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33)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33화(33/215)
로마를 구한 사나이 (3)
* * *
“이, 이건 모함입니다!”
사내가 몸을 비틀며 소리쳤다.
황궁 아래의 지하감옥.
마니 콤니니의 남편, 레니에르는 의자에 반쯤 묶여 있었다.
숨 막힐 것 같은 공포가 그에게서 느껴졌다.
“제가 어찌 황제 폐하를 시해하려는 계획을 꾸몄겠습니까?!”
“이미 테오도라 황녀가 증언했네. 자네랑 마니 두 사람이 와서 죄를 자백했다고 말이야.”
알렉시오스가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그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근위병들 역시 마찬가지.
그들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감정은 정반대였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네.’
난 감방 밖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봤다.
“암살이 실패했다는 걸 깨닫곤 곧장 황궁을 빠져나갔지. 그런데도 아직 자기가 무죄라 하는 건가?!”
“폐, 폐하! 전 그 계획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레니에르가 한층 더 다급한 어조로 외쳤다.
부인할 수 없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건가.
“하지만 제가 미처 알리기도 전에 마니가 갑자기 일을 터뜨리는 바람에….”
“이젠 자신의 부인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하는군. 부끄러운 줄 알게, 레니에르.”
어린 황제가 고개를 돌렸다.
“자네에게 더 이상 들을 말은 없을 것 같군.”
“폐, 폐하!”
알렉시오스가 감방 밖으로 나왔다.
난 어린 황제의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가 날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자?”
“레니에르도 공범이었을 겁니다. 아니었다면 마니 황녀를 따라 성 소피아 성당으로 도망치지 않았겠죠.”
내가 말했다.
당혹감, 후회, 공포.
이 감정들이 의미하는 건 하나뿐.
그도 함께 이 계획을 꾸민 공범이었다.
“그나마 총대주교가 곧바로 이들을 내놓아서 다행이군요.”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고작 돼지 피로 일이 이렇게 잘 풀릴 줄은 몰랐습니다.”
“중요한 건 메시지, 아니 그 속에 담긴 뜻이니까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성 소피아 성당 앞에 놓인 손수건.
그걸 적신 건 사실 알렉시오스의 피가 아니라 돼지 피였다.
‘알렉시오스도 찰과상을 입긴 했지만, 피를 흘릴 정도는 아니었으니깐.’
어떻게 보면 제도를 상대로 가짜 연극을 펼친 셈.
하지만 결국 중요한 메시지였다.
[마니 황녀가 황제를 시해하려 했다!]이렇게 백날 말해봐야 아무 소용없었다.
대중의 감정에 호소하려면 다른 방법을 써야 했다.
‘피로 물든 손수건’
이것보다 더 강렬한 소품도 없겠지.
총대주교도 민심에 이끌려 어쩔 수 없다는 듯 두 사람을 성당 밖으로 내쫓았다.
“공자께서 지금 제도에 계셔서 다행입니다. 아마 축제 전이었다면 신민들도 제 말을 믿지 않았겠죠.”
알렉시오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오히려 제가 라틴인들 편만 든다고 몰아갔을 겁니다.”
“글쎄요. 황제 폐하께서도 잘 헤쳐나가셨을 겁니다.”
물론 이건 거짓말.
내가 아니었으면 지금 난장판이었겠지.
무작정 병사들을 끌고 가서 황녀를 끌고 가려다 실패하고, 화나서 총대주교를 교체하려다 민심이 터지는….
난장판 중의 난장판.
‘그나저나 마니 콤니니가 왜 이런 무리수를 둔 거지?’
민심이 황제 쪽으로 기울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을 텐데.
‘시간이 지나면 아예 기회가 없을 거로 생각한 건가?’
난 역겨움에 침을 뱉었다.
그럼 이런 멍청한 짓을 벌인 것도 이해는 가는군.
“그날 이후로 공자께 여쭤보고 싶은 게 하나 있었습니다.”
알렉시오스가 헛기침하며 물었다.
“어떻게 놈들이 암살자란 걸 눈치채신 겁니까? 근위대장이 고백하길, 자신도 마지막 순간까지 눈치 못 챘다고 하더군요.”
그가 말했다.
“암살자들 모두 적법한 절차를 거쳐 만찬장에 들어왔으니까요.”
“그리 대단한 건 아닙니다. 그들 모두 품 안에 손을 넣고 있더군요. 마치 뭔가 잡은 것처럼요.”
내가 말했다.
이번엔 감이라고 말해도 별 상관없겠지.
“거기에 긴장한 기색도 역력했죠. 그런 반응이 하나둘 합쳐져 확신한 겁니다.”
“그랬군요. 전 하나도 눈치 못 챘습니다.”
그가 대단하다는 시선으로 날 바라봤다.
아니, 그런 눈빛은 좀 부담스러운데.
내가 헛기침하며 물었다.
“마니 황녀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황궁의 전용 감방에 가둬뒀습니다. 이제 곧 제도 밖의 수녀원으로 보내질 겁니다.”
그가 중얼거렸다.
“거기서 여생을 보내게 되겠지요. 마음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복수를 하고 싶지만….”
수녀원이라.
황녀에게 내릴 수 있는 사실상 가장 가혹한 벌.
말이 수녀원이지 감옥에 가까웠다.
그래도 당장 죽는 것보단 낫나.
원래 역사에선 정권을 잡은 안드로니코스한테 독살당했던 것 같은데.
“아마 그곳에서도 오래 살지는 못할 겁니다.”
알렉시오스가 중얼거렸다.
“저와 아녜스의 목숨을 노렸으니. 나중에 잠잠해지면 손을 써야겠죠.”
음, 이 세계에서도 그리 오래 살지는 못할 것 같네.
난 소년을 바라봤다.
암살 사건 이후로 더 성숙해진 기분이 들었다.
아니, 성숙해질 수밖에 없는 건가.
모든 게 미쳐 돌아가고 있는데 혼자 어린아이로 있을 순 없겠지.
“그렇다면 레니에르는….”
“앞으론 다시 문제를 못 일으키게 눈알을 뽑아야겠지요. 눈먼 자를 따를 신도는 없으니깐요.”
알렉시오스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역시 동로마의 유서 깊은 전통은 무시할 수 없군.
실명에 거세라.
그가 날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그만 회의장으로 가시죠, 공자.”
“예, 폐하.”
난 뒤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을 무시한 채 방을 나섰다.
누굴 죽이려 할 땐 자기도 죽을 각오를 해야지.
그리고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이제 시작이야.’
안드로니코스.
그자가 움직이기 시작했을 게 분명했다.
* * *
황궁.
사태가 신속하게 정리되면서 제도는 안정을 되찾았다.
마리아 황태후가 귀족과 성직자들을 황궁으로 불러들여 충성의 맹세를 확인했다.
상황 정리를 맡은 건 황제와 섭정단, 그리고 테오도라 황녀.
나 역시 비공식 멤버로 회의에 참석했다.
“낭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당장 제도의 방위를 강화해야 합니다.”
내가 테이블을 두드리며 말했다.
“안드로니코스는 이런 혼란이 벌어지길 기다리고 있었을 겁니다.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가정해야겠죠.”
제도의 혼란.
욕심에 가득 찬 그가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마니 황녀 부부는 그자가 움직일 발판을 마련해 준 셈.
하지만 이게 안 좋은 일은 아니지.
오히려 우리에겐 기회.
‘군대를 끌고 제도를 위협하면 숙청할 이유도 생기는 거니깐.’
내가 이곳에 있을 때 빨리 쇠뿔을 빼야 했다.
여기 콘스탄티노플에 계속 눌러앉을 수도 없는 노릇.
“제 아버지는 그자를 황족이란 이유로 몇 번이나 용서해주셨죠. 하지만 정말로….”
알렉시오스가 말했다.
“안드로니코스 그자가 콘토스페나노스 제독을 끌어들여 함대를 끌고 온다면, 그건 명백한 반역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폐하께 유리한 상황이죠. 제도가 실제로 혼란에 빠진 건 아니니깐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안드로니코스는 자신이 오자마자 성문이 활짝 열리는 상황을 기대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건 원래 역사에서나 벌어진 일.
지금은 다르지.
그때 테오도라가 끼어들었다.
“그럼 제도가 아직 혼란한 것처럼 보이는 게 낫겠군요. 상황이 정리된 걸 알면 군대를 물릴 수 있으니까요.”
흠, 맞는 말이군.
아무리 상대가 오만방자하다 해도 정보는 숨기는 게 낫겠지.
안드로니코스를 따르는 자들이 콘스탄티노플 안에도 있을 게 분명했다.
“황녀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제도 밖으로 나가는 걸 금하고, 몇몇 지정된 상인들만 나갈 수 있도록 하죠.”
내가 덧붙였다.
“제가 라틴 상인들께 미리 말을 전해 놓겠습니다. 제도가 혼란에 빠졌다는 소문을 퍼뜨리라고요.”
“암살 시도가 있었으니 출입 금지령을 내려도 시민들이 충분히 납득하겠죠.”
테오도라가 말했다.
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이번 사태 수습에서 가장 적극적인 황족이었다.
그녀가 황제 편을 들면서 민심도 단번에 이쪽으로 넘어왔다.
지금도 그녀의 감정은 한없이 차분했다.
정말 아버지가 다스리던 제국을 지키고 싶은 건가?
“병력 상황은 어떻습니까, 폐하?”
“이미 어머니께서 소집령을 내리셨어요. 성벽에 세울 수비병들은 부족하지 않을 겁니다.”
알렉시오스가 말했다.
“정 안 되면 징집병들을 끌어모을 수도 있고요.”
“그러기 전에 우선 적이 어디 있는지 파악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난 테이블 위에 놓인 지도를 바라봤다.
콘스탄티노플.
삼중성벽은 지도로 보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다.
대포를 끌고 오지 않는 이상 콘스탄티노플의 성벽은 무너뜨릴 수 없었다.
하지만 문제라면 성문을 지키는 사람들.
성벽이 아무리 튼튼하다 해도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면 아무 소용 없겠지.
“우선 바랑기 근위대를 성문과 주요 위치들에 배치해야 할 겁니다. 누군가 함부로 성문을 여는 일이 없도록 말이죠.”
내가 말했다.
원래 역사 이벤트가 정확히 어떤 식이었더라?
난 기억을 쥐어짰다.
안드로니코스가 함대를 끌고 와서 활짝 열린 성문을 통해….
“그리고 바다로 연결된 쪽에 투석기들을 준비시켜 놓도록 하죠. 함대가 접근하면 언제든 몰아낼 수 있게요.”
안드로니코스.
콘스탄티노플이 자신을 거부한다는 걸 알면 그자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가장 중요한 게 따로 있었군요. 지금 바로 제도 주변에 소개령을 내려야 합니다.”
“소개령이라면… 물자와 식량을 제도 안으로 징발하는 것 말씀이시군요. 시민들도 포함해서요.”
알렉시오스가 말했다.
“하지만 공성전이 길게 이어질 게 아니라면 굳이 시민들에게 고통을….”
“소개령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내려야 합니다. 시민들의 고통을 덜기 위해서라도요.”
내가 고개를 흔들었다.
안드로니코스를 무릎 꿇릴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
그건 바로 주변의 모든 걸 없애버리는 거였다.
내가 알렉시오스와 테오도라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정보를 잘 통제한다면 놈들이 장기전을 준비할 리 없어.
“아무리 많은 군대를 끌고 온다 한들, 먹을 게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 * *
에게 해.
한 무리의 배들이 파도를 가르며 나아갔다.
콘토스페나노스 제독이 이끄는 대함대는 아무 방해 없이 해협을 통과했다.
“모든 게 우리가 계획했던 대로군, 안 그런가?”
안드로니코스가 그의 옆에 서며 말했다.
그는 여느 때와 같이 커다란 로브로 자신의 풍채를 숨겼다.
“모든 게 너무 예상대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만.”
“자넨 걱정이 너무 많아서 문제일세 이제 도착까지 며칠 남았다고?”
“이제 이틀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틀이라. 이틀만 더 기다리면 제국이 우리 손 안에 들어온다는 거군.”
그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만약 반역이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반역이라니. 명심하게, 우린 어린 황제를 지키려 군대를 일으킨 거야. 어디까지나 황제의 신하로서 제도에 입성하는 거란 말일세.”
안드로니코스가 손을 흔들었다.
“마니 황녀가 보낸 서신도 있으니 충분한 명분도 있지. 내가 장담하지 않았었나. 제도가 곧 크게 흔들릴 거라고?”
“예, 그렇게 말씀하셨었죠. 하지만 문제가 적지 않습니다.”
제독이 한숨을 내쉬었다.
“급하게 출항하느라 최소한의 보급품만 지니고….”
“어차피 곧바로 제도에 입성할 텐데 보급이 뭐가 대수란 말인가?”
안드로니코스가 침을 닦으며 건너편을 바라봤다.
모든 도시의 여왕.
콘스탄티노플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아,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