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46)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46화(46/215)
랜드리스 크루세이더 (1)
* * *
“명중입니다!”
볼트가 사과에 꽂히며 퍽 소리를 냈다.
사과가 땅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난 그 모든 걸 느꼈다.
“또 맞추셨군요! 벌써 여섯 개쨉니다!”
“어제보다 명중률이 더 올라갔네.”
내가 웃으며 말했다.
시야는 눈을 가린 안대 때문에 어두컴컴했다.
키프로스 반란을 진압한 난 육감을 단련할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건 바로 사과 맞추기.
에이그가 던진 사과를 쇠뇌로 쏴 맞추는 것이다.
안개 속에서 경비병들을 제압했던 것과 같은 방식.
물론 거기서 끝은 아니었다.
핵심은 시야를 가리고 육감으로 쏘는 것.
날이 갈수록 맞추는 횟수는 늘어갔다.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네.”
난 안대를 풀었다.
아무리 육감이라고 해도 계속 쓰면 피곤하단 말이지.
그래도 대단하긴 하네.
집중하면 물체도 세세히 느낄 수 있다니.
사실상 걸어 다니는 레이더 아닌가?
21세기였으면 초능력자 히어로 대우를 받았을 텐데.
휴전선에서 드론도 잡아내고….
고개를 들자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이 보였다.
다들 놀랍다는 표정.
기사단원에 성묘 수호단원들까지 모여있었다.
오늘도 또 시작이군.
“다들 그렇게 할 일이 없는 겁니까? 어서 일하러들 가세요.”
그제야 인파가 우르르 흩어졌다.
어린아이들 앞에서 마술쇼라도 하는 것 같네.
“어째 날이 갈수록 모이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것 같은데.”
“무리도 아니죠. 공자님께선 안개 너머 암초를 보셨고 콘스탄티노플에선….”
“무슨 말인지 알겠어.”
“저번엔 바다에 빠진 선원도 직접 숨결을 불어넣어 구하셨죠. 제가 알기로 치유능력은 주님께서 왕들에게 부여하는….”
“치유능력이라. 그건 좀 과장인 것 같은데.”
“예루살렘이랑 콘스탄티노플의 병원들 모두 공자님께서 가신 후에 병자들 수가 줄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렇지.”
나도 모르게 코웃음이 나왔다.
기본적인 위생 개념이랑 경구수액, CPR이 치유 능력이라.
하긴 나였어도 같은 반응이었겠지.
기적을 부리는 왕족.
중세만큼 성유물이나 기적, 초능력이 자주 나오는 시대도 없으니깐.
성창을 예시로 들어보자.
라스트 크루세이더즈에도 구현됐던 한 이벤트.
1차 십자군 전쟁 중 십자군이 한 오래된 창을 발견한다.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른 성창을 발견했다!’
성창으로 사기가 오른 십자군은 돌격해서 적을 격퇴.
여기까진 아무 문제 없었다.
논란이 터진 건 그 직후.
‘이게 성창이라면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롱기누스의 창은 가짜라는 거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성창이오! 내 직접 증명하리다!’
한 사제가 성창을 증명하기 위해 나선다.
그 방법은 바로 불의 시련.
간단히 말해 불 위를 걷는 거였다.
하지만 인간이 불 위를 멀쩡히 걷는 건 불가능한 일.
자원했던 사제는 화상으로 끙끙 앓다 결국 죽는다.
‘하지만 내 능력은 실제로 존재한단 말이지.’
시민과 병사들 사기를 높일 수 있다면 그런 착각을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
난 쇠뇌를 에이그에게 건네며 성채로 향했다.
“콘토스페나노스 제독은 어떻게 됐어?”
“오늘 콘스탄티노플로 출발했습니다. 아마 내일이나 모레쯤에 도착하겠죠.”
“내일이나 모레라. 부패할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콘토스페나노스 제독은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항복 명령을 내린 후 다음날.
“자살할 생각이었으면 왜 그렇게 순순히 항복했을까요?”
“제독은 승부가 기운 걸 알았어. 함대라도 지키려 항복 명령을 내린 거야.”
내가 말했다.
그를 움직인 원동력은 안드로니코스와 달랐다.
순수한 애국심.
그와 대면한 순간 난 알아차렸다.
“제독은 자기 기준에선 애국자였어. 안드로니코스랑 손잡은 것도 어디까지나 라틴인들을 제국에서 몰아내려 한 거였고.”
내가 덧붙였다.
황태후부터 안티오키아 출신 라틴인이었으니.
‘섭정단의 친―라틴 정책도 마음에 안 들었겠지.’
그래서 안드로니코스와 손잡았을 가능성이 컸다.
키프로스를 점령한 건 생존을 위한 발버둥에 가까웠고.
“함대가 전멸하면 로마 제국이 베네치아에게 밀린다. 이 정도는 갓난아기도 알 수 있잖아. 자기 가문이 수세대에 걸쳐 만든 함대를….”
내가 덧붙였다.
“자기 손으로 파괴하길 거부한 거지.”
“그 정신으로 황제를 위해 싸웠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게.”
내가 중얼거렸다.
당사자가 죽은 지금은 별 의미 없었지만.
“함대 분위기는 어때?”
“제독의 죽음이 알려졌을 땐 소란이 좀 있었는데…. 황제의 황금 칙서가 공표된 후에는 잠잠해졌습니다.”
에이그가 말했다.
“함부로 나서는 이들도 없고요. 자신들이 반란군이었다는 걸 뒤늦게 안 거겠죠.”
“고위 지휘관들은 처벌을 피할 수 없을 거야. 하지만 함장이랑 선원들은 남아서 복무할 수 있을 테니….”
내가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행복한 결말이지.”
트리폴리를 습격하러 갔던 배들도 로마―레몽 연합함대에 가로막혀 그대로 돌아왔다.
양측의 총손실은 함선 다섯 척.
심지어 그중 세척이 화공선으로 쓰인 배들이었다.
덕분에 로마 제국 함대는 그대로 전력을 보존했다.
날 지원해줄 해군력도 그대로 남은 셈.
성채에 들어가자 반짝거리는 은가면이 날 반겼다.
위그였다.
“위그 경. 오늘따라 기분이 안 좋아 보이시는군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얼굴은 못 봐도 감정은 느낄 수 있지.
“귀리죽이 이제 슬슬 질리시는 겁니까?”
“그깟 귀리죽 먹는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가 손을 흔들며 답했다.
“제가 못 참는 건 그 멍청한 바이킹 놈이 우쭐대는 겁니다. 그 비열한 덴마크 자식이 기회만 생기면….”
들어본 적도 없는 욕설들이 잠시 이어졌다.
“언젠가 경께서 복수하실 기회가 올 겁니다.”
내가 말했다.
루아크가 내기에서 이긴 건 맞지만 압승은 아니지.
“그리고 기사단원 중에는 죽은 사람이 없으니 더 잘 싸우신 셈이죠. 수호단은 무리한 돌격으로 세 명이 죽었으니깐요.”
“역시 공자님이시군요.”
위그가 환한 감정을 뿜어내며 말했다.
“그렇게 말씀해주실 줄 알았습니다. 아, 이거 흥분해서 중요한 걸 말씀 안 드리고 있었군요.”
“예루살렘에서 답신이 온 겁니까?”
내가 물었다.
난 키프로스를 점령한 후 보두앵 4세에게 서신을 보냈다.
내용은 간단했다.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을 간략히 보고.
그리고 앞으로 터질 문제들에 대한 설명과 대응책.
위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전령이 도착했습니다. 황제가 직접 보냈더군요.”
“새로 임명할 키프로스 총독을 정했나 보군요.”
“예, 그리고 아닙니다.”
위그가 웃으며 말했다.
“황제께선 당분간 이곳 키프로스의 통치를 공자께 위임했습니다.”
“예?”
숨이 턱 걸렸다.
아니, 왜 다들 나한테 자꾸 일을 떠넘기는 거야?!
* * *
콘스탄티노플
히포드롬 경기장
테오도라는 말들이 달려나가는 모습을 바라봤다.
발굽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기사들의 아우성.
관중들의 함성.
안내자들이 관중석을 돌아다니며 설명하는 소리까지.
온갖 말소리가 뒤섞여 경기장에 울렸다.
마상창시합이 콘스탄티노플의 정기 행사로 자리 잡았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테오도라와 마리아 황태후도 황제 옆에 앉아 경기를 관람했다.
테오도라가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께서 마상창시합을 정말 좋아하시는군요.”
“황제 폐하께서 요즘 승마에 관심이 너무 크셔서….”
마리아 황태후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내가 뜯어말릴 정도야. 카타프락토이들도 싸울 기회가 생겼다며 신이 났으니….”
“보두앵 공자가 아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겠죠.”
테오도라가 중얼거렸다.
그녀가 경기장을 바라봤다.
“한 사람이 콘스탄티노플을 이렇게 바꿀 수 있을 줄은 몰랐어요. 라틴인들에 대한 적개심도 마찬가지고요.”
“거기에 이번엔 키프로스까지 되찾았지.”
마리아 황태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거의 피를 안 흘리고.”
“그래서 공자께 키프로스를 넘기신 건가요? 공자와 제 혼약을 확실히 하시려고요?”
두 여인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테오도라 네가 마니와 다르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어. 이번 반란 때도 그 누구보다 큰 역할을 해줬고.”
“하지만 제가 제국에 남아있는 한 절 반란에 내세우려는 자들은 항상 존재하겠죠.”
“….”
“전 이해할 수 있어요. 언제나 로마 제국을 위해 살아왔으니깐요.”
“제국을 위해 살아왔다. 다들 그 말을 하더구나.”
마리아 황태후가 빙긋 미소 지었다.
“다들 자기가 한 일이 제국을 위한 거라고 하지. 심지어 안드로니코스 그자도 제도를 포위하며 그렇게 말했고.”
그녀가 덧붙였다.
“하지만 테오도라 너처럼 진심인 자들은 별로 없어. 만약 마니가 아닌 네가 반란을 꾸몄다면 난 지금쯤 이 자리에 없었겠지.”
“….”
창에 부딪힌 기사가 쓰러지자 관중의 함성을 내질렀다.
마리아 황태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루살렘도 쉽진 않을 거다. 우트르메르(십자군 국가)는 사라센뿐만 아니라 곳곳에 독사들이 우글거리는 곳이야.”
그녀가 계속해서 말했다.
“하지만 적어도 그곳에선 네 운명을 스스로 정할 수 있을 거다.”
“운명을 스스로 정한다라….”
테오도라가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그것도 나쁠 것 같진 않네요.”
* * *
예루살렘
“놈을 몰아라!”
“저쪽이야!”
사냥개들이 짖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활을 맨 사냥꾼들이 수풀을 누볐다.
곧 그들이 쫓던 목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덩치의 멧돼지.
녀석이 지친 듯 코를 씰룩거리며 숨을 내뱉었다.
몸 곳곳에 꽂힌 화살들도 숨결에 맞춰 위아래로 흔들렸다.
사냥개들이 멧돼지를 에워싼 채 움직이지 못하도록 포위했다.
“놈이 지쳤어! 숨통을 끊어라!”
한 사냥꾼이 창을 들고 조심스레 다가갔다.
그리고 이어진 일격.
목에 창이 꽂힌 멧돼지가 날뛰다 털썩 쓰러졌다.
사냥꾼들 모두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다.
말에 탄 두 사내가 다가왔다.
“다들 수고했네. 오늘 사냥도 별로 할 게 없었군.”
“폐하께서 안 계셨다면 못 잡았을 겁니다. 쇠뇌로 다리를 맞추시지 않았다면….”
“자네 아부 실력도 날이 갈수록 느는군, 발리앙.”
보두앵 4세가 말했다.
말에서 내리던 그가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폐하!”
“난 괜찮네. 그냥 좀 어지러워서 그래.”
“해가 아직 높이 떠 있습니다. 오늘 사냥은 여기까지만 하시죠.”
“자네 말대로 하지.”
보두앵 4세가 기침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매번 사냥에 나오는 것도 지치는군. 거기다 사냥 한 번 하자고 저 먼 유럽에서 멧돼지까지 싣고 와야 한다니….”
그가 중얼거렸다.
“사냥개들을 유지할 비용이면 기사 한두 명은 더 쓸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사냥을 게을리하실 수는 없습니다. 체력 단련뿐만 아니라….”
“내가 아직 건재하다는 걸 보여줘야지. 그것 때문에 이 멍청한 짓을 매달 하는 거 아닌가?”
보두앵 4세가 손을 휘저었다.
“미안하네. 아무 죄 없는 그대에게 화풀이했군.”
“아닙니다, 폐하.”
“이 망할 나병 때문에 그래. 자네 형님은 어떻게 지낸다고 하시나?”
“키프로스 공기가 생각보다 도움이 된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귀리죽만 드신답니다.”
“귀리죽이라. 그게 나병에 도움이 되는 건가?”
그의 물음에 발리앙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나저나 키프로스를 손에 넣다니. 보두앵 그 녀석이 다음엔 어떤 일을 해낼지 모르겠단 말이야.”
보두앵이 웃음을 내뱉었다.
“알렉산드리아라도 정복해 바치는 건 아닐지….”
“지금껏 로마를 상대로 그 정도 이익을 얻어낸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후에 이집트 원정 약속도 받아냈으니….”
“챙길 수 있는 건 다 챙긴 셈이지. 다 보두앵 그 녀석이 스스로 해낸 거야.”
보두앵 4세가 은가면을 만지작거렸다.
“그 녀석이 이번에도 편지로 재밌는 제안을 하나 해왔네.”
“제안이라면….”
“사라센 놈들을 돕겠다고 하더군.”
“사라센을 돕자니 그게…?”
발리앙의 반응에 보두앵 4세가 빵 웃음을 터뜨렸다.
사냥꾼들이 그런 두 사람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