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77)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77화(77/215)
성전과 구호 (2)
* * *
콘스탄티노플
“전 잘 모르겠습니다, 사제님.”
안드레아스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가 사제를 바라봤다.
“레반트라니요. 이곳 콘스탄티노플에서 너무 먼 땅 아닙니까.”
“먼 땅이지. 하지만 동시에 기회가 있는 곳이기도 하네.”
사제가 말했다.
“자네 가족은 이곳 구빈원에서도 아주 특별한 경우야. 자네와 자네 아내는 순결의 규칙을 어겼지.”
그가 말을 이었다.
“거기에 이젠 애도 둘이나 있지 않은가.”
“사제님께는 항상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저희의 혼인을 인정해주지 않으셨다면….”
안드레아스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아마 구빈원에서 내쫓겼겠지요. 길거리에서 굶어 죽었을 겁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용서하고 기회를 주시는 분일세. 심판만 내리는 분이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늙은 사제가 미소 지었다.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걸세. 자네 가족에겐 새로운 기회가 필요해. 언제까지 구호소와 구빈원을 전전하겠나?”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런 삶에는 희망이 없네. 아들은 좀도둑이 되고 딸은 몸을 파는 신세가 될 거야. 아이들에게 그런 운명을 주길 원하나?”
“….”
“레반트로 이주한다면 집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주어질 걸세. 거기에 몇 년간 감세 혜택과 정착 지원금까지 있지. 황제 폐하께서도 지원을 약속하셨네.”
“그럼 정말 몸만 가면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땅과 집은 무상으로 준다면….”
“꿈같은 얘기처럼 들리겠지. 그게 아니라면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가고 싶어 하겠나? 돈을 주면서 가겠다는 이들도 있을 정도이니.”
안드레아스는 입을 다문 채 생각에 빠졌다.
아무리 머나먼 땅이라지만 땅과 집을 주겠다니.
말이 안 된다는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내 솔직히 말함세. 좋은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닐세.
사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예루살렘 왕국은 사레센 인들과 전쟁을 치르고 있네. 아무리 지원을 받는다 해도 정착이 쉽진 않을 거야. 거기에 전쟁이 벌어지면 무기를 잡고 싸워야 할 수도 있겠지.”
“….”
“하지만 정착에 성공한다면 가족들에게 물려줄 땅을 얻을 걸세. 이건 흔치 않은 기회이지.”
“전 물려받을 땅이 없어서 이곳 콘스탄티노플까지 왔습니다만. 이곳에도 절 위한 기회는 없더군요.”
안드레아스가 말했다.
셋째 아들.
그에게 물려받을 땅은 없었다.
그와 같은 자들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군대나 용병에 들어가 돈을 모아 장사.
혹은 사제가 되는 것.
하지만 그는 어떤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일자리를 찾아온 콘스탄티노플에서도 막노동을 전전할 뿐.
간간이 들어오는 수입은 가족을 부양하긴 턱없이 부족했다.
“며칠 동안 여유가 있으니 한 번 천천히 생각해보게. 하지만 나도 곧 지원자 명부를 써서 내야 하니….”
“감사합니다, 사제님.”
안드레아스는 감사 인사를 하고 집무실을 나왔다.
그는 홀을 터벅터벅 걸어갔다.
수많은 사람이 그의 곁을 지났다.
모두 이곳 구빈원에서 지내는 이들.
거대한 돔이 그들을 에워쌌다.
도시 안의 도시.
이곳에 들어온 이들은 쉽게 나가지 못했다.
평생 기도문만 읊다 죽거나 운 좋게 돈을 마련해 독립하는 것.
둘 중 하나뿐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예루살렘이라니. 정말 그곳까지 가는 사람들이 있는 건가?”
“이번에 바랑기인들이 따라간 곳이 거기 아닌가? 내가 듣기로 다미에타에서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었는데….”
“전리품이 인당 얼마였다고?!”
“키프로스도 나쁘지 않다 들었는데….”
안드레아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머지않아 그는 자신의 방에 도착했다.
그의 가족이 머무르는 곳.
어린 소녀가 그를 반겼다.
“아버지!”
“그래, 우리 이레네. 엄마 말 잘 듣고 있었니?”
그가 딸을 품에 안아 들었다.
“예!”
“착한 아이구나. 자, 가서 엄마 대신 동생 좀 봐주고 있으렴.”
달려가는 딸을 바라보며 그는 미소 지었다.
한 여인이 안드레아스 곁으로 다가왔다.
“얼굴이 어두우시네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그런 건 아니었어. 우리 가족에 대한 거긴 했지만….”
그가 웃으며 말했다.
“당신도 예루살렘이 어디 있는지는 알겠지.”
“어떻게 모르겠어요. 지금 주변 사람들 모두 그 얘기만 하고 있는데요. 그 말은….”
“사제님께서 우릴 자원자 명부에 올려주신다고 하셨어. 물론 그 전에 우리가 먼저 동의해야겠지만. 당신 생각은 어때? 당신만 괜찮다면….”
그의 시선이 창문 밖을 향했다.
콘스탄티노플의 웅장한 건물들이 창 안을 가득 채웠다.
성 소피아 대성당.
전차 경기장.
그 외에도 수많은 교회와 건물들.
저렇게 넓은 곳에 그들이 맘 편히 있을 곳은 없었다.
“성도로 떠날 수도 있겠지.”
* * *
“이쪽으로 오시지요, 보두앵 공자님. 국왕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고맙네.”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은 출정할 때만큼이나 금방 끝났다.
도시와 정궁은 차분한 분위기였다.
난 곧장 보두앵 4세의 집무실로 향했다.
“이젠 네 승전을 축하해주는 것도 익숙해질 지경이구나.”
그가 웃으며 일어섰다.
“알 아딜을 붙잡다니. 그 소식을 들은 사절단의 표정을 네가 봤어야 했다.”
“상상도 안 가는군요.”
내가 웃으며 답했다.
얼마나 놀랐을까.
“이번 어전회의에서 결정이 났다. 신호탑을 북부와 동부로 확장하자고 말이야.”
“이미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뭐 당연한 결과지.
이번 전투로 효과를 확실히 입증했으니.
돈 낭비라고 뭐라 할 사람은 없겠지.
“그리고 며칠 전에 로마에서 전갈이 왔다. 아니, 베로나라고 해야겠구나.”
그가 콜록거리며 말했다.
“지금 교황 성하께서 피신해 계신 곳이 그곳이니.”
교황이 이탈리아 북부에 있다고?
로마에서 쫓겨나기라도 한 건가.
교황이 로마에서 쫓겨나는 이벤트는 자주 있었지.
“성하께서 네가 대천사의 계시를 받았다는 걸 공식적으로 인정하셨다.”
난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가 동로마 편을 들까 봐 무서웠던 건가.
로마 교황이 인정한 판국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겠지.
이단이라 비난받을 일은 사라진 셈.
“그리고 네가 직접 이탈리아에 와주길 바라시더구나.”
“교황 성하께서 먼저 그런 부탁을 하신 겁니까?”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나보고 이탈리아에 오라고?
“네 능력을 검증하고 축복을 내려주시기 위해서라고 하셨다만. 그건 아마 표면적인 이유겠지.”
보두앵 4세가 말했다.
“진짜 목적은 널 이용해 주도권을 잡으려는 거다.”
“주도권이라면….”
대천사의 계시를 받은 예루살렘 성도의 왕족.
그런 내가 이탈리아로 가서 교황을 만난다면 그만큼 정통성과 권위가 세워질 터.
대중들에게 선전하기도 좋은 그림이겠네.
“그렇다고 거절할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내가 말했다.
어찌 됐든 잉글랜드와 프랑스 같은 유럽의 지원은 필요하다.
그럼 교황에게서 도움을 얻을 수 있겠지.
잉글랜드, 프랑스, 신성로마제국.
이 세 국가를 공략하려면 교황의 도움이 필요했다.
스페인 쪽도 도움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거긴 이미 이슬람 세력과 싸우고 있으니 힘들겠지.
“콘스탄티노플 때는 널 순순히 보내줬었지.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보두앵 4세가 말했다.
그가 잠시 아무 말 없이 날 바라봤다.
정적이 흘렀다.
“난 널 왕으로 만들 생각이다, 보두앵.”
“….”
난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한 건 처음 같은데.
“넌 짧은 기간 동안 수많은 공을 세웠다. 콘스탄티노플, 에일라트, 키프로스, 하마와 홈스까지. 너 혼자 해내진 않았더라도 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들이지.”
“….”
“하지만 단순히 군공만으론 왕위를 얻을 수 없다.”
그가 검지를 치켜세웠다.
“넌 이곳 궁전에서 네 힘을 보여줘야 해. 이곳도 하나의 전장이나 마찬가지지. 모두가 항상 먹잇감과 기회를 노린다.”
그가 덧붙였다.
“새로운 동맹이 맺어지고 원수들이 생기지. 뛰어난 장수라도 권력을 잃는 건 한순간이야. 난 조금이라도 나약한 자에게 왕위를 넘겨줄 생각이 없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늑대 떼를 이끌 자격을 증명하란 거군.
“그리고 내가 널 도울 수 있는 시간은 이제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그가 기침을 내뱉었다.
“아담은 930살. 므두셀라는 969년을 살았다 했지. 그런데 정작 난 삼십도 채 못 채우고 죽을 테니….”
“당장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 겁니다.”
복잡미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마지막까지 왕국을 위해 모든 걸 바친 사나이.
보두앵 4세.
그가 내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보두앵 너까지 날 위로해 줄 필요는 없다.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지.”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얼마 전부터 시야도 흐릿해지기 시작하더구나. 사라센 의사들도 두 팔을 들었어. 지금까지 먹은 그 괴상망측한 약초들도 효과가 없었고 말이야.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다만.”
“….”
실명은 나병의 말기 증상.
그가 원 역사에서 죽는 건 1185년의 일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년도 채 안 남은 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보두앵 4세가 다시 일어섰다.
그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내가 너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거다. 내 도움을 받아 토대를 다지려면 넌 이곳 예루살렘에 남아 있어야 해.”
“하지만 유럽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 예루살렘 왕국은….”
난 침을 꿀꺽 삼켰다.
나도 물러설 수는 없었다.
“멸망할 겁니다. 제가 왕위에 오른다 해도 말이죠.”
계란은 돌을 이기지 못한다.
아무리 단단한 계란을 쓴다 해도 바뀌지 않는 법칙.
지금은 예루살렘 왕국이 그 계란.
인력 충원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용써도 이기는 건 힘들지.
“그리고 유럽의 지원을 받아낼 수 있는 사람은 저밖에 없습니다.”
“….”
이젠 보두앵 4세가 침묵할 차례였다.
그가 날 물끄러미 바라봤다.
“언제나처럼 확신하는 어조로구나. 네가 그렇게 믿는다면….”
그가 말했다.
“너에게 기회를 주마. 네가 한 가지 일을 성공적으로 끝마치면 유럽으로 떠나는 것도 허락해주겠다.”
“이 일이라면….”
“네가 성전기사단원들을 붙잡은 이후로 큰 난리가 벌어진 건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단장이었던 토로하는 쫓겨난 상태.
그 이후의 처벌을 놓고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말단의 기사단원과 종자들만 고생하고 있지.
“토로하 단장은 쫓아낼 수 있었지만 왕국 안엔 아직도 성전기사단을 지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보두앵 4세가 말했다.
“단순한 지지는 상관없지만 이들이 저지른 범죄를 옹호하는 건 다른 얘기지. 불길이 퍼져나가기 전에 어떻게든 꺼야 한다.”
“섣불리 손을 대면 오히려 반발만 커질 수 있겠군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올 말들이야 뻔하지.
‘문제를 저지른 건 일부 단원들뿐이다!’
‘국왕이 사소한 일을 핑계 삼아 신성한 기사단을 탄압한다!’
이런 식으로 무지성 공세에 나올 테니깐.
기사단은 예루살렘 왕실 직속 조직도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교황 직속의 복잡한 관계.
“기사단 처리를 너에게 맡기마. 늑대 무리가 살아남기 위해선 배신자의 목덜미를 물어뜯어야 하는 법. 지금 여유가 있을 때 해치워야겠지.”
보두앵 4세가 말했다.
“이 일을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네가 유럽으로 떠나는 것도 허락하도록 하마.”
“……알겠습니다. 폐하께서 맡겨주신다면….”
난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단이란 단어를 처음 들은 순간부터 내 머리는 돌아가고 있었다.
로마의 교황, 헤라클리우스 총대주교.
성전기사단 내부의 왕실파.
언제나 그렇듯 방법은 있었다.
문제는 그걸 찾는 것.
“제가 해결하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