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44)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44화(44/215)
물고기를 잡는 매 (4)
* * *
트리폴리 항구
“준비는 모두 마쳤나?”
“예, 백작께서 명을 내리시면 언제든 출항할 수 있습니다.”
“만약 보두앵 공자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레몽이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이 바다를 향했다.
며칠 전 보두앵 공자에게서 온 서신.
그 내용은 충격 그 자체였다.
키프로스의 반란 함대가 트리폴리를 습격하려 한다!
“그런 정보를 어떻게 알아낸 건지 모르겠습니다. 저희가 보낸 첩자들도 열 명이 넘지만….”
“모두 키프로스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지.”
레몽이 중얼거렸다.
“거기에 콘스탄티노플 함대를 지원으로 보내겠다니. 그게 정말일 것 같나?”
“보두앵 공자가 거짓말할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공자는 황제의 목숨을 구했으니….”
부관이 말했다.
“함대 지휘권을 줬다 해도 그리 이상하진 않을 겁니다.”
“난 모르겠네. 그리스 놈들은 쉽게 믿을 족속이 아니야. 내 누이가 그렇게 죽은 것도….”
레몽이 눈을 감으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로마는 그의 누이를 시장의 고깃덩어리처럼 취급했다.
황후로 받아들이겠다며 온갖 약속을 내밀다 마지막 순간에 걷어찬 것이다.
‘우리 제국은 안티오키아의 마리아가 제국 황후로서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소!’
실의에 빠진 그의 누이는 수녀원에서 시름시름 앓다 결국 세상을 떴다.
레몽이 콘스탄티노플과 싸우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
혼인 예물을 전할 예정이던 그의 함대는 지중해에서 제국 함선들을 습격했다.
“그런데 보두앵 공자가 황제의 목숨을 구하다니. 역시 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르겠군.”
“정말 대천사 미카엘의 가호를 받은 거라면….”
“….”
침묵이 흘렀다
레몽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참모 회의에서 보여준 눈빛이 아직도 기억나는군. 거기에 내가 보급을 끊으니 곧바로 찾아와 따졌지.”
그가 말을 이었다.
“에일라트 때부터 분위기가 달라졌어. 대천사의 계시를 받은 거라면 설명이 될지도 모르겠군.”
그가 고개를 흔들었다.
“진실이 어떻든 예루살렘 궁전의 균형도 이제 뒤집히겠지. 콘스탄티노플이 확실히 우리 편으로 넘어오면….”
“살라딘의 공세를 막는 것도 한결 수월해지겠죠.”
“글쎄, 그것까진 모르겠네만.”
레몽이 코웃음 쳤다.
“살라딘이 고작 그 정도로 예루살렘을 포기하진 않을 거야. 그리고 그리스 놈들은 항상 배신만 해왔지.”
그가 저 멀리 콘스탄티노플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맨 처음 십자군을 요청했던 게 누구였나? 알렉시오스 1세 황제였지. 그가 우릴 어떻게 대했는지 기억해 보게. 고작 식량 조금 던져주고 배를 태워주는 대가로 충성 맹세를 받아냈지.”
그의 목소리가 점차 커졌다.
“놈들이 어디 군대를 지원한 적 있었나? 우리와 함께 피를 흘린 적은?”
“아예 없었던 것만은….”
“놈들은 우리가 이룩한 과실만 뺏어가기 바빴어. 그게 그리스 놈들의 본성이네. 차라리 사라센들이 낫다고 할 정도야.”
“백작님…!”
“걱정 말게. 내 자네 말고 다른 사람 앞에서 이런 말을 하진 않으니.”
레몽이 껄껄 웃었다.
부관이 걱정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백작께서 사라센 놈들과 가깝게 지낸다고 하는 주장하는 자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신경 쓸 필요 없네. 날 겁쟁이 배신자라 욕하는 자들이야 언제나 있었으니깐. 그 멍청한 놈들이 뭐라 하든….”
그때 누군가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부두가 요란해졌다.
“저기 배들이 온다!”
레몽과 주변에 있던 이들 모두 고개를 돌려 바다를 바라봤다.
쭉 늘어선 배들이 항구를 향해 다가왔다.
한눈에 봐도 수십 척이 넘는 대함대.
“적인가? 아니면 아군?”
레몽이 소리쳤다.
“지금 당장 함대에 알려라! 전투 준비를 하라고 해!”
“예, 백작님!”
선원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배들이 서둘러 홋줄을 거뒀다.
거리가 점차 가까워지며 깃발이 선명히 보였다.
“깃발을 봤을 땐 로마 배인 게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역시 함정이었군. 놈들이 어린 보두앵을 속여서…….”
레몽이 주먹을 꽉 쥐며 중얼거렸다.
그때 부관이 소리쳤다.
“저기 깃발이…!”
선두의 배가 깃발을 내걸었다.
하얀색 깃발.
그 아래로 붉은색 십자가.
그게 의미하는 건 단순했다.
십자군과의 평화, 항복, 동맹.
출항한 트리폴리 함선들도 그들과 마주 선 채 싸우지 않았다.
차분한 대치가 이어졌다.
“공자의 말이 사실이었단 건가….”
레몽이 중얼거렸다.
그가 고개를 흔들며 소리쳤다.
“내가 직접 확인해야겠다. 어서 배를 준비시켜라!”
* * *
같은 시각
키프로스
리마솔 항구
“저게 뭐야?”
“배가 불타는 것 같은데?”
부두에서 작업 중이던 선원들이 웅성거렸다.
짙은 안개 사이로 뭔가 반짝거렸다.
반딧불처럼 희미하던 빛이 점차 선명해졌다.
“우리 배들이 벌써 돌아온 건가?”
“아무리 습격이 빨리 끝났다고 해도 벌써 돌아오는 건….”
불에 휩싸인 배.
세 척의 배들이 항구 쪽으로 다가왔다.
검은 연기가 하늘 위로 솟구쳐 올랐다.
항구의 선원들 모두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봤다.
몇몇 이들이 뒤늦게 상황을 깨닫고 소리쳤다.
“적이다! 적 함대가 온다!”
“수비대는 뭐 하는 거야?! 어서 빨리 종을 울려!”
“예, 예! 종을 울려라!”
“불이다!!”
“화, 화공선이야! 정박한 배들 모두 다 출항시켜!”
“여기 올 때까지 왜 아무도 눈치 못 챈 거야?!”
“이 망할 안개 때문에…! 도대체 어디 배가 우릴 습격하러 온 거지?”
선원들이 허겁지겁 움직였다.
뿔나팔이 곳곳에서 울렸다.
몇몇 이들은 부두에서 미끄러져 바다에 풍덩 빠졌다.
홋줄들이 허공을 날아다녔다.
“쇠사슬은 어디 있어?! 저것들이 항구 안으로 못 들어오게 막아!”
“그랬다간 나가려는 배들까지 그대로….”
정박해 있던 배들이 서로 부딪치며 우왕좌왕 항구 밖으로 나왔다.
그들 뒤로 쇠사슬이 드르륵 처졌다.
“놈들이 항구를 습격한다!”
몇 척이 화살을 쏘아대며 화공선 근처로 다가갔다.
하지만 화공선만 보일 뿐 다른 배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안 타고 있습니다!”
“놈들 본대를 찾아라! 어서!”
“화공선부터 막아!”
함장 중 자기 배를 희생해 불덩이를 막으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돌진하던 화공선이 근처 배들에 불을 붙이더니 그대로 쇠사슬에 걸려 멈췄다.
혼란에 빠진 항구를 안개가 뒤덮었다.
* * *
‘CS탄은 금방 익숙해지니깐 처음부터 조금씩 들이마시는 게 나아.’
그 말을 들은 게 언제였지.
처음으로 화생방 할 때였나.
멋모르고 숨을 들이마셨던 난 그대로 죽을 뻔했다.
폐와 얼굴이 타들어 가는 감각.
하지만 고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점점 익숙해지더니 더 이상 가스가 느껴지지 않은 것이다.
짙은 안개를 보니 그때 기억이 떠올랐다.
회상은 이 정도만 해둘까.
등을 돌리자 위그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지금쯤 리마솔 쪽은 난리가 났을 겁니다. 그리스의 불을 잔뜩 실어 보냈으니….”
그가 말했다.
노 젓는 소리가 배 옆에서 들려왔다.
“아마 어떻게든 화공선들을 멈추려 난리겠죠. 저희가 빈틈을 노려 항구를 공격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제가 원하는 상황도 바로 그거죠. 항구 쪽에 시선이 쏠리면 이쪽은 상대적으로 경계가 느슨해질 겁니다.”
내가 시선을 끌려고 쓴 방법은 간단했다.
바로 화공선.
그리스의 불을 잔뜩 실은 화공선 몇 척을 항구 쪽으로 보낸 것이다.
불놀이, 폭죽만큼 시선을 끌기에 적당한 것도 없지.
거기에 나무배만큼 불에 잘 타는 것도 없고.
“실질적인 위협을 가하기엔 부족하지만….”
애초에 놈들 함대를 화공선 몇 척으로 무너뜨릴 생각은 없었다.
이번 작전의 핵심은 세 척에 나눠탄 상륙 부대.
‘나머지 배들은 레몽 백작을 지원하러 트리폴리에 갔고….’
지금 상황을 대충 요약해볼까.
레몽 백작이 반란 함대와 대치하는 사이 적 항구에 화공선을 보낸다.
놈들이 우왕좌왕하며 당황한 때를 노려 느슨해진 북부에 병력을 침투시킨다.
마르코와 합류해 상세한 정보를 확인.
마지막으로 콘토스페나노스 제독을 기습해 사로잡는다.
“아직까진 다 계획대로군요. 이 안개만 빼면 말입니다.”
내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짙은 안개가 주변을 뒤덮었다.
끈적끈적하고 습한 감촉.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안개 속에서 항해하는 건 눈을 가리고 미로를 헤매는 거나 마찬가지.
“공자님 말씀이 옳으십니다.”
루아크가 다가왔다.
그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선원들이 방향을 제대로 못 찾고 있습니다. 거기에 이쪽엔 암초들도 많고요.”
그가 도끼를 어깨에 올리며 말을 이었다.
“언제 부딪쳐서 좌초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차라리 이번엔 포기하고 다음을….”
“이번 기회를 놓칠 순 없습니다.”
내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이미 우린 경계망을 돌파했다.
우리가 트리폴리를 지원한다는 걸 알면 놈들도 더 이상 함대를 분산하지 않을 터.
거기에 그리스의 불까지 모두 사용했지.
오늘 같은 기회는 다시 안 온다.
“하지만 이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입니다. 배가 좌초되면 살아날 방법이 없습니다. 저희는 몰라도….”
루아크가 말했다.
“공자까지 그런 위험에 몰아넣을 순 없습니다. 예루살렘 왕국과 로마 제국 둘 다를 위해서라도요.”
“….”
침묵이 흘렀다.
난 루아크를 바라봤다.
“우리가 보지 못한다면 적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암초가 문제라면….”
우리에겐 한 가지 비밀무기가 남아있었다.
바로 나.
[설명할 수 없는 육감]내 육감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예민하고 정교해졌다.
콘스탄티노플에서 했던 마상창시합 때 나무 표적들을 느낄 수 있었지.
‘게임엔 숙련도 시스템이 있었어.’
라스트 크루세이더즈에선 캐릭터가 꾸준한 훈련과 반복으로 특성의 숙련도를 올릴 수 있었다.
[검의 달인]이라고 해서 더 이상 검술을 늘릴 수 없는 건 아니었다.훈련하면 할수록 숙련도는 올라간다.
‘반대로 갈고 닦지 않으면 점차 떨어지고.’
부정적인 특성들 역시 마찬가지.
내 [천성적 허약함]도 꾸준한 훈련과 운동으로 처음보다 많이 나아진 상태.
나무 표적들도 느낄 수 있었으니 거대한 암초 정도는 문제없을 것 같은데.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백오십 명의 목숨이 달려있었다.
난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뒤를 돌아봤다.
손이 살짝 떨렸다.
‘오늘 기회를 놓치면 더 많은 이들이 죽을 거야.’
그렇다면 답은 간단했다.
일단 시도하는 수밖에.
난 갑판 앞쪽으로 나섰다.
“제가 앞에 서죠.”
“대천사께 도움을 청하시려는 겁니까?”
“예, 맞습니다. 대천사께서 제 기도를 들어주신다면 길을 인도해주실 겁니다.”
“알겠습니다, 공자. 모두 비켜라!”
루아크가 진지한 표정으로 선원들에게 손짓했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함수 쪽으로 걸어가자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양옆으로 비켜섰다.
바다를 가르던 모세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우락부락한 바이킹 전사들이 내 신도라니.
“이제부터 조타수에게 직접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제가 말하면 바로 키를 돌려야 됩니다!”
“알겠습니다!”
난 눈을 감았다.
처음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물결치는 파도, 선원들의 긴장한 숨,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노의 소리.
배에 탄 선원들의 긴장, 공포, 두려움.
전투를 앞둔 기대감이 느껴졌다.
감정들을 한쪽으로 치우고 암초를 찾아내야 했다.
건초 더미에서 바늘을 찾는 상황.
난 필사적으로 감각을 뒤졌다.
땀이 안개와 뒤섞여 흘러내렸다.
그리고 마침내….
뭔가 느껴졌다.
“전방 좌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