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70)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70화(70/215)
어둠 속의 산책 (5)
* * *
이집트
카이로 왕궁
4천 개가 넘는 방이 있다고 알려진 왕궁.
한때 파티마 왕조와 시아파 칼리프의 거처였던 곳.
황금의 방으로 향하는 황금의 길이 펼쳐졌다.
대리석 기둥.
크리스털 화병.
보석과 금은틀로 된 거울.
금 자수를 둔 초상화와 태피스트리까지.
이곳엔 오직 금.
금뿐이었다.
노란색 군복을 입은 맘루크(노예) 호위병 수백이 황금 궁정을 지켰다.
“그래서 자네들이 말하고 싶은 게 뭔가?”
알현실 중앙.
터번을 쓴 사내가 일어섰다.
알 아딜.
살라딘의 아우이자 그의 장군.
사내들이 그를 향해 손을 휘두르며 외쳤다.
“다미에타를 처벌해야 합니다!”
“다미에타의 시장이 단독으로 프랑크 놈들과 협상을 벌이다니! 이건 총독 각하를 무시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이집트 도시들이 불손한 마음을 먹기 전에 어서 빨리 다미에타를 처벌해야 합니다!”
그들 모두 붉은 얼굴로 소리쳤다.
학자와 시인들도 가세했다.
“고작 포위를 풀려고 프랑크인들에게 돈을 갖다 바치다니. 이보다 더 큰 무슬림의 수치는 없겠지요.”
“그대들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나도 잘 아네.”
알 아딜이 말했다.
그가 부하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 일에 대해선 이미 결정을 내리지 않았나.”
침묵이 흘렀다.
“적과 타협할 수밖에 없을 땐 타협하도록 허락하는 것. 그게 올바른 지도자가 내리는 결정일세.”
“차라리 항복하는 편이 나았을 것입니다. 성벽이 멀쩡한 상황에서 놈들에게 먼저 돈을 갖다 바치다니.”
한 사내가 말했다.
“이게 길거리 창녀나 할 짓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입니까?!”
“함대가 전멸한 상황에선 마땅한 판단이었어.”
알 아딜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동자가 이글거렸다.
“술탄께서도 이미 그렇게 결론을 내리시지 않았나. 자네들은 지금 그분의 명령에 대적하는 건가?!”
“….”
“이 얘기는 더 이상 하지 않겠네. 안 그래도 민심이 흉흉한 다미에타에 처벌을 내렸다간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게야.”
알 아딜이 말했다.
부하들이 고개를 숙이며 자신들의 위치로 돌아갔다.
“오늘 회의는 이걸로 이만 마치도록 하지. 모두 돌아가게. 말리크 자네만 남게나.”
“예, 총독님.”
흰 수염의 늙은 사내가 말했다.
곧 방엔 그와 알 아딜 둘만 남았다.
“지금 다미에타를 처벌하자니.”
알 아딜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콥토스의 흑인들은 아직도 반란 일으킬 기회만 노리고 있네. 지금은 반란군을 늘릴 때가 아니야.”
“각하의 말씀이 옳으십니다. 하지만 젊은 병사와 장교들 사이에서 불만이 적지 않습니다. 술탄께선 알레포와 모술을 손에 넣으셨지만….”
“우린 아무것도 한 게 없다. 이건가?”
알 아딜이 코웃음 쳤다.
말리크가 고개를 조아렸다.
“술탄께선 우리에게 이집트의 수비를 맡기셨네. 이곳에서 얻는 세입이 없다면 지하드는 불가능할 터.”
그가 덧붙였다.
“우리 임무는 이 금고를 잘 지키는 거네. 무리하게 전투를 벌이는 게 아니라.”
“물론 각하의 말씀이 옳으십니다. 그저 어린 전사들은 술탄과 각하의 혜안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뿐이지요.”
“답답하군 답답해. 그나저나 저번에 말했던 건 어떻게 됐나, 말리크?”
알 아딜이 속삭이듯 물었다.
“밀정들에게서 아직도 아무런 소식이 없나?”
“아무래도 고위급 중 한 명이 배신한 것 같습니다.”
말리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간신히 연락해 온 몇몇 밀정들의 보고도 전부 틀렸거나 거짓 정보들뿐이었지요. 프랑크 놈들이 눈치를 챈 게 분명합니다.”
“다마스쿠스에서 들려온 소식도 마찬가지일세. 이거 곤란하게 됐군.”
알 아딜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고위급이 배신했다 해도 밀정끼리는 서로 알지 못하네. 고발한다 해도 몇 명이 고작일 텐데. 이렇게 수십 명이 잡히는 게 말이나 되나?”
“….”
“좀 더 알아보도록 하게. 물이 샌 곳을 모르면 새로 채워 넣는 것도 소용없겠지.”
“알겠습니다.”
“그 수수께끼 탑들에 대해선 좀 알아낸 게 있나?”
“워낙 알려진 것이 많지 않아 정확히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만….”
말리크가 계속해서 말했다.
“아무래도 움직이는 깃대를 이용해 신호를 주고받는 것 같습니다. 탑 근처의 부대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걸 수도 있겠지요.”
“움직이는 깃대? 높은 곳에서 전장에 명령을 내린다는 건가?”
알 아딜이 이마를 찌푸렸다.
“또 프랑크인들이 뭔가 수작을 부리는군. 하필이면 이럴 때 밀정들에게 문제가 생겼으니.”
“고작 그 정도 탑들로는 전투에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프랑크인들을 얕보지 말게. 그들은 고작 수십 명으로 성채와 요새들을 함락한 자들이야.”
알 아딜이 말했다.
그가 눈앞의 노인을 바라봤다.
“뭔가 말하려는 게 있는 표정이군. 편하게 말하게.”
“말씀드렸다시피 병사와 장교들의 불만이 적지 않습니다. 이대로 있다간 어디서 일이….”
“술탄께서 알레포와 모술을 무릎 꿇리고 다마스쿠스로 돌아가신 게 불과 몇 개월 전이네. 지금 또 다른 전쟁을 시작하자는 겐가? 그것도 우리가 나서서?”
“작은 습격 정도면 전사들을 달래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프랑크 놈들이 반격해 온다 해도 물러서면 그만이지요.”
말리크가 말했다.
“거기에 프랑크인들은 평화협정을 깨고 다마스쿠스와 다미에타를 공격해오지 않았습니까? 그에 대한 복수도 될 것입니다. 프랑크 국왕의 직할령이….”
“에일라트를 말하는 거로군. 보두앵 공자가 재건한 도시였지. 유대인들이 살던 곳 아니었나?”
알 아딜이 말했다.
“형님께서 이전에 한 번 그곳을 불태우셨던 것 같은데. 자네 말은 그곳을 치자는 건가?”
“안전히 치고 빠질 수 있는 곳은 그곳뿐입니다. 그보다 더 깊숙이 들어간다면 추격을 피할 수 없겠지요.”
노인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거기에 에일라트의 수비병력은 징집병이 전부입니다. 도시 근처의 과수원과 들판을 불태운다 해도….”
“반격할 생각은 못 하겠군.”
“가축과 전리품을 얻을 수 있다면 병사와 장교들도 크게 기뻐할 것입니다.”
“단순히 병사들을 달래자고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순 없네.”
알 아딜이 말했다.
그가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잘하면 하마와 홈스를 되찾을 기회가 될 수도 있겠어.”
알 아딜이 으르렁거리듯 덧붙였다.
“그 어린 녀석이 형님의 뒤통수를 때리고 두 도시를 뺏지 않았던가. 우리를 토벌하러 예루살렘의 주력이 내려오면….”
그가 중얼거렸다.
“우린 곧바로 기수를 돌려 이집트로 돌아오면 되겠지. 형님께선 북부로 진군하실 수 있게 되고.”
침묵이 흘렀다.
궁 밖에서 병사들이 훈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알 아딜이 창문 쪽으로 다가가 밖을 바라봤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가 한 번 계획을 짜보게나. 내 형님께 허가를 받아볼 테니. 이 이야기가 절대 이 방 밖으로 새어나가선 안 되네.”
“명을 받들겠습니다.”
* * *
1183년 3월
“이 정도면 처음치고 나쁘지 않군요. 훈련 기간이 짧아서 걱정이었습니다만.”
내가 종이를 펼치며 말했다.
가니에르와 위그가 곁에 서 있었다.
보두앵 4세의 허락을 받고 신호탑 건설을 시작한 게 두 달 전.
필요한 자재는 마르코와 다른 상인들이 준비했다.
남은 건 운용인력의 훈련.
뽑힌 인원들은 신호탑 건설과 동시에 맹훈련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난 한 달 동안 테스트 운용.
‘전체적인 결과는 나쁘지 않은데.’
난 보고서를 바라봤다.
신호탑은 내 생각대로 빠른 속도를 자랑했다.
전령으로 하루 이틀 걸리던 시간이 불과 몇 시간으로 단축됐으니.
“이전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긴 하더군요. 제가 듣기로….”
가니에르가 말했다.
“전서구 관리자들은 벌써 자기들 일거리가 사라질까 두려워하고 있다더군요. 전령들도 마찬가지고요.”
“둘 다 계속 쓰이긴 할 겁니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신호탑으로 사적인 서신들까지 주고받을 수는 없지.
탑을 수백 개 깔지 않는 이상 완전한 대체는 힘들었다.
그보다는 군사용으로 주로 쓰이겠지.
“하지만 문제가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내가 손가락을 들어 보고서를 가리켰다.
“중간에 전달이 끊기는 경우가 몇 번 있었고… 가장 큰 문제는 수집한 정보를 제때 처리하지 못하는 거군요.”
내가 말했다.
수많은 신호탑에서 보내오는 정보량은 상상을 초월했다.
근처 상단의 움직임.
바다위 부족, 도적 떼, 순례자들, 보급지원 요청까지.
기사단에선 이런 보고들을 제때 처리하지 못했다.
늦으면 하루 이틀이 걸릴 정도.
필요한 곳에 제때제때 명령을 내리는 것도 힘들었다.
신체기관을 예로 들자면 예루살렘은 심장.
전신 곳곳에 피를 보내는 역할이었다.
지금은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셈.
그나마 지금이라도 알아내서 다행이네.
긴박한 상황에서 이런 문제가 터졌으면 곤란했을 터.
위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 인력이 너무 부족합니다. 일단 사제들이 서신을 주고받는 걸 맡긴 했지만…. 탑을 확장하려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필요하겠죠.”
“따로 수도사들을 더 모집해 봐야겠군요.”
내가 말했다.
성직자들이라면 읽고 쓰는 업무에 익숙할 터.
근데 이 정도로 충분할까?
난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두드렸다.
단순히 인원을 늘린다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진 않은데.
너무 주먹구구식으로 하고 있어.
이대로라면 언젠가 중요 정보를 놓칠 게 분명했다.
그럼 신호탑을 설치한 게 오히려 해가 되는 셈.
지금 필요한 건….
체계적인 시스템.
정보의 우선순위를 정해 보고하는 기준과 규칙.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기관이 필요했다.
“단순히 인력을 충원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군요. 폐하께 허락을 받아 작전실을 따로 꾸려야겠습니다.”
“작전실이라면….”
“각 신호탑에서 오는 정보를 분석하는 전담 조직이라고 해두죠. 상황실이라 해도 되고요.”
내가 말했다.
전쟁사에서 지금과 비슷한 경우가 하나 있지.
1936년 영국.
휴 다우닝 경은 새로 조직된 대영제국 전투기사령부의 사령관직을 맡는다.
사령관직에 앉은 그는 곧바로 대대적인 개혁을 시작한다.
레이더 연결망 구축, 신형 전투기 설계, 무전기를 통한 실시간 항공기―기지 통신까지.
이 중 가장 인상적인 건 바로 통합작전실.
레이더 조작사와 전투조종사들을 작전 본부에 연결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체계를 만든 것이다.
외로운 늑대처럼 싸우던 영국 전투기들은 사령부의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 사냥개로 변신한다.
영국이 독일과의 항공전에서 밀리지 않은 것도 이런 시스템 덕분.
‘지금 필요한 것도 이거랑 비슷한 거고.’
각 신호탑에서 온 대량의 정보를 거르고 다시 필요한 곳에 명령을 내리는 것.
전쟁사 시간에 안 졸고 공부하길 잘했네.
1936년 영국 전투기사령부 얘기를 배울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상황판도 하나 설치해야겠군요. 아군의 준비 태세와 적 진격 경로를 실시간으로 기록하는 겁니다. 이러면 더 적은 인원으로도 관리할 수 있겠죠.”
난 내 계획을 간단히 설명했다.
“계속 유지되는 참모 회의 같은 거로군요.”
위그가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어찌 됐든 인력은 필요하겠죠. 기사단에 가서 부탁해보겠습니다.”
“저도 지금 가서 알아보겠습니다.”
가니에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이거 돈이 또 적지 않게 들어가겠군요.”
“국왕 폐하께선 분명 허락해주실 겁니다.”
내가 말했다.
명군 아래서 일하는 건 확실히 편하단 말이지.
상급자가 유능하면 아랫사람도 편한 법.
만약 임진왜란 때 선조 밑에서 일해야 했다면 어땠을까?
난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었다.
그건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네.
“하지만 아직 신호탑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귀족들이 몇몇 있습니다.”
위그가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까지 쓰인 자금도 적지 않으니….”
“그들도 효과를 직접 보면 생각을 바꿀 겁니다.”
내가 말했다.
그런 기회는 머지않아 올 터.
이곳 레반트는 전투가 멈추지 않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