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36)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36화(36/215)
천사의 눈 (1)
* * *
“폐하, 좀 더 뒤쪽으로 이동하시지요. 이곳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나 뒤에 숨어있으려니 답답해 죽을 것 같네. 근데 더 뒤로 도망치자니. 날 얼마나 겁쟁이로 보는 건가?”
알렉시오스는 인상을 찌푸린 채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바라봤다.
저 멀리서 고함과 비명이 들려왔다.
창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
전투가 한창 이어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알렉시오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근위대장, 루아크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직 성벽에선 아무 소식 없나?”
“격전이 벌어졌다는 게 마지막으로 받은 보고입니다. 저희 바랑기 근위대도 성벽에서 싸우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아니,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어.”
“안 됩니다! 폐하께 눈먼 화살이라도 날아들었다간….”
“그래서 이렇게 많은 갑옷을 껴입은 거 아닌가?”
“폐하께선 최대한 안전한 곳에 계셔야 합니다. 보두앵 공자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공자가 그렇게 말하긴 했지.”
어린 황제가 한숨을 내쉬었다.
보두앵.
자신과 황후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
그는 자신이 직접 나서 반란군과 싸우고 있었다.
“공자와 예루살렘 기사들은 이곳에 남아서 싸우고 있어.”
알렉시오스가 근위대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배를 타고 도망칠 수 있었는데 말이야. 나였다면 아마 그렇게 했겠지.”
“폐하께서도 충분히 용맹하십니다. 이곳도 최전방이나 마찬가지이고요.”
그가 덧붙였다.
“병사들도 황실의 깃발을 보고 힘을 얻고 있습니다.”
그때 함성이 한층 더 커졌다.
주변의 병사들까지 몸을 움찔할 정도.
“역시 내가 직접 가봐야겠어.”
“저쪽 성벽 뒤 감시탑으로 가시지요! 그쪽에서도 성벽이 보일 겁니다.”
루아크가 알렉시오스의 곁으로 다가오며 소리쳤다.
그가 손에 든 도끼를 흔들었다.
“어서 빨리 폐하를 호위해라! 탑은 이쪽입니다, 폐하!”
어린 황제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원형 방패를 든 바랑기 근위병들이 앞으로 튀어나오며 황제를 감쌌다.
엄중한 호위 아래 알렉시오스는 감시탑 위로 올라갔다.
근위병들 역시 서둘러 그의 뒤를 쫓았다.
숨을 헐떡이는 소리가 탑에 울려 퍼졌다.
알렉시오스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탑 위에 올라섰다.
탑 위로 올라오자 성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상상한 것과 전혀 다른 광경.
“저게 도대체….”
알렉시오스가 중얼거렸다.
거대한 기둥.
처음 보인 건 그것뿐이었다.
굴뚝을 청소하는 기다란 솔처럼, 기다란 기둥이 성벽을 휩쓸었다.
알렉시오스는 눈앞의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기둥이 기사들이란 걸 깨달은 건 몇 초가 흐른 뒤였다.
그 웅장한 모습 앞에 어린 황제는 입을 쩍 벌렸다.
“아아아…….”
바랑기 근위병들 역시 입을 다문 채 그 광경을 바라봤다.
* * *
“대열을 정비하라!”
“반역자를 붙잡았다! 추격을 멈추고 대열을 정비하라!”
“추격을 멈춰라!”
내가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미세하게 떨리는 근육들.
몇 시간이나 달린 거지?
기억이 희미했다.
아드레날린이 혈관을 따라 온몸에서 요동쳤다.
붕괴.
단 한 번의 돌격에 반란군은 전의를 상실했다.
그다음 이어진 건 추격전.
아니, 전투라기보단 정리에 가깝겠군.
어찌나 항복한 이들이 많은지 따로 관리하기 위한 병력을 두고 가야 할 정도였다.
우린 몇 시간에 걸친 추격 끝에 도망가던 안드로니코스를 붙잡았다.
“입고 있는 옷이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군요, 안드로니코스. 누가 보면 근처 농부인 줄 알겠습니다.”
내가 눈앞의 사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안드로니코스는 배 위에서 봤던 화려한 비단 옷차림이 아니었다.
농부나 입을 법한 거친 옷.
한눈에 봐도 싸구려 면에 중간중간 구멍 나고 찢어진 게 보였다.
“차라리 입고 있던 옷이랑 바꾸지 그랬습니까? 그럼 농부가 고발하진 않았을 텐데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자신의 군대가 무너지자, 안드로니코스는 모든 걸 남겨둔 채 무작정 도망쳤다.
위장하겠다고 근처의 농부 옷을 뺏어 입은 건 덤.
분노한 농부의 증언 덕분에 우린 그가 도망친 방향을 알 수 있었다.
빤스런도 이런 빤스런이 없겠네.
호위 병력까지 모두 도망치고 자기 혼자만 남았다니.
평소 행실을 생각하면 무리도 아니지만.
“이, 이보게 보두앵 공자! 난 결코 자네와 적대할 생각이 없었네!”
그가 다급한 어조로 소리쳤다.
전에 봤던 오만한 표정과 달리 잔뜩 겁먹은 표정.
“저랑 적대할 생각이 없으셨다라. 그럼 왜 제가 탄 배를 습격하셨습니까?”
“내가 말하지 않았나? 그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야. 콘토스페나노스 제독이 벌인 짓이란 말일세!”
난 한숨을 내쉬었다.
마니 황녀 부부도 그렇고 왜 자기 죄를 인정하는 사람이 없는 걸까.
여기까지 와서 내가 그 말을 믿을 거로 생각하는 건가?
‘내 유일한 죄는 실패한 것뿐이다!’
‘나의 피가 프랑스 백성의 축복을 위해 흐르게 하소서!’
마지막에 이 정도 사자후는 보여줘야지.
난 욱신거리는 고통을 애써 참았다.
온몸의 근육이 종이처럼 찢어지는 것 같았다.
‘어린 몸으로 너무 무리했어.’
몇 시간 동안이나 말을 타고 싸웠으니 무리도 아닌가.
하지만 여기서 쓰러질 순 없었다.
주변의 기사와 병사들 모두 날 바라봤다.
난 숨을 있는 힘껏 들이마셨다.
“안드로니코스 콤니노스. 당신은 제국에 반기를 들어 수많은 무고한 자들을 죽음으로 이끌었소.”
난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기사 중 사망자는 없었다.
전투 중 낙마하며 부상을 입은 이들이 셋.
하지만 성벽을 지키다 죽은 수비병들은 이야기가 달랐다.
성벽을 돌파하려던 반란군 병사들 역시 마찬가지.
둘 다 죽을 이유가 없는 이들이었다.
“근데 정작 자기는 제일 먼저 도망치다니. 역겹다는 말로도 부족하군.”
난 말에서 내렸다.
이젠 형식적 존대도 필요 없어.
“거기에 황제 폐하 앞에선 군대를 물리겠다고 해놓고 곧바로 공격하는 추태까지. 그러고도 네가 고귀한 황족이란 건가?”
그가 뒤로 물러서더니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난 그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할 말 있으면 어디 한 번 해봐. 얼마든지 들어줄 테니.”
“이, 이봐! 보두앵 공자! 날 처벌할 수 있는 사람은 황제 폐하밖에 없네! 자네가 멋대로 내게 손댄다면….”
“그래, 제국의 배신자를 내가 직접 처벌할 순 없겠지. 난 외부인이니깐.”
내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건 죽일 때나 얘기고.
“그렇다면 어서… 으악!!”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그가 비명을 내질렀다.
난 발에 힘을 줬다.
“하지만 발목 하나 으스러뜨리는 건 큰 문제 없을 것 같은데?”
열세 살 꼬맹이라도 무게를 싣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내 체중에 갑옷의 무게까지.
힘을 세게 주자 우드득 소리가 났다.
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 그만!! 내가 이렇게 부탁하지 않나…!”
“데리고 왔던 여자들도 전부 천막에 버리고 갔지. 그렇게 잡히는 게 무서웠나?”
난 그를 노려봤다.
공포.
그에게서 느껴지는 건 공포뿐이었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정작 보급은 안 챙겨오면서 애인들은 끌고 오는 놈이라니.
괜히 이놈이 동로마를 말아먹은 게 아니지.
그때 갑옷이 철컹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알렉시오스.
그가 바랑기 근위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다가왔다.
“보두앵 공자!”
그가 빠른 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워낙 적들이 도망치기 바빠 다칠 틈도 없었습니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어린 황제의 시선이 안드로니코스를 향했다.
“안드로니코스. 여기 있었군.”
“폐, 폐하! 바실레우스(황제) 폐하가 오시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가 허겁지겁 다가와 알렉시오스의 발에 입을 맞췄다.
으스러진 발목 때문에 반쯤 기는 듯한 모습.
“부디 자비를 베푸시지요. 전 어디까지나 폐하를 위해….”
“그래서 군대를 물리겠다고 해놓곤 곧장 공격을 시작한 것이오? 내가 가장 방심할 때를 노려서?! 그대가 날 바보로 아는 게 아니라면….”
알렉시오스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난 입을 열려다 다물었다.
구태여 몇 마디 덧붙일 필요는 없겠지.
“더 말하기도 아깝군. 그대는 그대가 저지른 죄에 ‘합당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오. 근위병! 이 역겨운 자를 지금 당장 내 눈앞에서 치우게!”
바랑기 근위병들이 다가와 안드로니코스의 두 팔을 붙잡았다.
그가 질질 끌려가며 계속 소리쳤다.
“폐하! 폐하!!!”
알렉시오스가 다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 두 사람은 침묵한 채 서로를 바라봤다.
지난 며칠 동안 우리 둘 다 얼마나 고생한 걸까.
마침내 그에게서 안도감이 느껴졌다.
암살 사건 이후 처음 느껴지는 안도감.
“이걸로 끝이군요.”
“아직 완전히 끝난 건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우리가 붙잡은 포로는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했던 병력보다 턱없이 적었다.
탈주한 수를 감안하더라도 마찬가지.
거기에 콘토스페나노스 제독의 함대까지 자취를 감췄지.
“콘토스페나노스 제독은 공성전이 패배한 걸 보고 곧바로 도망친 것 같습니다.”
내가 말했다.
“하지만 안드로니코스를 붙잡았으니 반란군을 규합할 중심점은 더 이상 없겠죠.”
반란이 실패한 시점에서 명분은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
황족인 안드로니코스는 둘째치고 일개 제독이 할 수 있는 건 발악 정도겠지.
“그자가 어디로 도망치든 곧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제국은 제 손 안에 있으니까요.”
알렉시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빙긋 미소지었다.
“정말이지 수고하셨습니다, 공자. 제 목숨을 구해주신 데다 이렇게 반란군까지….”
어린 황제와 난 포옹을 나눴다.
“함께 황궁으로 돌아가시죠. 공자와 나눌 얘기가 많이 남았습니다.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많고요.”
그의 시선이 질질 끌려가는 안드로니코스를 향했다.
“우선 저자부터 처리해야겠지요.”
“저도 같은 말씀을 드리려 했습니다.”
난 바닥에 침을 뱉었다.
사실 안드로니코스에게 정해진 운명은 뻔했다.
‘동로마의 유구한 전통’
거세랑 실명.
그리고 상황이 잠잠해지면 적당히 독살이려나.
그 정도면 원 역사보단 오히려 나은 거지.
난 기억을 더듬었다.
원래 역사에서….
반역으로 황제가 된 안드로니코스는 온갖 폭정과 실정을 저지르다 이내 분노한 시민들에게 붙잡힌다.
눈이랑 머리카락이 뽑히는 건 기본에 팔이 잘리고 펄펄 끓는 물이 부어지기까지.
그걸 생각하면 지금이 더 자비로운 상황.
난 불트에게 반쯤 쓰러지듯 기댔다.
녀석이 씨익씨익 콧김을 내뱉으며 날 혀로 핥았다.
‘정말 다 끝났어.’
휴식.
지금은 쉬고 싶단 생각밖에 안 들었다.
알렉시오스가 내게 돌아오며 말했다.
“우선 성 소피아 성당에서 감사 예배부터 열도록 하죠. 그다음엔 공자가 하신 일을 모든 신민이 알 수 있게 축하식과….”
그의 말이 끝없이 이어졌다.
잠깐.
이거 쉴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
내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그렇군요. 말씀만 들어도 정말 기대가 됩니다.”
그런 내 속마음을 모르는지, 그가 활짝 미소 지었다.
“공자라면 그렇게 말씀해주실 줄 알았습니다! 자, 어서 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