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3)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3화(3/215)
데우스 불트? (3)
* * *
“안으로 들어오거라.”
방문을 넘자 강렬한 향과 고름 냄새가 풍겨왔다.
방을 가득 채운 책과 종이들.
중앙의 커다란 테이블 뒤에 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가까이 오거라, 보두앵. 네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지도 오래됐구나.”
온몸을 칭칭 두른 붕대.
난 그가 누군지 단번에 알아챘다.
나병왕 보두앵 4세.
예루살렘 왕국 최후의 성군이라 불리는 사나이.
숨이 순간 턱 막혔다.
일러스트 보는 거랑 차원이 다르네.
‘병으로 죽는 게 1185년이니 아직 4년이 남은 건가.’
침대에 누워서까지 전장을 돌아다닌 왕.
게임에서도 그는 높은 스탯을 자랑했다.
유일한 약점이라곤 목숨을 조금씩 갉아먹는 나병뿐.
“네가 요즘 방에 틀어박혀 고서만 읽는다고 들었다. 드디어 매사냥에는 신물이 난 게냐?”
“….”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버릇없는 망나니] 그 특성 때문이겠지.다른 사람들 눈에 난 매사냥에 빠져있던 한량이었다.
“낙마한 이후에….”
난 조심스레 입을 뗐다.
“그동안 너무 시간 낭비해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았다, 이거냐?”
“예, 그래서 우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당장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니까요.”
사실은 현실에서 도피하려던 거에 가까웠지만.
그의 감정이 미묘하게 바뀌는 게 느껴졌다.
무심함에서 관심?
그보다는 호기심이 든 건가.
느껴지기만 할 뿐 정확하게 콕 짚어 알 수는 없었다.
“그래, 너도 이제 정신을 차릴 때가 되긴 했지. 그렇다면 내 너에게 몇 가지 묻고 싶구나.”
그가 일어서며 말했다.
고름과 흉터로 얼룩진 얼굴 사이로 두 눈동자가 빛났다.
“이건 지금 레반트의 지도다. 살라딘이 이집트와 시리아를 사실상 통일하면서 우리 왕국은 포위된 상태지.”
그가 지도 한쪽을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십자군 진영은 동서 방향 모두 포위되어 있었다.
살라흐 앗딘 유수프 이븐 아이유브
줄여서 살라딘.
술탄인 그는 1187년 하틴 전투에서 승리하고 예루살렘을 함락한다.
“우리가 살라딘과 맺은 평화협정. 그게 언제까지 이어질거라고 생각하느냐?”
“….”
심장이 두근거렸다.
좋아, 차분히 생각해 보자.
지금 눈앞에 있는 건 예루살렘 왕국의 최고 권력자.
이건 날 시험해보는 거야.
“살라딘은 아마 내년부터 알레포와 모술을 공격할 겁니다. 그 전까지는 카이로의 궁전에 박혀 있겠죠.”
여기까지는 눈 감고도 외울 수 있지.
그다음 벌어질 일은….
“북부를 완전히 통일하고 난 후에야 본격적으로 군대를 모으기 시작할 겁니다. 그 후에 저희 왕국에 분열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겠죠. 그건 아마….”
“내가 죽을 때겠지. 안 그러냐?”
보두앵 4세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꽤 그럴듯한 가정이구나. 하지만 미래를 말하는 건 어린아이도 할 수 있지. 넌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우선은 최대한 힘을 비축해야 합니다.”
이것도 당연한 사실.
이슬람 세력이 바다라면, 십자군은 작은 웅덩이.
서방에서 새로운 십자군이 넘어오지 않는 이상 인력 열세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우선 동로마와 확고한 동맹을 구축해야 합니다.”
난 지도 한쪽을 가리켰다.
그리스와 터키 지역.
동로마, 비잔틴 제국이 있는 곳이었다.
맨 처음 유럽에 십자군 지원을 요청한 장본인들.
지금 동로마 정권은 다행히 친―십자군.
‘문제는 곧 반―십자군 정서가 폭발하면서 쿠데타가 벌어진다는 건데.’
그리고 동로마인들에 의해 벌어진 라틴인 학살까지.
그걸 어떻게든 막아야겠지.
“저희가 미리 손 써두지 않는다면 알렉시오스 황제는 내년까지 못 버틸 겁니다.”
“어린 황제의 죽음을 확신하는 게냐? 무슨 일이라도 터지지 않는 이상 힘들 텐데.”
무슨 일이라.
당숙한테 쿠데타 당해서 목 졸라 죽는 건 충분히 ‘무슨 일’이지.
“지금 콘스탄티노플에선 반서방 정서가 팽배하다고 들었습니다. 황제와 섭정단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 안드로니코스 같은 자들이 정권을 잡으려 할 겁니다.”
“그리고 그걸 우리가 막아야 한다?”
“예, 하지만 그 전에 먼저 할 게 있습니다.”
가장 시급한 건 자금을 확보하는 것.
자금이 없으면 동로마 환심도 사기 힘들겠지.
“가능한 한 빨리 왕국 남부의 무역항들을 재건해야 합니다. 에일라트가 가장 좋겠죠.”
예루살렘 남부에 홍해와 연결된 무역항들.
십자군으로 플레이할 때 이곳을 재건하는 게 가장 빨리 돈을 버는 방법이었다.
“이곳들을 재건하면 향신료 무역로를 끌어 올 수 있습니다. 홍해를 지나는 상선들이 이집트가 아닌 이 항구를 이용한다면….”
“그만큼 관세를 확보할 수 있겠지. 네가 무역로에도 관심이 있을 줄은 몰랐구나.”
보두앵 4세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턱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홍해는 살라딘의 해군이 통제하고 있을 텐데?”
“평화협정이 유효한 이상 살라딘이 먼저 공격해올 명분은 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살라딘만큼 명분을 중요시하는 인물도 없지.
“그리고 홍해의 이집트 상선들은 대부분 비무장 상태일 겁니다. 애초에 지난 수십 년간 해전을 벌일 일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항구와 조선소를 재건하는 데는 막대한 돈이 들 거다. 특별세라도 걷지 않는 이상 힘들겠지.”
“저희가 직접 돈을 쓸 필요도 없습니다. 대신 투자해줄 사람들이 있으니깐요.”
“대신 투자할 사람들이라니?”
“베네치아인들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들은 소문에 따르면 베네치아 상인들이 에일라트 재건을 계획하고 있다더군요.”
베네치아 상인으로 수십 번 넘게 플레이했는데 까먹을 순 없지.
지금이면 그들이 한창 에일라트에 관심을 보일 때.
당근 하나만 던져줘도 바로 넘어오겠지.
그리고 에일라트에 가야 할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십자군의 고삐 풀린 개.’
르노를 감시할 사람이 필요하거든.
그 녀석이 무슬림 상단, 순례자들을 습격하는 걸 내버려 뒀다간 평화협정이 깨질 수 있었다.
역사대로 간다면 그냥 무시해도 되겠지만….
라스트 크루세이더즈에선 가끔 역사에서 어긋나는 일들이 벌어졌다.
르노가 난장판을 벌여서 살라딘이 전쟁을 선포하기라도 하면?
지금 살라딘이랑 전쟁을 벌였다간 승산이 없겠지.
르노를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그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는 적임자는….
뭐야, 나밖에 없잖아?
다른 사람한테 이런 것들을 일일이 말해준다 해도 믿을 리 없었다.
설령 내 말을 믿는다 해도 각자 이익에 맞춰 이용하려 들겠지.
그럴 바엔 스스로 나서는 게 나았다.
“폐하께서 허락해주신다면 제가 베네치아인들과 협상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에일라트까지 내려가서 재건 과정도 감독하죠.”
“네가 직접 가겠다고? 하지만 넌 아직….”
그가 말을 삼켰다.
날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서 놀란 감정이 느껴졌다.
난 침을 꿀꺽 삼켰다.
내 말이 먹힐까?
아무리 이전과 달라졌다고 해도….
열세 살짜리 애한테 이런 큰 사업을 덜컥 맡기는 건 생각도 안 했을 텐데.
[타고난 카리스마] [모든 외교 및 설득 행위에 ‘큰’ 버프를 얻습니다]특성의 효과를 믿는 수밖에.
난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래, 그렇게 자신 있다면 네가 한 번 베네치아인들과 협상을 해보거라. 2만 디나르.”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베네치아인들에게서 항구 사용료로 2만 디나르를 받아낸다면 네가 재건을 지휘하는 걸 허락해주마.”
2만 디나르?
그건 좀 높은 것 같은데.
될 대로 되라지.
이미 내뱉은 말을 취소할 순 없었다.
“알겠습니다, 폐하.”
난 허리를 살짝 숙였다.
너무 긴장했는지 손이 덜덜 떨렸다.
“너무 격식 차릴 필요 없다, 보두앵. 난 네 나이쯤에 몽기사르에서 살라딘과 검을 맞댔지.”
그가 빵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는 나도 너처럼 피가 뜨겁게 들끓었는데 말이야. 이제 남은 건 썩어가는 팔다리뿐이구나.”
그래, 이 사람 열여섯 살에 말 타고 돌격하던 왕이었지.
몽기사르 전투는 육사 수업에서도 배울 정도로 유명했다.
“그럼 이만 가보거라, 보두앵. 관리들에겐 내가 말을 전해놓으마.”
그가 내 앞에 서서 어깨를 두드렸다.
가면 너머로 느껴지는 희미한 숨결.
“네가 바뀐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난 그를 뒤로 한 채 방을 나섰다.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한숨.
일단 어떻게든 잘 넘긴 것 같은데.
일이 너무 커진 것 같은 건 내 착각인가?
* * *
방으로 돌아온 날 곧바로 침대에 털썩 누웠다.
아니, 침대라고 할 수도 없는 형편없는 매트리스.
원래 세계로 못 돌아가면 이런 곳에서 죽겠지.
하느님, 알라, 부처님.
제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걸 겪어야 하는 겁니까?
허공에 대고 소리쳐도 답은 없었다.
설마 신이 X 같다고 속으로 욕해서 그런 겁니까?
그럼 당신은 옹졸한 게 맞는 것 같네요.
난 한숨을 내쉬며 창문 밖을 바라봤다.
낯선 도시의 풍경.
‘원래 역사대로 흘러간다면 몇 년 뒤에 이슬람 손에 넘어가겠지.’
그리고 나 역시 영원히 소멸.
소멸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상 죽음이겠지.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런 짓을 벌인 게 신이든 뭐든 난 순순히 죽을 생각 없었다.
육사에서 퇴학당한 것도 억울하던 판국에 이젠 중세시대에 떨어져서 죽으라고?
다 엿이나 먹으라지.
예루살렘의 수호.
그 까짓거 얼마든지 해줄 테니까.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
난 매트리스에서 일어섰다.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내 삼촌, 보두앵 4세를 이어 예루살렘의 왕이 되는 것.
그러려면….
“오늘 맡은 일부터 해내야겠지.”
난 문을 두드려 하녀를 찾았다.
“예, 공자님.”
“예루살렘의 베네치아 지부에 전령을 한 명 보내줘. 에일라트 재건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전하면 돼.”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잠깐.”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이 있었지.
내가 수십 번도 넘게 플레이한 베네치아 상인.
그 녀석을 구워삶는 건 일도 아니지.
“마르코. 마르코라는 이름의 사내한테 전해줘. 아마 예루살렘 지부의 대표자일 거야.”
“알겠습니다, 공자님.”
하녀가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난 닫힌 문을 바라보며 씨익 미소 지었다.
걱정할 필요 없었다.
남부 항구의 재건.
그 정도는 누워서 식은 죽 먹기였으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