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24)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24화(24/215)
돈을 벌자! (4)
* * *
“신의 은총으로 영광스러운 예루살렘의 국왕이시며 가장 훌륭하고 고귀한 성묘의 수호자이신 보두앵 4세 폐하이십니다!”
포고관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회의장은 천장이 뻥 뚫려 있었다.
하늘 바로 아래에서 진행하는 참모 회의라.
이렇게 웅장한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넌 네가 직접 콘스탄티노플에 가고 싶다고 했지.”
보두앵 4세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금이 생각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제가 직접 가야 합니다.”
내가 말했다.
동로마에서 서방과 십자군의 영향력을 구축하고 쿠데타를 막는다.
내가 아니면 이걸 다 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
“…….”
보두앵 4세가 날 빤히 바라봤다.
“좋아, 그럼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마. 자신이 직접 선택한 길을 따라야겠지.”
그가 덧붙였다.
“명심하거라, 네가 누구인지는 오직 네 행동으로만 결정되는 법이다. 그게 천국을 향한 길이든, 지옥을 향한 길이든.”
그가 웃으며 회의장 바로 앞에 섰다.
요란하던 회의장이 한순간에 고요해졌다.
영주와 기사들 모두 일어나 경의를 표했다.
“모두 편하게 있으시오. 자, 보두앵. 이쪽으로 오거라.”
보두앵 4세가 내 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난 그의 곁으로 다가가 섰다.
“어린 보두앵 공자께서 이렇게 회의에 참석하시는 건 처음인 것 같군요.”
누군가 말했다.
콧수염 하나 없는 깔끔한 얼굴의 사내.
중년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와 자신만만한 눈빛.
누구였지?
“어린 보두앵은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나이에 에일라트를 재건하고 사라센 부족들을 물리쳤소. 거기에 ‘엘릭서’를 통해 왕국 세입을 크게 늘렸지.”
보두앵 4세가 말했다.
“그러니 ‘어린’ 보두앵도 회의에 참석할 자격을 갖췄다고 믿소만. 혹시 이의라도 있는 거요, 레몽 백작?”
아, 레몽이었군.
트리폴리 백작령의 영주이자 십자군 진영의 온건파 수장.
게임할 때는 신경을 잘 안 써서 못 알아봤네.
“물론 국왕 폐하의 결정에 토를 달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다만 엘릭서가 사라센 연금술사들의 도움으로 만들어졌단 소문을 들었습니다만.”
그가 말끝을 흐렸다.
“만약 로마에서 이를 문제 삼기라도 한다면…….”
“그 부분은 이미 총대주교님께 허가를 받았습니다.”
내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헤라클리우스 총대주교는 허락을 내려주고 허겁지겁 유럽으로 떠났다.
‘새로운 십자군 운동과 지원을 부탁하러 가겠다!’
이게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사실은 날 피해 도망친 것이나 마찬가지.
뭐, 어쨌든 당분간 날 방해할 생각은 못 하겠지.
“…….”
레몽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더 할 말 없다는 제스처.
“좋소, 그럼 오늘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지.”
보두앵 4세가 말했다.
“오늘 회의 사항이 뭔지는 다들 잘 알 거라 믿소. 동로마, 즉 그리스인들의 문제요.”
“동로마라면…….”
“콘스탄티노플에서 전해져 오는 소식에 따르면, 어린 황제와 섭정단을 향한 민중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고 하오.”
그가 덧붙였다.
“황태후인 마리아가 우리 안티오키아 출신이니 더더욱 마음에 안 드는 거겠지. 그대들도 알다시피…….”
그가 좌중을 바라봤다.
“살라딘을 견제하기 위해선 콘스탄티노플과의 연대가 필수적이오.”
“폐하의 말씀은 옳으십니다만…….”
갑주를 걸친 사내가 입을 열었다.
기, 내 양아버지였다.
마지막으로 본 게 에일라트를 떠나기 직전이었나?
그때 난 그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경고했었다.
그가 묘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경계하는 감정.
“지금 저희의 병력으로는 국경 도시들을 방위하기도 벅찬 상황입니다. 제국이 흔들리고 있다고 해서 저희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난 콘스탄티노플에 사절단을 보낼 생각이오.”
보두앵 4세가 날 바라봤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린 보두앵을 대표로 한 사절단이라고 해야겠군.”
그의 말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기 충분했다.
레몽, 기, 그리고 다른 영주와 기사들 모두 놀란 표정을 짓거나 코를 벌렁거렸다.
“어린 보두앵 공자님을 대표로…….”
“에일라트에 이어서 두 번째로군.”
난 아무 말 없이 정면을 바라봤다.
이 상황은 나한테도 의외였다.
이렇게 대놓고 발표할 줄이야.
사실상 날 후계자로 키우겠다고 선언한 거 아닌가?
왕국 사절단 대표로서 동로마 수도를 방문.
열세 살 아이가 이런 중책을 맡는 건 극히 이례적이었다.
“훌륭한 선택이십니다, 폐하.”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기였다.
그의 표정은 꽤 여유로웠다.
내가 예상한 것과 정반대의 반응.
“고귀한 왕족이 직접 사절단 대표를 맡는다면 제국의 격식에도 맞겠지요. 하지만 사람들이 그만큼 큰 성과를 기대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그가 씨익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걸 노린 거였군.
내가 사절단 대표로 가서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한다면 그건 보두앵 4세의 실책으로 이어진다.
“그대들도 동의하지 않소? 우리 보두앵은 이미 에일라트에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소. 사절단 정도야 눈감고도 이끌 수 있겠지.”
“지금 콘스탄티노플을 방문하는데 많은 자원을 쏟을 수는 없습니다, 폐하.”
레몽이 나서며 말했다.
“현재 국경 상황을 고려해봤을 때 호위 병력 역시…….”
“최소한으로 해야겠지. 그 점은 나도 알고 있소.”
보두앵 4세가 손을 들어 레몽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의 시선이 날 향했다.
“어떠냐, 보두앵. 그래도 사절단 대표를 맡을 생각이냐?”
“예, 폐하. 맡겨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난 회의장의 사람들을 바라봤다.
다들 내가 콘스탄티노플에서 헛발만 짚다가 오길 바라는 거군.
레몽은 회의적이었고,
기는 기회를 노리는 맹수였다.
유일한 우방은 발리앙뿐.
“그대들 모두 동의한 걸로 알겠소. 대표단에 필요한 예산은 전쟁 금고에서 충당하도록 하지. 동행하는 병력도 최소한으로 꾸릴 것이오.”
회의는 그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동로마 문제는 정해졌다.
날 중심으로 한 예루살렘 왕국 대표단.
회의가 끝나고 나가기 전, 난 사람들을 다시 돌아봤다.
‘날 함정에 넣었다거나 보두앵 4세가 너무 무리수를 뒀다고 생각하겠지.’
그래, 계속 그렇게 생각하라고.
이 정도 반응들은 어차피 내 예상 범위 안.
난 미소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내가 돌아올 때 다들 어떤 표정일지 궁금한데?
* * *
그날 오후,
구호기사단 본부.
“콘스탄티노플이라, 제가 그런 곳에 가게 될 줄은…….”
“몰랐다고?”
내가 웃으며 물었다.
에이그가 얼굴을 붉히며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군요.”
“걱정하지 마, 앞으로도 계속 말하게 될 거니까.”
나와 에이그는 가니에르가 누운 병상 앞에 앉아 있었다.
가니에르는 저번 병문안 때보다 훨씬 안색이 나아졌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몸져눕다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공자님.”
그가 콜록거리며 기침했다.
“제가 좀만 더 몸이 괜찮았다면 어떻게든…….”
“더 쉬고 계셔도 괜찮습니다.”
난 일어서려는 그를 말렸다.
가니에르는 그동안 계속 선두에서 싸웠지.
이렇게 열병에 안 걸리는 게 더 이상했다.
다행히 심한 병은 아니었다.
필요한 건 휴식뿐.
“공자님의 호위는 스승님께 부탁해놨습니다. 절 대신해서 콘스탄티노플까지…….”
“위그 경께서 저 호위를 맡는다고요?”
위그라.
아무리 나병 환자치고 건강하다 해도 바다를 건너는 건 힘들 텐데.
뭐, 본인이 자원한 거면 문제없으려나.
“당분간 무리하지 말고 푹 쉬고 계세요, 가니에르 경.”
내가 일어서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환자들이 많이 줄어들었네.
“금방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테니까요.”
“저도 매일 공자님과 사절단을 위해 기도하고 있겠습니다. 내가 없다고 설렁설렁 일하면 안 된다, 에이그.”
“전 설렁설렁 일한 적 없습니다! 갑옷도 매일 모래로 닦고 있고….”
에이그의 당황한 표정에 나와 가니에르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날 밤, 난 내 어머니 시빌라를 찾아갔다.
그녀를 직접 찾아간 건 보두앵에게 빙의한 후 처음이었다.
‘예루살렘에 돌아온 이후에 무의식적으로 피해왔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
난 21세기에 살던 한국인이자, 12세기의 예루살렘 왕족이었다.
어린 보두앵의 기억과 인격은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건 따로 있는 것이 아닌 나의 일부였다.
어머니를 생각할 때 사랑, 슬픔, 그리고 두려움.
보두앵의 감정들.
이젠 그것들을 받아들일 때였다.
‘그렇게 하는 편이 나 자신한테도 좋겠지.’
방에는 그녀와 나 둘뿐.
그녀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한 말이 사실이더구나. 기가 내 이름을 대고 왕실 금고에서 돈을 빼돌리고 있었어.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낸 건지 묻고 싶다만…….”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뭐, 상관없겠지. 이미 폐하도 눈치를 채신 것 같더구나.”
“기는 어떻게든 왕권을 잡으려 하는 겁니다. 그걸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이든 가리지 않겠죠.”
“네가 에일라트 일을 성공시킨 이후로 왕궁의 분위기가 뒤집혔어. 그래서 기도 더더욱 불안해하는 거다.”
그녀가 말했다.
적개심이나 분노, 욕망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
‘날 자랑스러워하고 있어.’
무리도 아니겠지.
버릇없는 망나니로 살던 자식이 이젠 동로마로 향하는 대표단을 이끌게 됐으니.
‘무슨 일이 벌어져도 시빌라는 내 편이야.’
그것 하나만으로도 안심할 수 있었다.
모자 관계라고 권력 다툼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니까.
거기에 이곳 예루살렘 왕국은 전통적으로 여인의 입김이 셌던 곳.
‘자기 어머니랑 내전을 벌여서 왕권을 빼앗아온 왕도 있었지.’
생각에 빠져있던 그때 시빌라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만약 기가 너와 대적하려 든다면, 난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그녀가 말했다.
“상황이 그렇게 되면 기와 이혼한다 해도 문제 삼는 이가 없을 거야. 하지만 지금 당장은 명분이 부족하다.”
“단순히 자금을 빼돌린 것 정도로는 이혼을 허락 안 해주겠죠. 우선은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보단 더 큰 명분이 필요할 텐데.
기 그 녀석이라면 알아서 문제를 터뜨려주지 않을까?
시빌라는 기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알려줄 수 있는 인물이었다.
“어머니께서 제 편을 들어주신다면….”
내가 말했다.
“제가 어머니 대신 나서겠습니다.”
“그래, 너라면 그렇겠지. 나도 무슨 일이 생기면 너에게 먼저 연락하도록 하마.”
그녀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에일라트에서 또 뭔가 달라진 느낌이 드는구나, 보두앵.”
“저번에도 그 말씀을…….”
“아니, 그때 이후로 또 뭔가 바뀌었어. 좀 더 차분해졌다고 해야 할까. 에일라트에서 많은 걸 본 모양이구나.”
“에일라트에서…….”
난 에일라트의 모습을 떠올렸다.
재건되는 도시와 시민들을 옆에서 보며 난 새로운 감정을 느꼈다.
뿌듯함과 기쁨.
그리고 무슬림 상인들을 학살하려는 르노를 막았을 때 안도감.
‘그 사람들은 진짜였어.’
이곳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 모두 NPC가 아닌 진짜 사람들이었다.
날 이곳에 부른 게임, 신의 목적이 뭐든 간에 그건 확실했다.
그럼 내가 해야 하는 것도…….
‘내가 살아남으면서 이곳의 사람들을 위해 좀 더 나은 길을 찾는 것.’
그럼 지금의 난 도대체 누구지?
육사에서 퇴학당한 생도? 아니면 12세기의 예루살렘 왕족?
[네가 누구인지는 오직 네 행동으로만 결정되는 법이다.]어쩌면 보두앵 4세가 한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군.
난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기 정체성에 빠져있을 여유는 없었다.
우선 행동.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겠지.
‘일단은 동로마를 구하는 게 먼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