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55)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55화(55/215)
암살자의 신념 (5)
* * *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아망은 숨을 헐떡이며 달렸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눈앞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둠과 나무, 돌들뿐.
그는 커다란 돌덩이 뒤에 몸을 숨겼다.
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갑옷은 벗어 던진 지 오래였다.
아망은 오한에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몇 시간 전 봤던 광경이 아직도 떠올랐다.
그들을 추격해 오던 이교도 전사와 보두앵의 기사들.
보두앵 공자의 이글거리던 눈빛.
위엄찬 목소리까지.
“정말 대천사 미카엘께서….”
아망은 숨을 몰아쉬었다.
그게 아니면 어떻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걸까?
갑자기 나타난 조슬랭과 예루살렘의 기사들.
함정에 빠졌다는 걸 깨달은 아망과 그의 동료들은 어둠 속으로 도망쳤다.
어둠 속에선 오래 추격하지 못할 터였다.
하지만 몇 시간을 달려도 추격은 멈추지 않았다.
따돌렸다 생각한 순간에 적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몇 명이 잡힌 걸까?
아직 안 잡힌 사람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아망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때 누군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검을 움켜잡은 아망은 상대방 얼굴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펠기우스 형제님.”
“아망. 자네 혼자뿐인가?”
“중간에 하나둘씩 흩어졌습니다. 아무래도 저 빼고 다 붙잡힌 것 같습니다.”
“다 붙잡힌 것 같다니? 이런 어둠 속에서 도대체 어떻게….”
아망은 대장을 바라봤다.
그 역시 계속 달렸는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형제님.”
“이렇게 앉아있을 시간 없네. 어서 빨리 움직여야 해.”
“보두앵 공자는 저희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미카엘 대천사의 계시를 받으셨다 말씀했죠.”
아망이 중얼거렸다.
“저흰 그런 신성한 분을 향해 검을 휘둘렀고 지금 그 죗값을 치르는 겁니다.”
그가 뒤를 돌아보며 덧붙였다.
“그게 아니면 어둠 속에서 어떻게 저희만 찾아내겠습니까? 지금이라도 투항해야 합니다. 이렇게 계속 죄를 짓느니….”
“허튼 소리하지 말게. 공자는 이교도들과 손을 잡았네. 그는 왕족의 고귀한 의무를 저버렸어.”
“그렇다면 왜 주님께서 저희를 돕지 않으시는 겁니까? 이미 다 붙잡혔습니다. 이제 저희 차례입니다.”
“계속 헛소리를 늘어놓으면 기절시켜서라도 끌고 가겠네. 그러니 그 입 좀 닥치게.”
펠기우스가 소리쳤다.
“사냥개라도 끌고 온 거겠지. 비관적인 말을 그만 늘어놓고 어서….”
“놈들이 저기 있다!”
고함이 울려 퍼졌다.
화살 몇 개가 둘이 숨은 돌덩이에 부딪혔다.
“어서 검을 들게 아망!”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도망칠 순 없습니다! 이제 와서 싸워봤자….”
“멈춰! 너흰 이미 포위됐다!”
고함이 들려왔다.
적들은 이미 돌덩이를 포위하고 있었다.
아망은 주변을 돌아봤다.
기사와 아사신 전사들이 튀어나와 그에게 무기를 겨눴다.
“날 산채로는 못 잡을 거다! 주님께 영광을!”
펠기우스가 검을 휘두르며 뛰쳐나갔다.
하지만 무의미한 저항이었다.
방패를 든 병사들이 그를 멧돼지 몰듯 둘러쌌다.
병사들은 육탄전 끝에 축 늘어진 그를 질질 끌고 갔다.
아망이 손을 들고 돌덩이 밖으로 나온 건 그 직후였다.
“하, 항복하겠소! 신의 자비를!”
***
신의 의지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하는군.
붙잡힌 성전기사단원들을 보며 내가 속으로 생각했다.
아침 햇살이 피곤한 눈을 간지럽혔다.
성전기사단원들 모두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몇몇은 십자가를 만지작거리며 기도문을 중얼거렸다.
사형대로 끌려가는 죄인들 같은 모습.
아니 죄인들 같은 게 아니라 죄인들이 맞지.
“수송대를 습격하려던 것도 충분히 비열한 일이죠. 그런데 저희 구호기사단으로 위장까지 하려 했다니….”
가니에르가 내 곁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난 그와 말의 속도를 맞췄다.
“기사단이란 이름에 수치로군요. 이 소식이 알려지면 왕국 전체가 뒤흔들릴 겁니다. 교황 성하께서도 진노하시겠죠.”
“이렇게 증거가 확실하니까요. 현장에서 붙잡았으니 다른 핑계도 못 대고요.”
내가 말했다.
아사신 수송단을 습격.
거기에 구호기사단으로 위장.
잡히기 싫다고 도망까지 쳤으니.
이런 추태도 따로 없겠지.
자기들이 알아서 죽여달라고 목을 들이민 셈이었다.
“만약 습격을 막지 못했다면….”
별로 상상하고 싶진 않네.
습격당한 순간 시난과 아사신이 반발하고 나섰겠지.
주도권을 빼앗기는 건 덤.
수송을 멈추고 범인들을 잡으라 온갖 난리를 쳤겠지.
‘거기에 육감까지 없었으면….’
당연히 구호기사단을 의심했을 터.
기와 성전기사단이 배후에 있다는 걸 못 알아낼 수도 있었다.
“남은 건 이들을 처벌하는 문제군요.”
가니에르가 말했다.
“성전기사단은 단원들의 일탈이라고 주장할 겁니다. 자기들은 상관없다는 식으로 나오겠죠.”
“성전기사단이 뭐라 주장하든 상관없습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
내가 고개를 흔들었다.
정치질하는 건 내가 더 잘 알지.
이렇게 증거가 확실하면 부인하는 것도 큰 의미 없었다.
“국왕 폐하가 직접 나서서 성전기사단을 압박하실 겁니다. 단장이 물러날 수밖에 없겠죠.”
기사단은 다른 십자군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법.
그런 자들이 수송대를 습격하고 다른 기사단을 사칭했으니.
현 단장이 사임하면 곧바로 기사단 위원회가 열려서 차기 단장을 선출하겠지.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국왕의 입김도 무시 못 할 터.
친―국왕파 인사가 선출될 텐데.
그럼 기와 성전기사단의 연결도 끊을 수 있었다.
왕국 정치 주도권이 보두앵 4세에게 넘어가는 건 덤.
이 모든 걸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얻었으니.
‘장애물은 언제나 발판이 될 수 있다.’
육사에서 배운 이 진리는 12세기에도 적용이 되는군.
아니 피가 흐르긴 하겠지.
난 마차의 성전기사단원들을 바라봤다.
“어찌 되든 간에 이자들은 사형을 피하지 못하겠죠.”
“…….”
그때 조슬랭 백작이 속도를 늦추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곧 있으면 성에 도착할 겁니다, 공자.”
“드디어 도착하는군요.”
난 삐그덕거리는 몸으로 기지개를 켰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어젯밤 내내 산맥들을 헤집고 다녔으니.
야간 추격전은 나한테도 새로운 경험이었지.
난 언덕 중앙을 통과하며 습격자들이 느껴지는 방향을 추적대에 알려줬다.
그들을 추격해 잡는 건 아사신과 내 기사들의 몫.
둘은 경쟁하듯 앞다퉈 도망자들을 붙잡았다.
추격이 끝날 때쯤 내 몸은 땀에 젖어있었다.
“저놈들도 어젯밤 공자를 보고 꽤 놀란 것 같더군요.”
조슬랭이 아사신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놈들은 힐끔힐끔 내 쪽을 바라봤다.
“무리도 아니죠. 그렇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도망자들을 모두 잡아내시지 않았습니까.”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콘스탄티노플과 키프로스 일에 대해 듣긴 했지만….”
경외감과 놀라움이 느껴졌다.
“저도 이렇게 직접 본 건 처음이었습니다. 정말 대천사께서 옆에서 알려주신 겁니까?”
“죄인들을 잡아내는 것보다 쉬운 일은 없을 겁니다. 주님께서도 원하신 일이고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사실상 나 혼자 야간투시경을 끼고 돌아다녔으니.
난 아사신들을 바라봤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그들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아사신들이 따르는 건 초능력을 부리는 초인인 이맘.
이교도인 내게 그런 능력이 있어서 놀란 건가.
시난이 고생 좀 하겠군.
부하들한테 어떤 식으로 내 능력을 설명할지 궁금해졌다.
악마의 권능이라고 하려나.
저 멀리 마스야프 성이 보였다.
성채에 도착하자 우리 쪽 기사와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들 모두 마차에 실린 죄인들을 말없이 바라봤다.
밧줄로 꽁꽁 묶인 성전기사단.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감정은 느낄 수 있었다.
의문과 호기심.
난 기사와 병사들 앞에 섰다.
확실히 해두는 게 좋겠지.
사기가 너무 떨어지면 안 되니깐.
내가 포로들을 가리키며 외쳤다.
“이자들은 기사단원으로서의 본분을 저버리고 형제들에게 검을 돌렸다!”
난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병사들의 의문과 호기심이 경악으로 바뀌었다.
거기에 분노까지.
강렬한 감정들.
“하지만 성전기사단 소속이라 해서 모두가 처벌을 받진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 내가 직접….”
말단 기사와 병사들까지 죄인처럼 내몰 이유는 없지.
난 성전기사단원들을 소집해 한명 한명 감정을 확인했다.
이 중에서 첩자들을 잡아내는 건 쉬웠다.
지나칠 정도로 불안해하거나 겁에 질린 반응.
‘이 녀석들이 수송대의 경로를 바깥으로 전한 거군.’
난 그들을 따로 독실에 집어넣으라 지시했다.
증거는 따로 없었지만 내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른 기사와 병사들도 하나둘 원래 위치로 돌아갔다.
이걸로 대충 마무리된 건가 생각하던 그때 가니에르가 다가왔다.
잔뜩 흥분한 감정.
“방금 아사신 측에서 전한 소식입니다. 동부에서 온 전서구로 알아냈다더군요.”
가니에르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틀 전 알레포 성벽 밖에서 마수드와 살라딘이 맞붙었답니다. 지금은 소강상태라 하고요.”
“뭐라고요?”
난 가니에르를 바라봤다.
마수드가 뭘 했다고?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마수드가 군대를 이끌고 성문 밖으로 나와서….”
상황은 간단했다.
살라딘은 알레포를 포위 중이었다.
근데 마수드가 먼저 군대를 끌고 나와 회전을 건 것이다.
“살라딘이 물리치긴 했지만 두 부대 모두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만약 그 정보가 사실이라면….”
난 머리를 굴렸다.
마수드가 살라딘과 몰아내려 했지만 실패하고 다시 성안으로 도망친 거군.
그냥 성벽 안에서 버티기만 했으면 살라딘이 먼저 물러갔을 텐데.
왜 굳이 무리수를 던진 거지?
내가 한 지원 덕분에 자신감을 얻은 건가?
‘거기에 예루살렘 군대가 다마스쿠스와 이집트까지 압박하고 있으니….’
나름 승산이 있다 생각한 것 같은데.
가만히 있으면 반은 갈걸….
알아서 기회를 차버리는군.
가니에르가 계속해서 말했다.
“마수드가 살라딘의 봉신이 된다면 이곳에서 한 모든 일이 물거품이 될 겁니다.”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저희가 그동안 날랐던 물자들도 그대로 살라딘의 차지가 될 거고요. 사실상 최악의 상황이나 다름없습니다.”
“아마 그렇겠죠.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내가 멍한 어조로 답했다.
이미 내 생각은 다른 곳에 있었다.
머리가 팽팽히 돌아가며 뜨거운 열을 냈다.
‘마수드는 전투가 끝나고 곧바로 항복하지 않았어.’
그렇다면 살라딘의 일방적인 승리가 아니었다는 얘기.
지금 협정의 세세한 조건들을 놓고 협상 중일 게 분명했다.
이런 과정은 보통 몇 주가 걸리지.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말도 안 될 정도로 위험천만하고 터무니없는 계획.
하지만 아사신의 협력이 있으면 충분히 가능했다.
‘제일 안전한 베팅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으려면….’
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히려 우리한텐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기회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두 사자가 고깃덩이를 놓고 싸우다 지치면 독수리한테 기회가 오지 않겠습니까?”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이걸 눈치챈 건 나뿐만이 아닐 터.
아사신들이 먼저 제의해올 게 분명했다.
“왜 아사신들이 우리한테 이 소식을 허겁지겁 전해줬다고 생각하십니까?”
고개를 갸우뚱하는 가니에르를 바라보며 내가 미소 지었다.
“가서 몸부터 씻어야겠습니다. 곧 있으면 시난이 만나자고 해올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