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66)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66화(66/215)
어둠 속의 산책 (1)
* * *
어둠이 짙게 깔린 예루살렘.
두 인영이 거리를 지났다.
후고가 숨을 들이마셨다.
서늘한 밤공기가 그의 가슴을 가득 채웠다.
“이거 함정 아닌가?”
그의 동료 그레티른이 물었다.
“자네와 날 이렇게 갑자기 부르다니 말이야. 이런 일은 전에 없지 않았나.”
“나도 모르겠네. 도착하면 알 수 있겠지.”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하네. 만약 저번 주 일이 들통난 거라면 우리 둘 다 죽은 목숨….”
“쓸데없는 얘기 그만하게!”
후고가 인상을 찌푸리며 속삭였다.
그가 동료의 멱살을 잡고 벽으로 밀쳤다.
다행히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목 달아나고 싶어 안달이라도 났나, 어?!”
“그냥 해본 말일세. 우리 목숨이 달린 일 아닌가. 확실히 해야지.”
그레티른이 켁켁거리며 말했다.
후고는 멱살을 풀고 손을 털었다.
그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계속 가자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입조심하는 게 좋을 걸세. 자네랑 내 가족도 생각해야지.”
둘은 침묵한 채 길거리를 지났다.
그들이 한 건물 앞에 멈춰 섰다.
평범한 상점처럼 보이는 외관.
둘이 가까이 다가가자 한 사내가 가게 밖으로 나왔다.
그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두려워하지 말라, 오직 믿을지어다.”
“주님은 나의 목자요. 부족할 게 없도다.”
후고의 답에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비켜섰다.
그가 문을 열며 말했다.
“늦었군. 백작님께서 자네 둘을 기다리고 계셨네. 어서 가게.”
후고는 숨을 내뱉었다.
그레티른의 말대로 함정일까?
이 시간에 둘을 호출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만약 저번 주 일이 들통난 거라면….
“후고, 그레티른. 어서 들어오게. 밤공기가 차갑군.”
안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후고는 건물 안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희미한 촛불 빛.
안에는 테이블 하나만 놓여 있었다.
그 뒤에 앉은 한 사내.
발리앙 백작.
“백작님.”
후고는 고개를 숙이며 상대방을 바라봤다.
국왕의 오른팔이자 그와 그레티른의 고용주.
차분한 백작의 표정을 읽기는 힘들었다.
“두 사람 다 건강해 보이는 것 같아 다행이군. 그동안 잘 지냈나?”
“예, 백작님의 배려와 보살핌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그래, 그래. 내가 자네 둘을 위해 이것저것 챙겨주긴 했지. 하지만 고마워할 필요는 없네.”
백작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침묵이 흘렀다.
“그렇게 긴장할 필요도 없고. 무슨 문제가 생겨서 그대들을 부른 건 아니니.”
그가 미소 지었다.
“오늘은 좋은 소식을 전하러 자네들을 부른 걸세.”
“좋은 소식이라면….”
그레티른이 중얼거렸다.
후고는 곁눈질로 동료를 힐끗 바라봤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태연한 표정.
그가 걱정했던 것과 달리 표정을 잘 숨기고 있었다.
후고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번 주 일이 들통났다면 이미 붙잡혔을 터.
아직 안심할 수 있었다.
“국왕 폐하께서 자네들이 저번에 알아낸 정보에 크게 만족하셨네.”
발리앙 백작이 말했다.
“직접 자네들을 치하하시면서 포상을 내려주라 하셨지. 지금쯤이면 자금이 부족해졌을 것 같은데….”
백작이 탁자 위에 가죽 주머니를 올려놨다.
가죽 안에서 짤그랑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이 침을 꿀꺽 삼켰다.
후고는 숨을 들이마셨다.
“국왕 폐하께서 이 미천한 저희를 직접 치하해주셨다니…. 이보다 더 큰 영광은 없을 겁니다.”
“자네 둘이 우리 왕국을 위해 해준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에 비하면 이 정도는 작은 선물이지.”
몸을 일으킨 백작이 둘에게 다가왔다.
그의 눈빛이 촛불 빛에 반짝거렸다.
“앞으로도 예루살렘 왕국과 국왕 폐하를 위해 계속 헌신해줄 거라 믿네.”
“물론입니다. 저희가 받은 은혜를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다시 침묵이 흘렀다.
발리앙 백작이 미소 지었다.
“자네들이라면 그렇게 말해줄 거라 믿었지. 그럼 이만 가봐도 좋네.”
후고와 그레티른은 등을 돌렸다.
백작이 손을 들며 말했다.
“아, 까먹을 뻔했군. 자네들에게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네만.”
그가 물었다.
“최근에 자네들에게 접근한 자가 있었나? 살라딘이나 마수드. 아니면 다른 쪽에서….”
후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자연스러운 표정.
최대한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어야 했다.
“접선을 시도한 적은 없었나?”
“저희 정체를 알아낸 자는 없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접선하려 했다면….”
후고가 말을 이어나갔다.
그레티른과 말을 맞춰놓았으니 들통날 걱정은 없었다.
실수하지만 않는다면.
“가장 먼저 백작님께 알렸을 겁니다.”
“….”
발리앙 백작이 대답 대신 옅은 미소를 지었다.
* * *
“둘 다 배신자더군요. 아마 살라딘 쪽에서 자금을 받고 있을 겁니다.”
내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계속 집중해서 그런지 온몸이 뻐근했다.
감정을 정밀하게 느끼는 건 아직 힘이 드네.
“직접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으신 겁니까?”
“근처에만 있으면 됩니다. 이번에는 말도 들어야 했고요.”
난 벽 너머를 바라봤다.
이곳에서 방이 보이진 않았지만 말소리는 그대로 들렸다.
살라딘이란 말이 나오자 긴장이 강해졌지.
발리앙이 교묘하게 준비된 질문을 던질 때마다 난 두 사람의 감정을 느꼈다.
‘역시 질문을 여러 개 준비하는 게 더 정확하네.’
너 나쁜 놈이지?
물론 이런 식으로도 가능은 했다.
하지만 확실히 하려면 더 미묘한 질문들이 필요했다.
단순한 긴장과 거짓말을 구별하는 질문들.
몇 달 전만 해도 이런 건 꿈도 못 꿨을 텐데.
그만큼 육감에 익숙해진 건가.
“전부터 의심 가던 놈들이긴 했습니다만.”
발리앙이 중얼거렸다.
“확실한 증거는 못 잡고 있었습니다. 공자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긴가민가하는 게 느껴졌다.
난 미소 지었다.
당연한 반응인가.
눈에 보이는 능력도 아니니.
콘스탄티노플 때도 처음엔 다들 이런 반응이었지.
발리앙이 손을 양옆으로 흔들었다.
“제가 결코 공자님의 권능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콘스탄티노플과 키프로스, 아사신 산맥에서 있었던 일을 듣고도 공자님을 의심할 자는 없겠지요.”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저 제 눈으로 직접 본 게 처음일 뿐입니다. 몇몇 성인들의 유골이 죄인들을 알아낸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권능을 지녔다 주장하는 이들 대부분은 사기꾼들이죠.”
내가 웃으며 말했다.
“거기에 광인狂人이나 주술사들도 있겠군요.”
오히려 내 말을 믿어주는 게 신기할 정도지.
21세기에 이런 주장을 했으면 어땠을까?
‘주님께서 저자가 범인이란 걸 알려주셨다! 저자가 죄인이다!’
이런 말이 먹힐 재판장은 없을 터였다.
차라리 증거를 날조하면 모를까.
이 시대 사람들은 기적과 환영.
변신, 권능, 계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무슬림들 역시 마찬가지.
괜히 시난이 자기가 초능력을 지녔다며 꾸민 게 아니지.
‘내 능력을 본 아사신들도 그래서 더 동요했던 거였고.’
콘스탄티노플에서 모여들었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아기를 내밀던 어머니부터 자신들의 병을 낫게 해달라던 병자들까지.
이 시대 사람들은 성인의 유골함과 성물에도 집착했다.
유골함을 뺏기 위해 마을끼리 전투를 벌일 정도.
기적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이런 생각이 기적을 만드는 걸까.
사실 미래라고 크게 다르진 않지.
히틀러도 롱기누스의 창에 집착했으니.
발리앙이 웃으며 말했다.
“형님께서 루아크 수호단장에게 들은 이야기를 하나 말씀해주셨습니다. 유럽 저 멀리 사는 북부인들의 전통이었습니다만….”
“바랑인들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예, 해괴한 문자로 점을 쳐 운명을 예언한다더군요.”
“아마 룬일 겁니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북부인들도 재밌지.
바이킹으로 세계정복하는 것도 재밌는데.
유럽 한가운데에 오딘 재단 세우는 도전과제도 있었고.
이 능력으로 바이킹이 됐으면 세이드(마법사) 대우를 받았으려나.
“하지만 제가 지닌 권능은 진짜입니다. 놈들을 체포해 조사하면 증거가 나올 거고요.”
내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발리앙이 얼굴을 붉혔다.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공자님을 의심한 적은 없습니다. 콘스탄티노플 때도 이렇게 내통자들을 알아내신 겁니까?”
“그때는 상황이 좀 더 급박했죠. 이렇게 차분하게 할 여유는 없었습니다”
내가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이랑 정반대였지.
난 밤새 안드로니코스의 심복들을 잡아냈었다.
내버려 뒀다간 언제 성문을 열지 몰랐으니.
안드로니코스가 떠올랐다.
권력욕에 취한 늙은 호색한.
지금쯤 지하감옥에 갇혀있겠지.
난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저자들이 배신자라는 걸 알아냈으니….”
“여러 방법을 쓸 수 있겠지요.”
발리앙이 말했다.
그의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차분함과 차가움.
“저 둘의 가족은 제 관리 아래 있습니다. 왕국을 배신한 대가를 가족과 함께 치르던지….”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아니면 다시 왕국을 위해 이중첩자로 일해야겠지요. 역정보를 흘리는 데 쓸 수 있을 겁니다. 그냥 죽이면 아무 쓸모가 없겠죠.”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이중첩자라.
첩보 전략은 이 시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군.
잘 활용하면 살라딘이 심어둔 다른 첩자들도 알아낼 수 있을 터.
정보가 노출된 걸 눈치채고 새 첩자들을 심으려면 몇 년은 걸리겠지.
그동안 살라딘이나 다른 세력들에게 정보를 숨길 수 있었다.
첩자나 암살자 한 명이 역사를 바꾸는 건 흔한 일.
그걸 사전에 막을 수 있겠군.
왕국에 오가는 모든 정보를 통제.
이보다 더 우월한 상황이 어디에 있을까?
“이런 식으로 한 명씩 걸러내도록 하죠. 시간이 좀 걸리긴 하겠지만….”
내가 덧붙였다.
“배신자들을 전부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운이 좋다면 외부에서 침투한 첩자들도 알아낼 수 있겠죠.”
“공자님께서 직접 도와주신다면 이보다 더 큰 도움은 없을 겁니다.”
발리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날 바라보며 빙긋 미소 지었다.
“사실 공자님께 말씀드릴 게 따로 있었습니다. 폐하께서 제게 은밀한 지시를 내리셨죠.”
“은밀한 지시라면….”
“폐하께서 말씀하시길 공자님께서도 따로 정보망을 갖춰야 할 때라 하시더군요. 제게 필요한 인력과 자금을 내어주셨으니….”
그가 말했다.
“구성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겁니다. 물론 공자님께서 승낙하신다면 말입니다.”
“제가 거절할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요.”
내가 웃으며 답했다.
안 그래도 내가 직접 만들려고 했었는데.
보두앵 4세가 도와준다면 양팔 벌려 환영해야지.
“절 위해 일하던 자 중 몇몇을 추려놨습니다. 새로 모집한 자들도 있습니다만….”
발리앙이 덧붙였다.
“공자님께 익숙한 얼굴들도 있을 겁니다.”
“누군지 벌써 궁금해지는군요.”
내가 진심 어린 어조로 말했다.
나한테 익숙한 얼굴이라.
누군지 상상이 안 가는데.
발리앙이 촛불을 끄며 말했다.
“오늘은 일단 왕궁으로 가시죠. 밤이 깊었습니다. 더 자세한 사항은 며칠 후에 알려드리겠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아침.
난 발리앙이 말했던 자가 누군지 알아냈다.
내 방에 모여든 사람들.
그중 익숙한 풍채가 있었다.
화려한 비단옷에 툭 튀어나온 뱃살.
거기에 착각할 수 없는 얼굴.
나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왔다.
“마르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