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72)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72화(72/215)
모래 위의 피 (2)
* * *
“생각보다 그 신호탑이라는 게 쓸모가 있던 모양이군.”
르노가 말에 올라타며 말했다.
그가 시종이 건넨 투구를 받아들었다.
“이렇게 빨리 예루살렘에서 내려오다니 말이야.”
넓은 평야와 철의 장벽이 그의 앞에 펼쳐졌다.
기사들이 갑주와 깃발을 뽐내며 나아갔다.
이미 그들은 한나절 넘게 행군 중이었다.
전투가 코앞이라는 걸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나저나 왕이 아니라 발리앙이 내려오고 있다고?”
“예, 거기에 보두앵 공자가 동행한다고 합니다. 남부의 병력을 한곳에 결집한다더군요.”
“왕은 살라딘이 무서워 예루살렘에 남았나 보군. 몽기사르 이후로 겁만 많아져서…. 발리앙이랑 보두앵이라. 기 그 자식도 온다던가?”
“아스칼론에선 아직 출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이번….”
“몸이 안 좋기는. 저번에 벌인 난장판을 아직 수습 중인 거겠지. 일을 그 정도로 망쳐놨으니.”
르노가 웃음을 터뜨렸다.
“시빌라가 그 자식을 내칠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군. 결국 어미새는 새끼 편을 드는 법이지.”
그때 그들 앞에 검은 점들이 나타났다.
사라센 상단.
짐을 실은 낙타와 무슬림 상인들이 보였다.
르노의 군대를 발견한 그들이 서둘러 방향을 틀었다.
어떻게든 피하겠다는 반응.
“저런 큰놈들을 놓친다니 아쉽긴 하군. 먹음직스럽게 생겼는데.”
르노가 상단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저놈들을 습격하면 전리품을 얼마나 얻을 수 있을까.
쏟아지는 금화가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지금 습격했다간….”
“제때 맞춰 에일라트에 도착 못 하겠지. 알겠네, 알았어. 저놈들은 돌아갈 때 사냥하자고. 이봐!”
그가 손을 흔들자 한 기사가 다가왔다.
“가서 저 사라센 놈들한테 케락으로 모신다고 전해라. 호위가 많으면 적당히 겁만 주고 돌아오고.”
“영주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기사들이 기수를 돌려 상단에 다가갔다.
르노는 미소 지으며 자신의 부하들을 바라봤다.
“지난번엔 우리가 아무 공도 못 세웠지. 이번엔 우리가 가장 먼저 에일라트에 도착할 거다.”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지난번 바다위 그 멍청한 놈들이 날린 기회를 다시 얻은 게야.”
“영주님께서 에일라트를 구원하신다면 국왕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서 다른 놈들이 오기 전에 우리가 나서야 한다는 거다. 매는 다른 매와 먹이를 나누지 않는 법이지.”
“하지만 예루살렘에서 내린 집결 명령을 무시하는 건 아닌지….”
사슬 갑옷을 두른 부관이 말했다.
르노가 웃음을 터뜨렸다.
“보두앵이랑 발리앙은 내 발목만 잡으려 할 거다. 기 그 녀석한테 했던 것처럼 말이야. 주님께서 내려주신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지.”
그가 행군을 재촉했다.
선두에 선 기사들이 자신의 영주를 향해 환호성을 보냈다
“그러니 어서 빨리 가자고.”
먼지 바람이 흩날렸다.
저 멀리 에일라트 성벽이 눈에 들어왔다.
* * *
하루.
우린 하루도 채 안 돼서 행군 준비를 마치고 예루살렘을 떠났다.
사실상 몸만 떠난 수준.
보병은 없었다.
전원이 기병.
기사와 투르코폴스 궁기병들이었다.
산맥 지대를 돌파한 우린 평야를 통해 빠르게 남하했다.
사해에서 홍해까지는 뻥 뚫린 평야 지대.
전속력으로 달리면 하루 이틀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었다.
‘초원을 누비던 몽골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몽골 말은 유럽 말들보다 지구력이 더 높았다고 했지.
게다가 기름도 필요 없으니.
괜히 기계화 보병 이전의 기계화 보병이라고 불리는 게 아닌가.
그나저나 엉덩이가 얼얼하네.
제르날이 새로 맞춰준 갑옷이 아직 적응이 안 됐다.
서임식 때 받은 박차도 묘하게 불편하고.
예루살렘에 돌아가면 다시 맞춰달라 해야겠군.
“혹시 물 필요 없으십니까?”
에이그가 다가왔다.
사슬 갑옷에 검은색 외투.
구호기사단 전투 복장이었다.
녀석이 가죽 주머니를 건네며 물었다.
“말을 바꿔야 해서 몇 분 쉬자더군요. 공자님도 말을 바꿔드릴까요? 불트도 지쳤을 텐데….”
“난 괜찮아. 불트도 아직 쌩쌩하고.”
불트가 푸르릉 소리를 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 독특한 녀석이라니까.
난 주위를 둘러봤다.
다른 기사들은 말을 세네 마리씩 끌고 다니며 자주 다른 말로 갈아탔다.
전투 때만 타는 군마도 따로 있었다.
하지만 불트는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자꾸 치고 나가려 해서 내가 말릴 정도.
난 웃으며 갈기를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털의 촉감이 느껴졌다.
에이그가 불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먹을 것만 안 가리면 너도 나쁘지 않은 말인데.”
불트가 에이그를 향해 입을 내밀었다.
에이그가 고개를 숙이며 공격을 피했다.
“고작 그 정도로는 안 되지.”
불트가 분하다는 듯 콧김을 씨익씨익 내뿜었다.
나와 에이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주변에선 긴장감이 느껴졌다.
활시위를 잡아당기고 놓기 직전의 긴장감.
하지만 겁에 질린 사람은 별로 없었다.
몇몇은 오히려 웃고 떠들며 평소처럼 행동했다.
성묘수호단도 마찬가지.
도끼를 든 그들은 평소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더운 날씨에도 지친 기색 없이 우리와 발을 맞췄다.
위그와 가니에르가 선두에서 기사들을 지휘하는 게 보였다.
“저기 신호탑이 보이는군요.”
에이그가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 움직이는 신호탑이 보였다.
망원경이 햇빛에 반짝이는 게 보였다.
지금쯤 우리 위치를 예루살렘이랑 근처 탑들에 보고하고 있겠지.
그때 앞쪽에서 누군가 다가왔다.
발리앙.
“바로 앞 신호탑에서 들어온 소식입니다.”
발리앙이 앞에 멈춰 서며 말했다.
“르노 영주가 케락의 병력을 이끌고 에일라트로 향하고 있다더군요.”
“집결 명령을 대놓고 무시했다는 겁니까?”
나도 모르게 이마가 찌푸려졌다.
아주 멍청한 짓만 골라서 해주는군.
“예, 저희보다 더 빨리 도착할 겁니다.”
“이유가 대충 짐작 가기는 합니다만.”
내가 말했다.
저번 다마스쿠스 압박 때 불참한 걸 이걸로 만회하겠다는 거겠지.
베두인 부족들을 이용한 음모가 실패한 후 그는 계속 잠수 모드였다.
“작전이 일그러질 수 있겠군요.”
우리가 세운 작전은 간단했다.
남부의 기사들을 신속히 결집해 적보다 많은 숫자로 포위전을 벌이는 것.
이 작전이 성공하려면 우리의 이동 속도와 위치를 끝까지 감춰야 했다.
르노가 무작정 공격하면 포위망이 완성되기 전에 적이 도망칠 터.
“지금이라도 당장 전령을 보내서….”
“그렇게 해도 늦을 겁니다. 르노가 일부러 명령을 무시할 수도 있겠죠.”
내가 말했다.
난 품속의 지도를 펼쳐 들었다.
르노가 이런 짓을 벌이는 게 오히려 좋은 상황일 수도 있어.
녀석이 이집트군을 한쪽으로 몰아내면….
이집트인들은 르노만 왔다고 생각하겠지.
이런 대군이 벌써 모였을 거라곤 예상 못 했을 터.
생각을 마친 내가 입을 열었다.
“일단 르노가 원하는 대로 하게 내버려 두죠.”
“예?”
발리앙이 되물었다.
그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말 그대로입니다.”
살라딘은 아직 다마스쿠스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번 습격은 단순히 흔들기에 불과하다는 뜻.
“적은 르노와 마주치면 곧바로 도망치려 들 겁니다. 본거지인 카이로로 돌아가려 하겠죠. 여우 사냥처럼 하는 겁니다.”
내가 계속해서 말했다.
“놈들을 모는 사냥개 역할은 르노에게 맡기고….”
내가 지도의 한쪽을 가리켰다.
카이로와 에일라트를 잇는 사막과 산맥.
이집트로 돌아가려면 이곳을 거칠 수밖에 없지.
“우리는 이쪽에 가서 놈들을 기다리는 겁니다.”
지금 당장 출발하면 먼저 도착할 수 있겠지.
“각 성채에서 출발한 병력에게 새 명령문을 보내죠. 집결지를 바꾸는 겁니다.”
신호탑에는 내가 생각 못 한 또 다른 장점이 있었다.
바로 출정한 부대들에게 실시간으로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것.
부대가 신호탑을 따라 이동하면 현황보고뿐만 아니라 새 명령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명령을 내리면 예루살렘에서 이를 현지 부대 쪽 신호탑들에 전달.
신호탑이 설치된 위치는 주요 도로들.
일정 간격으로 실시간 소통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이게 없으면 전령들이 수십 번 오고 가야 했겠지.
“공자님께서 명령을 내리신다면 집결지를 바꿀 수 있긴 합니다만.”
발리앙이 생각에 빠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놈들보다 먼저 가려면 쉬지 않고 달려야 할 겁니다.”
“중간에 지친 말들을 놓고 가도 상관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살라딘의 친동생, 알 아딜.
이번 습격은 그 녀석이 직접 지휘하고 있겠지.
알 아딜의 몸값은 적지 않을 터.
이집트의 일 년 예산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에 비하면 말 몇십 마리 잃는 건 충분히 감당 가능했다.
오히려 잘됐군.
르노가 위험을 다 부담해줄 테니.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만약 제때 도착한다고 해도 이 넓은 곳에서 어떻게 놈들을….”
“보통이라면 찾기 힘들겠죠. 어떤 길을 택할지 모르니깐요.”
하지만 난 다르거든.
육감을 쓰면 멀리 있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대군은 놓치기 어렵지.
거기에 이곳 산맥 지대는 이동 가능한 통로가 한정되어 있었다.
오히려 내게 유리한 지형.
“성전기사단을 잡을 때랑 똑같이 해보죠. 일단 새 명령문부터 보내겠습니다.”
* * *
다마스쿠스
여섯 마리의 말이 먼지를 일으키며 움직였다.
선두에 선 사내가 나무 막대기를 높이 들었다.
가죽 공이 바로 앞에 놓여 있었다.
그때 옆에서 작은 말이 끼어들며 공을 채갔다.
가죽 공이 튕기더니 작은 쇠고리 안으로 들어갔다.
이를 지켜보던 사내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실력이 많이 늘었구나!”
살라딘이 웃으며 말에서 내렸다.
그가 아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곧 있으면 이 아비 정도는 거뜬히 이기겠어.”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아버지.”
“언제나 그렇듯 겸손하구나. 자, 이제 가서 형과 동생들을 불러오거라. 오늘은 가족이 함께 저녁을 들자꾸나.”
살라딘이 웃음을 터뜨렸다.
“별로 반기는 표정이 아니구나. 너희가 나랑 식사하는 걸 안 좋아한다는 건 안다. 매일 맛없는 빵만 먹으니 그런 거겠지.”
그가 시종이 건넨 천으로 땀을 닦았다.
“하지만 음식은 간소하게 먹는 게 좋다. 숙부 시르쿠께선 생전에 술과 음식을 너무 좋아하셨지. 그러다 결국 목에 뼛조각이 걸려 세상을 떠나셨고. 그분께서 살아계셨다면 지금쯤 술탄은 내가 아니라 그분이었을 거다.”
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거 또 지루하게 옛날이야기를 늘어놨구나. 어서 빨리 가보거라. 이러다 해가 지겠다.”
“예, 아버지.”
알리가 뛰어나가고 다른 사내가 살라딘에게 다가왔다.
그가 살라딘에게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인가 카밀?”
“프랑크 주력이 아직 알 쿠드스(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게 확인됐습니다. 프랑크 국왕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존 밀정들과 연락이 끊겼다 했던 것 같은데. 어떻게 알아낸 건가?”
“어제까지 예루살렘에 있던 상인들을 통해 알아낸 정보입니다. 여러 입을 통해 교차 확인했습니다.”
“우리 쪽 상인들이었겠지?”
“예, 물론입니다.”
“포상금을 넉넉히 주도록 하게. 밀정이 부족한 지금은 그들이 더더욱 중요해. 그나저나 아직 알 쿠드스에 남아 있다라.”
살라딘이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역시 여우 같은 자로군. 자신이 자리를 비우면 내가 하마와 홈스를 치러 갈 거라 의심하는 거야. 그렇다면 남부는 버려도 된다는 건가.”
“에일라트 근처 병력만으로 격퇴하려는 생각일 수 있습니다.”
“아마 그럴 수도 있겠지. 어쨌든 미끼를 물지는 않았군.”
그가 말했다.
“하지만 에일라트를 습격한 걸로 충분하네. 알 아딜의 명예와 권위도 다시 세우고 사람들 기억에서 다미에타를 잊기 충분하겠지.”
“술탄의 말씀이 옳습니다.”
“어찌 됐든 계속 정보를 확인해보게. 이번에 프랑크인들이 새로 세웠다는 탑들.”
살라딘이 중얼거렸다.
“그게 왠지 모르게 거슬린단 말이지. 알 아딜의 보고에도 부족한 부분이 많았고.”
그가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알 쿠드스에 보낼 사절단을 한 번 준비해보게. 놈들 상황을 직접 알아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