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207)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207화(207/215)
모든 걸 끝낼 전쟁 (2)
예루살렘
“멈추지 말고 계속 공격해라! 우상숭배자들이 숨돌릴 시간을 주면 안 된다!”
알 아딜이 소리쳤다.
그는 눈앞의 성벽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이집트가 프랑크 놈들의 손에 넘어갔다.
곧 로마와 아비시니아(에티오피아) 군대가 레반트로 올 터.
‘그전에 어떻게든 저 성벽을 넘어야만 한다.’
하지만 프랑크인들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얼마나 더 많은 목숨을 바쳐야 성벽을 넘을 수 있을까?
알 아딜은 지휘 천막을 향해 걸어갔다. 살라딘과 다른 지휘관들이 그를 반겼다.
“너도 많이 차분해졌구나, 알 아딜.”
“지휘관이 병사들 앞에서 흥분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신 건 형님 아니십니까?”
“그래, 흥분과 불안만큼 잘 퍼지는 감정도 없지.”
살라딘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알 쿠드스 내부에 있던 첩자들과는 아직 연락이 안 되고 있다. 공성전이 시작하자마자 모두 자취를 감췄어.”
“프랑크 놈들도 저희가 심은 첩자를 알고 있던 거군요. 하지만 수십이 넘는 자들을 어떻게 모두….”
이전보다 적긴 했지만, 알 쿠드스엔 적지 않는 무슬림 첩자들이 있었다.
살라딘에게 급여를 받으며 정보를 수집하는 자들.
“어쩌면 보두앵이 정말 대천사의 계시를 받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형님!”
“농담으로 한 말이다.”
살라딘이 웃으며 답했다.
그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지만, 제대로 잠자지 못한 기색이 역력했다.
“놈들은 미리 첩자들을 파악해놨다가, 포위가 시작되자마자 처리한 거야. 이전에 받았던 정보들도 다 믿을 순 없을 거다.”
그가 알 아딜을 바라보며 물었다.
“공성탑들은?”
“이미 최종 단계에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늦어도 일주일 안에 준비를 마칠 겁니다.”
“공성탑이 준비되기 전에도 프랑크 놈들을 압박할 필요는 있겠지.”
살라딘이 성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성문 주변엔 무슬림 병사들의 시체가 쌓여 있었다.
“우린 파도처럼 저 도시를 뒤흔들어야 한다.”
그와 알 아딜은 서로를 바라봤다. 둘의 생각은 같았다.
‘이번 공격에 모든 게 달려있다.’
아이유브 가문.
예루살렘을 얻으면 지금까지의 실패를 모두 만회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실패한다면 모든 건 사라진다. 이집트가 십자군 손에 완전히 넘어가면 다마스쿠스도 지킬 수 없을 터.
이번 지하드에 참가하지 않은 알레포의 군대는 더 커질 게 분명했다.
그때 살라딘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투석기들에게 전해라. 무슨 일이 있어도 정궁 쪽으로는 돌을 던지면 안 된다.”
“하지만 프랑크 귀족과 영주들이 그곳에 있습니다. 궁전이 무너지면 프랑크인들의 사기도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보두앵의 아내, 프랑크인들의 왕비가 그곳에 있다는 걸 잊은 게냐?”
살라딘이 인상을 찌푸렸다.
“거기에 지금은 아이까지 있는 몸이지.”
“형님께선 적국의 임신한 왕비를 걱정하시는 겁니까?”
“이 아둔한 녀석아. 왕비가 죽기라도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게냐?”
살라딘이 차분한 어조로 답했다.
그의 눈빛을 본 알 아딜은 입을 다물었다.
“프랑크인들은 오히려 똘똘 뭉쳐 끝까지 싸울 거다. 지하드가 성공하기 위해서라도 그런 상황은 막아야 한다.”
“…알겠습니다.”
“지금까지도 너무 많은 피를 흘렸어.”
살라딘이 돌격을 준비하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든 알 쿠드스를 손에 넣어야 한다.”
* * *
“성문을 부숴라! 최초로 성문을 넘는 자에겐 포상이 주어질 것이다!”
“알라의 전사들이여! 돌격하라!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천국이 그대들을 기다린다!”
공성탑의 완성과 동시에 본격적인 공성전이 시작됐다.
살라딘의 군세와 예루살렘.
양측 모두 투석기로 돌과 불타는 기름을 던졌다.
예루살렘은 그리스의 불.
무슬림들은 나프트(석유 화합물).
항아리가 깨질 때마다 곳곳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삭힌 오줌과 식초가 곳곳에 뿌려졌다.
성벽 위엔 수많은 국적의 병사들이 서 있었다.
트리폴리와 안티오키아, 잉글랜드, 프랑스, 신성로마제국, 이탈리아 코무네(도시)들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온 힘을 다해 몰려드는 무슬림 병사들을 막아냈다.
“으아아! 내 팔! 내 팔이!”
목에 화살이 꽂힌 병사가 아래로 떨어지고, 돌덩이에 맞아 곤죽이 된 팔다리가 날아다녔다.
비명 울려 퍼지는 건 성벽뿐만이 아니었다. 정궁 가장 깊숙한 방.
시빌라가 방문 앞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어젯밤 시작된 테오도라의 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영주와 귀족들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한 채 찾아왔지만, 아무도 방 안으로 들어가진 못했다.
산파들이 외치는 소리만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의사 한 명이 방 밖으로 나오자 시종들이 그에게 다가가 뜨거운 물이 든 대야와 비누를 건넸다.
손을 박박 씻는 의사를 향해 시빌라가 물었다.
“어떻게 됐나?”
“난산이 너무 오래 이어지고 있습니다. 만약 오늘 해가 지기 전까지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면….”
의사가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최악의 경우엔 산모와 아이 모두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
의사는 반복해서 손을 물에 씻었다. 보두앵이 떠나기 전 가장 강조했던 사항 중 하나.
그건 바로 청결이었다.
그때 방안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시빌라와 의사 모두 곧장 방안으로 뛰어들어갔다.
“테오도라!”
시빌라가 침대로 다가가며 외쳤다. 테오도라는 온몸이 땀에 젖은 채 누워 있었다.
“산모와 아이 다 무사하십니다.”
산파가 몸을 돌리자 아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옅은 붉은색의 피부.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자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왕자님이십니다.”
시빌라는 포대에 쌓인 아기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어머니.”
“테오도라, 몸은 좀 어떻….”
“살라딘. 살라딘의 공격은 어떻게 됐나요?”
“오늘 전투는 거의 끝났어. 곧 해가 질 거다.”
“그럼 종을 울리세요.”
테오도라가 아기를 건네받으며 말했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아기의 모습에 그녀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왕국의 후계자가 태어났다는 걸 어서 빨리 알려야죠.”
몇 분 후, 요란한 종소리가 예루살렘을 뒤흔들었다.
“왕자님께서 태어나셨다! 주님께선 성도를 보살피신다!”
기사와 병사들의 함성이 성벽을 타고 울려 퍼졌다.
* * *
메카
“이게 바로 잠잠 샘물입니다.”
난 무슬림 학자가 건넨 잔을 받았다. 소주잔처럼 작은 크기.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일이 사막에 버려졌을 때 알라께서 그를 불쌍히 여겨 내리신 물이지요. 잔에 든 물을 세 번에 나눠 드셔야 합니다.”
“세 번이라. 제사 때 술 따르는 거랑 똑같군.”
“예?”
“아무것도 아닐세.”
그렇게 답한 난 잔을 기울여 물을 마셨다. 메카는 점령당한 것치고 평화로웠다.
무기를 버린 무슬림 병사들은 도시를 떠났고, 식량을 실은 보급대가 성문 안으로 들어왔다.
메카 시민들은 한쪽에 모여 식량을 배급받았다.
분위기는 평화로웠지만, 시민들 대부분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우릴 바라봤다.
‘완전히 믿긴 어렵겠지.’
난 기사들 중심에 선 채 거리를 행진했다.
메디나부터 나와 동행한 무슬림 학자, 이븐 무니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바로 앞이 카바 신전입니다. 폐하께서 그곳에 들르고 싶으시다면….”
“카바 신전이라.”
신성한 검은 돌이 있는 장소이자 모든 무슬림 순례자들이 죽기 전 오려 하는 곳.
“아니, 카바 신전에 들어갈 생각은 없네.”
내 말을 들은 무니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의외라는 반응.
“내가 거기 들어가면 어떻게 되겠나?”
내가 웃으며 물었다.
그 정도도 예측 못 할 정도로 내가 바보는 아니지.
“아마 카바 신전이 새로운 그리스도교의 성지가 되겠지.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네.”
어차피 메카는 영원히 지배할 수 없는 곳. 이번에야 온갖 책략을 이용해 점령했지만,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다.
‘메카가 새로운 기독교 성지가 되면 손해밖에 없어.’
이곳을 되찾으려는 무슬림들의 지하드가 시작되면 그걸 막는 건 불가능했다.
애초에 메카는 영양가 없는 땅이고.
예루살렘 왕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곳은 안 건드리는 게 나았다.
“폐하께선 역시 훌륭하신 분이십니다. 비록 예언자께선 그리스도교와 유대교가 본질을 잊고 타락하셨다고 했지만….”
무니르가 말했다. 내 말을 다른 식으로 받아들인 것 같은데.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굳이 착각을 바로잡아줄 필요는 없었다.
“어쩌면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원하는 것도 바로 그걸세, 무니르.”
그때 뭔가 기묘한 게 느껴졌다.
분노와 살의.
모여든 인파 한쪽에서 강렬한 감정이 뿜어져 나왔다.
날 죽이려고 하는 건가.
내 손짓을 본 에이그가 곧장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폐하?”
“저 앞쪽에 노란 터번을 둘러싼 네 명이 있어. 지금 바로 쳐다보지 마. 흥분한 기색도 보이지 말고.”
난 눈짓으로 살의가 느껴지는 곳을 가리켰다. 에이그가 고개를 살짝 돌리며 그쪽을 훑었다.
“예, 보이는 것 같습니다. 혹시 저놈들이….”
“그래, 날 죽이려 달려들 거야.”
“그럼 지금 당장 가서 놈들을 붙잡겠습니다.”
에이그가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아니, 지금 당장 잡을 필요는 없어. 그럼 오히려 혼란만 커지겠지.”
내가 답했다. 잘하면 저놈들을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차피 내겐 육감이 있었다.
어디서 위험이 올지 알고 있다면 당황할 필요는 없지.
“우선 다른 호위 기사들한테 가서 알려. 놈들이 행동에 나설 때까진 가만히 있으라 하고.”
“…알겠습니다.”
에이그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곧 기사들이 검집에 손을 갖다 대는 게 보였다.
난 아무렇지도 않게 무니르와 행진을 계속했다.
인파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마침내 고함이 울려 퍼졌다.
“우상숭배자들의 왕을 죽여라!”
“메카를 구원하라!”
단검을 쥔 사내들이 인파 밖으로 뛰쳐나왔다.
사람들의 비명이 이어지는 가운데, 호위 기사들이 곧장 대응에 나섰다.
“암살자들을 붙잡아라!”
선두의 괴한이 방패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고 쓰러졌다.
곧이어 두 번째와 세 번째 놈도 몸통박치기에 당해 붙잡혔다.
문제가 된 건 네 번째 괴한.
녀석은 달려드는 호위 기사들을 피해 내게 달려들었다.
“폐…폐하!”
“불트!”
다리로 안장을 툭툭 치자 불트가 앞발을 치켜세웠다. 달려오는 괴한을 향해 몸통을 든 후….
“으악!!!”
가슴을 얻어맞은 괴한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깔끔하게 죽었군.’
아사신 같은 전문 암살자들은 아닌 것 같은데. 광신도들이 메카를 지키려고 한 건가.
에이그가 다시 달려왔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아.”
“저놈들을 끌고 가라! 국왕 폐하를 시해하려 한 자들이다!”
괴한들 모두 축 늘어진 채 질질 끌려갔다. 그제야 난 주변이 고요하다는 걸 눈치챘다.
지나가는 새 날갯소리가 들릴 정도의 적막함.
메카 시민, 병사, 기사, 상인들 모두 입을 다문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긴장과 공포.
그 이유는 뻔했다.
‘도시 한복판에서 날 암살하려 들었으니.’
그 보복으로 학살과 약탈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을 터.
십자군 병사들은 내가 명령만 내리면 얼마든지 메카를 불태울 수 있었다.
“뭣들 하나? 계속 행진하게.”
내가 행진을 시작하라는 신호를 보내자 무니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행렬 앞에 있던 리처드가 다가왔다.
“괴한들의 습격을 받았다 들었소만. 괜찮은 거요?”
“검도 제대로 못 휘두르는 놈들이었습니다.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했죠.”
“그럼 다행이군. 붙잡은 놈들이 있다면 지금 당장 산 채로 피부를 벗겨서….”
“에미르(제후)에게 넘기는 게 나을 겁니다.”
“에미르들에게 넘기자니. 그들이 제대로 처벌을….”
인상을 찌푸리던 리처드가 씨익 웃었다.
“제대로 처벌하지 않고 넘어가면 우리에게 명분이 생길 테니 놈들도 극형을 내릴 수밖에 없겠군.”
“돼지 멱따는 일을 직접 할 필요는 없죠.”
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됐든 처형당하는 건 똑같을 테니.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더 이상 낭비할 시간은 없습니다.”
리처드와 난 시선을 교환했다.
메카를 점령했으니 이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뿐.
아직 시한폭탄의 타이머는 째깍거리고 있었다.
“예루살렘을 구하러 가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