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63)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63화(63/215)
영웅의 귀환 (3)
* * *
콘스탄티노플
황궁
한 그림자가 침실 안으로 들어왔다.
아녜스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오늘도 늦게 오셨네요. 이 시간까지 회의하신 건가요?”
“장군들에게 물어볼 게 많았어. 기본적인 전략들도 계속 배워야 했고.”
알렉시오스가 하품을 내쉬며 말했다.
그가 침대 위에 쓰러지듯 엎어졌다.
“거기에 틈틈이 검술 훈련까지 했지. 할 일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 같아.”
“황태후 마마께선 굉장히 기뻐하시던데요? 당신이 완전히 바뀌셨잖아요.”
아녜스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녀가 손을 뻗어 남편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전엔 하루종일 전차경주장에서만 계셨죠. 교육 시간에도 매일 도망치셨고요.”
“도망쳐다니진 않았어. 그냥 까먹었을 뿐이지.”
알렉시오스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어린 황제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나태하게 지내긴 했지. 편하고 재밌는 것들만 골라서 했고. 힘든 일은 다 어머니랑 섭정단한테 맡겼잖아. 하지만 더 이상 그럴 수는 없어.”
“….”
아녜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그때 일 때문에 그러시는 건가요?”
“그때라면….”
알렉시오스가 중얼거렸다.
그가 눈을 감았다.
“보두앵 공자가 없었다면 난 암살자의 손에 죽었을 거야. 아녜스 당신도 분명….”
“일어나지 않은 일을 후회할 필요는 없어요.”
아녜스가 촛불에 불을 붙였다.
희미한 빛이 침실을 비췄다.
알렉시오스의 비단옷이 밝게 빛났다.
밖에선 바랑기 근위대원들이 순찰 도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도 보두앵 공자가 암살자들이랑 싸우던 모습이 떠올라. 단검 한 자루로 암살자들을 물리치셨지. 거기에 안드로니코스, 키프로스. 이번엔 사라센인들까지.”
알렉시오스가 주먹을 쥐며 말했다.
“난 공자처럼 되고 싶어, 아녜스. 사자처럼 강하고 당당하게 적들을 짓밟는 황제가.”
그가 중얼거렸다.
“내 아버지도 그런 분이셨지. 근데 정작 아들인 나는… 제국이나 아녜스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겁쟁이야.”
“이렇게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훌륭한 황제예요, 알렉시오스.”
아녜스가 말했다.
그녀가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리 강해 보이는 사자라도 새끼이던 시절은 있어요. 하지만 새끼 사자라 해서 사자가 아닌 건 아니죠.”
그녀가 자신의 어린 남편을 바라봤다.
“전 당신이 제 남편이라 다행이라 생각해요.”
“….”
“역사서에도 대제로 기록될 훌륭한 황제이니깐요. 당신이 아니라면 누가 예루살렘 왕국을 구하고 서방과 동방 교회에 평화를 불러올 수 있겠어요?”
알렉시오스가 붉게 물든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함께 침실 옆쪽 발코니로 나갔다.
수많은 교회와 예배당, 공공건물, 탑과 돔들.
거대 창고와 병기창, 조선소에 이르기까지.
모든 도시의 여왕이 둘을 반겼다.
* * *
예루살렘
성묘교회 총대주교실
한 사내가 비단을 길게 늘어뜨렸다.
형형색색의 비단이 색깔을 뽐내며 바닥에 늘어졌다.
“이것들 모두 새로 들여온 비단들입니다. 동방에서 만든 진귀한 물건들로….”
사내가 열띤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오직 총대주교님을 위해 공수해온 값비싼 물건입니다.”
“그런 비단 같은 건 더 이상 필요 없다 하지 않았나? 고작 그런 천 조각 따위로 내 환심을 사려는 건가?”
헤라클리우스 총대주교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는 손에 든 성경을 한 장 한 장 조심스레 넘겼다.
그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손을 흔들었다.
“듣고 싶지도 않군. 이만 나가보게.”
“초, 총대주교님! 돈을 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이것들 모두 저희 상단이 총대주교님께 드리는 선물이니 부디 저희의 선의를….”
“선의라 해도 받을 생각 없으니 이만 물러가게. 돈 주고도 팔든 공짜로 주든 환심을 사려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그가 소리쳤다.
“썩 나가게!”
놀란 상인이 비단을 들고 방에서 도망치듯 나갔다.
헤라클리우스 총대주교가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방에 들어오는 사제를 향해 말했다.
“저런 상인들은 더 이상 받지 말라고 내 말하지 않았던가?”
“죄송합니다, 총대주교님. 저자가 워낙 막무가내로 들어오는 바람에….”
“이제 저런 자들에게 낭비할 시간 없네. 처리해야 할 일이 한두 개가 아니야.”
헤라클리우스가 말했다.
그가 일어서며 사제복을 걸쳤다.
가장 거친 천이라 불리는 마미단cilice으로 만들어진 사제복.
그는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옷을 아무렇지 않게 입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빈자들의 발을 씻어주지 못했군. 어서 교회로 가세나. 나눠줄 구호품은 준비했나?”
“예, 하지만 어제 채찍의 고행을 하셨으니 오늘은 생략하시는 것이….”
사제가 말했다.
“총대주교님께서 쓰러지신다면 예루살렘의 신도들 모두 큰 충격을 받을 것이옵니다. 또한 로마 역시….”
“고작 채찍 고행 때문에 내가 몸져누울 거라 생각하나?”
헤라클리우스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난 깨달음을 얻었네. 보두앵 공자를 만나기 전까지 난 죄인이자 속인이었지. 주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자에 불과했네.”
총대주교가 팔을 양옆으로 뻗었다.
사제가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분께서 대천사의 계시를 받았다는 말을 들은 후에야 난 깨달았지. 주님께서 공자님을 통해 내게 말씀하셨다는 걸 말일세. 난 내가 저지른 죄악들을 용서받을 기회를 얻었어.”
수척한 몸을 비틀거리며 헤라클리우스가 걸어갔다.
“그러니 이번 서임식에 더더욱 만전을 기해야겠지. 하나라도 흐트러진 게 있으면 안 되네. 알겠나? 준비는 다 끝났나?”
“물론입니다, 총대주교님. 명하신 바에 따라 모두 준비해놨습니다.”
사제가 고개를 푹 숙였다.
“주님의 뜻대로 행해질 것이옵니다.”
“주님의 뜻대로 행해질 걸세.”
총대주교가 창문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두 눈동자가 타오르듯 열기를 뿜어냈다.
“언제나 그랬듯이 말이야.”
* * *
“부디 이 무기들이 주님의 뜻에 따라 약자를 보호하고 악한 자들에게 공포를….”
흠, 이거 좀 낯선데.
난 헤라클리우스 총대주교를 바라봤다.
화려한 걸 좋아하던 동성애자 총대주교.
거기에 어린 남자애를 애인으로 뒀었지.
앨릭서 가지고 돈을 뜯으려 했었고.
그가 내게 매달려 애걸하던 게 떠올랐다.
지금 모습은 내가 기억하던 것과 정반대였다.
잔뜩 해진 사제복에 마른 얼굴.
신앙심으로 가득한 감정까지.
신성한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아예 딴사람이 된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토머스 베켓에 빙의라도 한 건가?
토머스 베켓.
켄터베리 대주교에 임명되기 전 그는 헨리 2세의 절친한 친우였다.
왕과 함께 사냥에 나가고 값비싼 옷과 보물을 모으던 전형적인 속세인.
하지만 대주교가 된 후 그는 180도 바뀐다.
진정한 성직자로 거듭난 그는 헨리 2세에 정면으로 대적.
결국엔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무참히 살해당해 성인으로 추증되기까지.
그 사람을 보는 것 같네.
“주님의 영광을 드높일 수 있는….”
그가 기도문을 읊었다.
왕궁 홀.
수백이 넘는 귀족과 기사들이 서서 그 광경을 바라봤다.
홀 앞쪽에는 나와 보두앵 4세, 총대주교 셋뿐이었다.
그나저나 기사 서임식이라.
예루살렘에 오자마자 이런 걸 치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난 보두앵 4세를 바라봤다.
흡족한 감정이 느껴졌다.
‘나한테 주는 선물이라 했지.’
성 소피아 대성당이 떠올랐다.
나에게 작위를 수여하던 알렉시오스 황제.
그때와 같은 분위기군.
그래도 인파는 훨씬 적어서 다행이네.
헤라클리우스 총대주교가 기도문을 읊으며 검과 방패, 창을 축성했다.
무장에 축복을 내리는 과정.
기도문이 끝나자 침묵이 흘렀다.
총대주교가 보두앵 4세에게 검을 조심스레 건넸다.
“이쪽으로 오거라, 보두앵.”
난 보두앵 4세의 앞에 무릎 꿇었다.
어젯밤 잠을 못 자서 그런지 몸이 후들거렸다.
밤새워 기도에 목욕재계까지.
기사 서임 받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누가 알았을까.
왕족이면 좀 더 편하게 할 줄 알았는데.
보두앵 4세가 천천히 검을 들었다.
그의 황금 왕관이 빛에 반짝거렸다.
검 역시 마찬가지.
얼마나 광을 냈는지 내 얼굴이 거울처럼 비출 정도였다.
“예루살렘의 보두앵이여. 그대는 주님의 보편교회와 성도 예루살렘…. 그리고 가난한 자들을 불의에서 구하고, 평화를 수호하며, 형제들을 위해 피를 흘리고, 필요하다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것을 맹세하는가?”
정적이 흘렀다.
사람들의 숨소리가 느껴졌다.
나에게 쏠린 수많은 시선.
난 검을 바라봤다.
“주님의 앞에 맹세합니다.”
“그렇다면 기사로서 일어서거라, 예루살렘의 보두앵이여.”
보두앵 4세가 다가와 내 허리춤에 검을 채웠다.
장검은 내가 이전에 들었던 것들과 달리 길고 무거웠다.
난 내색하지 않고 일어섰다.
박수 소리가 우레처럼 울려 퍼졌다.
귀가 따가울 정도.
보두앵 4세가 천천히 손을 들자 소리가 잦아들었다.
그가 내게 다가와 속삭였다.
“이제 네가 세운 공적을 업신여길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거다. 예루살렘을 한 바퀴 돌고 오거라.”
그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널 위한 행진을 준비하라 일러뒀다. 예루살렘의 모든 시민이 볼 거다.”
“알겠습니다, 폐하.”
내가 웃으며 답했다.
내가 지나가자 귀족과 기사들 모두 고개를 숙였다.
홀과 복도를 지나칠 때도 수많은 이들의 시선이 날 향했다.
왕궁 밖으로 나간 난 불트에 올라탔다.
기다리고 있던 가니에르와 에이그가 곁으로 다가왔다.
“축하드립니다, 공자님. 폐하께 공식적으로 기사 서임을 받으셨으니….”
가니에르가 웃으며 말했다.
“이보다 더 큰 보상은 없겠지요. 그 어떤 재물도 비교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공자님께선 이미 왕족이신데 기사 서임 같은 걸 받을 필요가 있나요?”
에이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그러자 가니에르가 고개를 흔들었다.
“국왕 폐하께서 직접 하시는 기사 서임은 의미가 다르다. 특히 이렇게 공개적으로 하는 건 더더욱. 서임은 왕의 힘을 나눠주는 것과 같은 의미지. 공자님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신 게야.”
난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인 기사 서임과 달리 왕족의 기사 서임은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리처드 1세도 친하게 지내던 프랑스 왕에게 기사 서임을 받았고.
물론 그건 아빠인 헨리 2세를 엿 먹이려 한 거지만.
“그 말씀은 국왕 폐하께서 공자님을 후계자로 인정하셨다는 건가요? 만약 공자님께서 언젠가 왕이 되신다면….”
“왕이 될 거야.”
내가 말했다.
권력 따위엔 관심 없었다.
예루살렘 왕국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건 내가 왕이 되는 것뿐이었다.
이제 겨우 발걸음 하나 내디뎠을 뿐.
“나한테 선택권은 없겠지.”
“….”
가니에르와 에이그 둘 다 입을 다문 채 날 바라봤다.
난 둘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래도 지금 당장은 즐길 걸 즐기자고. 이렇게 거리를 행진할 일이 자주 있는 건 아니잖아.”
난 앞을 바라봤다.
임관식 대신 서임식이라.
‘예루살렘의 기사.’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 시대에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네.
내가 불트에 몸을 맡기며 덧붙였다.
“그리고 쉴 수 있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 거야. 당장 내일부터….”
이곳저곳 뛰어다녀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