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214)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214화(214/215)
신의 뜻 (4)
“그럼 외지인들은 오늘 떠난다는 얘기인가? 칸께서 슬퍼하시겠군.”
쿨란이 말에 올라타며 말했다.
초원의 바람은 여느 때처럼 선선했다.
그가 손을 흔들자 말들이 차례대로 따라왔다. 쿨란은 말들의 숫자를 빠짐없이 확인했다.
“이번 전투에서도 그 외지인들이 없었다면 승리하진 못했겠지. 그자들이 싸우는 걸 보면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더군.”
“이젠 외지인이라고 하지 말게. 바다앵 칸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나. 이미 우리 칸과 안다의 맹세까지 나눴으니.”
“칸께서 외지인과 안다의 맹세라니. 아직도 믿기지 않아.”
쿨란이 동료를 바라보며 말했다.
수수께끼의 외지인들이 나타난 지도 어느덧 일 년.
그들은 자신들이 예루샬라임이란 땅에서 왔다고 소개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세계의 중심이자 성도.
그곳의 왕, 바다앵이 계시를 받아 이 머나먼 동쪽까지 왔다는 것이다. 물론 테무진 칸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쿨란과 다른 부족의 전사들 역시 마찬가지.
이곳 초원에선 친구가 아니면 적이었다. 검과 무기를 들고 온 외지인들은 적일 뿐.
계시를 따라 이곳에 왔다는 말을 믿을 바보는 없었다.
하지만 몇 번에 걸친 전투에도 외지인들은 아무 피해도 입지 않았다. 그들은 유인 전술에도 넘어오지 않았고, 오히려 칸의 정예 부대를 아이 다루듯 무찔렀다.
그들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전사들 같았다. 결국, 테무진 칸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전령을 보내라. 그자와 내가 직접 대화를 나눠야겠다]둘이 만난 자리에서 바다앵이란 사내는 직접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다.
부족의 모든 주술사를 능가하는 힘을 보여준 것이다.
그는 날씨를 예측하고 눈을 가리고 활을 쏘았으며, 심지어 아픈 자들의 병까지 치료했다.
여태껏 그런 힘을 가진 주술사는 아무도 없었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테무진 칸은 그의 힘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초원에선 친구가 아니면 적뿐이었다.
[그대들이 믿는 그리스도라는 존재는 초원의 정령들보다도 강력한 것 같군]가장 먼저 세례를 받은 건 테무진 칸. 그 뒤를 이어 부족들의 전사들도 하나둘 세례를 받았다.
외지인들의 주술사, 피오르 사제는 그들에게 신성한 물을 뿌려줬다.
그 후 칸은 바다앵과 의형제, 안다의 맹세까지 나눴다. 둘이 함께 손잡고 싸운 지 일 년.
더 이상 그들에게 대적하는 초원의 부족은 없었다. 이젠 다른 부족들이 앞다퉈 세례를 받으러 왔다.
“그러고 보니 피오르 사제는 이곳에 남는다더군. 저 멀리 동쪽으로 가려는 모양이던데.”
쿨란이 말고삐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초원의 정령들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이젠 예루샬라임의 정령, 그리스도만이 있을 뿐.
“우리도 늦지 않게 어서 가자고. 연회장에 가서 우유라도 한 모금 해야 하지 않겠나?”
풀을 스친 바람이 그와 말들을 휘감았다.
* * *
일 년 후
꿈속에서 난 그날로 돌아가 있었다.
어둠이 깔린 골목길에서 소리를 지르는 여인. 그리고 그 앞에 선 괴한.
그때부터 모든 게 어긋나기 시작했다. 괴한과 주먹질을 벌이고 사관학교에서 퇴교까지.
만약 그때로 돌아가면 난 어떤 선택을 내릴까?
나는 어떤….
“폐하, 좀만 더 기운을 내시죠. 곧 있으면 예루살렘 성벽이 보일 겁니다. 이제 다 왔습니다.”
에이그의 목소리가 날 잠에서 깨웠다. 무의식적으로 몸의 밧줄을 풀려 했지만 손이 제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이걸 풀면 안장에서 그대로 떨어지겠지.
“밧줄을 좀 더 세게 조여줘, 에이그. 왕이 아픈 모습을 보일 순 없지.”
“…알겠습니다. 이제 조금만 더 참으시면 왕궁에서 쉬실 수 있을 겁니다.”
“침대가 그립네. 다른 사람들도 보고 싶고.”
뒤쪽에서 나팔과 환호성이 들려왔다.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나를 반기는 인파.
십자군 영지에 들어선 이후로 인파는 계속 늘어나기만 했다.
그중에는 유대인과 무슬림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의 들뜬 감정이 휘몰아치며 내 안으로 들어왔다.
“보두앵 국왕 폐하 만세! 사제왕 요한 만세!”
사제왕 요한이라.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것도 자기실현적 예언인가.
그 유명한 ‘칭기즈 칸’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으니.
얼떨결에 내 손으로 사제왕 요한을 만든 셈.
‘처음엔 만나자마자 죽이려고 했는데….’
예루살렘을 떠난 원정대는 무력과 외교를 적절히 섞어가며 몽골까지 향했다. 그 유명한 실크로드를 직접 통과한 것이다.
몇몇 이슬람 왕국들이 막아서긴 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몽골에서 칭기즈 칸을 만났지.
그를 죽이는 대신, 난 몽골의 정복자를 의형제이자 기독교인으로 만들어버렸다.
만약 동방에 기독교 세력이 생긴다면 예루살렘도 안정될 터.
원 역사처럼 무차별적인 학살을 벌이며 유럽과 레반트를 침공하는 걸 막을지도 몰랐다.
고려를 침공하지 말라는 것도 대충 계시처럼 끼워 넣었고.
‘실은 육감으로 사기 친 거에 가깝지만.’
내가 마술을 부릴 때마다 주술사들 표정이 정말 볼만했지.
앞으로 몽골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일단 레반트는 안전해졌지만, 어쩌면 다른 이슬람 나라들은 더 위험해진 걸지도 몰랐다.
뭐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겠지만.
피에르 사제가 남았으니 최소한의 기독교 교리는 정착할 수 있을 터.
몽골을 막기 위해 이슬람 왕국들이 먼저 예루살렘에 손을 뻗을지도 몰랐다.
어찌 됐든 내가 몽골로 떠난 목적은 이룬 셈.
“드디어 돌아왔네.”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여정에서 몸은 더 약하고 쇠약해졌다.
몸을 밧줄로 묶지 않으면 안장 위에서 버티지도 못하는 상태.
조금만 더 버티면 돼.
“예루살렘이다! 저기 예루살렘 성벽이 보인다!”
기사단원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그들 모두 앞으로 달려나가며 손을 흔들었다.
예루살렘 성벽.
그 아래에는 수많은 낙타와 말, 마차가 보였다.
물건을 나르는 사라센 캐러밴과 상인들. 특유의 복장을 한 유대인과 에티오피아인들까지.
저 모습이 얼마나 그리웠던가.
에이그가 내 몸을 붙잡고 흔들었다.
“폐하, 여기 언덕에서 잠시 쉬고 계시죠. 제가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겠습니다.”
“고마워, 에이그.”
에이그의 뒷모습이 흐릿해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난 몸에 묶인 줄을 푼 뒤 힘겹게 안장 아래로 내려왔다.
불트가 내 얼굴을 핥으며 머리를 들이밀었다.
“너도 그동안 수고했다, 불트. 에일라트에서부터 함께했으니. 너보다 더 많이 달린 말도 없을 거야.”
녀석의 갈기를 쓰다듬은 난 언덕 위에 털썩 앉았다. 예루살렘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높다란 성벽과 넓게 펼쳐진 솔로몬 사원.
예수가 빌라도 로마 총독에게 재판을 받았다는 다윗의 탑까지.
내가 모든 걸 바쳐 지켜낸 도시였다.
광경이 점차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뭔가 보였다. 내게 다가오는 인영들.
하지만 육감으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세 명처럼 보이던 인영이 하나로 합쳐졌다.
검은 머리칼의 여인.
21세기에나 볼 법한 정장 차림이었다.
내가 환영을 보는 건가?
“이건 인정할게. 예루살렘을 지키겠다고 그 몸으로 몽골까지 간 건 의외였어.”
그녀가 내 앞에 서더니 몸을 숙였다. 시야는 여전히 흐릿했지만 여인의 모습은 선명히 보였다.
처음 보면서도 익숙한 얼굴.
“솔직히 말하자면 3차 십자군이 그렇게 모일지도 예상 못 했지. 공의회로 동로마랑 유럽 전체를 끌어들였으니.”
그녀가 미소 지었다.
“내가 누구인지 알겠어?”
“까마귀군. 마지막 순간에 날 조롱하러 온 건가?”
내게 이런 말을 할 존재는 하나뿐이었다. 대관식에 나타났던 정체불명의 까마귀.
“까마귀? 아, 그 멍청한 녀석은 아니야. 난 녀석이 저지른 뒤처리를 하러 왔거든.”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해하기 힘든 말들이 계속 이어졌다.
“녀석은 이미 죗값을 치렀어. 언제나 선을 넘는 놈들은 있는 법이지. 우리도 결국엔 더 높은 질서를 따르거든.”
난 생각에 빠졌다.
어쩌면 이 모든 건 죽기 전 보는 환영일지 모른다.
몇 년에 걸친 여정으로 피폐해진 머리가 만들어낸 환상.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감각이 너무 선명한데.
“그럼 당신이 내 목숨도 더 늘려줄 수 있는 건가?”
“그건 좀 힘들어. 평생 부족을 이끌었던 모세도 결국엔 약속된 땅을 밟지는 못했지. 모든 건 정해진 때가 있어.”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이젠 갈 때야. 예루살렘의 왕.”
잠시 머뭇거린 난 그녀가 뻗은 손을 붙잡았다. 그녀와 손이 맞닿자 몸이 가벼워졌다.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넌 내가 이제껏 봐온 왕 중 가장 괜찮았어.”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난 지금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왕, 부족장, 총통, 대통령, 의식체들을 만났거든. 그러니 자랑스러워해도 돼.”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어떻게 되다니?”
“이곳에서 죽으면 끝인 건가? 아니면 그 까마귀가 했던 말대로….”
“넌 그때 까마귀의 제안을 거절했어. 한 번 시든 꽃을 다시 되살릴 순 없지.”
“그렇군.”
난 여기서 죽는다.
딱히 아쉽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어차피 각오하고 있었으니.
그저 아쉬움만 남을 뿐.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날 따라오면 알 수 있을 거야. 그건 말로 설명하기가 좀 힘들거든. 직접 봐야 알 수 있어.”
“잠깐. 잠깐만 기다려줘.”
그렇게 말한 난 예루살렘을 돌아봤다. 성문 밖으로 나오는 영주와 기사들이 보였다.
발리앙, 레몽, 시빌라.
그리고 테오도라와 훌쩍 자란 아모리까지.
그 뒤로 수를 셀 수 없는 인파가 몰려나왔다. 사실상 예루살렘의 모든 시민이 성문 밖으로 몰려나왔다.
모두 기쁨으로 가득 찬 표정.
마지막으로 보는 광경으로 이보다 더 나은 건 없겠지.
난 그들에게 작별인사를 보냈다.
“모두 안녕. 마지막 인사라도 나눌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말한 난 몸을 돌렸다.
이제 성도, 예루살렘에서 떠날 때였다.
* * *
“폐하?”
뭔가 이상하다는 걸 처음 눈치챈 건 에이그였다.
투구를 뒤집어쓴 보두앵은 그의 말에도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평소와 같은 웃음도, 끄덕거림도 없었다.
“폐하? 어서 일어나시죠. 왕비님과 다른 분들 모두 폐하를 배웅하러 나왔습니다.”
하지만 보두앵은 여전히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언덕에 몸을 뉜 채 침묵할 뿐.
몇 초의 정적이 흐른 후 에이그가 떨리는 손으로 투구에 손을 갖다 댔다.
보두앵은 눈을 감은 채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제야 에이그는 왕이 숨 쉬지 않는다는 걸 눈치챘다.
“폐하!”
웅성거림이 퍼져 나갔다.
이미 주변엔 다른 영주와 기사들이 모여 있었다.
“국왕 폐하께서 승하….”
한 기사가 소리치려는 걸 동료가 막았다. 그들 모두 입을 다문 채 자신들의 왕을 바라봤다.
정적 속에서 홀로 움직인 건 테오도라였다.
그녀는 보두앵의 곁에 다가가 그를 품 안에 안았다.
그녀가 미소 지었다.
“약속대로 돌아왔군요, 보두앵.”
울음과 통곡 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