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48)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48화(48/215)
랜드리스 크루세이더 (3)
* * *
이렇게 말해두자.
기사 식당에서 밥 먹는 건 전혀 즐거운 경험이 아니다.
아니, 기사 식당이라 하면 헷갈릴 수 있겠군.
기사단騎士團 식당에서 밥 먹는 건 전혀 즐거운 경험이 아니다.
음식이 맛없냐고?
전혀. 음식은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식사 중 대화가 일절 금지라는 것.
차라리 아예 조용했으면 좋았을 텐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라사대….”
한 기사가 테이블 중앙에서 성경을 낭독했다.
그것도 식당 전체에 울릴 정도로 큰 목소리로.
“내가 곧 생명의 빵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오.”
그 외엔 아무 말소리도 안 들렸다.
조용히 빵과 고기를 뜯는 소리만 들렸다.
기사단원들이 식사할 때 침묵을 지킨다는 건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내가 왜 기사들이랑 같이 밥 먹겠다고 한 걸까.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
딱 그 상황이네.
난 긴 나무 테이블을 바라봤다.
기사들 모두 접시에 놓인 음식을 묵묵히 먹었다.
테이블 곳곳에 놓인 촛불이 희미하게 그들을 비췄다.
그나마 직각 식사는 안 하는 게 다행인가.
난 빵을 집어 대충 입에 쑤셔 넣었다.
빵에 치즈를 올리니 그럭저럭 먹을 만….
금방 목이 막혀왔다.
‘벌써 물을 다 마셨나.’
앞에 있는 잔은 이미 텅 비었다.
난 두리번거리며 물통을 찾았다.
대각선에 앉은 에이그 옆에 물통이 있었다.
난 에이그에게 신호를 보냈다.
식당에 들어오기 전에 대충 배운 수화.
‘생선’은 손으로 수영하는 동작이었고.
‘맵다’는 집게손가락을 입에 넣는 거였나?
물이 뭐였지….
난 기억을 쥐어 짜냈다.
[물 좀] [예?] [물]에이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결국에 난 수화를 포기하고 벌컥벌컥 마시는 포즈를 보여줬다.
이 정도면 알아듣겠지.
기사단원의 낭독이 울려 퍼졌다.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하느님.
전 불신자라서 이렇게 목이 마른 겁니까?
이러다 진짜 목말라 죽겠네.
에이그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이 병을 들어 내게 건넸다.
내가 받은 건…….
앨릭서 병이었다.
술을 마시라고? 이 대낮부터?
난 필사적으로 다시 신호를 보냈다.
[이거 말고 물 좀 달라고] [예?] [무—우—울]내가 다시 마시는 동작을 하자 에이그가 화들짝 놀랐다.
이제야 알아들었나 보네.
에이그가 옆 사내에게 손짓해 병을 받았다.
녀석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병을 건넸다.
또 앨릭서 병.
그럼 왜 놀란 거야?
내가 두 병이나 달라 해서 놀란 건가.
난 병을 든 채로 에이그를 빤히 바라봤다.
저놈이 일부러 맥이는 건가.
웃는 얼굴에 침 뱉을 수도 없고.
에휴, 내가 포기해야지.
난 딱딱한 빵을 억지로 씹어 넘겼다.
그때 누군가 탁 소리를 내며 물잔을 앞에 내려놨다.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위그와 함께 에일라트로 날 데리러 왔던 인물.
발리앙이었다.
그가 밖에서 기다리겠다는 손짓을 했다.
대충 식사를 마친 난 곧바로 식당을 나섰다.
벌써 도착한 건가?
“발리앙 경. 출발하셨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이렇게 빨리 오실 줄은 몰랐군요.”
“레몽 백작께서 쾌속선을 내어주셨습니다. 식사는 맛있게 하셨습니까?”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몰랐습니다.”
“먹는 즐거움을 줄이기 위해 그렇게 먹는 겁니다. 그래도 기사단원들은 고기를 자주 먹으니 성직자들보단 나은 편이죠.”
발리앙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베네딕투스 규율에서는 육식을 엄격히 금지하니깐요.”
육식 금지라.
그럼 생선만 먹을 수 있다는 건가.
성직자에 빙의 안한 게 천만다행이었네.
“다음엔 성묘 수호단이랑 같이 식사해야겠습니다.”
바이킹 전사들이니 맛있는 것들만 먹지 않을까.
벌꿀술도 한번 마셔보고 싶고.
“성묘 수호단이라. 형님께서 루아크라는 자를 계속 욕하시더군요. 그가 수호단 단장이라 들었습니다만.”
“맞습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바랑기 근위대장이었고요.”
“근위대장을 총지휘관으로 보냈다라. 로마 황제도 진심인 모양이군요.”
발리앙이 말했다.
그가 바다 쪽을 바라봤다.
“제국과 왕국이 이렇게 혈맹으로 맺어지다니. 이보다 더 훌륭한 외교적 성과는 없었을 겁니다.”
그가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정말 훌륭한 일을 해내셨습니다, 공자님. 처음 암살 소식이 전해졌을 때만 해도 폐하께서 얼마나 걱정하셨는지….”
“제일 놀란 건 저였습니다.”
내가 말했다.
마니 황녀의 폭주는 무리수 그 자체였지.
내가 나서지 않았다면 황제 부부는 목숨을 잃었을 터.
그 죄를 우리 예루살렘 사절단에 뒤집어씌웠으면….
상상도 하기 싫네.
“결국 일이 잘 풀리긴 했죠. 안드로니코스와 잠재적인 반란자들까지 모두 해치웠으니깐요.”
“잠재적인 반란자라. 테오도라 황녀도 그 안에 포함될 수 있겠군요.”
발리앙이 말했다.
“폐하께선 혼약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셨습니다. 내년쯤 예루살렘에서 혼인식을 열 수 있을 겁니다.”
“역시 그렇게 됐군요.”
내가 말했다.
나병만 아니었다면 보두앵 4세랑 결혼했겠지.
나병 환자는 자식을 낳기 힘들었다.
애초에 결혼을 금하는 관습도 있고.
그래서 나한테 기회가 온 건가.
로마 제국의 황녀와 결혼할 기회.
아름다운 제국 황녀랑 결혼이라.
판타지 소설에 나올 법한 문장이네.
“요즘 왕국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르노는 케락에, 기는 아스칼론에만 박혀 있습니다. 둘 다 왕궁에 모습을 드러낸 지 오래됐죠.”
발리앙이 웃으며 말했다.
“왕국이 이렇게 안정적인 건 처음일 겁니다.”
“둘 다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겠죠.”
내가 힘을 얻을수록 그들은 존재감이 떨어지는 셈.
곧 손봐주긴 해야겠지.
어차피 생각 없는 놈들이니….
자기들이 알아서 내게 기회를 만들어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할 일.
지금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살라딘.
그리고 알레포.
“이미 국왕 폐하께서 군대를 소집하고 계십니다.”
발리앙이 내 시선을 눈치챈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살라딘이 움직인다면 곧장 다마스쿠스를 압박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알레포가 최대한 오래 버텨야겠죠. 살라딘을 북부에 붙잡아 둘 수 있게요.”
“맞습니다. 어떻게 보면 공자께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으신 셈이죠.”
발리앙이 말했다.
“레몽 백작은 전적으로 협력하겠다더군요. 공자 덕분에 습격을 막았으니 당연한 거겠죠.”
난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빚을 만들어 두길 잘했군.
내 도움이 없었다면 트리폴리는 큰 피해를 입었을 터.
그걸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미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콘스탄티노플에서도 지원을 약속했고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내겐 살라딘을 압박할 카드가 몇 장 있었다.
로마 해군도 그중 하나.
내가 발리앙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때가 되면 제가 직접 트리폴리로 건너갈 겁니다.”
그때 날 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에이그였다.
녀석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공자님! 다행히 취하시진 않으셨군요.”
“취하다니?”
앨릭서 얘기하는 건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안 취했으니깐 걱정하지 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
“코, 콘스탄티노플에서 선단이 도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선단?”
내가 물었다.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테오도라 황녀께서 이곳에 직접 오신다고….”
발리앙과 난 서로를 바라봤다.
흠, 이제 놀랄 만한 일이 된 것 같군.
* * *
키프로스
베네치아 지부
“흠—흐음—흠.”
마르코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사무실을 지나갔다.
그는 마주치는 인부들에게 인사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마다 인부들 모두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놀란 건 인부들뿐만이 아니었다.
“마르코가 원래 저런 놈이었나?”
“맨날 음습하게 다니던 놈이 완전히 딴사람이 된 것 같단 말이지.”
동료 상인들 역시 그를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여기 키프로스에서 죽을 뻔했다던데. 그 후로 바뀐 것 같지 않나?”
“이봐, 마르코!”
“오, 자네들이군! 무슨 일인가?”
마르코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자네가 요즘 보두앵 공자와 자주 면담한다고 들었네만. 여기서 무슨 일을 했길래 그렇게 공자의 사랑을 받는 건가?”
“그래, 우리에게도 비밀을 좀 말해주게.”
“별거 없네. 이 친구들아. 난 그냥 열심히 노력했을 뿐이야.”
“겸손한 척하기는. 본국에서도 자네를 칭찬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야. 평소라면 큰소리 떵떵 치고 다녔을 자네가….”
“물론 전이었으면 그렇겠지.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베네치아의 국익을 위해 일하는 거 아닌가. 이보게 친구들.”
마르코가 웃으며 말했다.
“내 물어봄세. 자신한테 정해진 운명을 알 수 있으면 얼마나 행복하겠나?”
“뭔 뜬금없이 운명 타령인가?”
“자네가 앞으로 운명을 알기라도 한다는 건가?”
“이제야 알겠군. 마녀를 불러서 점을 친 거야. 내가 들었는데 위쪽 동네에선 주사위나 막대기를 던져서 길흉화복을 점친다더군.”
“그거 교회에서 금지하는 일 아니던가. 그러다가 괜히 또….”
“걱정하지 말게나. 그런 조잡한 미신 따위를 믿는 건 아니니.”
마르코가 말했다.
“자세히 말해줄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난 내 운명을 알게 됐네. 그것도 저 높은 천상의 계시였지.”
그가 웃으며 말했다.
“내 도제가 되면 자네들한테 자리 하나씩 주겠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나한테 잘 보이라고.”
“자네가 도제라니 그럼 난 교황이라도 해야겠군.”
한 상인의 말에 동료들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 모두 마르코의 반응을 기다렸다.
하지만 마르코는 껄껄 웃을 뿐이었다.
“누가 주님의 뜻을 알겠나? 자네가 교황이 될 수도 있는 법이지.”
“마르코 저 녀석이 드디어 정신이 나갔군.”
동료들이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웬일로 겸손한가 했더니 도제라니.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군. 하늘을 찔러.”
“어쨌든 그만 일하러 가자고. 오늘도 야근 확정 아니었나.”
“보두앵 공자가 발주한 걸 처리하는 데만 해도 한세월 걸릴 걸세.”
상인들이 잡담을 나누며 하나둘 자신들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남은 건 마르코뿐이었다.
그가 행복한 표정의 쭉 기지개를 켰다.
“그럼 오늘도 슬슬 일을 시작해볼까.”
* * *
1182년 5월.
한 소문이 레반트를 뒤흔들었다.
‘살라딘이 북부 평정을 위한 군대를 소집한다!’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미르(제후)들의 군대가 다마스쿠스 인근에 몰려들었다.
천막과 공성 기구들이 성벽 외곽에 배치됐다.
그들이 일으키는 모래바람 때문에 앞이 제대로 안 보일 지경이었다.
시인과 법관들이 나서서 살라딘을 칭송하는 시를 읊었다.
“용감한 전사들의 사령관께 영광을! 이교도와 우상 숭배자들에게 저주를!”
하지만 모두가 그 열정을 공유하는 건 아니었다.
몇몇은 작은 목소리로 불평을 내뱉었다.
‘지금 같은 시기에 무슬림이 같은 무슬림을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적은 알 쿠드스에 있는 프랑크인들이 아니었습니까?’
하지만 이런 목소리들은 환호성에 금방 묻혔다.
시민들은 그들의 술탄, 살라딘을 사랑했다.
자비와 관용의 군주.
혼란스럽던 그들의 땅에 질서를 불러온 수호자.
살라딘이 도시에서 행군하자 그런 분위기는 절정에 다다랐다.
대행렬이 도시 중앙을 행군했다.
선두엔 백마를 탄 두 기사.
그리고 중앙에 살라딘이 있었다.
검은 비단옷에 쇠사슬 갑옷.
그의 옆구리에는 긴 검이 달려 있었다.
피리 연주자와 시인들이 북소리에 맞춰 그의 업적을 노래했다.
시민들 모두 그 거대한 행렬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술탄이시여! 영광의 승리를 가져오소서!”
살라딘이 손을 뻗으며 그들에게 답했다.
“난 지하드를 거부하는 북부의 형제들을 알라의 품 안으로 다시 데려올 것이오!”
“와아아!
다마스쿠스 시민들의 함성이 벽을 타고 울려 퍼졌다.
또다시 격동의 때가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