딘이 일부러 캐러밴을 미끼로 던졌을 수도 있겠군. 그렇다면 녀석의 계획대로 놀아났다는 건데.
아마 나였어도 십자군의 분열을 노렸겠지.
그때 리처드가 알렉시오스에게 말했다.
“이번 사태로 벌어진 제국 측의 피해는 나와 잉글랜드가 책임지고 보상하겠습니다.”
“그럼 소란이 줄어들긴 하겠지만, 적대심은 여전히 남을 겁니다.”
그렇게 말한 난 허리춤의 검을 만지작거렸다.
전리품 배분을 놓고 벌어진 다툼.
만약 이게 타키 앗딘의 책략이라면···. 어쩌면 이걸 이용할 수 있을지 몰랐다.
“그게 무슨 말이오?”
“타키 앗딘은 우리의 유인에 넘어오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후퇴하는 척만으론 부족했다는 거죠.”
내가 말했다.
“다미에타에서 벌어진 소란은 이미 타키 앗딘의 귀에 들어갔을 겁니다.”
다미에타에 첩자 몇 명 정도는 숨어있을 터.
실제 부상자가 나온 일이니 연극이라고 의심하지도 않겠지.
‘애초에 진짜 벌어진 일이니까.’
타키 앗딘은 자신의 계획이 성공했다고 생각할 터.
이건 좋은 미끼가 될 수 있었다.
카이로의 본대가 나올 수밖에 없는 커다란 미끼.
“공작께선 그들을 처벌하실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가 좋겠군요. 당사자들을 두둔해주시는 겁니다.”
난 리처드를 바라봤다.
알렉시오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끼어들었다.
“공작이 사과하지 않는다면 로마인들은 더더욱 분노할 겁니다. 아무리 황제인 나라고 해도 그 정도 불만을 잠재울 순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도 바로 그겁니다. 폐하께선 불만을 잠재우지 않으셔도 됩니다.”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계획이 성공했다는 걸 알면 타키 앗딘도 의심을 누그러뜨리겠지.
그걸 이용하면 나도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위험이 없진 않은데.
알렉시오스를 믿을 수 있을까?
그의 눈빛에서 난 강한 의지를 읽었다.
그래, 몇 년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
“폐하께도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말했다.
“저랑 함께 연극을 하는 게 어떠십니까?”
* * *
순조로웠던 첫 점령과 달리, 다미에타의 분위기는 그리 좋지 않았다.
카이로를 목표로 출정했던 원정대는 별 소득 없이 후퇴만 계속하다 도시로 귀환.
그리고 전리품 배분으로 시작된 십자군 간의 다툼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어째서 아키텐 공작은 사과하지 않는 거요?! 전리품을 숨긴 건 그의 병사들이오!”
“목을 매도 시원찮을 판국에 아무 처벌도 내리지 않겠다니?!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오! 로마 제국을 무시하는 거요?!”
“먼저 전리품을 빼돌리려 했던 건 로마인들 아닌가! 우리가 카이로로 진격하는 동안 네놈들은 뭘 했다는 거야!”
“사라센들을 상대로 이기지도 못하고 도망만 쳤으면서 어디서 큰 소리인가!”
리처드 공작이 노골적으로 사과와 처벌을 거부하면서, 분위기는 험악해져만 갔다.
거리 곳곳에서 잉글랜드와 로마 병사들의 패싸움을 보는 일도 흔해졌다.
한편, 지휘 천막에서도 다툼이 계속된다는 소문이 퍼졌다.
“보두앵 그대는 우리를 집 지키는 개처럼 취급하며 홀로 진격했소! 처음 약속했던 것과 다르지 않소이까?”
“폐하께선 귀족들 손에만 끌려다니고 계십니다! 콘스탄티노플에서도 어찌···!”
예루살렘, 잉글랜드, 자그위, 동로마.
십자군 사이의 다툼은 병사들을 넘어 귀족과 영주들에게까지 번졌다.
살짝 갈라진 틈새가 벌어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이번 카이로 원정의 선두에 선 건 우리 자그위인들이었소! 전리품을 다시 배정해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뭐 어쩔 거요?!”
“가장 많은 포로를 잡은 건 우리 자그위 왕국이야!”
“하지만 가장 많은 이교도를 죽인 건 우리 리처드 공작이시다!”
해상도시인들은 그 중간에 낀 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그리고 일주일째 되던 날, 충격적인 소식이 알려졌다.
“모든 로마 병사들은 승선을 준비하라! 바실리우스(황제) 폐하의 명이 떨어지면 곧바로 다미에타를 떠난다!”
로마인들이 십자군 원정에서 이탈한다는 소식이 다미에타를 뒤흔들었다.
“역시 로마인들은 가장 중요한 시기에 발을 빼는군! 배신자들 같으니라고!”
“뭐 하나 한 것도 없는 자들이 이렇게 도망만 치려 한다니!”
소란이 오고 가는 가운데 로마 함대는 다미에타를 떠날 준비를 서둘렀다.
병사들이 하역한 보급품을 다시 갑판으로 옮겼다.
“로마 겁쟁이들은 떠나려면 떠나라고 해라! 그들 없이도 십자군은 승리할 수 있다!”
한편 보두앵은 분위기를 다잡은 후 다시 다미에타를 떠나 카이로로 진격했다.
다미에타에 남은 건 소수의 수비 병력.
“데우스 불트! 신께서 원하신다!”
십자군 병사들의 구호 소리에는 더 이상 힘이 실려있지 않았다.
* * *
카이로
“각하께서 옳은 결정을 내리신 겁니다.”
한 장군의 말에 다른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로에서 가만히 버티니 저 프랑크 놈들이 알아서 흩어지지 않았습니까?”
“고작 캐러밴 하나 때문에 그런 싸움을 벌이다니.”
“역시 프랑크 놈들은 성전이 아니라 금은보화를 노리고 이집트를 침공해온 겁니다!”
“룸인(로마인)들의 함대가 삼 일 전 다미에타를 떠난 게 확인됐습니다. 이제 도시엔 한 줌의 수비 병력도 남지 않았습니다.”
부하들의 말에 타키 앗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보두앵도 다시 진격을 시작한 거로군. 이제 남은 선택지는 공격밖에 없는 거야.”
그는 지도를 바라봤다.
제아무리 십자군이라 해도 지도자들이 모두 다른 속셈인 건 분명했다.
이슬람 지하드와 마찬가지로 각자 얻을 이익이 없으면 자연히 흩어질 터.
일부러 캐러밴 상단들을 다미에타 쪽으로 유도한 것도 그래서였다.
그리고 십자군들은 그의 예상대로 서로를 물어뜯었다.
‘다미에타에서 벌어진 소란은 보두앵이 꾸며냈다고 하기엔 너무 규모가 크다.’
룸인들의 함대가 다미에타를 떠난 것 역시 숨길 수 없는 사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각하?”
“어떻게 하다니?”
“다마스쿠스에서 온 지원군은 아직 다미에타 주변에 있습니다. 그들을 보두앵 군대의 측면으로 이동시켜 압박한다면···.”
“지금 굳이 위험한 수를 던질 필요가 있겠나?”
타키 앗딘이 미소 지었다.
보두앵을 사로잡거나 항복을 받아내는 걸 다른 이한테 맡길 순 없었다.
‘숙부(알 아딜)의 부하들에겐 더더욱 맡길 수 없지.’
그것보다 더 확실한 수가 있었다. 그가 공적을 안전히 독차지할 수 있는 방법.
“그들을 다미에타와 프랑크 군대의 사이로 이동시켜서 보급로를 끊도록 하게.”
그가 말했다.
“다미에타에서 오는 보급이 끊긴다면 프랑크 놈들도 멈춰설 수밖에 없겠지. 그리고 놈들의 진이 다 빠졌을 때···.”
“총독 각하께서 직접 그놈들의 숨통을 끊으시는 겁니다!”
타키 앗딘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젊은 장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부디 제게 선봉에 설 영광스러운 기회를···!”
“제가 술탄의 이름으로 십자가 이교도 놈들을 모조리 잡아 오겠습니다!”
회의실은 한순간에 함성으로 가득 찼다. 타키 앗딘이 일어서자 사내들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럼 결정된 거로군. 우선 다마스쿠스 군대에게 서신을 보내게. 무리해서 교전하지 말고 보급로만 차단하라고 말이야.”
어차피 보두앵을 사로잡으면 그걸로 십자군 원정은 끝날 터였다.
몸값 협상을 하며 시간을 질질 끌면 바다 건너에서 온 프랑크인들은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놈들이 다미에타로 돌아가지 못하게 길목을 제대로 막아야 할 게야.”
“지금 바로 명령을 전하겠습니다.”
“좋아, 그리고 자네들은 군대를 소집하게.”
타키 앗딘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프랑크인들의 왕 중 왕, 자칭 알 쿠드스(예루살렘) 왕을 사로잡는 건 자네들이 해야 하지 않겠나?”
* * *
“폐하, 적들이 다미에타로 가는 길목을 차단했습니다.”
가니에르가 말에서 내리며 말했다. 난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움직이는 거군.”
이제 보급로는 끊겼다.
앞엔 타키 앗딘의 본대. 그리고 뒤엔 다마스쿠스 군대.
완전한 사지死地.
지금까진 계획한 대로 흘러가는군.
가니에르가 걱정스럽다는 어조로 말했다.
“사자의 입안에 들어온 상황이군요.”
“걱정할 게 뭐가 있나? 사자에게 먹혔다면···.”
그렇게 말한 난 어깨를 으쓱였다.
“배를 가르고 나오면 그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