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25)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25화(25/215)
돈을 벌자! (5)
* * *
동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향하는 사절단이 꾸려진 건 그로부터 한 달 후였다.
선물, 엘릭서, 그리고 자금이 든 궤짝들이 엄중한 감시 아래 항구들로 향했다.
티레에서 출항한 우린 재보급을 위해 항구 도시, 트리폴리로 향했다.
그곳에서 재보급을 마치면 곧바로 콘스탄티노플로 출발할 수 있었다.
“우욱….”
며칠간 배를 타면서 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내게 뱃멀미가 있다는 것.
벌써 몇 번째지?
속을 하도 게워냈더니 머리까지 어질어질하네.
설마 나한테 뱃멀미가 있을 줄이야.
‘해사가 아니라 육사로 가서 다행이었네.’
해군에 갔다간 가입교 기간에 쫓겨났겠지.
아니, 그랬으면 이런 상황에 빠지진 않았으려나.
“이거라도 좀 드시죠, 공자님.”
에이그가 옆으로 다가와 컵을 건넸다.
컵을 기울이자 짭짜름하고 단맛이 느껴졌다.
익숙한 맛.
“내가 저번에 만들었던 수액 아니야?”
“예, 제가 급한 대로 좀 만들어 봤습니다. 설탕 대신 꿀을 넣기는 했는데….”
“고마워, 훨씬 나아진 것 같네. 맛도 괜찮은 것 같고.”
난 입을 닦은 뒤 아래를 바라봤다.
노잡이들이 북소리에 맞춰 노를 젓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탄 베네치아 함선은 전형적인 갤리선이었다.
두 개의 돛대와 삼각돛.
노와 돛을 동시에 추진력으로 사용하는 시스템.
“도대체 언제 도착한답니까? 이러다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하기 전에 먼저 쓰러지겠군요.”
위그가 투덜거리며 갑판 위로 올라왔다.
그의 은가면이 햇빛에 비쳐 반짝거렸다.
“바닷바람이 나병 환자한테 좋다는 것도 그냥 헛소문이었고요.”
“이제 곧 있으면 트리폴리 항에 도착할 겁니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위그 역시 나처럼 뱃멀미가 심했다.
‘쉰이 넘는 나이에 나병까지 앓고 있으니….’
중세에 오십 대는 사실상 노령층이나 마찬가지.
나보다 더 힘들 게 분명했다.
“가니에르 그 녀석은 스승한테 일을 던져주고 자기는 침상에서 쉬고 있으니.”
그가 쯧쯧 혀를 찼다.
“다시 돌아가면 그놈 엉덩이를 제대로 걷어차 줘야겠습니다.”
“가니에르 경께서 순순히 얻어맞으실지 궁금한데요.”
에이그가 장난기 어린 어조로 말했다.
“너도 따라와라. 꼬맹아. 증인이 한 명쯤은 있어야 가니에르 그 녀석이 나중에 딴소리 못 하겠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웃던 그때 한 선원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저기 트리폴리 항이 보인다!”
선원들이 갑판 앞으로 우르르 몰려와 전방을 바라봤다.
부두는 온갖 선박들로 가득 차 있었다.
‘21세기에는 레바논 도시였던 것 같은데.’
트리폴리.
배가 부두 앞에 멈추자 선원들이 홋줄을 던지며 정박을 시작했다.
배에서 내리자 수십이 넘는 사람들이 날 둘러썼다.
“어서 오시지요, 공자님. 계속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희 도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공자님! 혹시 오늘 시간이 되신다면 제가 이곳의 진미를 대접….”
먼저 출발한 선발대이거나, 이곳 트리폴리에서 따로 합류하기로 한 이들.
거기에 나한테 얼굴도장 찍으러 온 지역 유지들인가.
한 명 한 명 인사를 나누던 그때, 그들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마르코였다.
“공자님, 이 무뢰배들은 무시하시고 이쪽으로 오시지요! 모두 어서 비키게! 지금 공무 때문에 오신 분께 이 무슨…!”
그가 주변의 인파를 헤치며 내게 달려왔다.
거대한 덩치 덕분인지 막아서는 이는 없었다.
“마침 어제 베네치아에서 배가 도착했습니다. 공자님이 편하게 타고 가실 수 있게 침실까지 전부 개조를 마친 녀석입니다.”
그가 잔뜩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침이 사방으로 튀었다.
숨넘어가겠다, 숨넘어가겠어.
“아르세날레 조선소에서 막 건조를 끝낸 신형 함선이죠. 거친 파도에도 흔들림 하나 없는….”
끝없이 이어지는 말을 대충 한 귀로 흘렸다.
난 그가 숨을 고르는 순간을 노려 끼어들었다.
“알겠습니다, 마르코 씨. 준비를 철저히 해주신 것 같군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마르코는 저번 ‘엘릭서’ 협상 이후로 완전히 저자세였다.
쓸개라도 내어줄 것 같은 과장된 태도.
“공자님과 다른 사절단분들의 편의를 위해 모든 조처를 해뒀습니다. 이미 콘스탄티노플에 연락해 통행증까지 받아놨고요.”
나한테 점수 따려는 속셈이 너무 뻔하긴 한데….
이 정도 노력이면 보상을 주는 게 맞겠지.
“수고 많으셨습니다. 마침 가지고 온 엘릭서 물량이 너무 많았는데 원하신다면 일부분을….”
“예, 물론입니다!”
마르코가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저희가 저번에 냈던 금액의 두 배라도 내겠습니다! 물량을 조금이라도 주신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죠.”
내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역시 손에 당근이 있어야 일하기 편하다니까.
“그럼 재보급만 마치면 곧바로 출항할 수 있겠군요.”
“공자님. 저, 그게….”
마르코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사실 말씀 안 드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문제라니요?”
“트리폴리의 영주이신 레몽 백작께서 재보급 요청을 무시하고 계십니다.”
마르코가 말했다.
“물론 보급품이야 민간 시장에서도 구할 수 있지만 워낙 양이 많아 시간이나 금액이 몇 배로 더 걸릴 겁니다.”
“레몽 백작이 재보급 지원을 안 해준다라….”
내가 중얼거렸다.
사절단의 업무를 지원하는 건 모든 영주의 의무일 텐데.
레몽이 그걸 노골적으로 회피한다는 건 사소한 일이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백작과 직접 대화를 나눠보죠.”
* * *
백작의 성채는 ‘순교자의 산’ 위에 있었다.
길게 이어진 성벽 앞에서 상인들이 레몬, 사탕수수, 비단 같은 것들을 쌓아놓고 장사했다.
성벽 위에서 빨간색 바탕에 노란색 십자가가 새겨진 깃발이 흩날렸다.
‘트리폴리 백국이라….’
트리폴리 백국과 안티오키아 공국.
두 국가는 예루살렘 왕을 상위 군주로 섬겼다.
완전히 독립한 것도, 완전히 종속된 것도 아닌 그 중간 상태.
왜 레몽이 이런 태도로 나오는 걸까.
사실 예상이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예루살렘의 귀족 회의 이후, 난 레몽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알아봤다.
‘여동생이 동로마 황후로 선택받지 못한 이후로 계속 다투는 관계라고 했었지.’
레몽 3세는 자신의 여동생을 동로마 황제에게 시집 보내려 계획했었다.
하지만 그 대신 뽑힌 건 안티오키아 공국의 공주.
그 충격으로 레몽의 여동생은 시름시름 앓다 요절했고, 그 이후로 그는 동로마를 상대로 해적질까지 벌였다.
‘그래서 내가 동로마로 가는 걸 훼방 놓으려는 것 같은데.’
고작 개인의 복수심 때문에 시간을 지체할 순 없었다.
일분일초가 급한 지금 그럴 여유는 없지.
성문 앞에 도착하자 곧장 기사들이 몰려나왔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분위기.
선두에는 레몽이 있었다.
그와 난 포옹을 나눴다.
“오늘 도착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공자님. 어서 오시지요. 저번 참모 회의 이후 몇 주만이로군요.”
“이렇게 환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레몽 백작.”
난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부두에서 한 가지 안 좋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백작께서 보급 지원을 거절하셨다고요.”
“올해는 영지의 작황이 좋지 않아 저희가 쓸 보급품도 부족한 실정입니다.”
레몽이 보란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단 급한 대로 곳곳에서 끌어모으고 있지만,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그의 감정은 확실했다.
협조할 생각이 하나도 없는 불쾌함.
안타까운 느낌은 하나도 없네.
내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백작께서 콘스탄티노플에 반감을 지니고 계신 점,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른 기사들은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었다.
내 목소리가 들리는 건 레몽뿐.
“하지만 이런 식으로 왕실 사절단에 훼방을 두신다면, 국왕 폐하께서도 용납하시지 않을 겁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진실을….”
“그리고 한가지 말씀드리죠. 저를 적으로 돌리지 않는 게 백작께도 좋을 겁니다.”
“….”
그가 차가운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이어지는 신경전.
“공자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만약 보두앵 폐하께서 승하하신다면… 이건 어디까지나 가정입니다.”
내가 말했다.
보두앵 4세는 나병을 앓고 있으니 오래 살지 못한다는 건 레몽도 알겠지.
“그렇다면 다음 왕위는 제 어머니나, 기, 아니면 저에게 갈 겁니다.”
난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만약 기가 왕이 된다면 어떨까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귀족들이 그걸 용납하진 않을 겁니다.”
레몽이 으르렁거렸다.
기를 진심으로 증오한다는 반응.
“글쎄요, 제 어머니는 왕위를 받아도 곧바로 기에게 넘기실 겁니다.”
내가 미소 지었다.
물론 지금은 다르겠지만 원래 역사에선 그랬거든.
“기가 왕위에 오르면 르노를 통제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지겠죠. 그가 사라센들을 학살하기 시작한다면….”
“살라딘이 그걸 명분 삼아 쳐들어오겠죠. 공자님께서 에일라트에서 르노를 왜 막으신 건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레몽이 말했다.
역시 온건파답게 머리는 잘 돌아가는군.
“백작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살라딘이 르노의 학살을 명분 삼아 쳐들어오겠죠.”
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부터 일이 어떻게 될진 간단하지.
그냥 원래 역사를 읊으면 되거든.
“살라딘은 우선 북부를 평정한 다음 대군을 이끌고 티베리아스를 포위할 겁니다.”
티베리아스는 레몽의 영지.
“그러면 기와 르노는 곧장 대군을 모아 티베리아스를 구원하러 가야 한다고 하겠죠.”
내 말이 이어질수록 레몽의 표정이 딱딱히 굳었다.
그래, 이렇게 현실적인 시나리오를 들으면 안 무서울 수가 없겠지.
“그런 노골적인 함정에….”
“그게 함정이라고 하는 자들은 모두 겁쟁이라고 몰아갈 겁니다. 그리고 대군이 티베리아스로 진군하면….”
“남은 건 학살뿐이겠죠. 살라딘이 호수를 틀어막으면 물을 구할 곳이 없으니까요.”
“그곳까지 진군하는 동안 병사와 말들은 기진맥진해 반쯤 쓰러질 거고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무리 기가 멍청한 자라고 해도 그런….”
“글쎄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르노와 성전기사단을 옆에 두고 기가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요?”
내가 미소 지으며 물었다.
하틴의 뿔.
그곳에서 십자군 주력은 사실상 전멸을 당한다.
갈증을 이기지 못하고 이슬람으로 개종한 이들만 수천에 이를 정도.
끝까지 싸운 건 오직 기사단원들뿐이었다.
“그럴듯한 가정이시군요. 하지만 공자님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뭔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려면, 백작께서 절 도와주셔야 한단 말입니다.”
내가 말했다.
그의 감정은 처음과 많이 바뀌어 있었다.
경악과 호기심, 그리고 흥미.
이것들이 골고루 섞여져 있었다.
“지금 전 여기서 한가롭게 말장난하고 있을 시간 없습니다. 동로마 문제는 그만큼 시급합니다.”
난 그의 앞으로 다가가며 덧붙였다.
“지금 당장 보급을 지원해주시지 않는다면, 그에 따를 책임은 온전히 백작께서 지셔야 할 겁니다. 제가 트리폴리에 오래 머무를수록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겠죠.”
내가 덧붙였다.
“트리폴리의 영주가 제 발목을 붙잡았다고 말입니다.”
“….”
침묵이 흐르고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그가 한숨을 내쉬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명령을 내려놓도록 하죠. 재보급이 끝날 때까지 공자님을 접대해 드리고 싶습니다만….”
“알겠습니다. 감사히 받도록 하죠.”
나 역시 옅은 미소를 지었다.
겸사겸사 내 편 하나 만들어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 * *
콘스탄티노플.
성 소피아 대성당.
“어서 빨리 행동에 나서야 해요. 황제가 성인이 되면 반란을 일으킬 명분이 없어질 거라고요.”
“쉿, 목소리를 낮춰. 듣는 귀가 사방에 있다고 한 건 당신이잖아.”
두 남녀가 서로 몸을 붙인 채 속삭였다.
그들 주변을 경호병들이 에워쌌다.
“경호병들은 모두 우리 쪽 사람들이에요. 걱정할 필요 없어요.”
마니 콤니니 황녀가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 레니에르를 바라봤다.
세 번의 고사 끝에 겨우 얻은 남편.
하지만 고귀한 핏줄을 이어받은 그녀에게 레니에르는 너무 유약한 사내였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좀 더 상황을 살펴보자고. 아직 확실한 건 없잖아. 예루살렘에서 사절단이 온다고 해도….”
“어쩌면 프랑크 놈들이 오는 게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어요.”
마니가 중얼거렸다.
“그 야만인 녀석들을 이용해서 시민들의 증오를 끌어내는 거예요. 그리고 그걸 이용하면 황제를 뒤흔들고….”
그녀가 말했다.
“우리가 실권을 거머쥐는 거죠.”
“꿈만 같군. 제국의 모든 권력이 내 손안으로 들어올 거야.”
“‘우리’ 손이죠. 아직은 꿈이지만….”
마니 황녀가 말했다.
그녀는 남편이 보지 못하게 고개를 돌리며 미소 지었다.
“곧 있으면 현실이 될 수 있을 거예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