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6)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6화(6/215)
출발의 노래 (1)
* * *
콜레라나 장염에 걸리면 몸은 수분을 급격히 배출한다.
탈수증에 걸리는 것도 바로 그 때문.
엄밀히 말하면 균이 아니라 몸의 면역 반응 때문에 죽는 셈.
이걸 막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경구수액經口輸液.
물에 소금과 설탕을 일정량 섞어 체액과 농도를 맞춘 뒤 환자에게 계속 먹이는 것.
주사 같은 걸 놓을 필요도 없었다.
몸이 탈수 증상을 버틸 수 있게 지탱해주는 용액.
이 간단한 방법이 알려진 게 20세기 후반이었던가.
“그냥 물로 안 된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가니에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그냥 안다고 할 수는 없고….
난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얼마 전 그리스 의학서에서 본 치료법이 하나 있습니다. 이런 증상의 환자들에게 효과가 탁월하다고 하더군요.”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가니에르도 어느 정도 납득한 표정이었다.
난 병상으로 다가가 그 옆에 놓인 물통을 살폈다.
예상대로 그냥 평범한 물이었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누군가 내게 신경질적인 어조로 물었다.
물통을 나르던 소년이었다.
유럽 출신이라고 하기엔 약간 어두운 피부에 빡빡 민 짧은 머리까지.
투르크 출신 같은데.
아니면 아랍 출신인가?
소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바쁜데 방해하지 말고 비켜주시죠.”
“말조심해라, 에이그! 이분이 누군지….”
난 손을 뻗어 화내려는 가니에르를 말렸다.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 없지.
“일단 최대한 깨끗한 물을 준비해주시죠. 아니, 아예 끓이는 게 낫겠군요. 그리고 설탕이랑 소금도 필요합니다.”
“설탕이랑 소금을 말입니까?”
난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한 비율이 어떻게 되더라?
수업 시간에 얼핏 들었던 것 같은데.
‘혈액보다 삼투압이 높은 이온 음료는 오히려 체내 수분을 빼앗을 수 있다. 하지만 경구수액은 아무리 마셔도 불균형이 일어나지 않지. 전투 시에 신속히 수분 보충이 가능하다는 거다.’
일단 소량으로 시작해서 비율을 맞춰야겠군.
주변의 수도사들과 사람들이 하나둘 내 쪽으로 모여들었다.
“저도 옆에서 함께 돕겠습니다.”
“어서 다들 이쪽으로 와봐!”
소금, 설탕을 준비하라는 난데없는 명령에도 그들은 순순히 따랐다.
이럴 때는 왕족인 게 편하긴 하네.
‘아마 길거리 거지가 이렇게 말했으면 씨알도 안 먹혔겠지.’
경구수액 한 통을 완성한 건 고작 몇 분 후였다.
난 우선 아이와 노인들에게 경구수액을 먹이라고 지시했다.
“5분 간격으로 조금씩 마시게 해야 합니다. 토해낸다고 해도 멈추지 말고요.”
효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탈수증이 심하던 환자들 대부분 몇 시간 만에 기운을 회복한 것이다.
“이쪽에도 더 필요합니다!”
“어서 빨리 다른 단원들한테도 알려! 소금이랑 설탕도 더 가져오고! 그런 작은 그릇 말고 자루로!”
효과가 있다는 걸 본 수도사와 기사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을 끓이고 설탕과 소금을 넣던 그때, 가니에르가 물었다.
“공자님, 혹시 그 그리스 의학서에서 더 읽으신 건 없으십니까? 아니, 아예 그 서적이 뭔지 알려주신다면….”
“궁전에 돌아가면 한 번 찾아보도록 하죠. 일단은….”
주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가깝게 붙은 병상들, 더러운 담요, 소독 안 하고 그냥 쓰는 의료기구들까지.
굳이 의사나 간호사가 아니더라도 문제가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이거 바꿔야 할 게 한두 개가 아닌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우선은 제가 기억하는 것들부터 시도해보죠.”
***
얼떨결에 시작한 ‘병원 개조(?)’ 작업은 삼 일이 넘게 계속됐다.
고칠 건 경구수액뿐만이 아니었다.
이곳 ‘병원’의 위생 수준은 최악 그 자체.
‘나이팅게일이 이 광경을 봤으면 아마 기겁했겠지.’
사실 내가 바꾼 건 아주 기본적인 것들뿐이었다.
먼지가 쌓이지 않게 자주 청소를 시킨다거나, 의료기구와 도구를 깨끗한 물로 씻고, 시트와 환자 옷을 정기적으로 세탁하기.
경구수액이 효과가 있다는 걸 본 사람들은 내 지시에 군말하지 않고 따랐다.
환자들의 병세도 날이 갈수록 나아졌다.
“지난 몇 달 동안 배에서 열심히 일만 했습니다. 의사들이 피를 몇 통은 뽑았는데도 아무런 효과가 없더군요.”
“몇 달 동안 배에만 있었다라. 혹시 이가 흔들리지는 않습니까?”
“예, 거기에 잇몸에서 피도 흐릅니다.”
“마지막으로 과일을 먹은 게 언제인가요?”
“과일이라면….”
“일단 레몬이랑 라임부터 드시죠. 제가 수도사들께 말해두겠습니다. 아무리 싫다 해도 무조건 드셔야 합니다.”
내가 일어서며 말했다.
이틀 연속으로 늦게 자서 그런지 몸이 납덩어리처럼 무거웠다.
내가 이렇게 의사 행세를 하고 다닐지는 몰랐는데.
그나마 괴혈병 같은 건 쉽게 치료할 수 있어 다행이네.
“공자님, 여기 계셨군요. 한참을 찾아 돌아다녔습니다.”
고개를 돌리자 가니에르의 얼굴이 보였다.
“그 사이 무슨 일이라도 터진 겁니까?”
“그렇다고 해야 할 것 같군요. 시빌라 님께서 공자님을 찾아오셨습니다.”
누구?
“어머니가 이곳에 오셨다고요?”
난 세면 그릇에 대충 얼굴을 씻고 중앙 홀로 향했다.
이유는 대충 알 것 같은데.
며칠 동안 궁에도 안 돌아오고 여기만 처박혀 있으니 그런 거겠지.
난 홀을 바라봤다.
경구수액 제조법이 퍼지면서 구토, 설사 환자가 크게 줄어들었다.
‘사실 경구수액이 병을 직접 치료한 건 아니긴 한데.’
경구수액은 어디까지나 잃어버린 체액을 다시 채워주는 역할.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탈수증을 막기엔 충분했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내 어머니, 시빌라.
“여기 있었구나, 보두앵!”
여전히 아름다운 외모군.
저 매서운 눈빛만 없었으면 훨씬 좋았을 텐데.
“말도 없이 며칠 동안이나 왕궁 밖에서 지내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니?”
그녀가 안심했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을 하기 전에 미리 이 어미한테 말이라도 해주거라. 최소한 걱정은 안 하게 말이야.”
“명심하겠습니다, 어머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 세상에도 걱정해주는 사람이 한 명은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워낙 여기에 이것저것 도울 게 많아서 말이죠.”
“보두앵 네가 자진해서 이런 곳에서 일하다니. 정말….”
그녀가 말을 흐렸다.
다음 말은 어느 정도 예상이 갔다.
아마 나답지 않다는 말을 하려는 거겠지.
매사냥에나 빠져 지내던 꼬맹이가 자진해서 병원 일을 하고 있으니.
“낙마한 이후로 갑자기 어른이라도 된 것 같구나.”
“모든 소년은 언젠가 남자가 되는 법이오, 시빌라. 그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
갈색 머리의 사내가 다가왔다.
온몸을 두른 사슬 갑옷에 붉은색 망토.
조각상 같은 얼굴와 콧수염까지.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난 곧바로 그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뤼지냥의 기.
시빌라의 두 번째 남편이자 내 양아버지.
그리고 후에 예루살렘 왕국의 왕이 되는 사내.
“구호소에 처박혀 있던 것치곤 건강해 보여 다행이구나, 보두앵.”
그가 미소 지으며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난 그를 바라봤다.
‘하틴 전투에서 십자군을 대패시킨 장본인이었지.’
무리한 출정과 사막에서의 강행군으로 2만이라는 대군이 어이없게 몰살당한 전투.
전투 한 번으로 나라 말아먹는 것도 나름 능력이라면 능력인데.
“요즘 구호기사단에게 검술 훈련을 받는다고 들었다만. 아예 입단까지 하려는 게냐?”
“거기까지만 말해요, 기.”
“알았소, 알았소. 나 원, 이거 농담도 못 하겠군.”
그가 항복하겠다는 듯 두 손을 치켜세웠다.
둘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를 남편감으로 고른 건 시빌라 본인.
후에 그녀는 예루살렘 왕위까지 그에게 물려준다.
하지만 지금 저 반응은….
“시빌라 님, 단장님께서 직접 감사 말씀을 전하고 싶어 하십니다.”
“알겠어요, 지금 가도록 하죠. 둘 다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요.”
시빌라가 홀 안쪽으로 들어가고 기와 나 둘만 남았다.
“보두앵 네가 직접 에일라트로 가고 싶어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만.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았다고 해도 넌 아직 어려.”
기가 말했다.
“그리고 예루살렘 밖은 아이들이 장난으로 뛰어다니기엔 많이 위험하지. 네 변덕을 위해 예루살렘의 병력을 따로 빼는 것도….”
“그렇군요. 충고 감사드립니다.”
난 웃으며 대답했다.
아주 기죽이려고 안간힘을 쓰는군.
하지만 난 댁의 비밀을 하나 안단 말이지.
그것도 아주 큰 비밀을.
피식 웃은 난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시는 그쪽도 왕실 금고에서 돈 빼돌리는 걸 다시 생각해 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뭐라고?”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경악.
당황한 게 생생히 느껴졌다.
이건 육감 덕분인가.
“도, 도대체 무슨……!”
네 비밀 정도는 이미 외우고 있다고.
뤼지냥의 기.
아키텐에서 깽판치고 다니다 리처드 1세에게 추방.
그 후엔 예루살렘 왕국에 와서 운좋게 시빌라와 결혼.
지금쯤이면 한창 왕실 금고를 털어서 귀족과 영주들을 매수하고 있겠지.
게임에서도 그 정보를 알아내 기를 공격할 수 있었다.
“무슨 말인지 잘 아실 텐데요?”
열세 살짜리 꼬맹이가 그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겠지?
헛소리하지 말고 알아서 잘 처신하라고.
이놈이 에일라트 재건을 공개적으로 반대하기라도 하면 문제가 복잡해졌다.
“제 양아버지이시니 도와주실 거라 믿습니다.”
“….”
기가 성난 듯 콧바람을 몰아쉬며 중얼거렸다.
“마침 에일라트 근처의 영주가 르노였지. 나랑 절친한 친우이니 흔쾌히 널 도와줄 거다. 네가 떠나기 전에 편지라도 한 통 보내주마.”
“감사합니다.”
난 짧게 대답했다.
르노라.
그 녀석으로 날 공격해보려는 것 같은데.
어차피 상관없지.
겸사겸사 그 녀석도 막으러 가는 거거든.
그때 시빌라가 돌아왔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네 얘기만 하는구나, 보두앵. 그 ‘수액’이라는 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다만. 정말 훌륭한 일을 해냈다.”
그녀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 함께 궁전으로 돌아가자구나. 폐하께서 널 찾으신다.”
“알겠습니다, 어머니.”
나도 웃으며 답했다.
[버릇없는 망나니] 효과도 이제 많이 사라진 건가.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나름 잘 풀린 결과네.
홀 바깥으로 향하자 수도사와 기사들이 다가왔다.
그들 모두 활짝 웃으며 날 배웅했다.
“며칠 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공자님.”
“다시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난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거 좀 어색한데.
“제가 말씀드린 걸 다른 병원이랑 지부들에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물론입니다! 이미 다른 수도사들이….”
그래, 이 정도면 할 만큼 한 거겠지.
더 떠오르는 게 있으면 그때 알려주면 되니까.
호위를 받으며 거리를 지나자 예루살렘의 정궁이 다시 보였다.
시빌라가 내 곁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보두앵, 네가 만약 마음이 바뀌었다면 내가 지금이라도 에일라트 문제를….”
“괜찮습니다, 어머니. 제가 폐하께 직접 부탁드린 거니까요.”
그렇게 말한 난 옆의 기를 힐끗 바라봤다.
그는 여전히 못마땅한 시선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럼 재무관인 루욤에게 말해 자금을 좀 꺼내놓으라고 일러두마. 에일라트에 가면 돈을 쓸 일이 많을 거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시빌라는 남편이 돈을 빼돌리고 있다는 걸 아직 모르겠지.
난 얼굴에 미소를 띤 채로 시빌라를 바라봤다.
“어머니께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기는 어떻게든 자신이 직접 왕이 되거나 날 허수아비로 만들려 할 게 분명했다.
그건 미리 막아야지.
* * *
Q : 경구수액의 효과가 그렇게 좋나요?
A : WHO 및 유니세프의 발표에 따르면 경구수액(ORS)는 ‘설사에 의한 5세 이하의 소아 사망율’을 1980년에 비해 2008년에 75%이상 낮췄다고 알려졌습니다. 기본적인 위생개념이 없는 12세기엔 더 효과가 있었겠지요.
Q : 저 당시 설탕은 엄청 비싸지 않나요? 꿀이 대체제인데 꿀도 귀한 시대고
A : 당시 사탕수수 재배 및 설탕 정제는 요르단 계곡 및 티레, 아크레 같은 십자군 도시들에서 이루어졌으며 이것이 유럽으로 수출되었습니다. 또한 꿀 역시 예루살렘의 주요 생산품 및 수출품 중 하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