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80)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80화(80/215)
성전과 구호 (5)
* * *
“콘스탄티노플 때도 그러셨지만….”
테오도라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공자님께선 매번 불길에 첫 번째로 뛰어드시는군요. 에일라트에 성전기사단까지 쉬지도 않으시고요.”
“화염에 뛰어드는 나방이나 마찬가지죠.”
나 역시 웃으며 답했다.
테오도라의 임시 거처.
난 주변을 둘러봤다.
카펫과 옷의 장식은 아무리 봐도 아름다웠다.
최면에 빠지는 기분이 들 정도.
“하지만 기회는 잡지 않으면 사라지는 법이죠.”
실수한 건 어디까지나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었다.
난 준비하고 기다렸을 뿐.
에일라트를 습격한 알 아딜.
성전기사단 역시 마찬가지.
놈들이 실수하지 않았으면 기회도 없었겠지.
둘 다 얼마나 땅을 치고 후회했을까.
난 졸린 눈을 비볐다.
며칠 동안 취조와 조사를 반복해서 그런지 눈이 무거웠다.
눈꺼풀에 무게추라도 달아놓은 듯한 기분.
망토라도 좀 풀고 싶은데.
몇 겹으로 된 옷에 발의 박차까지.
간지를 위해 얼마나 더 불편하게 입어야 할까.
왕족이라 투덜거릴 수도 없고.
“그럼 모든 기사단을 하나로 통합할 생각이신가요?”
“그렇게 될 겁니다. 구호기사단과 라자루스 기사단은 반기는 눈치고….”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전기사단은 그걸 거부할 명분이 없죠. 하지만 성묘수호단은 독립적인 조직으로 남을 겁니다.”
난 테오도라를 바라봤다.
바이킹들을 기존 기사단이랑 통합하기는 힘들겠지.
애초에 성묘수호단은 예루살렘 왕국보다 동로마에 더 가까웠다.
대장인 루아크 역시 마찬가지.
알렉시오스의 근위대장이었으니.
수호단과 예루살렘의 연결고리는 나와 테오도라였다.
테오도라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설령 수호단이 다른 기사단과 통합될 수 있다고 해도…. 그리 좋은 결과는 아니겠죠.”
“제 생각도 같습니다.”
내가 웃으며 답했다.
바이킹들은 마음대로 음주, 육식하고 있으니.
기사단원들이랑 같이 지내면 싸움이 안 날 수가 없지.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녀가 지도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에일라트에서 붙잡은 사라센 포로들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일단 재건에 계속 동원할 생각입니다. 도시를 약탈하다 붙잡힌 놈들이니 그 정도면 자비로운 거죠. 마음만 같아서는 입에 돼지고기를 한가득 쑤셔놓고….”
테오도라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죄송해요. 공자님께선 매사 진지하신 줄 알았거든요. 그나저나 돼지고기라.”
그녀가 계속해서 말했다.
“사라센인들은 돼지를 너무나 혐오해 기독교의 땅을 정복할 때마다 돼지들부터 모두 도축한다고 하죠. 하지만 제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그녀가 덧붙였다.
“콘스탄티노플에 왔던 술탄, 킬리지 아르슬란 2세는 돼지고기를 망설임 없이 먹었다더군요.”
“술을 공개적으로 마시는 자들도 적지 않죠.”
나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슬람 인물 중에도 술고래 특성을 가진 자들이 많았지.
에데사 백국을 멸망시킨 장기.
살라딘의 숙부이자 이집트를 정복했던 시르쿠.
돼지고기와 알코올.
이 두 개가 중독적이긴 하지.
그나저나 아르슬란이라면….
동로마 동쪽의 이슬람 세력.
“룸 술탄국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예, 맞아요.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에 머무르는 동안 아르슬란의 수행원 중 한 명이 비행술을 선보였죠.”
나도 모르게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비행술이라고?
“공기주머니가 잔뜩 달린 옷을 입고 나와서 자기가 날 수 있다고 했다더군요. 그리고 원형경기장 위로 올라가 뛰어내렸는데….”
“좋게 끝나진 않았겠군요.”
“그대로 경기장 바닥에 처박혀 데굴데굴 굴렀죠. 아이들이 던진 장난감처럼 말이에요.”
테오도라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만 명이 보는 앞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사절단이라. 그거 볼만한 광경이었겠군요.”
우리는 아이들처럼 키득거리며 웃었다.
몇 초가 지난 후에야 겨우 웃음이 멈췄다.
이렇게 편했던 게 마지막으로 언제였더라.
맨날 정신없이 돌아다니기만 했으니.
웃음을 멈춘 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없는 동안 황녀님께서 이주 계획을 맡아주셨다고 들었습니다.”
난 에일라트랑 성전기사단 때문에 제대로 신경을 못 썼으니.
하지만 테오도라 덕분에 이주 계획은 착착 진행 중이었다.
그녀와 성묘수호단은 콘스탄티노플과 소통하며 계획을 조율했다.
이미 1차 이주단이 이곳 예루살렘 왕국에 오는 중이고.
아메리칸 드림 대신 예루살렘 드림이라.
내가 생각해도 나쁘진 않네.
땅도 주고 집도 주고.
그 대가는 입대뿐.
흠, 대가가 좀 큰 것 같긴 한데.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어요. 황제께서도 동의하신 일이고요. 그리고 황제께선 추가로….”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공자님의 키프로스 통치권을 계속 인정하겠다 하셨고요.”
“그렇군요.”
예루살렘 왕국이 아니라 나한테 한정한 선물이란 거군.
혼인을 확실히 하기 위한 카드.
이젠 추가 보급창들도 완성됐을 터.
꾸준히 유럽의 물자를 들여올 수 있었다.
“언젠가 콘스탄티노플에도 다시 들러야겠습니다.”
“아니면 황제 폐하께서 이곳 예루살렘에 먼저 오실 수도 있겠죠.”
그녀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제 생각엔 그게 더 빠를 것 같네요.”
* * *
테오도라라 헤어진 난 곧장 보두앵 4세의 집무실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오거라, 보두앵.”
집무실 안은 하얀 연기로 가득했다.
풀이 타는 냄새.
대마초인가?
연기 사이로 보두앵 4세의 모습이 보였다.
“토로하를 추방하는 선에서 마무리라.”
그가 대마초 통을 시종에게 건네며 말했다.
그의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
“단순히 그 선에서 끝날 것 같지는 않다만.”
“물론입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서 끝낼 수는 없지.
“자기가 저지른 죗값은 치르게 해야죠.”
“뒤처리를 어떻게 할지는 너에게 맡기겠다. 내가 따로 관여하지 않으마. 자, 와서 앉거라. 아직 네게 들을 이야기가 많다.”
난 그의 앞에 앉아 짧게 보고했다.
성전기사단의 상황과 처리.
성전기사단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토로하는 기 백작의 관여를 인정하고 추방.
부정부패를 저지른 이들 역시 퇴출 및 처벌.
“너무 과격하지는 않을까 걱정되긴 합니다만….”
“주인을 무는 사냥개는 키울 가치가 없지. 그게 지금 성전기사단의 상황이다.”
보두앵 4세가 고개를 흔들었다.
“내 기대보다 더 깔끔히 일을 마무리해줬다. 사실 네가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다면….”
“폐하께서 직접 개입하실 생각이셨군요.”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지. 이탈리아 방문을 내세워 교황 성하를 압박하다니.”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폐하 덕분입니다.”
내가 먼저 이탈리아에 간다고 했으면 교황이 아무 보상도 안 줬겠지.
역시 비싸게 굴어야 떡 하나라도 더 얻어먹는 법.
난 나 자신을 조건으로 내세워서 교황의 지지를 얻어냈다.
“넌 동방 로마 황제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신임을 받는 인물이지.”
보두앵 4세가 말했다.
“로마 교황청은 널 놓칠 수 없었을 거다. 거기에 부정부패의 증거도 확실했고.”
난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증거가 얼마나 많은지 아직도 정리가 안 끝났을 정도.
“그리고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었습니다만….”
내가 말했다.
신경 쓰이는 게 하나 있었다.
“체포된 이들 모두 비슷한 말을 하더군요. 자신들이 돈을 빼돌린 건 인정하지만 그게 기사단을 위한 거였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는 돈을 자기 가문이나 애인들에게 보냈지.
여기까지는 그리 이상하지 않았다.
이해되지 않는 건 그들이 진심으로 그런 주장을 했다는 것.
“무리도 아니지.”
보두앵 4세가 말했다.
“넌 성도를 위한다는 게 뭐라고 생각하느냐?”
“그건….”
성도 예루살렘을 위한 거라.
왕국과 사람들을 지키고 전쟁을 막는 것?
“우리가 가진 생각이나 신념은 조잡하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진짜가 아닌 가상의 존재에 기도하지.”
보두앵 4세가 웃음을 터뜨렸다.
“부모와 가족을 위해 기도한다는 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진짜 가족이 아닌 자신이 머릿속에 꾸며낸 가족. 가족의 ‘영혼’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지만 정작 진짜 아내나 자식들에겐 주먹을 휘두르지.”
“성도 수호도 마찬가지겠군요.”
자기 잘못을 합리화하는 거라.
21세기에도 비슷한 이야기는 많았다.
나라와 조국을 위해 한 일이었다.
평화를 위해 한 일이었다.
가족을 위해 한 일이었다 등등.
“그래서 더더욱 중요한 게 행동이다. 인간의 행동은 거짓말을 하지 않거든.”
보두앵 4세가 날 정면으로 바라봤다.
우리의 시선이 중간에서 부딪혔다.
“내가 널 눈여겨본 것도 네가 에일라트로 떠나겠다고 스스로 나섰을 때부터였다, 보두앵.”
“….”
그가 다시 말했다.
“오늘 다마스쿠스에서 정보가 들어왔다. 살라딘이 지난 며칠 동안 모금 운동을 펼치고 있다더구나.”
“모금 운동이라면… 알 아딜의 몸값을 말입니까?”
보두앵 4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금 운동이라고?
시민들한테서 돈을 받아야 할 정도로 돈이 없는 건가?
아니지.
살라딘은 이집트와 시리아를 통일했다.
그 정도 돈을 모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터.
다른 노림수가 있는 게 분명했다.
모금 운동이라.
“혹시 시인과 학자들이 전면에 나서지 않았습니까?”
“바로 맞췄구나. 그들이 여론을 만들고 있다. 알 아딜을 지하드의 영웅으로 꾸미고 있지.”
보두앵 4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적잖은 금액이 모였다고 들었다.”
“역시 그랬군요.”
시인과 학자들.
이들은 이슬람 사회에서 여론을 주도했다.
기독교의 성직자나 음유시인들과 비슷한 역할.
이들을 이용해 알 아딜을 영웅으로 포장하는 건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지하드(성전)의 영웅이라.
에일라트를 습격한 도적질이 그렇게 꾸며질 줄은 몰랐네.
“아우가 붙잡힌 걸 이렇게 이용하다니 역시 살라딘답군요.”
“성전만큼 대중을 흥분시킬 소재도 없지. 살라딘은 붙잡힌 동생을 이용해 무슬림을 하나로 합치려는 거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죽이지 않고 생포한 게 그나마 다행이었군.
“몸값을 받으면 평화협정을 체결할 생각이다. 네가 유럽에 가 있는 동안은 현 상태를 유지해야겠지.”
그가 말했다.
“네가 이탈리아 가는 걸 허락해주마.”
“감사합니다, 폐하.”
“이번에는 동행할 기사들을 최대한 많이 데리고 가거라. 재무관에게도 네게 필요한 만큼 자금을 내어주라고 일러뒀다.”
그가 일어서며 내게 다가왔다.
“넌 지금 예루살렘 왕국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야. 그걸 항상 명심하거라. 네 목숨이 더 이상 네 것이 아니란 뜻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보두앵 4세가 죽으면….
왕좌를 건네받을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직까진 기뿐인가.
시빌라도 이혼을 준비 중이었지만 금방 끝날 리 없으니.
내가 이렇게 중요한 인물이 됐다는 게 아직도 실감이 안 갔다.
“지금 바로 가서 준비해야겠군요.”
“그렇게 서두를 필요 없다. 떠나기 전에 한 가지 해둘 게 있을 텐데?”
그가 장난기 어린 어조로 말했다.
떠나기 전에 해둘 거라면….
“이미 혼인식 준비는 끝났다. 남은 건 날짜를 정하는 것뿐이야. 보두앵 네가 떠나기 전에 해치워야겠구나.”
그가 웃으며 말했다.
결혼이라.
싱글인 것도 얼마 남지 않았군.
그때 누군가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보두앵 4세가 말했다.
“들어오게.”
발리앙.
그가 한 손에 종이를 든 채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방금 아크레에서 들어온 소식입니다. 유럽 쪽에서….”
그가 뒤늦게 날 발견했다.
보두앵 4세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상관없으니 계속 말하게.”
“신성로마제국에서 사절단이 도착했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이라고?”
보두앵 4세가 의외라는 어조로 되물었다.
놀란 건 나 역시 마찬가지.
신성로마제국?
프리드리히 1세가 사절단을 보냈다고?
“유럽의 로마 황제가 사절단을 보냈다라.”
보두앵 4세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이거 재미있군.”
* * *