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7)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7화(7/215)
출발의 노래 (2)
* * *
베네치아인들이 준비를 마쳤다는 서신을 보낸 건 그로부터 한 달 후였다.
에일라트를 향한 출발.
마침내 그 날이 다가온 것이다.
난 시온 문이라 불리는 성문에 서서 앞을 바라봤다.
거대한 성벽.
그리고 벽을 따라 쭉 줄지어 선 낙타와 사람들.
영화에서나 볼 법한 모습 같은데.
‘내가 저 많은 사람을 통솔해야 한다는 건가.’
실무는 기사단과 상인들이 맡는다지만 명목상 총책임자는 나였다.
육사에서 중대장 생도하던 거랑은 차원이 다르겠지.
열세 살짜리 왕실 대리인이자 총책임자라.
내가 생각해도 참 믿음직스럽군.
“공자님, 베네치아인들이 도착했습니다.”
가니에르가 말을 타고 다가왔다.
그의 뒤로 다른 기사들이 몇 명 보였다.
구호기사단과 성전기사단, 그리고 왕실 직속 기사들까지.
수는 대략 사십 정도.
그들 모두 중갑에 창을 들고 있었다.
이 정도면 호위치고 꽤 많은 것 같은데.
보두앵 4세도 그만큼 신경을 썼다는 거겠지.
“마르코가 출발 전에 공자님을 뵙고 싶다고 하더군요.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오면 알 수 있겠죠.”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아직도 투덜거릴 게 남았나.
마르코는 협상 이후에도 계속 돈을 깎으려고 시도했다.
물론 녀석의 마음을 속속들이 아는 나한텐 소용없는 시도였지만.
“아, 까먹고 있었군요. 출발 전에 공자님께 소개해 드릴 녀석이 있습니다. 에이그!”
가니에르가 손짓을 보내자 한 소년이 앞으로 나왔다.
약간 어두운 피부색에 짧은 머리.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인데.
“아, 구호기사단 홀에서…!”
다른 병자들을 간호하던 소년이었다.
내 말을 들은 소년이 얼굴을 붉혔다.
“그때는 제가 큰 무례를 범했습니다, 공자님. 누구이신지도 미처 못 알아뵈고….”
“그렇게 신경 쓸 필요 없어.”
내가 웃으며 말했다.
애초에 내가 이마에 왕족이라고 쓰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흠, 이건 너무 21세기적인 마인드인가.
호통이라도 한 번 치는 게 그럴듯할지도 모르겠는데.
근데 열세 살짜리 꼬맹이가 화 내봤자 웃기기만 할 것 같고.
여기선 그냥 자연스럽게 넘어가야겠군.
“에이그가 이번 여정 동안 공자님의 종자를 맡을 겁니다.”
“제 종자라고요?”
그렇게 물은 난 소년을 바라봤다.
하긴 시녀들을 데려갈 순 없겠지.
그나저나 투르코폴레스인 건가?
투르코폴레스, 십자군이나 동로마에서 복무한 투르크 계열의 보조병들.
내가 빤히 바라보자 소년이 황급히 성호를 그었다.
“전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고귀하고 자애로우신 분이시여. 기사단에서 읽고 쓰는 법도 조금 배웠고요. 물론 아직 모르는 것도 많습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어린 것 같은데요.”
내가 가니에르에게 말했다.
나도 몸은 열세 살이지만 내용물은 나름 이십 대라고.
눈앞의 소년은 많아봤자 13, 14살 정도로 보였다.
“나이에 비해 훌륭한 활 실력을 지닌 녀석입니다. 굴 안으로 도망치는 토끼도 맞출 정도니까요. 실력은 제가 장담해 드릴 수 있습니다.”
가니에르의 말에 소년이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열의에 넘치는 표정으로 녀석이 말했다.
“그리고 갑옷 입으시는 것도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다른 분들이 입는 것도 매일 도와드렸으니까요. 고귀하고 자애로우신 분이시여.”
“알겠어, 앞으로 잘 부탁할게. 이름이….”
“에이그라고 합니다, 고귀하고 자애로우신….”
“일단 그렇게 부르는 것부터 생략하자고. 특히 그 자애롭다는 부분.”
내가 웃으며 말했다.
듣는 내가 다 오글거리네.
“어쨌든 그렇게 길게 부를 필요 없어.”
“하지만 미천한 제가 어떻게 감히….”
“그 미천하다고 하는 것도 빼는 게 좋겠네. 나랑 말할 때는 수식어를 다 빼줘.”
“알겠습니다, 고귀하신…아니, 보두앵 공자님!”
난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한 사내가 말 떼를 이끌고 다가왔다.
베네치아인 상인, 마르코였다.
난 그에게 먼저 손을 흔들었다.
“훌륭한 말들이로군요, 마르코 씨. 에일라트에서 팔려고 하시는 겁니까?”
“역시 공자님께선 말 보는 안목이 있으시군요. 아쉽게도 에일라트까지 전부 다 끌고 가기에는 수가 많습니다.”
마르코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우선 공자님께서 이렇게 저희 일행과 동행해 주신다는데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마르코가 자신의 빵빵한 배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를 태운 말이 혀를 내밀고 헥헥거렸다.
저 정도면 동물 학대 아닌가?
“그래서 저희 베네치아인들이 약소하게나마 공자님께 선물을 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번에 공자님께서 사냥 매는 거절하셨으니 이번 선물은 꼭 받아주시지요.”
청산유수처럼 쏟아지는 말.
역시 베네치아 상인 패시브답네.
그가 뒤의 말들을 가리켰다.
“하나같이 모두 고급 품종의 말들입니다. 이 중에 공자님께서 원하시는 놈을 하나 고르시지요. 어떤 놈을 고르시든, 돈은 한 푼도! 절대 받지 않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거절할 수 없겠군요.”
공짜로 말을 주겠다는데 거절할 이유야 없지.
매는 사냥 말고 별로 쓸 곳이 없었지만, 말은 달랐다.
‘게임에서도 말은 스탯이 따로 있었지.’
전투할 때도 말의 차이에 따라 승부가 날 때가 많았다.
최고 성능의 말이면 패배한 전장에서도 상처 하나 없이 후퇴 가능했다.
난 말들을 하나하나 바라봤다.
하얀색, 갈색, 검은색.
크거나 중간, 아니면 작은 몸.
이렇게 봐도 뭘 골라야 할진 모르겠는데.
‘애초에 갑자기 말을 고르라고 해도….’
가니에르한테 물어봐야 하나?
그는 대열 앞쪽에서 다른 기사들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차라리 육감을 한번 믿어볼까.
난 말들 앞에 다가가 눈을 감았다.
앞쪽에 있는 말들에게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딱히 불쾌하진 않지만 끌리는 것도 없어.’
아무래도 급이 좀 떨어지는 애들을 앞에 둔 거겠지.
역시 베네치아인은 베네치아인.
선물을 줄 때도 너무 비싼 건 주기 싫다는 건가.
난 중간을 넘어 무리의 끝쪽으로 다가갔다.
실눈을 살짝 뜨자 마르코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게 보였다.
트럼프 카드라도 하는 느낌이네.
‘그렇게 아까우면 이런 제안을 하지 말았어야지.’
그때 뭔가 느껴졌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느낌.
이 녀석인가?
눈을 뜨자 회색 털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커다란 몸에 윤기가 흐르는 갈기.
최소 500kg 넘은 것 같은 거대한 몸.
난 멍하니 말을 바라봤다.
녀석도 시선을 돌리지 않고 날 빤히 응시했다.
온몸의 감각이 이 녀석을 가리켰다.
“이 말로 하죠.”
“타, 탁월하신 선택이십니다. 공자님.”
마르코가 당황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그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하지만 이 녀석은 워낙 성질이 사나운 걸로 유명해서 공자님께 해를 끼치지는 않을지….”
“상관없습니다. 약간의 도전도 나쁘지 않겠죠, 안 그래?”
난 말의 머리 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잠깐의 신경전.
마침내 녀석이 허락한다는 듯 머리를 들이밀었다.
“생각보다 착한 것 같은데요?”
“여기까지 끌고 오는 것도 애먹은 녀석이었는데….”
마르코가 중얼거렸다.
머리를 쓰다듬자 말이 푸르릉거리며 혀로 내 얼굴을 핥았다.
성질이 사납다라.
오히려 그 반대인 것 같은데.
“정말 강해 보이는 말이네요. 다리도 튼실하고요. 이 정도면 세 명도 무리 없이 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에이그가 감탄하는 눈빛으로 말을 바라봤다.
작은 에이그 옆에 서니 말은 훨씬 더 커 보였다.
“이름은 뭘로 하실 건가요, 공자님?”
이름이라.
그것까지 생각해야 하나.
십자군에게 어울릴 만한 말 이름이….
떠오르는 게 하나 있었다.
데우스 불트!
하지만 데우스(신)라고 이름 붙였다간 신성모독이라고 할 것 같단 말이지.
“불트가 괜찮을 것 같은데.”
“불트라. 특이한 이름이군요.”
에이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럼 제가 지금 데려가서 안장을 올려놓겠습니다.”
“그래, 부탁할게.”
난 고삐 끈을 건넸다.
에이그가 고삐를 잡아당기자, 불트가 머리를 휙 뒤로 뺐다.
“어어어, 잠깐!”
갑작스러운 기습에 에이그가 철퍼덕 소리를 내며 엎어졌다.
저건 좀 아프겠군.
“좋은 말로 할 때…!”
에이그가 잔뜩 붉어진 얼굴로 일어서며 소리쳤다.
그런 둘의 모습에 난 못 참고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다시 마르코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베네치아 쪽은 출발 준비를 다 마치셨습니까?”
“예, 이제 저 물건들만 낙타에 실으면 됩니다.”
그가 뒤쪽의 낙타와 말들을 가리켰다.
한창 낙타에 싣고 있는 커다란 나무 조각들.
배를 하나하나 분해한 조각들이었다.
에일라트 항구에 가서 다시 조립한다고 했었나.
저걸 남부까지 끌고 가는 것도 대단하네.
‘베네치아답게 돈이 많다고 해야 하나.’
항구를 복구하는 건 금방이지만 배를 건조하는 건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레반트 안쪽은 선박을 건조할 목재도 부족했다.
그러니 저렇게 고생하면서 가져가는 거겠지.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었겠군요.”
“그래도 에일라트에서 사라센 순례자들과 향신료를 나를 수 있다면 어떻게든 수익을 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저희가 낼 연공을 좀만 더 줄여주신다면 더 빨리…….”
마르코가 투덜거리는 걸 난 한쪽 귀로 흘렸다.
저 멀리 성문 밖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옅은 흙색의 언덕과 산들.
한창 양을 치고 있는 양치기들.
그 풍경을 보자 묘한 흥분이 몸을 타고 흘렀다.
예수가 제자들과 돌아다녔다는 갈릴리의 언덕들.
그리고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가 사다리를 타고 승천했다는 성전산까지.
“신이 정말 있는 거라면….”
날 왜 이런 세계에 던졌는지부터 따져야겠군.
아니, 아예 지금부터 따질 리스트를 준비해야겠는데.
그때 성문 쪽에서 웅성거리는 게 들려왔다.
시빌라와 다른 귀족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수십 명의 기사와 귀족들이 말을 타고 다가오는 모습은 장관 그 자체였다.
배웅이라도 해주려는 건가.
그들을 바라보던 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기가 안 보이네.’
내 경고를 듣고 잔뜩 겁먹었겠지.
거기에 시빌라에게도 슬쩍 알려줬으니 한바탕 싸웠겠군.
‘일단 시빌라, 어머니는 내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겠지.’
이 정도면 꽤 많이 해둔 건가.
난 고개를 흔들며 잡념을 떨쳤다.
에일라트로 떠나는 건 모든 일의 시작.
첫걸음에 불과했다.
“아직 해야 할 일은 많이 남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