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208)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208화(208/215)
모든 걸 끝낼 전쟁 (3)
예루살렘
“멈추지 말고 싸워라! 사라센들이 성벽을 넘어오게 해선 안 된다!”
“폐하, 부디 아래로 내려가시지요. 이곳은 너무 위험합니다.”
마셜이 날아오는 화살을 쳐내며 말했다. 적이 쏜 화살과 돌덩어리들이 주변에 떨어졌다.
화살들은 쏟아 내리는 폭우처럼 성벽을 두드렸다.
“그럼 아래는 위험하지 않다는 건가?”
헨리 2세가 기침을 내뱉었다.
그는 가마에 몸을 누운 채 쇠뇌를 들었다.
그가 쇠뇌를 쏘면 옆의 시종들이 장전된 쇠뇌를 건넸다. 주변 병사들은 방패를 들고 가마를 지켰다.
“난 평생을 전장에서 살아왔네. 고작 이 정도 위험에 물러설 순 없지.”
“폐하, 하지만….”
마셜은 입을 다물었다.
헨리 2세의 옆구리는 검게 썩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검게 변하면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헨리 2세도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
입술을 깨문 마셜은 주변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뭣들 하느냐! 방패를 더 들고 와라!”
“이보게 마셜.”
헨리 2세가 말했다.
희미해진 목소리 때문에 마셜은 귀를 가까이 갖다 대야 했다.
“난 수십 년을 잉글랜드를 위해 싸워왔네. 세금을 걷어서 나누고 영주들을 견제했지. 그리고….”
그가 기침을 내뱉었다.
“공정한 법정을 열기 위해 노력해왔네. 근데 주님께서 날 항상 저버리지 않으셨던가?”
“주님께선 폐하를 저버리신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보두앵이 잉글랜드로 와서 날 심판한 건가? 왜 다마스쿠스에선 사라센들이 승리를 거둔 거고?”
“주님의 뜻을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폐하께선 이곳 성도까지 무사히 오셨습니다.”
마셜이 답했다.
“만약 주님께서 진정 폐하를 저버리셨다면 이곳에 오지도 못하셨을 겁니다.”
“그렇군. 그럼 나도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은 게야.”
“….”
“골골 앓다 죽는 왕보다는 적의 손에 죽는 왕이 낫지 않겠나? 사기에도 도움이 되겠지.”
“폐하! 그게 무슨….”
“이놈들아, 비켜라! 내가 쇠뇌를 쏘지 못하게 하려는 게냐?!”
헨리 2세가 앞에 방패를 든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그의 노호에 놀란 병사들이 움찔하며 물러섰다.
“멈춰라! 방패를 다시 들어라!”
마셜이 가마 위로 뛰어들며 외쳤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세 개의 화살이 빈틈을 파고들었다.
두 개는 가마.
하나가 헨리 2세의 목에 박혔다.
“폐하!”
마셜이 상처를 손으로 눌렀지만 피가 나오는 걸 막진 못했다.
“주, 죽음이 두렵나. 마셜?”
헨리 2세가 피를 토하며 중얼거렸다. 그가 마셜을 바라보며 농담하듯 미소 지었다.
“내 무덤은 이곳 예, 예루살렘에….”
마셜은 멈춰선 채 왕을 바라봤다. 다음 순간 그는 손을 뻗어 부릅뜬 두 눈을 감겨줬다.
“부디 구원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폐하.”
그가 팔을 휘둘렀다.
“잉글랜드의 국왕께서 승하하셨다! 국왕 폐하 만세!”
웅성거림이 성벽 위로 퍼져 나갔다. 잉글랜드 기사와 병사들이 가마가 있는 쪽으로 몰려들었다.
“왕께서 승하하셨다! 국왕 폐하 만세!”
“예루살렘을 지켜라! 그게 폐하께서 마지막으로 내리신 명령이시다!”
함성이 울려 퍼지는 와중에도 화살이 곳곳에 떨어졌다.
“놈들이 성벽을 넘지 못하게 막아라!”
몰려오는 무슬림 병사들의 수는 점점 더 많아지기만 했다. 그들은 파도처럼 쉴새 없이 성벽을 몰아쳤다.
* * *
“살라딘은 견고한 포위망을 구축했습니다. 이미 몇 번이나 정찰병들을 보냈지만 아직 빈틈을 찾진 못했습니다.”
조슬랭 백작이 망원경을 내리며 말했다. 예루살렘 주변은 시커먼 점으로 가득했다.
성벽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
수천이 넘는 깃발들은 보는 것만으로 위압감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면 지금 병력으로도 돌파가 힘들다는 건가? 우리의 기병들을 합치면 천오백이 넘네.”
알렉시오스가 물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랄리벨라 왕을 바라봤다.
“레반트에 이렇게 강대한 십자군 군세가 모인 적은 내 기억으로 없는데.”
“그건 살라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렇게 큰 군대를 이끈 술탄은 이제껏 없었지요.”
조슬랭 백작이 답했다.
“만약 살라딘이 보급대에 신경 쓰지 않았다면 상황이 나았을 겁니다. 보급을 끊어 대군이 굶주리게 할 수 있었겠죠.”
“하지만 그것조차 힘들다는 거군.”
“거의 본대에 맞먹는 규모의 호위대가 보급선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조슬랭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에게 남은 희망은 하나.
보두앵이 기사들을 이끌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혹시 보두앵 폐하께선 보낸 연락은 아직….”
“에일라트를 떠난 후엔 연락이 안 되고 있네. 아라비아 땅은 먼 곳이지.”
알렉시오스가 답했다.
그가 고개를 돌려 남쪽을 바라봤다.
아라비아.
로마 제국이 가장 강대했던 시기에도 정복하지 않았던 땅 아니던가.
“전령을 보낸다 해도 본대와 거의 같이 도착할 걸세.”
“원정이 실패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을 거요. 아무리 내가 보낸 지원군이 있다 해도 메카는 큰 도시지.”
랄리벨라 왕이 말했다.
그가 차분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런 소수의 병력으로 쉽게 점령할 수 있는 곳이 아니오. 만약 원정이 실패했다면 살라딘과 협상을 해서라도 예루살렘을 지켜야 하지 않겠소?”
“싸워보지도 않고 이집트를 돌려주자는 거요?”
알렉시오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지금까지 흘린 피를 없던 일로 할 순 없소. 얼마나 많은 로마 병사가 죽었는지 생각하면….”
“우리 아비시니아(에티오피아)인들도 적지 않은 피를 흘렸소. 하지만 전투에서 지면 예루살렘을 잃게 될 거요. 그럼 이집트가 있다 한들 무슨 소용 있겠소?”
“….”
침묵이 흘렀다.
조슬랭 백작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으로선 보두앵 폐하를 믿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께서 확신도 없이 메카로 가시진 않으셨을 겁니다.”
“그래, 일단 포위망을 뚫을 준비만 해놓자고. 우선 정찰병을 지금의 배로 늘려서….”
그때 로마군 전령이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
“무슨 일이냐?”
“오늘 아침 아스칼론에 잉글랜드 왕이 도착했다고 합니다!”
“잉글랜드 왕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헨리 2세는 이미 예루살렘이 있지 않더냐?”
조슬랭, 알렉시오스, 랄리벨라.
세 사람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서로를 바라봤다.
“저, 그게….”
전령이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헨리 2세의 아들인 젊은 헨리 왕이 기사들을 이끌고 왔다 합니다. 그뿐 아니라 독일 왕, 프리드리히 역시 곧 항구에….”
“프리드리히가 이곳에 온다고?”
“유럽의 민심이 움직인 게 분명합니다. 예루살렘의 소식이 전해진 것이지요.”
조슬랭이 환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말도 안 되는군. 설령 그렇다 해도 이렇게 빨리 올 수는 없소.”
“유럽의 기사단 지부들은 포위가 시작되기 전부터 3차 십자군에 대해 알려왔습니다.”
조슬랭이 말에 올라타며 말했다.
“교황 성하께서도 지원에 나셨으니 어찌 그리스도 신자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럼 두 로마 제국이 3차 십자군에 참가하는 거로군. 안 그렇소?”
랄리벨라 왕이 웃음기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알렉시오스 역시 웃으며 답했다.
“그중 하나는 자칭 제국이지만 말이오.”
기병대장들이 그들 주변으로 원을 그리며 모였다. 말들이 내뱉는 숨소리가 정적을 채웠다.
* * *
홍해
“나중에 진짜 도제로 만들어주긴 해야겠네. 이렇게 빨리 수송선들을 준비해놨다니.”
난 갑판에 기댄 채로 밖을 바라봤다.
하루.
고작 하루면 메카 쪽에서 에일라트까지 도착할 수 있다니.
그동안 낙타를 타고 생고생을 하며 메디나와 메카로 갔던 게 농담처럼 느껴졌다.
역시 배가 제일 편하긴 하군.
“자그위 왕국 배들은 베네치아랑 비교하면 장난감 같더군요. 미리 배를 준비 안 해놨으면 에일라트까지 다시 걸어갔어야 했을 겁니다.”
에이그가 말했다.
“근데 정말 아비시니아(에티오피아)인들을 믿어도 되겠습니까?”
“믿지 못할 이유도 없지.”
난 어깨를 으쓱였다.
떠난 우릴 대신해 메카와 메디나를 관리하는 건 에티오피아 병사들.
그들은 랄리벨라 왕의 명령을 따르는 직속 군대였다.
“우리 쪽 기사들도 몇 명 남겨놨으니 멍청한 짓을 하진 않을 거야.”
예전에 에티오피아인들이 메카를 침공했다가 실패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수백 년 만에 성공한 셈인가.
그때 리처드가 갑판 위로 올라왔다. 상반신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차림.
“가만히 있기 지루해서 노 좀 저어봤는데 생각보다 재밌구려. 그대도 함께하는 게 어떻겠소?”
“지루해지면 생각해보도록 하죠.”
내가 웃으며 답했다.
“아직 쉴 틈이 없습니다.”
“예루살렘 생각을 하는 거로군. 어차피 걱정해봤자 머리만 아파질 뿐이요.”
리처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에일라트에 내리면 그때 상황을 파악하고 계획을 세워도 충분하지 않겠소.”
“….”
리처드의 말이 옳긴 했다.
지금 내가 아무리 걱정해봤자 예루살렘의 상황을 바꿀 순 없지.
내가 지금까지 해온 준비들이 효과가 있길 비는 수밖에. 그때 한 선원이 팔을 흔들며 소리쳤다.
“상선이다! 에일라트에서 출항한 배들이야!”
갑판 앞으로 가자 수십 척의 배들이 보였다. 우리 쪽을 향해 오고 있는 베네치아 배들.
“메카랑 메디나로 가는 보급선들이군.”
지난 몇 주간 우릴 지원해준 함선들. 배들은 화물을 잔뜩 실었는지 느릿느릿 움직였다.
그중 선두에 선 배가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신호기를 보게! 뭐라고 하는 건가?!”
“폐하께 긴급히 전할 소식이 있다 합니다.”
선장이 망원경을 내리며 말했다.
“바다 한가운데서 배를 맞대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만… 그만큼 급한 소식인가 보군요.”
“그럼 최대한 빨리 부탁하겠네.”
몇 분이 지난 후, 겨우 속도를 맞춘 수송선 위로 널빤지가 올라왔다. 그걸 밟고 건너온 사내는 익숙한 얼굴.
그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마르코!”
* * *
“폐하께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어쩔지 계속 걱정만 하고 있었습니다.”
마르코가 땀을 연신 닦으며 말했다. 그를 바라보며 리처드가 팔을 흔들었다.
“그래, 지금 예루살렘의 상황은 어떤가?”
“살라딘의 군대가 아직 도시를 포위하고 있습니다. 바실리우스(황제)와 랄리벨라 왕이 포위망을 뚫으려 하고 있지만….”
“아직 전투를 벌이지는 않았나 보군.”
“예, 병력 차이가 워낙 커서 망설이는 것 같습니다.”
내 말에 마르코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잉글랜드 왕국의 젊은 헨리 폐하께서 레반트에 오셨습니다. 우선 저희 쪽 배들을 내어드리긴 했습니다만…. 프리드리히 황제도 기사들을 이끌고 도착했습니다.”
“내 형님께서 레반트에 오셨다고? 거기에 붉은 수염 황제(프리드리히)까지 왔다니.”
리처드가 웃음을 터뜨리더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그럼 사실상 모든 그리스도교 군주들이 이곳에 모인 셈이군. 안 그렇소?”
“젊은 헨리께서 오신 건 몰라도 프리드리히 황제가 온 건 의외로군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원정을 시작하기 전 관련 선전문을 유럽 기사단 지부들에 뿌렸었지.
유럽 민심이 움직였다면 이렇게 다른 영주들이 온 것도 이상하진 않았다.
하지만 프리드리히가 이런 기회를 두고만 보진 않았을 텐데.
‘프랑스 왕과 잉글랜드 왕이 자리를 비운 지금이야말로 압박에 나설 적기.’
마르코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성도권 때문에 영주들이 들고 일어섰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성도권 때문이라고?”
“성도 예루살렘을 지켜야 자신들의 돈도 돌려받을 수 있다고… 예루살렘이 위험하다는 소식에 알아서 기사들을 긁어모아 곧바로 출항했답니다. 오히려 왕들이 뒤늦게 합류했다더군요.”
“….”
난 한 박자 늦게 마르코의 말을 이해했다.
“그렇게 된 거로군.”
“그게 무슨 말이오, 보두앵? 성도권 때문에 왔다니?”
리처드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한가. 나도 예상 못 했던 일이니.
“성도권을 현금으로 바꿔준다는 보증은 기사단 지부들이 하고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리고 기사단 지부들은 사실상 이곳 레반트에 기반을 두고 있죠.”
“예루살렘이 위험에 빠지면 성도권을 돈으로 못 바꿀 수 있겠지. 그건 나도 이해할 수 있소.”
리처드가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답했다.
“그럼 성도권을 최대한 싼값에 팔아버리면 되지 않겠소?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말이오. 이렇게 군대까지 끌고 오는 게 더 힘들 것 같은데.”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그렇겠죠. 하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닐 겁니다.”
“그럴 분위기라니?”
난 설명을 이어나갔다. 내가 추측한 유럽의 상황은 사실 간단했다.
‘예루살렘이 위험에 빠지면 성도권도 그냥 종이 쪼가리가 된다!’
자본주의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상황에선 싼값에라도 성도권을 처분하는 게 이익이었다.
하지만 성도권은 단순히 종이 어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성도권을 이용한다는 건 곧 예루살렘을 향한 지지를 나타냈다.
“그걸 성도가 위험에 빠졌다고 다 팔아버리면 체면과 권위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백성과 교회가 용납하지 않겠군. 기존에 많은 양을 챙겨놨을수록 더 타격도 클 테고 말이야.”
리처드가 중얼거렸다.
내 말을 이해했다는 듯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돈이 사라지는 걸 볼 수도 없을 테니. 이렇게 기사들을 끌고 도우러 왔다는 건가.”
그가 날 바라봤다.
“그대는 유럽에서 성도권을 처음 만들 때 이 상황까지 예견한 거요?”
“….”
난 대답 대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실 전혀 예상 못 하긴 했는데.
지원군이 더 온다면 환영이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저 멀리 에일라트 항구가 보였다.
예루살렘.
성도가 코앞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