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211)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211화(211/215)
신의 뜻 (1)
전투가 끝난 예루살렘 외곽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난 전장 중앙에 선 채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끝났어.”
단 한 번의 돌격.
십자군 기사들은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일을 해냈다.
적을 향한 거침없는 돌격. 난 그들이 돌격할 방향을 가리켰을 뿐이다.
“폐하께서 분명 돌아오실 줄 알았습니다.”
발리앙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의 얼굴은 곳곳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드디어 끝났군요.”
“드디어 끝났네.”
하지만 기뻐할 여유는 없겠지.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부상자와 사망자들을 수습하게. 죽은 사람들 모두 명비에 이름을 새겨야겠지.”
“돌에 더 이상 새길 자리가 없겠군요. 만약 나중에 전투가 더 벌어진다면….”
“당분간 더 늘어날 일은 없을 걸세. 그건 내가 약속하지.”
내가 말했다.
이렇게 많은 피를 흘리는 건 이제 충분했다.
예루살렘, 메카, 메디나와 다마스쿠스, 이집트. 이 지긋지긋한 싸움의 종지부를 찍을 때였다.
“살라딘은 이제 몰락을 피할 수 없을 걸세. 명색이 술탄이라는 자가 이집트, 메카, 메디나까지 전부 다 빼앗겼으니.”
난 직접 대결하기보다 살라딘의 권위를 흔드는 데만 집중했다. 만약 며칠만 늦었어도 실패했을 터.
“이번 승리로 수십 년의 평화는 보장받은 셈이지요.”
발리앙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백 년, 이백 년 후에는 새로운 피가 예루살렘에 흐를 겁니다.”
“짧은 평화라도 이런 전쟁보다는 낫지 않겠나?”
내가 웃으며 답했다.
사관학교에서 전쟁사를 배우며 깨달은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영원한 평화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짧은 평화라면 얼마든 존재했다.
“내가 예루살렘과 그대들에게 주고 싶었던 것도 그게 전부일세. 남은 일은 후손들이 알아서 해야겠지.”
애초에 난 프랑크인이 아니거든.
기독교를 믿는 신자도 아니고.
‘하지만 예루살렘의 왕이지.’
국왕으로서 이 정도 일은 해야겠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밝은 비단옷을 입은 여인이 보였다.
테오도라.
“보두앵.”
“테오도라.”
우린 잠시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굳이 육감을 쓰지 않아도 그녀의 감정은 느낄 수 있었다.
“어서 왕궁으로 가요.”
그녀가 미소 지었다.
“당신 아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 * *
성벽 앞에서의 전투가 끝나고 일주일. 예루살렘은 축제 분위기가 매일 이어졌다.
거리는 술 취한 사람들로 가득 찼고, 경비병들도 이번만큼은 소란을 눈감아줬다.
가족과 애인을 잃은 자들도 술로 슬픔을 달랬다.
“예루살렘 만세! 보두앵 국왕 폐하 만세!”
왕궁에서도 매일 화려한 연회가 열리며 분위기를 이어나갔다. 진귀한 음식과 음료. 분위기를 돋우는 광대들까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왕과 황제들이 한곳에 모여 연회를 즐겼다.
“이집트와 예루살렘에서 붙잡은 사라센 포로들만 해도 일만이 넘소. 몸값을 어떻게 받을지 생각하면….”
“성도권을 줄이자는 얘기가 아니라 앞으로 좀 더 안정적으로….”
술잔이 식탁 곳곳으로 오고 갔다. 리처드와 젊은 헨리는 마셜을 붙잡고 자신들의 아버지에 대해 물었다.
헨리 2세가 어떻게 최후를 맞이했는지.
“예, 예루살렘에 묻어달라고 하셨다라. 잉글랜드 백성들이 그 소식을 들으면 부, 분노하겠군.”
“뭘 걱정하십니까, 형님? 그럼 심장만 잉글랜드로 가져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난 방에 있는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봤다.
루아크, 알렉시오스, 랄리벨라, 젊은 헨리, 리처드, 발리앙, 조슬랭, 레몽 등등.
이 많은 사람이 예루살렘에 왔다니. 3차 십자군이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 궁금한데.
에이그가 내 뒤에서 중얼거렸다.
“위그 경이 이 자리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 아저씨라면 아마 앨릭서부터 통째로 들이마셨겠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리에 없는 사람들도 많지.
보두앵 4세도 아직 살아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이집트와 메카를 정복하고 예루살렘까지 지켜냈습니다!’
아마 기뻐하겠지.
그가 평생 원했던 것 이상을 해냈으니.
그가 힘겹게 지탱하던 예루살렘 왕국은 이제 레반트의 최강국으로 우뚝 섰다.
거기에 왕국을 이을 후계자까지 생겼고.
요람 속에 잠들어 있던 아기가 떠올랐다. 내 손가락을 붙잡으며 웃은 작은 아기.
그때 젊은 헨리가 벌떡 일어섰다. 이미 잔뜩 취한 듯 붉어진 얼굴.
저렇게 술에 취할 때면 그는 말을 더듬지 않았다.
“주님의 뜻에 따라 우린 예루살렘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가 잔을 들었다.
“성도 예루살렘과 그 영광을 위해.”
“그리고 잉글랜드의 국왕이셨던 헨리 2세를 위해. 그분께서 구원을 얻으셨기를.”
모두 잔을 높이 들었다.
앨릭서를 들이키던 그때, 필리프가 날 바라보며 물었다.
“예루살렘을 구하긴 했지만, 원정이 끝난 건 아닙니다. 티베리아스가 아직 사라센들의 손에 있지 않습니까?”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지금 예루살렘에 모인 병력이면 다마스쿠스도 쉽게 정복할 수 있을 겁니다.”
난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렸다.
다른 누구도 아닌 필리프가 저런 말을 한다고?
게다가 육감으로 느껴지는 그의 감정은 진심이었다.
예루살렘을 지켰으니 빨리 돌아가자고 할 줄 알았는데.
‘뭔가 분위기가 바뀌었네.’
필리프도 이번 십자군 원정을 계기로 심경이 바뀐 건가.
리처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끼어들었다.
“연회가 끝나면 곧장 군대를 끌고 진격하도록 합시다. 더 두려워할 게 뭐가 있겠소?”
“….”
난 잠시 분위기를 살폈다.
티베리아스는 어떻게든 되찾을 필요가 있긴 하지.
레몽 백작의 가장 중요한 영지이니. 원 역사처럼 그는 예루살렘을 지키기 위해 티베리아스와 자신의 아내까지 포기했다.
‘하지만 대군을 끌고 갈 필요는 없어.’
살라딘이 지금 상황에서 티베리아스를 지키려 할 리는 없었다. 대패를 겪었으니 굳이 싸우지 않아도 포기할 터.
‘이집트만 있어도 어떻게든 반격을 준비했겠지만….’
지금 이집트는 내 손에 있었다.
메카와 메디나까지.
이제 그에겐 군대를 모을 군자금도, 정치적 기반도 없었다.
사실상 술탄이라는 직책만 남은 셈.
“살라딘도 메카와 메디나를 되찾으려 할 겁니다. 굳이 싸우지 않아도 티베리아스는 돌려받을 수 있겠죠.”
내가 걱정하는 문제는 따로 있었다.
‘여기서 원정을 끌면 나가는 돈만 더 많아져.’
기사와 병사들을 유지하려면 어마어마한 급료를 줘야 했다. 왕들이 가지고 온 돈을 다 쓰면 예루살렘이 낼 수밖에 없지.
하지만 다마스쿠스는 어떤 식으로든 처리할 필요가 있는데.
생각을 마친 난 모두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메카는 아비시니아(에티오피아)의 병사들이 통제하고 있지만….”
그렇게 말한 난 랄리벨라 왕을 바라봤다.
그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내 손이 곧 그대의 손이오. 어떤 판단을 내리든 나와 왕국은 따르도록 하겠소.”
“감사합니다. 그럼 우선 살라딘에게 사절단부터 보내도록 하죠.”
다행히 살라딘은 바보가 아니었다. 이미 진 전쟁을 꾸역꾸역 이어나가진 않겠지.
“살라딘이 전쟁을 택한다면 전쟁을 주도록 하죠. 하지만 피는 이미 충분히 흘렀습니다.”
내가 말했다.
“이젠 우리가 평화의 조건을 정할 때입니다.”
* * *
다마스쿠스 외곽
헤야스 마을
“알라께선 유일신이신 주님이며 자비와 동정의 신이시라.”
“그 말이 맞다.”
살라딘이 눈을 감은 채로 중얼거렸다. 신학자의 코란 낭독이 이어졌다.
시종들은 물에 적신 수건을 나르며 술탄의 이마 위에 올렸다.
그의 병세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예루살렘에서의 패배 이후, 그는 병상에 누워 일어나지 못했다.
방안으로 들어온 알 아딜이 그의 곁에 무릎 꿇었다.
“흩어졌던 부대들이 다시 모이고 있습니다. 아직 형님을 따르는 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
“티베리아스는 저희 손에 있습니다. 그곳으로 놈들을 유인해서….”
“그리고 메카와 메디나는 보두앵의 손에 있지. 티베리아스가 있다 한들 성지에 비하면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살라딘이 내뱉듯 말했다.
그가 손짓하자 신학자와 시종들 모두 방 밖으로 나갔다.
“이제 전쟁을 끝낼 때다, 알 아딜. 우린 졌어.”
그가 덧붙였다.
“우린 싸웠고, 졌다. 그럼 충분한 거야. 이제 에미르(제후)들이 빈틈을 노려 나설 거다. 그들은 오히려 메카가 불타길 원하겠지. 그래야 자신들이 새로운 지하드를 시작할 수 있을 테니.”
“….”
“분열된 무슬림이 보두앵과 싸울 순 없다. 더 많은 피가 헛되이 흐를 게야.”
“그럼 이대로 알 쿠스드(예루살렘)를 포기해야 한단 말씀이십니까? 그곳을 되찾기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 한 건 형님 아니셨습니까?!”
“그리고 난 내 목숨을 바쳤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다른 무슬림 병사들의 목숨도.”
살라딘이 중얼거렸다.
“당장 다마스쿠스를 지키기도 벅찰 거다. 이제 우리가 공격할 여유는 없어.”
“그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알 쿠드스에 사절단을 보내라. 내가 직접 보두앵과 담판을 지어야겠다. 전쟁을 시작한 사람이 끝을 내야겠지.”
“보두앵은 오지 않을 겁니다.”
알 아딜이 말했다.
“형님이 병에 걸리셨단 이야기를 들으면 군대를 끌고 오겠죠.”
“아니, 보두앵은 그러지 않을 거다.”
“어떻게 확신할 수 있으십니까?”
“그 녀석은 나랑 비슷하거든. 그러니 분명 날 만나러 올 거다.”
“…술탄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알 아딜이 일어서며 말했다.
방 밖을 나서는 동생을 바라보며 살라딘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익은 열매가 땅으로 떨어지며 또독 소리를 냈다.
* * *
예루살렘
“이건 함정입니다.”
에이그와 가니에르가 거의 동시에 말했다.
“이렇게 깊숙이 들어와 둘이 대화를 나누자니요. 폐하를 노리는 함정인 게 분명합니다.”
“자기가 병에 걸렸다는 것도 다 꾸며낸 말 아니겠습니까?”
“살라딘이 그런 거짓말을 하진 않을 거야.”
난 서신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졌다. 적힌 내용은 간단했다.
직접 얼굴을 맞대고 조건을 논하자는 살라딘의 글.
그는 자신이 열병에 걸려 상태가 좋지 않으니, 내가 와주길 청했다.
‘원 역사에서도 살라딘은 3차 십자군을 물리치고 곧 세상을 떴지.’
그전에도 몇 번 병을 앓았다는 기록은 있었다. 이번엔 전쟁에서 패배한 충격도 있을 테고.
내 얼굴을 본 가니에르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가서 루아크 경께도 전하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기사단원, 성묘단원들과 함께 가면 그래도 크게 위험하진 않으실 겁니다.”
“살라딘이 마지막 발악으로 폐하를 암살하려는 걸 수도 있습니다. 궁지에 몰린 쥐는 뭐라도 무는 법이죠.”
에이그가 끼어들었다.
“차라리 제가 폐하인 척 위장하고 가겠습니다.”
“살라딘은 전에 나랑 만난 적 있어서 안 돼.”
내가 웃으며 답했다.
“그리고 내가 죽으면 메카와 메디나가 불탄다는 건 살라딘도 잘 알고 있겠지.”
내가 그에게 요구할 조건들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바꿀 생각도 없고.
메카와 메디나를 괜히 무리해서 정복한 게 아니란 말이지.
“그럼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내러 가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