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47)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47화(47/215)
랜드리스 크루세이더 (2)
* * *
“그럼 세율은 작년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하죠.”
내가 맞은편의 중년 사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잔뜩 겁먹은 표정.
누가 보면 잡아먹히는 줄 알겠네.
“콘토스페나노스 제독이 체불한 임금도 곧 지급될 겁니다. 주민들에게 안심하라고 전해주시죠.”
“감사합니다, 위대하고 고결하신 보두앵 공자님.”
사내가 잔뜩 과장한 어조로 말했다.
“저희 키프로스인들 모두 공자님의 관용과 자비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끝없이 이어지는 사탕발림을 한 귀로 흘렸다.
똑같은 말을 몇 번째 듣는 건지 모르겠네.
“아, 곧 있으면 물자집적소 건설에 들어갈 겁니다. 그땐 최대한 많은 인부가 필요하겠죠.”
“물자집적소 말입니까? 예, 예! 물론입니다. 얼마든지….”
사내가 방에서 나간 건 몇십 분이 지난 후였다.
가니에르가 웃으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공자님.”
“주민들 대표라 해서 누군가 했더니 제국 귀족이었네요.”
“이곳 키프로스에선 가장 높은 작위를 지닌 자입니다만. 공자님께 어떻게든 잘 보이려 안달이더군요.”
가니에르가 덧붙였다.
“공자님께서 사실상 총책임자가 되셨으니 무리도 아니죠.”
“이렇게 키프로스 통째로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난 한숨을 내쉬었다.
적당히 무역 이권만 받아낼 계획이었는데.
갑자기 섬의 통치권을 넘기겠다니.
알렉시오스 황제의 목적은 뻔했다.
혼인을 확실히 하기 위한 일종의 보증금?
아니면 지참금이라고 봐야 되나?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난 뻥 뚫린 창문 밖을 바라봤다.
지중해 동부의 섬 키프로스.
이곳은 예루살렘 왕국 최후의 도피처이기도 했다.
기가 예루살렘을 빼앗기고 겨우 얻은 땅이 여기였지.
유럽과 레반트를 연결하는 중계항이자 보급기지.
꿀땅도 이런 꿀땅이 따로 없는데.
마냥 기쁘지도 않군.
‘이러다간 일만 하다 과로로 죽겠어.’
왜 십계명엔 아동노동 금지가 없는 걸까?
[넌 간음하지 말고 또한 어린아이들에게 일을 시키지 말 것이며….]그런 법이 생기려면 8―900년은 더 기다려야 하나.
무단횡단 금지법이 더 빨리 생기겠군.
“나중에 공자님께서 더 큰 땅을 다스리실 때 도움이 될 겁니다.”
가니에르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집적소 건설을 서두르시는 겁니까? 지금 당장 식량이 부족할 일도 없을 텐데요.”
“우리가 쓸 게 아니니깐요.”
내가 말했다.
그럼 이렇게 무리하면서까지 물자를 모을 이유가 없지.
“저희가 쓸 게 아니라면….”
“알레포와 모술을 지원하는 데 쓸 겁니다.”
“알레포와 모술이라면 마수드 아타벡이 다스리는 곳들 아닙니까? 사라센인들을 지원한다는 말씀이십니까?”
가니에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깜짝 놀란 반응.
“바로 그겁니다.”
내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하긴 이렇게 말하면 누구나 놀라긴 하겠지.
“사라센이라고 다 똑같은 사라센이 아니잖습니까.”
유럽인들은 사라센(무슬림)들이 모두 같다고 여겼다.
그건 이슬람도 마찬가지.
그들은 유럽인들을 모두 프랑크인이라 불렀지.
하지만 같은 편끼리 박 터져라 싸우는 건 십자군이나 이슬람이나 마찬가지.
“늦든 빠르든 살라딘은 군대를 모아 북부로 진격할 겁니다. 이건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겠죠.”
살라딘은 아직 이슬람 세력을 완전히 통일하지 못한 상태.
레반트 북부엔 장기 왕조의 후예들이 남아 있었다.
‘살라딘도 어렸을 땐 장기 아들인 누레딘 밑에서 세력을 키웠고.’
북부를 완전히 통일하면 살라딘의 후방이 안전해진다.
맘 놓고 예루살렘을 침공할 수 있게 되는 셈.
‘그걸 막으려면….’
알레포를 십자군 땅으로 만들거나 독립 세력으로 유지해야겠지.
당장 점령하는 건 힘드니 마수드를 살려놓아야 했다.
“적의 적은 내 친구다.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이 없을 겁니다.”
“적의 적은 내 친구다라….”
가니에르가 머리를 긁적였다.
“완전히 틀린 말씀은 아니시군요. 선대 국왕이신 아모리 왕께서도 이집트의 파티마 왕조를 지원하셨죠.”
“이집트는 결국 살라딘 손에 넘어갔죠. 알레포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막을 겁니다.”
“그럼 마수드에게 물자를 퍼주겠다 하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퍼주는 거라기보다는….”
내가 웃으며 말했다.
손해 보면서 지원해줄 필요는 없지.
게다가 알레포는 매우 부유한 지역.
“적절한 값에 공급한다고 해두죠. 사막에선 물 한 방울이 금 한 덩이보다 더 귀중하다 하지 않습니까.”
내 말을 들은 가니에르가 웃음을 터뜨렸다.
“공자님다운 말씀이시군요. 하지만 알레포까지 물자를 전달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그가 턱을 만지작거렸다.
내가 답했다.
“적절한 방법만 찾으면 됩니다.”
우회로는 언제나 있는 법이니깐.
트리폴리를 거쳐야 하니 레몽 백작의 도움을 받는 건 필수일 텐데….
“그 부분은 천천히 생각해보죠. 구호기사단 파견대는 도착했습니까?”
“이미 대장장이와 유리 장인들은 도착했습니다. 제르날도 어제 도착했고요.”
가니에르가 말했다.
“나머지도 이번 주 안으로 도착할 예정입니다. 인력이 넘어오면 금방 지부를 세울 수 있을 겁니다.”
“망원경 생산도 차질없이 진행할 수 있겠군요.”
“‘천사의 눈’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이번에 활약한 걸 생각해보면….”
그가 말했다.
“함장과 지휘관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려면 우선 충분한 양부터 생산해야겠죠.”
내가 말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생산하는 걸 하루 종일 기다릴 순 없었다.
난 알렉시오스에게 부탁해 콘스탄티노플의 유리 장인들을 몇 명 보내달라 부탁했다.
이들을 고용하는 데는 역시 돈이 필요했지만….
내겐 동로마에서 받은 선물이 잔뜩 있었다.
내가 콘스탄티노플에서 쓴 돈과 거의 맞먹는 금액.
거기에 키프로스에서 거두는 세입까지.
당분간 돈 걱정은 할 필요 없겠군.
“그러고 보니 오늘 훈련을 까먹고 있었군요. 식사 전에 간단히 몸만 푸시죠. 쓰지 않는 검은….”
“녹스는 법이죠. 예 예, 저도 압니다.”
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훈련이란 말을 듣자마자 몸이 찌뿌둥해졌다.
21세기로 돌아가면 역사 게임엔 다신 손 안 대야지.
무조건 미연시나 힐링 게임!
아니, 미연시도 그리 안전하진 않으려나.
난 고개를 흔들며 가니에르를 따라 방을 나섰다.
* * *
키프로스.
구호기사단 임시 대장간.
“아니, 이런 게 정말 존재한다니. 믿기지가 않는군.”
제르날이 원통을 눈에 갖다 대며 중얼거렸다.
에이그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말씀드렸죠? 멀리 있는 게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요.”
“아니 그러니깐 공자님께서 이걸 콘스탄티노플에서 만드셨다는 거냐?”
“뭐 그런 셈이죠. 직접 만드는 건 이분들이 했지만요.”
에이그가 앞의 사내들을 가리켰다.
그들 모두 제르날을 보며 웃었다.
“그럼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천사의 눈’이로군.”
제르날이 중얼거렸다.
“어떤 요술을 부렸는지 나도 배워야겠어. 당신네들이 정말 이걸 만든 거요?”
“Πόσες φορές δεν είπα ότι τα καταφέραμε!”
“아니,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군. 그러니깐 이걸 어떻게…!”
“유리 장인이 아니면 힘들 거라는데요?”
“너 그리스어도 할 줄 알았던 게냐?”
“콘스탄티노플에서 좀 익혔죠.”
에이그가 웃으며 말했다.
그가 그리스 장인들의 말을 통역해줬다.
“그러니깐 이 사람들이 콘스탄티노플에서 온 유리 장인들이란 거지?”
“예. 근데 평범한 대장장이가 만들기엔 어렵다고 하는데요? 전문적인 유리 장인이 아니면….”
“이 녀석들이…! 예루살렘 교회들에 유리를 납품하는 게 누구라고 생각해? 어?!”
제르날은 손짓 발짓으로 말하다 이내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좀 도와줘야겠다, 에이그. 나도 저 망할 그리스 말을 배워야겠어.”
그가 허공으로 양손을 뻗었다.
“이 늙은 노새가 새 말까지 배워야 한다니. 참 운명도 짓궂지. 안 그래도 공자님께서 쓰시는 투구가 워낙 인기가 많아서….”
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기사들 전부 새 투구를 만들어 달라고 난리인 판에 이젠 이런 말까지….”
“정말 그리스어를 배우시게요?”
“이게 정말 대천사께서 알려주신 거라면…. 이걸 만드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은 없을 거다.”
제르날이 망원경을 들며 중얼거렸다.
그가 손을 흔들며 외쳤다.
“이 녀석들한테 필요한 설비랑 물자가 뭔지….”
* * *
트리폴리
성채
“어서 오시오, 발리앙 경. 예루살렘에서 이곳까지 먼 길을 오셨구려.”
“삼 일밖에 안 걸렸습니다. 다행히 날씨도 맑더군요.”
발리앙이 말했다.
그가 검집을 풀어 탁자 위에 올렸다.
“로마의 반란 함대와 맞붙으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생각보다 도시가 평화로워 보이는군요.”
“전투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소. 우리에게 지원군이 있는 걸 확인하자마자 바로 내빼더군.”
레몽이 웃으며 말했다.
그가 와인이 담긴 잔을 건넸다.
“보두앵 공자가 미리 함대를 보내지 않았다면 수적으로 열세였겠지. 게다가 기습까지 받았을 테니….”
“적절한 순간에 도착한 지원군이었군요.”
발리앙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깥에서 갈매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옅은 바다 냄새.
레몽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키프로스의 상황은 그동안 나도 주시하고 있었소.”
그가 탁자 위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삼엄한 경계 때문에 제대로 된 정보를 알아낼 수 없었소. 나도 알아내지 못한 정보를 보두앵 공자가 도대체 어떻게….”
“제가 듣기론 내부에 첩자를 심었다 하더군요. 그 첩자를 통해 알아낸 정보로 키프로스를 손에 얻은 겁니다.”
“그 첩자가 몰래 키프로스를 빠져나온 거라면. 어떤 방법을 쓴 건지 궁금하구려.”
“대천사 미카엘께서 직접 알려주셨다고 하면 간단하긴 하지요.”
“그럴 거요. 모든 게 간단히 설명되겠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몽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경의 목적지가 키프로스라고 들었소만. 영주가 직접 전령 역할을 맡다니.”
그가 물었다.
“어떤 일인지 물어도 되겠소?”
“폐하와 보두앵 공자께서 계획 중이신 게 하나 있습니다.”
발리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차분한 표정으로 레몽을 바라봤다.
“백작님의 도움도 필요하겠습니다만. 물론 백국의 상황에 따라 선택은 백작님에게….”
“….”
다시 침묵이 흘렀다.
레몽이 발리앙을 바라봤다.
“왕궁에 날 겁쟁이라 하는 이들이 많은 건 나도 잘 알고 있소. 국왕 폐하와도 사사건건 부딪치니 뭐 당연하겠지.”
그가 말했다.
“하지만 나만큼 예루살렘의 안위를 걱정하는 자도 없을 거요.”
“물론입니다.”
“새로 우트르메르에 온 자들은 무작정 사라센인들과 싸우자고 소리치지. 그들에게 시기나 병력, 전략 같은 건 안중에도 없소.”
“전투가 있어야만 자신의 공적을 세울 수 있는 법이니깐요.”
발리앙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몽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선조들께선 이 땅을 얻기 위해 무수히 많은 피와 희생을 치르셨소. 이곳을 지키는 거야말로 우리들의 가장 중요한 의무일 거요.”
“하지만 검을 뽑아야 할 때도 있는 법입니다, 백작님. 뱀이 무섭다 하여 가만히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건 현명한 법이 아니겠지요.”
그가 덧붙였다.
“특히 그 뱀이 다리를 휘어 감을 때는 말입니다.”
“난 이미 보두앵 공자의 도움을 받았소.”
레몽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도움을 받고도 시치미 뗄 정도의 소인배는 아니지. 국왕 폐하께서 어떤 계획을 세우셨든 나와 백국은 전심을 다해 지원할 거요.”
“국왕 폐하께서도 그 말씀을 들으시면 기뻐하실 겁니다.”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눴다.
발리앙이 웃으며 말했다.
“우선 살라딘의 동향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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