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32)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32화(32/215)
로마를 구한 사나이 (2)
* * *
“공자님?……공자님, 제 말 들리십니까?”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
난 눈을 떴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데.
눈을 뜨자 에이그의 얼굴이 보였다.
“드디어 일어나셨군요. 크게 다치신 건 아닌지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기억이 하나둘 떠올랐다.
만찬장에서 갑자기 나타난 암살자들.
알렉시오스를 지키기 위한 혈투.
그래, 머리를 제대로 얻어맞았지.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야? 황제 폐하는?”
“황제 폐하께선 괜찮으십니다. 놀라긴 하셨지만, 도련님처럼 다치진 않으셨으니까요. 일이 터진 건….”
에이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였습니다. 공자님은 하루 넘게 기절해 계셨고요.”
“하루를 기절해 있었다고?”
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팔다리가 고장 난 로봇처럼 삐그덕거렸다.
“좀 더 누워계시죠. 지금 당장 급한 일은 없습니다.”
에이그가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난 그제야 에이그 옆에 위그가 서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공자님께서 이미 한 놈 해치우셨더군요. 저희가 들어갔을 땐 두 놈뿐이었습니다.”
“위그 경이랑 가니에르 두 분 덕분입니다. 얼마나 훈련을 했는지 몸이 알아서 움직이더군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육감도 육감이지만 훈련이 없었다면 그렇게 못 움직였겠지.
의식이 선명해지자 얼굴이 따끔거렸다.
“거울 좀 갖다 줘, 에이그.”
난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봤다.
곳곳에 퍼런 멍이 생겨 있었다.
다행히 심해 보이는 상처는 없군.
“황제 폐하는 안 다치셨다고 했지. 정확한 상황은?”
“어제 일로 황궁이 뒤집혔습니다. 바랑기 근위병들이 의심 가는 사람들을 모조리 붙잡고 있고요.”
“아직 정확한 배후를 못 찾은 모양이네.”
“흥분한 근위대 병사들이 암살자들을 전부 죽였습니다. 말릴 틈도 없더군요.”
위그가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역시 바이킹은 바이킹이란 건가.
황제가 위험에 처한 걸 보고 무작정 달려든 거겠지.
“지금 제일 곤란한 게 그들일 겁니다.”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턱이 찢어졌는지 피 맛이 났다.
“어서 빨리 배후를 잡지 못하면 자기들이 책임을 뒤집어쓸 수 있으니까요.”
암살자들이 황제 앞에 올 때까지 막지 못한 건 결국 근위대의 실책.
빨리 수습하지 못하면 옷 벗는 게 문제가 아니라 머리가 날아갈 수 있었다.
‘그러니 황궁을 이 잡듯 뒤지는 거겠지.’
어차피 범인은 이미 정해져 있다만.
마니 황녀 부부.
역시 내가 직접 나서야 하는 건가.
그때 방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에이그가 문을 살피더니 곧장 허리를 숙였다.
“황제 폐하이십니다.”
문이 활짝 열렸다.
알렉시오스가 날 바라보더니 환한 표정을 지었다.
“공자! 깨어나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도대체 뭐라 말해야 할지….”
그가 내 곁에 달려와 손을 붙잡았다.
“정말 고맙습니다… 공자가 아니었다면 나와 황후 모두 죽은 목숨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말씀하실 필요 없습니다. 절 마지막에 구해주신 건 폐하이셨으니까요.”
내가 웃으며 답했다.
그때 알렉시오스가 암살자를 찌르지 않았다면 난 지금쯤 관에 누워있었겠지.
아니, 길거리에 개 먹이로 던져졌으려나?
그의 뒤로 마리아 황태후, 테오도라 황녀가 따라왔다.
테오도라까지?
“로마 제국 섭정단의 대표이자 황태후로서….”
마리아가 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보두앵 공자. 만약 황제께 무슨 변고가 생기기라도 했다면….”
그녀가 말을 잠시 멈췄다.
“아마 제국 전체가 혼란에 휩싸였을 겁니다. 그런 대혼란을 공자께서 목숨을 걸고 막아주신 겁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계속 누워있어 그런지 머리가 띵했다.
“아직 배후를 못 찾았다고 들었습니다만. 분명 마니 황녀 부부가….”
“그 둘이 벌인 짓이 맞아요. 다른 누구도 아닌 제가 증인이니까요.”
테오도라 황녀가 말했다.
난 그녀를 바라봤다.
“황녀께서 증인이시라니. 그들이 직접 자백이라도 했단 겁니까?”
“자백은 아니었어요. 어제 암살 시도가 실패하고 곧장 절 찾아오더군요.”
그녀가 말했다.
“온갖 달콤한 말을 건네며 자기들과 손잡자고 했죠. 사실은 겁에 질려 무슨 줄이든 잡으려 한 거겠지만요.”
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의 말은 진심이었다.
‘테오도라라면 자기네들 편으로 올 거로 생각한 건가.’
테오도라와 마니 황녀는 같은 배에서 나온 자매 사이였다.
하지만 그녀는 누이가 아닌 황제와 섭정단의 편을 들었다.
“테오도라의 말은 사실이에요. 그동안 저희가 조사해왔던 증거들과도 일치하고요.”
마리아가 말했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왜 아직 안 잡으신 겁니까?”
내가 물었다.
앞뒤가 안 맞았다.
범인이 확실한데 왜 바랑기 근위대가 황궁을 수색하고 있는 거지?
마니 황녀 부부가 암살의 배후라는 걸 발표하지 않은 이유가 도대체….
“오히려 역풍이 불까 두려워하시는 거군요.”
내가 말했다.
대충 상황파악이 되는군.
“두 사람 다 지금 성 소피아 성당으로 도망치지 않았습니까?”
“아니, 공자께서 그걸 어떻게….”
“제도帝都에서 도망칠 곳은 거기 하나뿐이니까요.”
내가 알렉시오스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하루 동안 기절해 있었다고 해서 이것까지 모를 순 없지.
‘암살 실패하면 매번 똑같은 이벤트가 벌어졌으니깐.’
알렉시오스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저는 지금 당장 병사들을 보내 체포해야 한다고 했지만, 어머니께서 말리시는 바람에….”
“성당에 무장한 병사들을 들여보낼 순 없습니다.”
마리아가 말했다.
“총대주교와 성직자들에게 검을 들이댔다간 힘겹게 얻은 명분을 잃겠죠. 그건 힘겹게 손에 넣은 황금을 바다에 집어 던지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폐하.”
“그러면 놈들을 그냥 그곳에 내버려 둬야 한단 겁니까? 공자와 저, 황후의 목숨을 위협한 놈들을….”
알렉시오스가 화난 듯 숨을 씨익씨익거렸다.
그의 시선이 날 향했다.
“공자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자였다면 이미 지금쯤….”
“마리아 황태후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폐하.”
내가 답했다.
역시 아직 어리긴 어리군.
‘자기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모르는 거겠지.’
무장한 병력이 성당에 들이닥치면 어떤 이유에서든지 신성모독으로 비출 수밖에 없다.
헨리 2세도 그랬지.
난 게임 속 이벤트를 떠올렸다.
엘레오노르의 남편이자 사자심왕 리처드의 아버지.
‘그 오만한 성직자 놈을 없애줄 이가 정녕 내 왕국에 없단 말이냐?’
헨리 2세가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
이 말을 오해한 그의 부하들은 켄터베리 대성당에서 토마스 베켓 대주교를 무참히 살해했다.
그 일로 헨리 2세는 잉글랜드 백성들을 포함해 전 유럽인들의 분노를 사야 했다.
교황청이 토마스 베켓을 성인으로 시성한 건 덤.
그런 일이 벌어지게 할 순 없지.
“저였다면 암살이 성공했다는 소문을 퍼뜨렸을 겁니다. 최소한 황제 폐하께서 위중하다고 발표하거나요.”
그럼 자기네들이 알아서 나서줬을 텐데.
그러기엔 이미 늦었나.
지금 그 둘을 체포할 방법은….
“제게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방법이라면….”
“일단 포고관들을 전부 거리로 내보내는 겁니다. 그리고 어제 있었던 일을 시민들에게 그대로 전하는 거죠.”
내가 말했다.
“황제 폐하를 향한 암살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했다고 말입니다. 그 직후에 마니 황녀가 갑자기 성 소피아 성당으로 도망쳤다는 사실까지 알리면….”
“그녀가 배후에 있다는 것 정도는 모두 알 수 있겠죠.”
테오도라가 말했다.
그녀가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저도 공자님 제안에 동의해요. 섣불리 병사들을 움직이기 전에 민심을 잡는 게 먼저겠죠. 하지만 제도 시민 중 마니 황녀를 따르는 이들은 적지 않아요. 만약 그들이 저항에 나서면….”
“사태가 길어질 수 있겠군요. 그사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요.”
내가 중얼거렸다.
테오도라의 말이 옳았다.
뭔가 큰 게 필요했다.
그들의 입을 다물 수 있게 할 결정적인 무언가.
“총대주교가 알아서 그들을 내놓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그만한 명분이나 보여줄 게 필요할 텐데….”
그때 한 가지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오래전 봤던 한 히어로 영화.
서로 투닥거리며 싸우던 히어로들은 한 요원의 죽음에 힘을 합친다.
요원이 평소 들고 다니던 히어로 수집 카드.
그게 피로 얼룩진 모습은 히어로들의 분노를 끌어냈다.
한 장의 카드는 그 어떤 말보다 더 많은 메시지를 전했다.
하지만 나중에 한 가지 반전이 밝혀진다.
카드에 묻은 그 피는 사실 국장이 묻힌 것.
‘어차피 메시지가 진짜라면 상관없어.’
영화에서 요원이 죽은 건 사실이었다.
황제가 암살당할 뻔한 것 역시 엄연한 진실.
난 어린 황제를 바라봤다.
“혹시 폐하께서 쓰시는 손수건이 있으십니까?”
* * *
성 소피아 대성당.
수백 명의 성난 외침이 홀을 가득 채웠다.
기도를 드리던 신도들이 그들의 기세에 화들짝 놀라며 성당 밖으로 나갔다.
“이건 황궁에서 꾸민 음모입니다!”
“황녀께서 모함을 사고 황궁에서 쫓겨나오시다니, 이런 무책임한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옳소! 옳소!”
마니 황녀와 레니에르.
두 사람이 지지자들을 이끌었다.
“보두앵 그자와 예루살렘 대표단이 황제 폐하를 현혹한 것 아니겠습니까?”
“애초에 그 무식한 라틴 놈들을 신성한 제도에 들어오게 한 게 잘못이었소! 라틴 지구에 있는 쓰레기들을 모조리 쓸어버려야 한단 말이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 사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테오도시우스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그가 부하 주교에게 물었다.
“도대체 몇 명이나 온 건가?”
“수백은 족히 넘습니다. 시민들도 계속 밖에서 몰려들고 있고요.”
그의 물음에 주교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아직 황궁에선 아무 연락도 안 왔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총대주교가 말끝을 흐렸다.
이들이 갑자기 들이닥친 건 오늘 아침.
동시에 누군가 황제를 시해하려 했다는 소문이 제도 전체를 휩쓸었다.
“총대주교께서도 그 라틴 놈들의 더러운 돈을 받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지자 중 한 명이 외쳤다.
“만일 우리 황녀 저하를 성당에서 내쫓으려 한다면 그 소문이 사실이란 것 아니겠습니까?”
“저자들이 감히 어디에서 저런 무엄한 말을…!”
“그냥 무시하게. 괜히 나섰다간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야.”
테오도시우스 총대주교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은 상황을 파악할 때였다.
쿵―쿵―쿵.
성당 문이 울리는 소리가 났다.
곧이어 주교들이 그에게 다가왔다.
“총대주교님, 황실 대리인께서 성당 앞에 도착했습니다. 지금 바로….”
“알겠네, 가도록 하지.”
문으로 향하는 그를 향해 사람들이 소리 질렀다.
“놈들이 황녀 저하를 붙잡으러 왔다!”
“이곳은 성역이야! 이런 신성모독이라니!”
“반역자들을 내쫓아라!”
고함이 성당에 울려 퍼졌다.
문을 열고 나간 테오도시우스는 계단 앞에 선 귀족과 관료들을 발견했다.
다행히 무장한 병사들은 많지 않았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성당에 들이닥치려는 건 아닌가 보군.”
맨 앞에 선 나이든 귀족이 입을 열었다.
지극히 차분한 어조.
“황실 대리인으로서 마니 황녀와 그녀의 남편 레니에르를 황궁으로 압송하러 왔소. 황제 폐하의 명이시오.”
“이곳 성당은 주님의 신성한 피난처입니다. 저는 보호를 청하는 모든 가련한 자들을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총대주교가 조심스레 말했다.
상황을 구경하러 나온 인파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족히 수백.
아니, 수천은 되어 보였다.
“마니 황녀와 그녀의 남편은 황제 폐하를 시해하려 시도한 반역죄를 저질렀소!”
백발의 귀족이 소리쳤다.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들으라는 듯 쩌렁쩌렁한 목소리.
“그런데 어찌 감히 이 신성한 성당에 그런 죄인들을 받아준다는 것이오?!”
그의 말에 시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 말 들었나? 마리 황녀께서 황제 폐하를….”
“뭐라고? 그럼 그 소문이….”
“그게 아니면 왜 이곳 성당까지 와 있겠나?”
“난 모르겠네. 황궁에서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아야….”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로 거리가 가득 찼다.
그때, 귀족이 뭔가 꺼내 들었다.
“이건 황제 폐하의 선혈이 묻은 손수건이오!”
손수건.
붉은빛으로 물든 손수건이었다.
“보두앵 공자가 암살자들을 막지 못했다면, 놈들은 피 이상의 것을 얻어냈을 것이오!”
그가 피에 물든 손수건을 성당 계단 앞에 내려놨다.
“아아아….”
총대주교가 손수건을 조심스레 주워들었다.
그와 동시에 웅성거림이 한층 더 커졌다.
성당 안에서도 온갖 말들이 오갔다.
침묵이 흐르고 이내 총대주교가 입을 열었다.
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초연했다.
안심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그가 말했다.
“제가 돌아가 두 분을 설득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